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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오롯이 앎을 키우는 철학교사 안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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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8 13:58 조회 9,74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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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철저한 작가
박윤서
저는 선생님께서 한겨레신문에 기고하시는 걸 늘 읽어 왔거든요. 학생 신분으로 경험할 수 없는 책들을 많이 소개해 주시고 읽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안광복 고마워요.
박윤서 저희 주변에서 철학과 나오신 분들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철학은 무엇인지, 사람들이 철학을 왜 해야 하는지가 궁금해요.
안광복 모든 학문은 결과적으로 다 하나예요. 경영학을 하나 물리학을 하나 수학을 하나 초급 과정에서는 들어가는 출입구가 다를 뿐이지, 결과적으로 올라가서 보면 하나로 만나는 것 같아요. 철학이라는 학문은 ‘왜’에 대한 물음,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찾는다는 점에서 아주 매력적이죠.
정윤조 철학 선생님 하면 옛날 소크라테스처럼 기이한 행동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일찍 주무시고 새벽에 일어나서 독서하고 집필하시는 남들과 다른 생활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안광복 새벽 2시부터 5시까지가 제가 글 쓰는 시간이에요. 오래전부터 그랬는데, 취직하면서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집에 가면 무조건 8시에 잤어요. 새벽 2시에 깨서 5시까지 공부하고 글 쓰고, 5시에 다시 잠이 들고. 아침에 지각하는 게 일과였어요. (웃음) 요즘엔 3학년 맡으면서 야간 자율학습을 해서 아이들이 공부할 때 저는 앉아서 글을 쓰죠. 그래서 아주 행복해요.
유승효 선생님께서는 많은 책을 내셨잖아요. 글이 항상 잘 써지는 것만은 아닐 텐데, 슬럼프에 빠졌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하세요?

안광복 무조건 끝내요. 스스로에게 슬럼프를 인정하지 않아요. 재미있는 구절을 본 게 생각나는데, 칸트는 당대 최고의 인기 강사였어요. 지금은 그를 철학자로 기억하지만 그 당시에는 지리학자로 유명했거든요. 칸트의 강의는 너무너무 재미있는데, 그가 혼자서 쓴 일기장을 보면 매일 매일 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은 생활이 정말 지겹다, 죽고 싶다, 라는 얘기를 써놨어요.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글을 쓰는 게 항상 즐겁지만은 않거든요. 그런데 마감 날짜가 있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어요. 시험 직전의 학생 심리와 똑같은데, 그게 이겨내게 하는 힘인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타협점을 주지 않는 것이죠.
유승효 『키워드 인문학』의 프롤로그를 보면 거의 사생활이 없이 지내셨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신 거군요.

안광복 사생활이 없다고 하는 게 뭐냐면, 지금 저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즐거운 게 제가 나중에 한 사람 한 사람을 반추할 거라는 거죠. 이 사람은 이런 느낌이었구나 하고요. 수업을 하고 나오면서도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나눈 대화를 생각하고 수업에 대해 생각해요. 이게 인문학적인 삶인데, 끊임없이 반성한다는 점에서 사생활이 없다는 거예요. 사생활이라는 개념보다는 생활에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게 괴롭다는 생각은 없어요. 즐겁죠.
박윤서 최근에 나온 책이 백 권의 책을 간추리신 건데, 이 책이 신문에 기고하셨던 걸 엮으신 거 맞죠? 기고하시기까지의 결심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기고하게 되셨는지요?

안광복 100대 1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일본의 유명한 독서가가 있는데,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책 한 페이지를 쓰려면 백 장을 읽어야 질 높은 글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건 맞는 말이에요. 뒤집어서 말하면 책 백 권을 읽었을 때에 토해내지 않으면 미쳐버려요. 쌓인 만큼 말하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었을 거예요. 한겨레신문사에서 제안을 받고 기고를 하는데, 한 주 한 주가 매우 괴로울 것 같았지만, 탈고하고 송고하고 나면 후련한 쾌감이 있었어요.

