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저자 「학기」에서 배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3 16:08 조회 5,821회 댓글 0건본문
왜 , 무엇을 위하여 공부하는가
얼마 전에 김용옥 선생이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한 『대학, 학기 한글역주』를 읽었더랍니다.
『대학』이 무슨 책이냐고요? 왜 ‘사서삼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논어』, 『맹자』, 『중용』, 그
리고 『대학』이라는 책을 보태 ‘사서’라고 해요. 그러니까 요즘말로 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오르고, 참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가운데 한 권이라고 치면 됩니다. 청
소년들이 읽기에는 아직 어렵지만, 대학생이 되면 꼭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사서만요? 아
니지요. 『시경』, 『서경』, 『역경』을 가리키는 삼경도 함께 읽어야겠지요.
말이 엉뚱한 데로 샜네요. 내가 좀 그러는 편이에요. 이해해주시길. 『대학』은 전문을 다
읽어보고 해설한 책도 여럿 보았는데, 「학기」가 있는 줄은 이 책을 통해 알았습니다. 본디
『대학』이나 『중용』은 별도로 나와 있던 책이 아니라 『예기』에 속해 있던 글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아주 좋고 중요해서 별도의 책으로 구분했고, 주자가 사서 가운데 한권으로 지
정하는 바람에 유명해진 것이지요. 「학기」도 『예기』의 한 편인데, 『대학』을 잘 이해하려면
꼭 읽어보아야 한다면서 김용옥 선생이 『대학』 편에 실어놓은 것입니다. 책읽기의 기쁨이
여기에 있지요. 모르는 것을 알고, 그것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모른답니다.
「학기」를 읽다가 청소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을 세 군데 발
견했습니다. 물론 선생님도 함께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지만, 학생들도 알아두면 좋을 듯싶
어 김용옥선생이 우리말로 옮긴 부분을 인용하고 거기에 내 생각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먼저 제2장 교학상장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옥이라도 쪼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 성군들은 나라를 세워 백성의 지도자 노릇을 하려면 반드시 가르치고 배
우는 교육을 으뜸가는 과제로 삼았다. 『서경』 ‘열명’에 이르기를 ‘사람은 모름지기 처음부터 끝까지 일
생동안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바로 성군들이 나라를 세움에 교육을 우선으로 생
각했다는 것을 천명한 말씀일 것이다. 비록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다. 비록 지극한 도리가 앞에 높여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배워보지 않으면 그 위
대함을 알 길이 없다.”
왜 공부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옛 사람들은 이 문
제를 참으로 집요하게 고민했던 듯싶어요. 여러 경전을 읽어보면 공통점으로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학기」는 옥에 비유해 이야기하네요. 아무리 훌륭한 옥을 원석으로
구했더라도 갈고 닦지 않으면 필요한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타고난 품성
이나 머리가 아무리 훌륭하고 좋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 말을
한 것이지요.
물론, 천재는 있을 겁니다. 같은 시간을 공부하더라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푸
는 친구는 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 친구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도 그런 경지에 오르던가요? 아마 아닐 터입니다. 공부는 같이 했는데, 성과가 다르다
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안하고도 천재라는 소리 들을 사람은 없을 터입니다. 그리고 따지
고 보면, 타고난 것보다 노력한 것이 더 많은 사람이 천재라는 말도 많잖아요. 주변에 보면,
머리 좋다고 너무 까불다 오히려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공부해야
비로소 아는 법입니다.
그런데 그 공부를 대학입시 볼 때까지만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는가요? 아니지요.
일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학 신입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차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마치 대학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인 양 착각해 그 좋은 시절을 허
송세월로 보내는 모습을 보아서 그렇습니다. 공부는 한때 반짝 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옛 글에 나온 말을 바꾸면,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사람들은
옛사람 만치 못하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 없을 듯합니다. 정말,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고 존
경도 두루 받는 분들을 잘 살펴보세요. 자기가 이룬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더 열심히 공부
하는 모습을 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안철수 교수나 한비야 씨가 대표적인 경우이지요.
하나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목적이 출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를 배
우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도가 무엇일까요? 가끔 길을 가다보면 슬쩍 다가와 은밀하게 “도
를 아시나요?”라고 묻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 말하는 도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쉽
게 생각하면 길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는 과정이 강조되는 것이지요. 참된 그 무엇이라면, 우
리가 마침내 이르러야 할 목적지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둘 다 도의 뜻풀이라 보면 됩니다.
