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 시인이 된 ☆공고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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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5:35 조회 6,234회 댓글 0건본문
엮은 선생님 인터뷰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 공고 학생들을 대하기가 힘들다고 하시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지요?
조혜숙 지금은 공업고등학교와 상업고등학교 등을 전문계고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공업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대하기가 힘든 것은 아닙니다. 몇몇 전문계고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기도 하니, 학업 성취가 떨어지는 학생들이 전문계고에 진학한다는 편견이 전제되면 안 되겠습니다.
정윤혜 근근이 고등학교 졸업장 하나 따는 것이 학교 다니는 목표의 전부인 양 행동하는 학생들에게 매시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갖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떠들고 장난치는 학생들을 방관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거칠게 반응하는 학생들과 실랑이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그대로 매시간 학생들과 부딪치다가는 교육은커녕 학생들과의 관계만 악화될 뿐이라는 위기감마저 들었습니다. 전근 와서 들은 말 중에 가장 씁쓸한 농담은 “학생들에게 욕을 먹어 보지 않고서는, 학생들이 뱉은 침에 미끄러져 보지 않고서는 교육을 말하지 말라.”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렇듯 거칠고 무례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데다 아무 의욕도 없어 보이는 학생들을 데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가장 난감했습니다.
공고 학생들과 시, 얼핏 생각하면 꽤 어색해 보이는데, 어떻게 학생들을 시에 가까워지도록 하셨고, 학생들에게 시를 쓰게 하셨는지요?
김상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수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해 보던 중,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모은 책이 나와 있어서 그 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단 시가 짧고 쉽기 때문에 학생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또한 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시와 연관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색연필과 사인펜을 나눠줘서 학생들이 ‘기존의 수업과 다르다’ ‘자유롭다’는 느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또한 조별 활동을 장려해서 서로의 시를 볼 수 있도록 한 점도 흥미를 유발한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정윤혜 예상외로 학생들은 시 쓰기에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줄만 써도 쉴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빨리 해치워버리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다가, 서로의 시들을 읽어주었더니 ‘저것도 시냐, 그 정도라면 나도 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경쟁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조혜숙 같이 근무했던 국어 선생님들과 자주 모여 학교생활의 어려움도 이야기하고 어떤 학습지를 만드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러면서 “전자과 대현이가 이런 시를 썼어요.”라고 하면서 서로 보여주고 신기해 하고 또 독려했어요. 그러면서 ‘생활시 쓰기’가 한 프로그램이 되었고 축제 때 시화전으로 발전하게 되었지요.
시를 쓰고 나서의 학생들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는지요?
김상희 자신이 무언가를 창조해냈다는 사실 때문인지, 시를 쓰고 뿌듯해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장의 행동 변화보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을 결과물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조혜숙 시 쓰기를 하고서 학생들이 밝아졌다, 태도가 좋아졌다,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하면 거짓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시 쓰기 수업 중에 학생들이 조용히 몰두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나눠주는 시를 읽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시를 고쳐보고 또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그림으로 그려보고 이런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이 좀 차분해지는 것을 보았어요. 그러니까 학생들은 시를 쓰는 동안 평소보다 차분했고, 궁리하기도 했고, 의욕을 가지고 뭔가 완성해보려고 했다는 것이 변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정윤혜 학생들은 교사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은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존감이 매우 낮았습니다. 학생들 중 상당수가 학창시절 동안 단 한 번도 상을 받아본 적 없거나 주목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화전을 하고 상을 남발(?)하면서라도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격려해주고 싶었습니다. 시화전이 시작되자, 자신의 시는 어디 있냐며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시를 다른 사람들이 읽고 있다는 것에 무척 신기해했습니다. 학생들의 들뜬 마음을 만나니, 그 순간만큼은 학생들에게서 무기력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의 시를 보시고, 느끼셨던 점은요?