정윤조 교사 일을 하실 때나 원고를 쓰실 때, 시간이 많이 부족하실 것 같은데 시간 관리 노하우가 있으세요?
안광복 시간 관리 같은 경우는 모든 작가가 다 노하우가 있어요. 대작가의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이 그 작가에게 시간을 맞춰 줘요. 그건 대작가만의 특권이죠. 저는 제가 편집자나 모든 사람들에게 맞춰 줘야 돼요. 시간관리는 30분 단위로 촘촘하게 짜요. 빈 시간, 인터뷰하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모두 다. (웃음)



학창시절의 고민에서 비롯된 길
유승효
『열일곱 살의 인생론』을 보면 학창시절에 대해서 쓰셨는데, 선생님의 학창시절은 어떠셨는지 정말 궁금해요. 예를 들어 짝사랑했던 여자 분이 있으셨잖아요, 그런 류의 에피소드를 듣고 싶어요.

안광복 제 학창시절을 보면 거의 유사자폐가 맞을 거예요. 굉장히 심하게 말을 더듬었거든요.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말을 더듬었고, 대인 공포도 상당히 심했어요. 제가 현대고등학교를 나왔는데 학교에 여학생이 1/3, 남학생이 2/3 정도였어요. 매점을 가기 위해서는 여학생 반 앞을 지나가야 되는데, 그게 자신이 없어서 3년 동안 매점을 한 번도 못 가본 거예요. 사춘기소년 특유의 자신 없음과 주눅듦이 있었어요. 유사자폐의 전형적인 특징이 무언가에 빠져드는 건데, 당시에 저는 활자중독이어서 하루 종일 책을 봤어요. 자가치유라고 하나요, 소설을 참 많이 봤는데, 소설을 보면서 울고 웃으며 공감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지나고 보니 이러한 시간들이 책도 많이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유승효 그런 책을 읽었던 경험들이 철학과를 가게 된 계기가 된 건가요?
안광복 그렇죠. 저는 학위는 철학으로 받았지만, 심리학 공부를 더 많이 했어요. 심리학이나 철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예요.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절실하게 학문을 찾다 보니까 심리학을 하게 되었고, 심리학을 하다 보니까 철학이 필요하더라고요. 내가 왜 살아야 되는지를 고민해야 되니까요. 제 문제를 고민하는 와중에 학교에 왔는데, 저와 비슷하게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들이 계속해서 찾아들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해결해주기 위해서 책을 보고, 그러면서 내 문제를 고민하게 되고. 또 이게 풀리고 나면 마치 한풀이처럼 말이죠, 새벽에 원고를 탈고하고 났을 때에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해소가 되는 그런 때가 있어요. 그래서 하루 종일 울 때도 있고요. 성장해 나간다는 느낌, 그리고 좀 편안해진다는 느낌인 거죠.

정윤조 그럼 선생님은 책을 통해서 치유하신 거네요?
안광복 그렇죠. 책으로 많이 치유가 되었고, 스물다섯 살이후에는 사람 공부가 더 컸던 것 같아요. 책에만 계속 빠지면 자폐가 더 심해졌겠죠. 사람을 만나면서 텍스트를 보듯이 사람을 보게 되었어요. 사람을 읽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을 하고, 그 계기는 무얼까, 내가 놓친 건 또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하고 반성하게 되는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그게 재밌어요.

유승효 그럼 학창시절에 친구들과의 관계는 없으셨던 거예요? 책만 읽으셨어요?
안광복 친구 관계도 물론 있었는데, 두 가지 부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나보다 우월한가 열등한가였어요. 80년대의 학력고사 시대라서 입시 지도를 줄자로 재듯이 하던 시절이었거든요. 또, 한 반에 70명이었고. 그래서 그 잣대로 사람을 봤었죠. 열등감도 굉장히 심했고요. 그런데 군대 갔다 와서 그 열등감을 좀 벗어 버린 것 같아요. 세상을 보는 관점이 우월함과 열등함만 있는 건 아니구나, 다양한 관점에서도 사람이 달라 보일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은 태반이 중졸자였거든요. 근데 정말 멋있더라고요. 굉장히 합리적이고. 그래서 학력이 사람을 판가름하는 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사람도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책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박윤서 그럼, 학창시절의 주된 고민은 그런 것들이셨나요?