옛사람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쓴 목적은 길을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나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이것만이 공부
하는 진정한 이유일까요? 한번쯤 깊이 반성해볼 문제입니다.
길을 찾기 위해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제6장 탄교지불형歎敎之不刑입니다. 여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상술한바 정도의 교육과는 달리 요즈음의 교육이라는 것은 교사가 단지 앞에 놓인 교과서를 읊조릴 뿐,
쓸데없이 어려운 질문을 잔뜩 늘어놓아 자신의 박학만을 과시하며 그 가르치는 말이 산만하기 그지없
다.
진도만을 서두르며 학생이 편안하게 이해하는 것을 고려치 아니하며, 학생으로 하여금 본심으로부
터 학문을 좋아하도록 이끌어주지 않으며, 가르침에 학생 스스로 가지고 있는 개성을 다 발현할 수 있도
록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이와 같이 가르치는 방법이 틀려먹었으니 당연히 학생들이 학문을 추구하는
방법도 틀려먹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이 그 학문 자체를 싫어하게 되며 교사를 미워하게 되
고, 배우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져 고통을 받아 그 학문이 자신의 생애에 큰 이득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길
이 없다. 비록 학업을 다 마치고 졸업은 하였지마는, 학교를 떠나자마자 곧바로 학문에서 마음이 떠나버
린다. 요즘 교육이 공功이 드러나지 않음이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마치 옛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현실로 여행 와 오늘 우리 학교의 수업현장
을 지켜보고 쓴 것 같지 않나요? 뜨끔하실 선생님들도 계실 듯합니다. 하지만 배우는 사람
처지에서도 되돌아볼 것이 있습니다. 많은 분야의 책을 꾸준히 읽어야 하는 법인데, 많은
학생이 교과서와 참고서만을 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공부의 목적이 어디
있는가에 따라 우리가 볼 책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길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 길을 걸어 궁
극에 참된 사람이 되려는 열망이 없이 공부할 적에 우리 책상에는 입시와 관련된 책만 켜켜
이 쌓여 있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책이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지요. 고통 받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도록 이끄는 소설이나, 언어 감수성을 세련되게 해주는 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바람직한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사회과학 책들, 더 깊고 더 넓게 그리고 더 논쟁적
으로 사유하는 힘을 길러주는 철학책이겠지요. 지금, 무슨 책이 책상위에 올려져있나 살펴
보세요.
다음에는 우리가 본심으로 학문을 좋아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터입니다. 우리 민족이
살아온 역사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단지 시험점수 높이려
는 생각만으로 역사를 공부한다면 이를 두고 어찌 학문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남
들은 골치 아프다고 억지로 하는 수학을 즐겁고 기쁘게 공부해서 우주의 비밀을 간결하면서
도 명쾌하게 풀어내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야말로 학문을 좋아하는 이의 본모습이겠지
요. 학교에서 강제로 시키고, 부모님께서 성화를 부리니 억지로 하는 공부가 되지 말고, 스스
로 배우고 익히는 것의 기쁨과 즐거움을 깨달아 될 터입니다.
학문이 자기 삶에 큰 도움이 된다는 대목도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우리
는 누구나 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실현하려면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꿈이 간절하니, 열심히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지요. 내가 하고 싶고, 이를 위
해 공부했으니, 그 공부한 것이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
으로 자기 몫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거기다 길을 알기 위해 공부해온 사람은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게 될 터입니다. 고위 공직자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청문회를 엽니다. 그 사람의
자질이나 도덕성이 그 자리에 오를만한가를 검증하는 자리지요. 그 과정에서 도덕적인 문제
가 불거져 결국 망신만 당하고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을 봅니다. 길을 찾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죠.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진정한 공부가 삶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지
알게 됩니다.
끝으로 제 10장 학자사실學者四失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합니다. 배우려는 사람들이 저지
르는 실수를 네 가지 지적하고 있는데, 자기에게 해당하는 항목이 있지는 없는지 한번 살펴
보고 고쳐나가기 바랍니다.
“어떤 학생은 너무 많이 배우려고 이것저것 나대다가 산만해진다. 어떤 학생은 너무 적게 배우려고만 하여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지 않는다. 어떤 학생은 쉬운 것만을 좋아하여 포괄적인 지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어
떤 학생은 너무 좁은 범위에 지식을 한정시켜 편협하게 되고 만다.”
