작가/저자 여 는 글 - 세상을 살아가는 역량, 학교도서관에서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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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4 12:57 조회 7,099회 댓글 0건본문
우리 시대 유명한 발명가 가운데 한 사람인 레이 커즈와일은 1976년 종이 자료를 영상으로 변환하는 CCD 스캔 기술, 영상문자를 판독하여 텍스트로 변환하는 광학문자인식 OCR 기술,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 내는 텍스트 음성 합성TTS 기술 세 가지를 결합한 ‘커즈와일 읽기 기계’를 발명했다. 컴퓨터로 인쇄 문자를 읽는 기술은 스마트폰 같은 휴대전화에까지 도입되어 이제 모든 자료를 텍스트로 보관하면서 읽거나 듣는 일이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기술 발달은 도대체 어디까지 나아갈까.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여 양자가 합한 제3의 존재가 되는 ‘특이점’에 곧 도달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언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나노기술은 무한대로 발달하고 있어 우리는 인류가 생산한 모든 정보에 언제 어디서나 즉각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마당에 정보를 기억하고 보관하는 일은 전혀 장점이 되지 못한다. 이제 주어진 정보를 엮고 해석하여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경쟁에서 즉각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능력은 주입식 교육 시스템에서는 결코 키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능력을 키운 사람만이 갖출 수 있다. 게다가 웹2.0으로 읽기와 쓰기가 연동된 시대가 돌아왔다. 본래 조선시대만 해도 사대부에게 있어 쓰기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과거시험은 잘 써야만 통과될 수 있었고, 잘 쓰기 위해서는 무조건 많이 읽어야 했다. 그러다 대중 저널리즘이 등장한 이후 소수의 ‘쓰기’와 다수의 ‘읽기’체제가 굳어졌다.
그러나 최근 누구나 무엇을 죽어라고 쓰는 시대가 완벽하게 부활하고 있다. 휴대전화 문자나 이메일, 트위터 등에다 무엇이든 잘 써야만 한다. 기업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획서 한 장이라도 잘 써야 한다. 인터넷 블로그에 좋은 글을 쓴 사람은 종종 메이저리그 스타가 되기도 한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은 종이책으로 ‘출판’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개인은 이렇게 읽기와 쓰기와 출판이 연동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조선시대와는 현격하게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사서오경’ 같은 극히 한정된 텍스트를 마르고 닳도록 읽기만 해도 과거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날로 증가하는 무수한 텍스트를 연결하여 읽으면서 자신만의 장점, 다르게 말하면 ‘차이’를 드러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과정을 감안하면 그런 능력은 우수한 대학을 졸업한다 해서 결코 저절로 키워지지 않는다. 이미 지식을 단순하게 암기하는 공부만으로 시험성적을 잘 내는 데만 익숙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부적응자로 도태되는 일이 다반사인데 앞으로는 그런 체제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제는 대학 졸업장이나 석.박사학위보다도 어떤 역량을 실제로 갖췄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한 번의 직업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정보에 대한 접근능력이 아무런 경쟁력이 되지 않는 시대에는 정보를 끄집어내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여야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 이런 능력 또한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으며 중요한 부분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망각하는 능력, 즉 콘셉트를 뽑아내는 훈련을 제대로 한 사람만이 갖출 수 있다.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래서 책 읽는 환경이 더욱 중요하다. 웹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미 누군가가 상상력을 발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질을 보장하기도 어렵다. 책의 가치는 ‘편집력’에 있다. 행간과 여백까지 배려한 책을 읽어야만 역량을 확실하게 갖출 수 있다. 그것도 불규칙하게 놓여 있는 수많은 책을 함께 읽으며 자신만의 차이를 만드는 일을 어려서부터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갖출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늘 수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도서관이다. 특히 학교도서관은 다양한 신간을 제대로 구비해서 학생들이 언제나 필요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으로 거듭나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학교도서관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게 하고 그런 결핍을 채우는 이정표를 안내해 줄 사서교사 또한 너무 적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기 위해 우리는 <학교도서관저널>을 펴내기로 했다. <학교도서관저널>에서는 학교 현장의 사서교사와 담당교사, 교육운동가, 독서운동 종사자, 출판전문가,평론가, 작가 등이 참여하여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잡지를 창간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체제를 갖추고 지면을 어떻게 바람직하게 꾸며야 할지 충분한 토론을 벌이지 못해 많이 아쉽다. 이 부족함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채워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