안광복 여학생들만 있어서 좀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성이에요.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성적인 문제를 승화시키느냐, 타락하느냐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때 그렇게 헤매고 다녔던 이유도 내 안의 욕망을 주체 못해서였고, 여학생들을 도망 다녔던 것도 내 안에 있는 수치심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의 말하지 못할 여러 가지 고민들을 상담하는데,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고1 때 내 모습을 보는 거예요. 사람을 공부하면서 그게 같이 보이더라고요. 내가 열일곱 살에 이런 문제로 아파했었구나, 시간이 지난 후에 다 풀어놓고 보면 별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의 교육을 생각하다
정윤조
『키워드 인문학』에서 보면, ‘유토피아니즘’에서 마지막에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잖아요. 따뜻한 독재를 선택할 것인가, 무책임한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인가? 제가 생각해봤을 때, 학생의 입장에서 지금같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공부하지 않아도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다면, 따뜻한 독재가 솔깃할 것 같거든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안광복 우리 학교도 명문대에 가는 학생들이 많은데, 90퍼센트는 대학에 입학하고 두 달 안에 찾아와요. 와서 하는 말이, 고등학교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하거든요. 자유가 참 힘든 거예요. 자유도 연습해야 누릴 수가 있거든요. 대학 생활의 2년은 보내야 체득하는 것 같더라고요. 대학교 1학년 때 와서 행복하다고 하는 아이를 거의 못 봤어요. 다 힘들다고 하고, 고등학교 때처럼 누가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그게 독재 중독이라고 표현하는데, (웃음) 한 가지 역설적인 건 독재를 바라더라도 2학년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고등학교 생활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거죠.
정윤조 선생님도 대학 때 같은 생각을 하신 거예요?

안광복 네. 저도 한 3학년 때까지.
정윤조 3학년 때까지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안광복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고요. (웃음) 그런데 자유가 너무 버거웠던 건 사실이에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어요. 감옥보다 더 힘든 게 자유거든요.
유승효 그 힘드신 게 무얼 해야 될지 모른다는 그런 건가요?

안광복 그렇죠. 공허감.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내가 뭘 해야 인정받는지가 일단 눈에 보이잖아요. 그리고 어디에 반항해야 될지도 눈에 보이고요. 그런데 어디에 반항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 인정받을지도 알 수가 없어요. 자기 스스로 의미를 찾고, 그 삶에 들어가야 되는 거거든요. 자유도 연습해야 되는데, 우리나라 상황에서 열아홉 살 때까지 그런 자유를 연습할 수 있는 기회는 없거든요. 그래서 스무 살에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되죠.
유승효 책에서 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에 대해서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도 그렇거든요. 사교육 중심이 되고 공교육이 쇠퇴하는 현재의 상황이. 현직 교사이시니까 현 교육제도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요.

안광복 교육에는 항상 나쁜 게 없어요. 모든 게 다 좋은데, 무엇이 더 좋으냐를 놓고 벌이는 논쟁인 거예요. 사교육이 다 나쁘냐? 꼭 그런 것도 아니에요. 일단은 어떤 시도이든지 긍정적으로 보자는 거죠. 매우 역설적인 게, 가장 독서를 활발하게 하고 인문학적 사유가 뛰어났던 사람들이 386세대라고 하잖아요. 사십대 후반에서 오십대 분들인데, 그분들이 학교 다닐 때에는 자습 시간에 책을 보면 벌을 서던 때거든요. 도서관은 꿈도 못 꾸고, 독서는 딴 짓 개념이었어요. 오히려 그런 세대가 독서를 가장 많이 했거든요. 역설적으로 반면교사라고 하는데, 무엇이 아닌지를 확실하게 체득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뭐든지 나쁜 것은 없다는 거예요. 길게 보면요. 모든 것은 일장일단이 있어요. 대안적인 여러 방법도 좋고, 교육에는 나쁜 게 없어요.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예주영
학생들의 상담을 많이 받으세요?
안광복 철학교사라는 타이틀이 초윤리적이고 훈계는 안할 것 같은 이미지라 애들이 많이 와요. (웃음) 상담 내용이 주로 선생님한테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고 강도가 매우 세죠. 특히 감정 노동이 심해요. 상담에서는 거울이론이라고 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되받고, 다시 읽어 주는 게 크거든요. 속상한 사람이 누군가를 찾아가서 바라는 건 해결책이 아니에요. 그냥 똑같이 아픔을 느끼고 품어 주는 거죠. 그런데 그 감정 노동이 처음에는 참 힘들어요. 감정도 연습해야 되거든요. 어떤 경우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감정이 있어요. 그런 때에는 이해해주면서 받아들이면서 하나씩 하나씩 늘어가는 거죠. 그 단계가 지나면 초월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여기까지만 대신 아파해줘야 저 아이가 크겠구나. 저 아이의 성장 과정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죠.
유승효 교직에 있으시면서 학생들과 갈등이 있을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잠을 잔다거나 떠든다거나 하는 학생을 혼내고 나서 학생과 대면하기 힘든 경우에 어떻게 풀어나가시는지요?