얼마 전에 김용옥 선생이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한 『대학, 학기 한글역주』를 읽었더랍니다.
『대학』이 무슨 책이냐고요? 왜 ‘사서삼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논어』, 『맹자』, 『중용』, 그
리고 『대학』이라는 책을 보태 ‘사서’라고 해요. 그러니까 요즘말로 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자리에 오르고, 참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가운데 한 권이라고 치면 됩니다. 청
소년들이 읽기에는 아직 어렵지만, 대학생이 되면 꼭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사서만요? 아
니지요. 『시경』, 『서경』, 『역경』을 가리키는 삼경도 함께 읽어야겠지요.
말이 엉뚱한 데로 샜네요. 내가 좀 그러는 편이에요. 이해해주시길. 『대학』은 전문을 다
읽어보고 해설한 책도 여럿 보았는데, 「학기」가 있는 줄은 이 책을 통해 알았습니다. 본디
『대학』이나 『중용』은 별도로 나와 있던 책이 아니라 『예기』에 속해 있던 글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아주 좋고 중요해서 별도의 책으로 구분했고, 주자가 사서 가운데 한권으로 지
정하는 바람에 유명해진 것이지요. 「학기」도 『예기』의 한 편인데, 『대학』을 잘 이해하려면
꼭 읽어보아야 한다면서 김용옥 선생이 『대학』 편에 실어놓은 것입니다. 책읽기의 기쁨이
여기에 있지요. 모르는 것을 알고, 그것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모른답니다.
「학기」를 읽다가 청소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을 세 군데 발
견했습니다. 물론 선생님도 함께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지만, 학생들도 알아두면 좋을 듯싶
어 김용옥선생이 우리말로 옮긴 부분을 인용하고 거기에 내 생각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먼저 제2장 교학상장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옥이라도 쪼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 성군들은 나라를 세워 백성의 지도자 노릇을 하려면 반드시 가르치고 배
우는 교육을 으뜸가는 과제로 삼았다. 『서경』 ‘열명’에 이르기를 ‘사람은 모름지기 처음부터 끝까지 일
생동안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바로 성군들이 나라를 세움에 교육을 우선으로 생
각했다는 것을 천명한 말씀일 것이다. 비록 아름다운 요리가 앞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길이 없다. 비록 지극한 도리가 앞에 높여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배워보지 않으면 그 위
대함을 알 길이 없다.”
왜 공부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옛 사람들은 이 문
제를 참으로 집요하게 고민했던 듯싶어요. 여러 경전을 읽어보면 공통점으로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학기」는 옥에 비유해 이야기하네요. 아무리 훌륭한 옥을 원석으로
구했더라도 갈고 닦지 않으면 필요한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타고난 품성
이나 머리가 아무리 훌륭하고 좋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 말을
한 것이지요.
물론, 천재는 있을 겁니다. 같은 시간을 공부하더라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푸
는 친구는 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 친구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도 그런 경지에 오르던가요? 아마 아닐 터입니다. 공부는 같이 했는데, 성과가 다르다
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안하고도 천재라는 소리 들을 사람은 없을 터입니다. 그리고 따지
고 보면, 타고난 것보다 노력한 것이 더 많은 사람이 천재라는 말도 많잖아요. 주변에 보면,
머리 좋다고 너무 까불다 오히려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공부해야
비로소 아는 법입니다.
그런데 그 공부를 대학입시 볼 때까지만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는가요? 아니지요.
일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학 신입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차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마치 대학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인 양 착각해 그 좋은 시절을 허
송세월로 보내는 모습을 보아서 그렇습니다. 공부는 한때 반짝 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옛 글에 나온 말을 바꾸면,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사람들은
옛사람 만치 못하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 없을 듯합니다. 정말,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고 존
경도 두루 받는 분들을 잘 살펴보세요. 자기가 이룬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더 열심히 공부
하는 모습을 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안철수 교수나 한비야 씨가 대표적인 경우이지요.
하나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목적이 출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를 배
우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도가 무엇일까요? 가끔 길을 가다보면 슬쩍 다가와 은밀하게 “도
를 아시나요?”라고 묻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 말하는 도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쉽
게 생각하면 길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는 과정이 강조되는 것이지요. 참된 그 무엇이라면, 우
리가 마침내 이르러야 할 목적지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둘 다 도의 뜻풀이라 보면 됩니다.