김상희 학생들의 시를 보면서 평소에 물어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 학생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이 쓴 시를 매개로 내성적인 학생에게도 쉽게 다가가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눈에 비추이는 학교, 선생님, 교실, 가정의 모습을 ‘학생의 눈높이’로 보니, 학생의 마음이 보다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정윤혜 학생 시 중에서 부찬이의 「가출」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부찬이는 가출하고 몇 주 만에 나타났습니다. 수업 시간에 마침 시를 쓰고 있었기에 그 생생한 느낌을 시에 담아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처음에는 귀찮다고 하다가 내가 종이에 연필까지 쥐고는 받아쓰겠다고 하니 시를 불러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의 대화 속에서 탄생한 시가 「가출」입니다. 부찬이의 시에서는,“찜질방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 피시방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 노래방에 가서 또 시간을 때웠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집을 나가고 싶어 했던 부찬이의 마음, 집을 나가서도 전혀 즐겁지 않던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수업일수 부족으로 더는 학교를 못 다니게 될 것같다고 했던 그 말도 오래오래 마음에 짠하게 남았습니다.
조혜숙 학생들이 시를 통해 자기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리고 저는 시를 읽으며 학생들의 형편과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요. ‘형진이는 원동기 면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구나, 강호는 학교에 오가며 일하는 아버지를 염려하는구나, 민석이는 공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의식하는구나.’ 그런 것들을 억지로 말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시 쓰기를 하면서 나의 편견, 나의 전제들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연민과 미안함, 뿌듯함과 불편함 등 복잡한 감정이 많이 생겼습니다. 재미있어 웃기도 했고요. 마음을 아주 많이 사용했다고 할까요.
시 수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김상희 담임을 맡은 반에서 시 수업을 하고 나서, 학생들의 창작시를 보다가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다른 반과
다르게 학생들이 담임인 ‘나’에 대한 시를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서른 명의 학생 중 대여섯 명의 시의 소재가 저였습니다. 특히 제가 눈물 흘린 순간에 대해 많이들 시를 썼는데, 우선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별로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었고, 오히려 감추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을 해보니, 내가 그렇게 안타까워했던 학생들이, 속으로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들 생각에는 그리 큰 일이 아닌데, 그 일 때문에 꾸중하고, 때로는 눈물까지 보이며 호소하는 담임이 무엇보다 이상했을 것입니다. 또 그만큼 불쌍해 보였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로서는 조금 위안이 됐고, 내게 꾸중 들으며 움찔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내가 꾸중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행동 변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듣고 흘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 순간에 어떠한 생각(‘불쌍하다’, ‘우리가 불리해진다’등)을 하고 있었음을 확인하니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학생들의 시를 읽은 그 순간부터, 그 모든 갈등의 순간을 넘어 내 마음 속에서 나와 우리 반 학생들 사이의 화해가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쓴 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가 있다면요?
정윤혜 류연우의 「노스패딩」이요. “겨울이 오면 모든 학생들이 / 노스 패딩을 입는다 / 왜 노스만 입을까 / 다른 패딩들도 많은데 / 노스는 비싼데, 담배빵 당하면 터지는데 / 노스는 간지템, 비싼 노스 안에 내 몸을 숨기고 / 무엇이라도 된 듯하게 당당하게 거리를 걷는다 / 한겨울엔 노스만 입어도 무서울 게 없다” 몇 년 전 ☆ 공고 학생들은 교복을 대신하여 노스페이스 패딩 점퍼를 너나 할 것 없이 입었습니다. 수십만 원에 달하는 이 점퍼를 사기 위해서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학생들은 소풍 등의 교외활동에 교복을 입고 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자신들이 ☆ 공고 학생이라는 것을 남들이 아는 것이 싫다고 했습니다. 노스패딩을 입으면 자신이 강남의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과 다를 바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교복을 가리고 싶은 그 마음, 비싼 옷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감추고 싶은 그 마음이 읽혀져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조혜숙 「네네치킨」의 건강함이 좋아요. 「우리 학급 생활 규칙 열 가지」의 재치도 좋고요. 「울보 담임」에 담긴 복잡한 마음도 좋아요. 「선반」은 아픈 시예요. 「막노동」을 쓰고 잠을 자던 대현이, 늘 농담만 하던 형룡이가 「학교」라는 시에 존재의 무거움을 풀어놓았던 것도 생각이 납니다. 한 여학생은 문제가 생겨 3학년 2학기에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는데, 시 쓰는 날이 마지막 등교일이었어요. “선생님, 저 이 시 쓰고 가요.”라고 하는데 뭐라 위로도 할 수 없고. 글쓰기가 위로가 되었을는지요.