안광복 내가 오피셜하게 가면을 써야 되는 순간이 있어요. 행정적인 교사로서 아이를 제압해야 되는 상황이 오면 가면을 써요. 나는 저 아이를 통제해야지 분노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고 의식하고 있으면 관계가 안 망가져요. 그런데 개인적인 분노로 바뀌어서 화를 내면관계가 틀어지게 되죠. 제 경험으로는 제가 행정가로서 학생들을 딱딱하게 대했을 때에도 학생들이 나중에 다이해를 하더라고요.
정윤조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선생님이 제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시지만, 제압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예를들어 사회생활을 할 때에나 편집자들과 의견이 안 맞거나 갈등이 생길 때에는 어떻게 하세요?

안광복 아주 좋은 기회죠. 인격을 수양할 수 있는. (웃음)그런 분들을 만나면 정말 사람이 커요. 어떻게 이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을 하기 때문에 굉장히 많이 크게 되죠.
예주영 스물다섯 살 이후에 사람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사람 공부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키워드 인문학』에서 온라인 오프라인 이야기도 하고 계시고, 이 부분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아요.

안광복 일차적으로는 연애를 통해서 했어요. 연애가 한번 깨질 때마다 사람이 크는 것 같아요. 우정은 존재의 80퍼센트를 걸고 하지만, 연애는 내 존재 자체를 100퍼센트 모두 걸고 하는 거잖아요. 연애가 깨진다는 건 삶의 존재를 부인 받는다는 느낌이 들죠. 상당히 많은 반성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2~3년 동안의 후유증도 있고요. 두 번째는 SNS의 부작용인데,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몸을 통해서 이루어져요. 그런데 SNS의 부작용 중에 하나가 ‘이 사람의 감정이 무얼까?’하는 논리와 추론이 남는다는 거예요. 요즘엔 이모티콘이 발달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감정을 읽는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여성들은 보통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 눈을 보고 말을 하지만 남성들은 별로 그렇지 않거든요. 눈을 마주치고 공감해주는 것도 연습을 해야 느는데, SNS가 발전하면서 그 능력이 많이 퇴화되는 거죠. 그리고 여자보다는 남자가 기계에 대한 중독성이 크기 때문에 더 그런 거고요.

박윤서 선생님, 자녀 있으시죠?
안광복 아들 하나 딸 하나 있어요. 5학년, 4학년이에요.
박윤서 어떻게 자녀를 키우고 계시고 어떻게 키우고 싶으신지 알고 싶어요.
안광복 저는 기본적으로 햇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가 죽었을 때 내 아이들 마음속에 아버지가 살아있었으면 해요. 할머니가 저를 매우 사랑해주셨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제 마음속에는 할머니가 있어요. 뭘 했을 때에 할머니가 매우 기뻐하시겠지, 이런 모습을 보면 할머니가 화를 내실 텐데, 이런 게 살아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개입하기보다는 스킨십으로 많이 안아주려고 하죠.



