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 독서토론은 ‘새로운’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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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19:05 조회 6,748회 댓글 0건본문
독서는 있으나 교육은 없다
#장면 1
“의욕이 넘치는 선생님, 학교에 책이 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또는 편중된
책 읽기만 한다. 수업에서, 현실에서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각성한다. 힘든 상황이지만 학
생들이 책을 읽도록 이끈다. 그래서 학생들이 읽을 만한 추천도서를 뽑아 목록집을 만들어 배부
한다. 학생들과 함께 책 읽기 활동을 펼친다. 독후감 쓰기도 해보고, 독서 공책도 만들어 쓰게 한
다. 독후감과 독서 공책을 살펴보면서 실망한다. 제대로 읽은 학생이 몇 명 되지 않는다. 학생들
에게 실망감을 느낀다. 독서 교육을 마칠 때쯤 선생님은 힘들었지만 학생들에게 책을 읽혔다는
뿌듯함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입시 교육을 탓하면서 독서 교육에 대한 미련
을 접는다. 다만 학교도서관에 책이 많이 있으니 읽으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위에서 제시한, 책 읽는 학생과 학교를 만들기 위한 선생님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강제성’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성’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학생들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읽지 않으니 읽게끔 교육 방법을 사용한 것이 강제성을 띤 책 읽기다. 그런데 학
생들은 책 읽기의 즐거움에 빠져들지 않았다. 오히려 책 읽기를 괴로워하고 숙제로 인식하고 있
었다. 반면에 책에 대한 안내를 하면 학생들이 저절로 읽을 것이라는 ‘자연적’ 독서 교육은 시간
이 흘러 되돌아보니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었다. 책을 읽는 행위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닌데, 그 선
생님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두 가지의 독서 교육은 학생들에게서 책 읽기의
즐거움을 빼앗았고, 선생님에게는 독서 교육에 대한 열정을 식게 만들었다.
#장면 2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는 2006년부터 겨울방학 때마다 전 교사를 대상으로 ‘학교도서관 활성
화’ 연수를 실시한다. 필자도 2008년 연수 때 ‘학교도서관 활용수업’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
이 있다.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생각에서 강의 시간에 학교도서관 활용수
업안을 만들어 보라는 주문을 선생님들에게 했다. 그때 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지금 보충수업 하느라 바쁜데, 오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빡빡한 교육과정과 입시 현실에서 학
교도서관 활용수업이 가능합니까? 활용수업안을 만들라니 지금 무슨 말씀입니까? 만들고 싶
은 사람만 만들도록 합시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짜증 섞인 말투로 학교도서관 활용수업 연
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선생님이다. 교육청 연수는 특정 지역에서 70~80명씩 모아 놓고 며칠
에 걸쳐 강의식으로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연수는 선생님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러니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에게 실제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독서+토론은 필요하다
#장면 3
2009년 5월에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과 『완득이』를 읽고 토론한 적이 있다. 이때 학생
들이 작성한 발제문의 생각거리 중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① 옆집 아저씨와 신발가게 아주머니는 완득이 어머니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저쪽 사람’
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멀리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② 똥주의 아버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노동을 착취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러
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와 배경 그리고 해결 방안을 이야기해보자.
③ 사람들은 난쟁이인 완득이의 아버지를 비웃고 놀리고 무시한다. 사회에서 장애인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고 해결 방안 등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자.
모든 책에는 글쓴이가 현실에서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삶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글쓴이
는 문제 상황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혼자만 읽으면 시선을
책 바깥에 두고 책 내용을 언급하게 된다. 위 생각거리가 바로 그렇다. 즉 학생들이 제시한 생각
거리는 책이 없어도 토론이 가능한 주제이다. 책을 깊이 있게 읽으면서 작가의 생각을 붙잡고,
이를 세상과 자신의 삶과 견주면서 읽어야 하는데 학생들은 책은 놔두고 바깥(현실)의 이야기
만 나누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토론이 필요하다.
