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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독서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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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5 22:12 조회 5,93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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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섯 살 무렵에 한글을 깨우치게 되었다. 소아마비에 걸려 1급 지체장애아가 된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아이였다. 장애가 있어 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자 부모님은 공부라도 잘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신 듯했다. 마침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부하 사병을 나에게 선생님으로 붙여주셨다. 선생님은 매일 시간을 내서 관사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미있어 했지만 선생님이 매일 찾아오자 나는 공부라는 것이 괴롭고 싫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관사 문만 열고 들어오면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늘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우리집이 서점이나 도서관이면 얼마나 좋을까 …
이러구러 선생님 덕에 한글을 읽고 깨우친 나는 그때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했다. 나의 독서력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켜준 것은 만화였다. 마침 함께 살고 있던 작은 삼촌이 만화가게 집 딸과 사귀는 바람에 매일매일 나를 안고 그곳으로 갔다. 글과 그림이 있는 만화는 금세 나의 인식을 넓혀주었다.

만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그림 없이 글로만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상상력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책벌레가 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아버지가 사준 동화전집을 읽고 또 읽어 외울정도였다. 오죽하면 나의 어렸을 때 소원이 우리 집이 서점이나 도서관이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을까.

한번은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이 책을 사가지고 왔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기쁜 마음에 책을 받아들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읽었다. 손님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동안 나는 미친 듯 책에 탐닉했다. 책을 다 읽을 무렵 손님이 집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마루로 나가 손님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 책 좀 바꿔다 주시면 안 돼요?”
결국 아저씨는 서점에 가서 새 책으로 바꾸고 한 권 더 사서 두 권의 책을 갖다 주었다. 이렇게 책에 빠져 있던 나에게 새 책은 늘 갈증의 대상이었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읽고 싶은 욕망은 밥을 먹거나 놀러가고 싶은 욕망보다 더욱 강한 것이었다. 소년잡지도 구독하고 이웃집에 있는 아이들과 잡지를 바꿔 보는 일도 계속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읽을거리를 찾아 떠도는 나는 아버지에게 매일 저녁 배달되어 오는 석간신문까지 표적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시사만화만 읽다가 서서히 옆에 있는 기사들을 읽다보니 거의 국한문 혼용체인 신문을 읽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한자 공부가 자연스럽게 된 셈이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아버지 책들을 집어삼키던 아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급문고라는 것이 있었다. 아이들이 한 권씩 집에서 가져온 책을 모아 놓고 읽게 만든 것이다. 과밀 학급이었던 그때는 한 반에 70~80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한 권씩만 책을 가져와도 학급문고는 제법 읽을 만한 분량이 되었다. 체육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 뛰어놀 때 나는 학급문고를 꿰차고 앉아 읽기 바빴다. 한두 달이면 학급문고 전체를 다 읽어버렸다. 읽기에 대한 갈증은 정말 타는 목마름이었다.
그런 나의 성화에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4학년이나 5학년이 되었을 무렵 나에게 당신의 책장을 열어주셨다.
“자, 이제는 어른 책을 읽어도 되겠다. 읽어라.”

아버지가 던져준 책들은 나에겐 보고寶庫였다. 『삼국지』를 비롯하여 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 수필문학전집은 물론 셰익스피어전집까지도 깡그리 읽어버렸다. 아버지의 장서 수백 권이 내 손안에서 초토가 된 것이다. 중학교 들어갈 무렵 이미 나의 독서량은 수천 권에 달하고 있었다. 그랬던 나를 본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정욱이 너는 커서 소설가가 되어야 하겠구나.”
그러나 나는 그때 소설가의 꿈이 전혀 없었다. 먼 훗날 의대 입학이 좌절되고 결국 국문과를 나와 작가가 된 뒤에야 나는 담임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녀석아, 내가 너 소설가 될 거라고 말했지?”
선생님들의 학생 보는 눈은 이렇게 날카로웠던 것이다.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한 독서는 나의 핵심 역량이 되었고, 평생을 함께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책을 통해 나는 인생을 배웠고, 삶의 고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겪은 장애의 고통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도 얻었다. 요즘도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고 있다. 나에게 끊임없이 가르침을 주는 책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삶에서 부대끼며 겪는 나의 고통에 대한 유일한 위안이 바로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이야말로 나의 위대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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