치열함 그대로 글쓰기를 잇다
박윤서
선생님께서 여러 책을 쓰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힘들 게 출간하셨거나 가장 기억에 남고 애정이 가는 책이 있으시다면 어떤 건가요?
안광복 제가 쓴 책들이 다 만부가 넘게 나갔는데, 『인생고수』라는 책만 실패를 했어요. 『인생고수』는 철학 상담 책이에요. 이 책이 기억에 남는 건 제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문제들을 정리하고 그걸 철학자들이 어떻게 풀어나가는가를 적어 나가는데, 제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는 과정이 정말 힘들더라고요. 내가 헛헛하고 외로운 게 왜 그런지를 명료하게 만드는 게 정말 쉬운 작업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인생고수』는, 새벽 5시에 탈고하고 나면 다리가 탁 풀리는 느낌, 아침에 해를 보면 내 인생이 밝아졌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박윤서 저희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선생님 책을 여러 권 읽었거든요. 제 나이가 열여덟 살이라 그런지 『열일곱 살의 인생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진학 고민이나 친구 고민이 그 책을 읽고 ‘아, 이게 아무것도 아닌 거구나.’라는 걸 느껴서 고민 해결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안광복 고마워요.
정윤조 저도 그 책을 읽었는데, 맨 마지막 챕터에 죽음에 관한 게 나오잖아요. 제가 아직까지 주변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못해서인지 그 챕터만 공감을 못했어요. 죽었어도 내 곁에 남아 있다는 게 잘 공감이 되지 않거든요. 선생님은 정말로 안 두려우세요? 주위 사람들의 죽음이 괜찮으신지?

안광복 물론 두렵죠. 그런데, 떠나기 때문에 소중해요. 고등학교 생활이 계속된다고 하면 별로 소중하지 않겠죠. 졸업식 날 아침에는 기분이 달라요. 올해는 절대 안 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날 아이들이 졸업 가운을 입을 때에 울컥하더라고요. 마지막이 있으니까 소중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죽음에 대한 것도 달라지는 거고요. 그리고 인문학의 최대 매력은 하면 할수록 새롭다는 거예요. 20대에 읽는 것, 30대에 읽는 것, 40대에 읽는 게 정말 다른 의미로 다가오거든요. 그리고 이해 못했던 게 이해되고요. 굉장히 매력적인 학문이에요, 인문학은.
박윤서 앞으로 쓰시고자 하는 책이 있으시거나 향후 출간 계획이 있으신지?

안광복 7월에 『사상으로 읽는 미래』가 출간 대기 중이고, 책 서평 기록 남기는 법에 대한 책이 11월에 계획되어 있습니다. 책을 쓰는 게 상당히 재미있어요. 게임보다 더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글쓰기 중독이라고. (웃음)
정윤조 최근에 선생님 삶을 치열하게 만드는 게 글쓰기인 건가요?
안광복 네. 글을 쓸 때가 제일 행복해요. 책을 보고 있는 시간이 제일 좋고요. 제가 주말을 남산도서관에서 보내거든요. 남산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펴놓고 있을 때, 이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라고 느낄 때가 정말 좋아요.

정윤조 마지막으로 고등학생인 저희에게 이것만큼은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안광복 피하지 말고 뭐든지 다 해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욕구도 참을 줄 알아야 돼요. 욕구 지연도 굉장히 중요한데, 정상적인 고등학교 과정에서 충분히 싸워 봐야 사회에 나가서 남들을 이해할 수 있어요. 뒤에서 노는 아이들이 성장하지 않을 것 같지만 분명 성장하거든요. 그 아이들의 장점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굉장히 탁월해요. 자신이 방황을 해봤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성장을 한 거죠. 그러니까 뭐든지 피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서 하면 돼요. 누구나 죽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 삶은 한 번밖에 없잖아요. 더 이상 반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즐길 수 있는 한 즐기는 거죠.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enjoy your life’가 아니고, ‘Seize your life’예요. 라틴어로 ‘삶을 멈춰라’라는 뜻이에요. 미래가 없는 것처럼 ‘here and now’에 몰입하라는 거죠.
예주영 오늘 정말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학생들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중에 꼭 다시 만나 뵈러 오겠습니다

안광복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중동고등학교 철학교사로 학생들에게 철학과 논술을 지도해 왔다. 지은 책으로는 『철학, 역사를 만나다』, 『철학의 진리나무』, 『인생 고수』, 『열일곱 살의 인생론』, 『지리 시간에 철학하기』, 『키워드 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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