옛사람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쓴 목적은 길을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나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이것만이 공부
하는 진정한 이유일까요? 한번쯤 깊이 반성해볼 문제입니다.
길을 찾기 위해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제6장 탄교지불형歎敎之不刑입니다. 여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상술한바 정도의 교육과는 달리 요즈음의 교육이라는 것은 교사가 단지 앞에 놓인 교과서를 읊조릴 뿐,
쓸데없이 어려운 질문을 잔뜩 늘어놓아 자신의 박학만을 과시하며 그 가르치는 말이 산만하기 그지없
다.
진도만을 서두르며 학생이 편안하게 이해하는 것을 고려치 아니하며, 학생으로 하여금 본심으로부
터 학문을 좋아하도록 이끌어주지 않으며, 가르침에 학생 스스로 가지고 있는 개성을 다 발현할 수 있도
록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이와 같이 가르치는 방법이 틀려먹었으니 당연히 학생들이 학문을 추구하는
방법도 틀려먹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이 그 학문 자체를 싫어하게 되며 교사를 미워하게 되
고, 배우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져 고통을 받아 그 학문이 자신의 생애에 큰 이득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길
이 없다. 비록 학업을 다 마치고 졸업은 하였지마는, 학교를 떠나자마자 곧바로 학문에서 마음이 떠나버
린다. 요즘 교육이 공功이 드러나지 않음이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마치 옛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현실로 여행 와 오늘 우리 학교의 수업현장
을 지켜보고 쓴 것 같지 않나요? 뜨끔하실 선생님들도 계실 듯합니다. 하지만 배우는 사람
처지에서도 되돌아볼 것이 있습니다. 많은 분야의 책을 꾸준히 읽어야 하는 법인데, 많은
학생이 교과서와 참고서만을 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공부의 목적이 어디
있는가에 따라 우리가 볼 책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길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 길을 걸어 궁
극에 참된 사람이 되려는 열망이 없이 공부할 적에 우리 책상에는 입시와 관련된 책만 켜켜
이 쌓여 있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책이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지요. 고통 받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도록 이끄는 소설이나, 언어 감수성을 세련되게 해주는 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바람직한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사회과학 책들, 더 깊고 더 넓게 그리고 더 논쟁적
으로 사유하는 힘을 길러주는 철학책이겠지요. 지금, 무슨 책이 책상위에 올려져있나 살펴
보세요.
다음에는 우리가 본심으로 학문을 좋아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터입니다. 우리 민족이
살아온 역사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단지 시험점수 높이려
는 생각만으로 역사를 공부한다면 이를 두고 어찌 학문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남
들은 골치 아프다고 억지로 하는 수학을 즐겁고 기쁘게 공부해서 우주의 비밀을 간결하면서
도 명쾌하게 풀어내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야말로 학문을 좋아하는 이의 본모습이겠지
요. 학교에서 강제로 시키고, 부모님께서 성화를 부리니 억지로 하는 공부가 되지 말고, 스스
로 배우고 익히는 것의 기쁨과 즐거움을 깨달아 될 터입니다.
학문이 자기 삶에 큰 도움이 된다는 대목도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우리
는 누구나 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실현하려면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꿈이 간절하니, 열심히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지요. 내가 하고 싶고, 이를 위
해 공부했으니, 그 공부한 것이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
으로 자기 몫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거기다 길을 알기 위해 공부해온 사람은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받게 될 터입니다. 고위 공직자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청문회를 엽니다. 그 사람의
자질이나 도덕성이 그 자리에 오를만한가를 검증하는 자리지요. 그 과정에서 도덕적인 문제
가 불거져 결국 망신만 당하고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을 봅니다. 길을 찾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죠.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진정한 공부가 삶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지
알게 됩니다.
끝으로 제 10장 학자사실學者四失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합니다. 배우려는 사람들이 저지
르는 실수를 네 가지 지적하고 있는데, 자기에게 해당하는 항목이 있지는 없는지 한번 살펴
보고 고쳐나가기 바랍니다.
“어떤 학생은 너무 많이 배우려고 이것저것 나대다가 산만해진다. 어떤 학생은 너무 적게 배우려고만 하여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지 않는다. 어떤 학생은 쉬운 것만을 좋아하여 포괄적인 지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어
떤 학생은 너무 좁은 범위에 지식을 한정시켜 편협하게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