#장면 4
한 학급의 학생들을 세 부류로 나누면, 1/3은 대학 입시를 위해 공부를 하는 학생들. 또 다른 1/3
은 삶에 대한 목표 의식 없이 무기력하게 사는 학생들. 그리고 마지막 1/3은 이 두 분류의 중간에
위치한 학생들이다. 그런데 세 부류에 속한 학생들의 공통점은 ‘타율적’이라는 것이다. 삶의 방
향이나 목표 의식이 부재하거나 구체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대학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
은 목표 의식이 구체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직업의 안정성이나 돈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
러니 학급에 앉아 있는 모든 학생들은 진정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곧 자율적인 삶을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입시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입시는 결과이지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중요
한 것은 원인이다. 그러므로 공부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
므로 입시 속에서도 학생들에게 학문적 자립-자기 주도적 학습-을 키워주는 교육적 방안이 있
을 것이다. 그 방안 중에 하나가 바로 ‘책 읽기와 토론’이다. 책 읽기와 토론을 통해 ‘다름을 인정
할 줄 아는 자세’를 배우고, 자신의 삶을 성찰・반성할 줄 안다면 학생들은 입시에 허덕이는 모
습과는 다른 모습을 갖지 않을까.
새로운 풍경, 책으로 사람과 세상과 소통하다1)
“지금까지 나와 다른 생각을 틀린 것이라고 인식했는데, 그날 처음 독서토론에서 나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사람이 모두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처음으로 내가 틀릴 수
도 있다는 것을,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즐겁게 느꼈어요.”
“내 동생이 20대인데, 왜 취업을 못하는지 이 책(88만원 세대)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이 책을 읽
기 전까지는 취업을 못하는 동생을 나무랐어요. 니가 공부를 안 하니까 취업을 못하는 거지! 이
렇게 동생을 몰아세웠어요. 이 책을 통해 동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같은 책을 읽고 여러 선생님들과 느낌을 나누면서(교직 경력 5~6년에서 20년) 선생님들 간의
세대 차도 대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과 가슴속 담아둔 나의 이야기를 한 가
닥, 한 가닥 풀어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해보는 과정 속에서 어느덧 마음속 상처가
치유된 느낌이 들었어요.”
위 글은 ‘독서토론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의 소감이다. 머리를 비우고 가서 앉아 있기만
해도 되는 연수와 달리 독서토론 연수는 선생님들이 직접 참여해야만 연수 진행이 가능하다. 세
시간의 독서토론을 위해 발제를 맡은 선생님은 두세 번 정도 책을 읽어야 하며, 다른 선생님들
도 두세 배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있기에 독서토론 연수는 ‘책을 통해 사람 및 세
상과 소통하는 자리’이며, ‘다름을 인정하는 자리’이며, ‘반성과 치유의 자리’이다. 이만하면 그
어떤 연수보다도 매력적인 경험을 주지 않는가.
1)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2009년 4월부터 실시한 ‘독서토론 실기직무연수’와 관련된 내용-지역별(거점학교별)토론 도서 및 영화, 발제문, 토론기록문-은 네이버 카페(http://cafe.naver.com/danggamnamu.caf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구시교육청 독서토론 연수…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독서토론 연수는 2009년 4월 18일 개강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제4기 연수가 진행 중이다. 독서토론 연수는 학생들의 사고력과 표현력을 향상시키
기 위한 교사의 역량 강화에 초점을 둔다. 또한 연수 결과를 교수-학습에 직접 투입할 수 있는,
연수자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연수에 방점을 두었다. 그래서 독서토론 연수는 교사들
의 자발성 극대화와 내적 변화에 무게가 실린다. 이러한 점 때문에 관리나 감독하는 교육청 장
학사 없이 진행강사와 참여교사가 모임의 운영을 맡았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독서토론 연수는 지역별로 거점학교를 두어 그곳을 연수 장소로 사용했
다. 그리고 연수 장소도 선생님들이 지역 제한 없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연수는 목, 금, 토
요일 저녁 18시부터 22시까지 진행하였으며, 보통 4개월 동안 실시했다. 그리고 거점학교별로
진행강사를 1명씩 두었다. 진행강사는 독서토론의 진행보다는 행정적인 업무을 보거나 독서토
론 멘토였다. 연수 대상자는 교직경력별로 선정했다. 1군(0~4.11년) 3명, 2군(5~9.11년) 3명, 3
군(10년 이상) 3명을 선정했으며, 거점학교별 연수 배정 인원을 초과할 경우 실교육 경력이 적
은 순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연수의 소문을 듣고 신청자가 몰려 거점학교별로 배정된 연수 인원
을 초과하는 경우도 있었다.