다른 학교 학생이나 선생님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상희 특히 내성적인 학생일수록 물어 봐도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학생들이 적기 부담스러워하는 긴 산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짧지만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 수업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내 마음 속에 ‘문제’학생으로 낙인 찍힌) 학생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 학생을 일차원적으로밖에 파악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대해 오히려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들께서 내가 경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 속 화해’의 순간들을, 그 변화의 지점들을 경험하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의 마음을 가까이서 읽고, ‘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은 교사만이 할 수 있는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혜숙 저는 올해 인문계고로 옮겼습니다. 생활시 쓰기를 시도해 보고 있는데, 우리반 학생이 「딸배인생」이라는 시를 읽고 이런 감상을 썼어요. “나는 공고에 간 사람들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공부와는 담 쌓았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니, 뭔가 마음이 이상해진다. 아프다고 해야 하나, 동정이라고 해야 하나. 돈을 벌기 위해 비록 죽을 위험이 있더라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학생이나 선생님들이나 이런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윤혜 ☆공고에 근무하며 가장 힘 빠지는 일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늘 제자리인 학생들을 믿어보고 또 속고 또 믿어보기를 반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교사로서 회의와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학생들을 위해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서투르게’라도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서 했던 일들이 한 편의 시집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과 시를 쓰며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교사에게는 재미있고, 학생에게는 행복한 일’을 많이많이 찾아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서투르게라도 시작했으면 합니다.
학생들 인터뷰
본인이 쓴 시가 책으로 엮였는데, 작가가 된 소감이 궁금해요.
김승우 정말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습니다. 저와 다른 친구들이 쓴 시가 책으로 출판될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지금껏 느끼지 못한 희열을 느꼈습니다. 친구들과 제가 쓴 시를 책으로 보니까 정말 뿌듯하고, 서로의 시를 읽으면서 공감을 했습니다.
유성민 사소한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썼는데 책으로 출판되니 얼떨떨했습니다.
시, 시쓰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김승우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대화 같은 쌍방향 소통이 아니지만,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든가, 내면에 감춰 뒀던 자신의 고통을 남들과 공감하고 느끼며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성민 일기처럼 자신이 해 온 일을 주제로 한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면서 어려웠던 점?
김승우 시를 처음 써보는 것이라서 부담스럽고 쓰기도 어려웠지만, 쓰면 쓸수록 자기 자신을 더욱 성찰하고 삶에 대한 의미가 생겨났습니다.
유성민 시를 쓸 때에는 이 시가 다른 사람에게 읽힐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었고 그냥 시 쓰기가 재미있었어요.
자신이 쓴 작품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김승우 어렸을 적 공부에 대한 소중함을 알지 못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것을 후회하고 앞으로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꿈을 위해 사용하기로 다짐하는 마음에서 시를 썼습니다.
유성민 내가 왜 힘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용돈을 주지 않는 엄마가 미웠어요. 그래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전단지를 받지 않고 지나갈 때 들었던 부끄러운 마음과 울분(?) 같은 것을 표현했어요.
앞으로도 시를 쓸 건가요?
김승우 책에 제 시가 실린 다음에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시를 썼습니다. 시를 통해 소중한 것을 깨닫고 과거에 했던 실수들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틈틈이 화가 나는 순간에 시를 쓸 것입니다.
유성민 시를 쓰고 그림까지 그리며, 내 마음의 화가 좀 진정됐어요. 다시 책을 내진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기분이 좋거나 나쁜 순간을 시로 써서 남기고 싶어요.
시간
김승우
또 시간이 흘렀네
이놈의 시간은 천천히 좀 가면 안 되나
마치 레이스를 하듯 빨리 지나간다
어떤 사람은
부모들이 깔아 준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
가끔은 그런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르바이트
유성민
돈이 없어서
전단지 알바를 했다
근데 안 받는 사람들이 많다
존나 쿨한 척하고 안 받거나
존나 쪼개며 안 받을 때
기분이 상한다
내가 왜 이 짓을 해야 할까
용돈 안 주는 엄마가 밉다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 공고 학생들을 대하기가 힘들다고 하시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지요?