독서토론 연수는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새롭게 실시하는 연수이기에 진행강사를 맡은 선
생님들을 대상으로 연수 시작 전에 2차에 걸쳐 사전 워크숍를 실시했다. 1차 워크숍에서는 송
승훈 선생님(경기 광동고)을 모시고 독서토론 및 연수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2차
워크숍에서는 소설 『완득이』를 읽고 직접 토론하면서 처음 실시하는 독서토론 연수에 대해 진
행강사 간의 생각을 공유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1기 연수 때는 총 아홉 곳의 거점학교에서 학교별로 9~10명의 선생님
으로 토론 모임이 꾸려졌다. 매기마다 네 번의 독서토론과 한 번의 영화감상 및 토론을 진행하
였다. 토론 도서는 연수 모임별로 연수자 스스로 선정하도록 했다. 또 네 번의 독서토론 중에서
두 번은 학생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두 번은 교사들을 위한 책으로 선정하도록 했다.
1, 2기 때는 학생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완득이』, 『워저드 베이커리』, 『열일곱 살의
털』 등의 성장소설이 많았다. 그리고 교사들을 위한 책으로 『88만원 세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오래된 미래』 등이었다. 그리고 교육 관련 책을 한 권
씩 읽고 토론했다. 3, 4기 때는 1, 2기 때보다는 다양해졌다. 성장소설도 왕따 문제를 다룬 『우아
한 거짓말』, 『지독한 장난』 등을 읽었고 교사들을 위한 책으로 『이기적 유전자』, 『다윈의 식탁』
등의 과학 도서도 읽고 토론했다. 2)
독서토론 연수는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되는데, 1단계는 20자 평. 인상 깊은 구절과 그 이유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20자 평을 통해 같은 책이라도 읽은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할 수 있
다. 또한 인상 깊은 구절과 그 이유를 말하면서 같은 구절이라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시간을 통해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
음을, 그럼으로써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단계는 발제문을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한다. 발제문을 작성한 선생님이 사회자가 된다. 그
리고 기록하는 선생님은 토론 내용을 기록한다. 60~70분에 걸쳐 1차 토론을 한 뒤 10분 정도 쉬
고 2차 토론을 진행한다. 모두 120~150분 정도 소요된다. 그리고 마치기 20분 전에 토론 내용의
정리, 평가 및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3단계는 사회자나 기록자가 토론 내용을 발표하면서 중점
적으로 논의한 내용이 무엇이며, 어떤 생각들을 주고 받았는지 확인한다.
2기와 3기는 다섯, 여섯 곳의 거점학교별로 독서토론 연수를 했고, 4기는 올해 9월 18일 개강
식을 시작으로 여섯 곳의 거점학교에서 연수가 진행 중이다.
2) 진행강사가 주로 국어교사이기에 과학도서를 읽고 토론할 때는 진행강사나 연수자가 책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것자체가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서 4기 독서토론 실기직무연수부터는 과학도서를 한 권씩 읽고 토론하되 지역별(거점학교별)로 과학교사가 순회하면서 토론을 진행한다.
새로운 시작, 독서토론을 학생과 함께
독서토론 연수는 교사들에게 ‘새로운’ 연수였다. 그래서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연수
중에서 가장 호응도가 높다. 지금까지 4기가 진행 중인데, 매 기마다 60~70명 정도의 선생님들
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그러기에 연수 효과도 매우 높다. 그중 하나가 학생들과 함께하는 독
서토론 동아리 활동이다.
2009년 1기 독서토론 연수가 끝날 때쯤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학생과 함께하는 독서토론
을 공모했다. ‘사제동행 독서토론 동아리 활동’을 할 교사와 학생들을 모집한 것. 올해도 했다.