조혜숙 지금은 공업고등학교와 상업고등학교 등을 전문계고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공업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대하기가 힘든 것은 아닙니다. 몇몇 전문계고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기도 하니, 학업 성취가 떨어지는 학생들이 전문계고에 진학한다는 편견이 전제되면 안 되겠습니다.
정윤혜 근근이 고등학교 졸업장 하나 따는 것이 학교 다니는 목표의 전부인 양 행동하는 학생들에게 매시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갖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떠들고 장난치는 학생들을 방관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거칠게 반응하는 학생들과 실랑이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그대로 매시간 학생들과 부딪치다가는 교육은커녕 학생들과의 관계만 악화될 뿐이라는 위기감마저 들었습니다. 전근 와서 들은 말 중에 가장 씁쓸한 농담은 “학생들에게 욕을 먹어 보지 않고서는, 학생들이 뱉은 침에 미끄러져 보지 않고서는 교육을 말하지 말라.”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렇듯 거칠고 무례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데다 아무 의욕도 없어 보이는 학생들을 데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가장 난감했습니다.
공고 학생들과 시, 얼핏 생각하면 꽤 어색해 보이는데, 어떻게 학생들을 시에 가까워지도록 하셨고, 학생들에게 시를 쓰게 하셨는지요?
김상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수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해 보던 중,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모은 책이 나와 있어서 그 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일단 시가 짧고 쉽기 때문에 학생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또한 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시와 연관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색연필과 사인펜을 나눠줘서 학생들이 ‘기존의 수업과 다르다’ ‘자유롭다’는 느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또한 조별 활동을 장려해서 서로의 시를 볼 수 있도록 한 점도 흥미를 유발한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정윤혜 예상외로 학생들은 시 쓰기에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줄만 써도 쉴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빨리 해치워버리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다가, 서로의 시들을 읽어주었더니 ‘저것도 시냐, 그 정도라면 나도 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경쟁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조혜숙 같이 근무했던 국어 선생님들과 자주 모여 학교생활의 어려움도 이야기하고 어떤 학습지를 만드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러면서 “전자과 대현이가 이런 시를 썼어요.”라고 하면서 서로 보여주고 신기해 하고 또 독려했어요. 그러면서 ‘생활시 쓰기’가 한 프로그램이 되었고 축제 때 시화전으로 발전하게 되었지요.
시를 쓰고 나서의 학생들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는지요?
김상희 자신이 무언가를 창조해냈다는 사실 때문인지, 시를 쓰고 뿌듯해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장의 행동 변화보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을 결과물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조혜숙 시 쓰기를 하고서 학생들이 밝아졌다, 태도가 좋아졌다,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하면 거짓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시 쓰기 수업 중에 학생들이 조용히 몰두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나눠주는 시를 읽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시를 고쳐보고 또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그림으로 그려보고 이런 수업을 할 때, 학생들이 좀 차분해지는 것을 보았어요. 그러니까 학생들은 시를 쓰는 동안 평소보다 차분했고, 궁리하기도 했고, 의욕을 가지고 뭔가 완성해보려고 했다는 것이 변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정윤혜 학생들은 교사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은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존감이 매우 낮았습니다. 학생들 중 상당수가 학창시절 동안 단 한 번도 상을 받아본 적 없거나 주목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화전을 하고 상을 남발(?)하면서라도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격려해주고 싶었습니다. 시화전이 시작되자, 자신의 시는 어디 있냐며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시를 다른 사람들이 읽고 있다는 것에 무척 신기해했습니다. 학생들의 들뜬 마음을 만나니, 그 순간만큼은 학생들에게서 무기력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의 시를 보시고, 느끼셨던 점은요?