지금 대구 중・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매주 또는 2주마다 학교에 모여 책을 읽고 토론을 진
행 중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도 대구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이 책
을 통해 사람과 세상에 대해 소통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도서관을 새롭게 꾸미고 수만 권 책이 있다고 ‘책 읽는 학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
의 열정과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다면, 학교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장소일 뿐이다. 그러
기에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독서토론 연수’는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면 1
“의욕이 넘치는 선생님, 학교에 책이 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또는 편중된
책 읽기만 한다. 수업에서, 현실에서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각성한다. 힘든 상황이지만 학
생들이 책을 읽도록 이끈다. 그래서 학생들이 읽을 만한 추천도서를 뽑아 목록집을 만들어 배부
한다. 학생들과 함께 책 읽기 활동을 펼친다. 독후감 쓰기도 해보고, 독서 공책도 만들어 쓰게 한
다. 독후감과 독서 공책을 살펴보면서 실망한다. 제대로 읽은 학생이 몇 명 되지 않는다. 학생들
에게 실망감을 느낀다. 독서 교육을 마칠 때쯤 선생님은 힘들었지만 학생들에게 책을 읽혔다는
뿌듯함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입시 교육을 탓하면서 독서 교육에 대한 미련
을 접는다. 다만 학교도서관에 책이 많이 있으니 읽으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위에서 제시한, 책 읽는 학생과 학교를 만들기 위한 선생님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강제성’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성’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학생들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읽지 않으니 읽게끔 교육 방법을 사용한 것이 강제성을 띤 책 읽기다. 그런데 학
생들은 책 읽기의 즐거움에 빠져들지 않았다. 오히려 책 읽기를 괴로워하고 숙제로 인식하고 있
었다. 반면에 책에 대한 안내를 하면 학생들이 저절로 읽을 것이라는 ‘자연적’ 독서 교육은 시간
이 흘러 되돌아보니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었다. 책을 읽는 행위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닌데, 그 선
생님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두 가지의 독서 교육은 학생들에게서 책 읽기의
즐거움을 빼앗았고, 선생님에게는 독서 교육에 대한 열정을 식게 만들었다.
#장면 2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는 2006년부터 겨울방학 때마다 전 교사를 대상으로 ‘학교도서관 활성
화’ 연수를 실시한다. 필자도 2008년 연수 때 ‘학교도서관 활용수업’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
이 있다.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생각에서 강의 시간에 학교도서관 활용수
업안을 만들어 보라는 주문을 선생님들에게 했다. 그때 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지금 보충수업 하느라 바쁜데, 오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빡빡한 교육과정과 입시 현실에서 학
교도서관 활용수업이 가능합니까? 활용수업안을 만들라니 지금 무슨 말씀입니까? 만들고 싶
은 사람만 만들도록 합시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짜증 섞인 말투로 학교도서관 활용수업 연
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선생님이다. 교육청 연수는 특정 지역에서 70~80명씩 모아 놓고 며칠
에 걸쳐 강의식으로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연수는 선생님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러니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에게 실제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독서+토론은 필요하다
#장면 3
2009년 5월에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과 『완득이』를 읽고 토론한 적이 있다. 이때 학생
들이 작성한 발제문의 생각거리 중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① 옆집 아저씨와 신발가게 아주머니는 완득이 어머니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저쪽 사람’
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멀리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② 똥주의 아버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노동을 착취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러
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와 배경 그리고 해결 방안을 이야기해보자.
③ 사람들은 난쟁이인 완득이의 아버지를 비웃고 놀리고 무시한다. 사회에서 장애인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고 해결 방안 등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자.
모든 책에는 글쓴이가 현실에서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삶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글쓴이
는 문제 상황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혼자만 읽으면 시선을
책 바깥에 두고 책 내용을 언급하게 된다. 위 생각거리가 바로 그렇다. 즉 학생들이 제시한 생각
거리는 책이 없어도 토론이 가능한 주제이다. 책을 깊이 있게 읽으면서 작가의 생각을 붙잡고,
이를 세상과 자신의 삶과 견주면서 읽어야 하는데 학생들은 책은 놔두고 바깥(현실)의 이야기
만 나누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토론이 필요하다.