김상희 학생들의 시를 보면서 평소에 물어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 학생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생이 쓴 시를 매개로 내성적인 학생에게도 쉽게 다가가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눈에 비추이는 학교, 선생님, 교실, 가정의 모습을 ‘학생의 눈높이’로 보니, 학생의 마음이 보다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정윤혜 학생 시 중에서 부찬이의 「가출」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부찬이는 가출하고 몇 주 만에 나타났습니다. 수업 시간에 마침 시를 쓰고 있었기에 그 생생한 느낌을 시에 담아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처음에는 귀찮다고 하다가 내가 종이에 연필까지 쥐고는 받아쓰겠다고 하니 시를 불러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의 대화 속에서 탄생한 시가 「가출」입니다. 부찬이의 시에서는,“찜질방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 피시방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 노래방에 가서 또 시간을 때웠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집을 나가고 싶어 했던 부찬이의 마음, 집을 나가서도 전혀 즐겁지 않던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수업일수 부족으로 더는 학교를 못 다니게 될 것같다고 했던 그 말도 오래오래 마음에 짠하게 남았습니다.
조혜숙 학생들이 시를 통해 자기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리고 저는 시를 읽으며 학생들의 형편과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요. ‘형진이는 원동기 면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구나, 강호는 학교에 오가며 일하는 아버지를 염려하는구나, 민석이는 공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의식하는구나.’ 그런 것들을 억지로 말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시 쓰기를 하면서 나의 편견, 나의 전제들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연민과 미안함, 뿌듯함과 불편함 등 복잡한 감정이 많이 생겼습니다. 재미있어 웃기도 했고요. 마음을 아주 많이 사용했다고 할까요.
시 수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김상희 담임을 맡은 반에서 시 수업을 하고 나서, 학생들의 창작시를 보다가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다른 반과
다르게 학생들이 담임인 ‘나’에 대한 시를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서른 명의 학생 중 대여섯 명의 시의 소재가 저였습니다. 특히 제가 눈물 흘린 순간에 대해 많이들 시를 썼는데, 우선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별로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었고, 오히려 감추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을 해보니, 내가 그렇게 안타까워했던 학생들이, 속으로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들 생각에는 그리 큰 일이 아닌데, 그 일 때문에 꾸중하고, 때로는 눈물까지 보이며 호소하는 담임이 무엇보다 이상했을 것입니다. 또 그만큼 불쌍해 보였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로서는 조금 위안이 됐고, 내게 꾸중 들으며 움찔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내가 꾸중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행동 변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듣고 흘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 순간에 어떠한 생각(‘불쌍하다’, ‘우리가 불리해진다’등)을 하고 있었음을 확인하니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학생들의 시를 읽은 그 순간부터, 그 모든 갈등의 순간을 넘어 내 마음 속에서 나와 우리 반 학생들 사이의 화해가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쓴 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가 있다면요?
정윤혜 류연우의 「노스패딩」이요. “겨울이 오면 모든 학생들이 / 노스 패딩을 입는다 / 왜 노스만 입을까 / 다른 패딩들도 많은데 / 노스는 비싼데, 담배빵 당하면 터지는데 / 노스는 간지템, 비싼 노스 안에 내 몸을 숨기고 / 무엇이라도 된 듯하게 당당하게 거리를 걷는다 / 한겨울엔 노스만 입어도 무서울 게 없다” 몇 년 전 ☆ 공고 학생들은 교복을 대신하여 노스페이스 패딩 점퍼를 너나 할 것 없이 입었습니다. 수십만 원에 달하는 이 점퍼를 사기 위해서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학생들은 소풍 등의 교외활동에 교복을 입고 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자신들이 ☆ 공고 학생이라는 것을 남들이 아는 것이 싫다고 했습니다. 노스패딩을 입으면 자신이 강남의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과 다를 바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교복을 가리고 싶은 그 마음, 비싼 옷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감추고 싶은 그 마음이 읽혀져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조혜숙 「네네치킨」의 건강함이 좋아요. 「우리 학급 생활 규칙 열 가지」의 재치도 좋고요. 「울보 담임」에 담긴 복잡한 마음도 좋아요. 「선반」은 아픈 시예요. 「막노동」을 쓰고 잠을 자던 대현이, 늘 농담만 하던 형룡이가 「학교」라는 시에 존재의 무거움을 풀어놓았던 것도 생각이 납니다. 한 여학생은 문제가 생겨 3학년 2학기에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는데, 시 쓰는 날이 마지막 등교일이었어요. “선생님, 저 이 시 쓰고 가요.”라고 하는데 뭐라 위로도 할 수 없고. 글쓰기가 위로가 되었을는지요.
다른 학교 학생이나 선생님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상희 특히 내성적인 학생일수록 물어 봐도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학생들이 적기 부담스러워하는 긴 산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짧지만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 수업을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내 마음 속에 ‘문제’학생으로 낙인 찍힌) 학생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 학생을 일차원적으로밖에 파악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대해 오히려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들께서 내가 경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 속 화해’의 순간들을, 그 변화의 지점들을 경험하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의 마음을 가까이서 읽고, ‘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은 교사만이 할 수 있는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혜숙 저는 올해 인문계고로 옮겼습니다. 생활시 쓰기를 시도해 보고 있는데, 우리반 학생이 「딸배인생」이라는 시를 읽고 이런 감상을 썼어요. “나는 공고에 간 사람들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공부와는 담 쌓았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니, 뭔가 마음이 이상해진다. 아프다고 해야 하나, 동정이라고 해야 하나. 돈을 벌기 위해 비록 죽을 위험이 있더라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학생이나 선생님들이나 이런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윤혜 ☆공고에 근무하며 가장 힘 빠지는 일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늘 제자리인 학생들을 믿어보고 또 속고 또 믿어보기를 반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교사로서 회의와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학생들을 위해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서투르게’라도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서 했던 일들이 한 편의 시집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과 시를 쓰며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교사에게는 재미있고, 학생에게는 행복한 일’을 많이많이 찾아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서투르게라도 시작했으면 합니다.
학생들 인터뷰
본인이 쓴 시가 책으로 엮였는데, 작가가 된 소감이 궁금해요.
김승우 정말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습니다. 저와 다른 친구들이 쓴 시가 책으로 출판될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지금껏 느끼지 못한 희열을 느꼈습니다. 친구들과 제가 쓴 시를 책으로 보니까 정말 뿌듯하고, 서로의 시를 읽으면서 공감을 했습니다.
유성민 사소한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썼는데 책으로 출판되니 얼떨떨했습니다.
시, 시쓰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김승우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대화 같은 쌍방향 소통이 아니지만,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든가, 내면에 감춰 뒀던 자신의 고통을 남들과 공감하고 느끼며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성민 일기처럼 자신이 해 온 일을 주제로 한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면서 어려웠던 점?
김승우 시를 처음 써보는 것이라서 부담스럽고 쓰기도 어려웠지만, 쓰면 쓸수록 자기 자신을 더욱 성찰하고 삶에 대한 의미가 생겨났습니다.
유성민 시를 쓸 때에는 이 시가 다른 사람에게 읽힐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었고 그냥 시 쓰기가 재미있었어요.
자신이 쓴 작품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김승우 어렸을 적 공부에 대한 소중함을 알지 못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것을 후회하고 앞으로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꿈을 위해 사용하기로 다짐하는 마음에서 시를 썼습니다.
유성민 내가 왜 힘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용돈을 주지 않는 엄마가 미웠어요. 그래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전단지를 받지 않고 지나갈 때 들었던 부끄러운 마음과 울분(?) 같은 것을 표현했어요.
앞으로도 시를 쓸 건가요?
김승우 책에 제 시가 실린 다음에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시를 썼습니다. 시를 통해 소중한 것을 깨닫고 과거에 했던 실수들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틈틈이 화가 나는 순간에 시를 쓸 것입니다.
유성민 시를 쓰고 그림까지 그리며, 내 마음의 화가 좀 진정됐어요. 다시 책을 내진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기분이 좋거나 나쁜 순간을 시로 써서 남기고 싶어요.
시간
김승우
또 시간이 흘렀네
이놈의 시간은 천천히 좀 가면 안 되나
마치 레이스를 하듯 빨리 지나간다
어떤 사람은
부모들이 깔아 준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
가끔은 그런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르바이트
유성민
돈이 없어서
전단지 알바를 했다
근데 안 받는 사람들이 많다
존나 쿨한 척하고 안 받거나
존나 쪼개며 안 받을 때
기분이 상한다
내가 왜 이 짓을 해야 할까
용돈 안 주는 엄마가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