#장면 4
한 학급의 학생들을 세 부류로 나누면, 1/3은 대학 입시를 위해 공부를 하는 학생들. 또 다른 1/3
은 삶에 대한 목표 의식 없이 무기력하게 사는 학생들. 그리고 마지막 1/3은 이 두 분류의 중간에
위치한 학생들이다. 그런데 세 부류에 속한 학생들의 공통점은 ‘타율적’이라는 것이다. 삶의 방
향이나 목표 의식이 부재하거나 구체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대학을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
은 목표 의식이 구체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직업의 안정성이나 돈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
러니 학급에 앉아 있는 모든 학생들은 진정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곧 자율적인 삶을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입시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입시는 결과이지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중요
한 것은 원인이다. 그러므로 공부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
므로 입시 속에서도 학생들에게 학문적 자립-자기 주도적 학습-을 키워주는 교육적 방안이 있
을 것이다. 그 방안 중에 하나가 바로 ‘책 읽기와 토론’이다. 책 읽기와 토론을 통해 ‘다름을 인정
할 줄 아는 자세’를 배우고, 자신의 삶을 성찰・반성할 줄 안다면 학생들은 입시에 허덕이는 모
습과는 다른 모습을 갖지 않을까.
새로운 풍경, 책으로 사람과 세상과 소통하다1)
“지금까지 나와 다른 생각을 틀린 것이라고 인식했는데, 그날 처음 독서토론에서 나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사람이 모두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처음으로 내가 틀릴 수
도 있다는 것을,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즐겁게 느꼈어요.”
“내 동생이 20대인데, 왜 취업을 못하는지 이 책(88만원 세대)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이 책을 읽
기 전까지는 취업을 못하는 동생을 나무랐어요. 니가 공부를 안 하니까 취업을 못하는 거지! 이
렇게 동생을 몰아세웠어요. 이 책을 통해 동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같은 책을 읽고 여러 선생님들과 느낌을 나누면서(교직 경력 5~6년에서 20년) 선생님들 간의
세대 차도 대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과 가슴속 담아둔 나의 이야기를 한 가
닥, 한 가닥 풀어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해보는 과정 속에서 어느덧 마음속 상처가
치유된 느낌이 들었어요.”
위 글은 ‘독서토론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의 소감이다. 머리를 비우고 가서 앉아 있기만
해도 되는 연수와 달리 독서토론 연수는 선생님들이 직접 참여해야만 연수 진행이 가능하다. 세
시간의 독서토론을 위해 발제를 맡은 선생님은 두세 번 정도 책을 읽어야 하며, 다른 선생님들
도 두세 배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있기에 독서토론 연수는 ‘책을 통해 사람 및 세
상과 소통하는 자리’이며, ‘다름을 인정하는 자리’이며, ‘반성과 치유의 자리’이다. 이만하면 그
어떤 연수보다도 매력적인 경험을 주지 않는가.
1)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2009년 4월부터 실시한 ‘독서토론 실기직무연수’와 관련된 내용-지역별(거점학교별)토론 도서 및 영화, 발제문, 토론기록문-은 네이버 카페(http://cafe.naver.com/danggamnamu.caf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구시교육청 독서토론 연수…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독서토론 연수는 2009년 4월 18일 개강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제4기 연수가 진행 중이다. 독서토론 연수는 학생들의 사고력과 표현력을 향상시키
기 위한 교사의 역량 강화에 초점을 둔다. 또한 연수 결과를 교수-학습에 직접 투입할 수 있는,
연수자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연수에 방점을 두었다. 그래서 독서토론 연수는 교사들
의 자발성 극대화와 내적 변화에 무게가 실린다. 이러한 점 때문에 관리나 감독하는 교육청 장
학사 없이 진행강사와 참여교사가 모임의 운영을 맡았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독서토론 연수는 지역별로 거점학교를 두어 그곳을 연수 장소로 사용했
다. 그리고 연수 장소도 선생님들이 지역 제한 없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연수는 목, 금, 토
요일 저녁 18시부터 22시까지 진행하였으며, 보통 4개월 동안 실시했다. 그리고 거점학교별로
진행강사를 1명씩 두었다. 진행강사는 독서토론의 진행보다는 행정적인 업무을 보거나 독서토
론 멘토였다. 연수 대상자는 교직경력별로 선정했다. 1군(0~4.11년) 3명, 2군(5~9.11년) 3명, 3
군(10년 이상) 3명을 선정했으며, 거점학교별 연수 배정 인원을 초과할 경우 실교육 경력이 적
은 순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연수의 소문을 듣고 신청자가 몰려 거점학교별로 배정된 연수 인원
을 초과하는 경우도 있었다.
독서토론 연수는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새롭게 실시하는 연수이기에 진행강사를 맡은 선
생님들을 대상으로 연수 시작 전에 2차에 걸쳐 사전 워크숍를 실시했다. 1차 워크숍에서는 송
승훈 선생님(경기 광동고)을 모시고 독서토론 및 연수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2차
워크숍에서는 소설 『완득이』를 읽고 직접 토론하면서 처음 실시하는 독서토론 연수에 대해 진
행강사 간의 생각을 공유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1기 연수 때는 총 아홉 곳의 거점학교에서 학교별로 9~10명의 선생님
으로 토론 모임이 꾸려졌다. 매기마다 네 번의 독서토론과 한 번의 영화감상 및 토론을 진행하
였다. 토론 도서는 연수 모임별로 연수자 스스로 선정하도록 했다. 또 네 번의 독서토론 중에서
두 번은 학생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두 번은 교사들을 위한 책으로 선정하도록 했다.
1, 2기 때는 학생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완득이』, 『워저드 베이커리』, 『열일곱 살의
털』 등의 성장소설이 많았다. 그리고 교사들을 위한 책으로 『88만원 세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오래된 미래』 등이었다. 그리고 교육 관련 책을 한 권
씩 읽고 토론했다. 3, 4기 때는 1, 2기 때보다는 다양해졌다. 성장소설도 왕따 문제를 다룬 『우아
한 거짓말』, 『지독한 장난』 등을 읽었고 교사들을 위한 책으로 『이기적 유전자』, 『다윈의 식탁』
등의 과학 도서도 읽고 토론했다. 2)
독서토론 연수는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되는데, 1단계는 20자 평. 인상 깊은 구절과 그 이유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20자 평을 통해 같은 책이라도 읽은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할 수 있
다. 또한 인상 깊은 구절과 그 이유를 말하면서 같은 구절이라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시간을 통해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
음을, 그럼으로써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단계는 발제문을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한다. 발제문을 작성한 선생님이 사회자가 된다. 그
리고 기록하는 선생님은 토론 내용을 기록한다. 60~70분에 걸쳐 1차 토론을 한 뒤 10분 정도 쉬
고 2차 토론을 진행한다. 모두 120~150분 정도 소요된다. 그리고 마치기 20분 전에 토론 내용의
정리, 평가 및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3단계는 사회자나 기록자가 토론 내용을 발표하면서 중점
적으로 논의한 내용이 무엇이며, 어떤 생각들을 주고 받았는지 확인한다.
2기와 3기는 다섯, 여섯 곳의 거점학교별로 독서토론 연수를 했고, 4기는 올해 9월 18일 개강
식을 시작으로 여섯 곳의 거점학교에서 연수가 진행 중이다.
2) 진행강사가 주로 국어교사이기에 과학도서를 읽고 토론할 때는 진행강사나 연수자가 책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것자체가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서 4기 독서토론 실기직무연수부터는 과학도서를 한 권씩 읽고 토론하되 지역별(거점학교별)로 과학교사가 순회하면서 토론을 진행한다.
새로운 시작, 독서토론을 학생과 함께
독서토론 연수는 교사들에게 ‘새로운’ 연수였다. 그래서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연수
중에서 가장 호응도가 높다. 지금까지 4기가 진행 중인데, 매 기마다 60~70명 정도의 선생님들
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그러기에 연수 효과도 매우 높다. 그중 하나가 학생들과 함께하는 독
서토론 동아리 활동이다.
2009년 1기 독서토론 연수가 끝날 때쯤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학생과 함께하는 독서토론
을 공모했다. ‘사제동행 독서토론 동아리 활동’을 할 교사와 학생들을 모집한 것. 올해도 했다.
지금 대구 중・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매주 또는 2주마다 학교에 모여 책을 읽고 토론을 진
행 중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도 대구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이 책
을 통해 사람과 세상에 대해 소통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도서관을 새롭게 꾸미고 수만 권 책이 있다고 ‘책 읽는 학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
의 열정과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다면, 학교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장소일 뿐이다. 그러
기에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독서토론 연수’는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