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저자 정답은 없다 백창우식일 뿐이다 - 동시인 김응과 나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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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28 21:28 조회 14,828회 댓글 0건본문
조금 별난 전시, 아주 특별한 노래상자
백창우 어젯밤 늦게 사북에서 와서 상태가 좋지 않아요. 아직 덜 깬 상태라서요.
김응 선생님도 야행성이신가 봐요. 저도 어제 새벽에 잠이 들었어요. 그래도 선생님 뵙기 전에 ‘백창우 이태수의 조금 별난 전시회’도 다녀왔어요.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던데요. 엄마랑 아빠랑 함께 나온 아이들도 있고요. 전시회장에는 자주 나가세요?
백창우 공연이나 외부 일이 없으면, 거기 가서 책도 읽고 그래요.
김응 선생님은 음악 하는 분이고, 이태수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는 분인데, 어떻게 두 분이 같이 전시회를 열게 된 거예요?
백창우 하루하루 비슷비슷하게 가는 일이 좀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뭐 재미난 일 없을까, 뭐 다른 일 없을까하다가 늘 보던 전시회 말고 조금 다른 전시회를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얘기 끝에 시작하게 됐어요. 오래 준비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좀 옮겨놓는다는 생각으로요. 전시 끝날 때까지 조금씩 변화해 나가면서 움직이는 전시회가 되도록 하려고요.
김응 이태수 선생님하고는 처음 작업하신 게 언제예요?
백창우 김용택 동요집 『우리 반 여름이』를 함께했어요. 임길택 시인의 『할아버지 요강』에 이태수 선생이 그림을 그리고, 제가 곡을 쓰기도 했고요.
김응 전시회가 6개월 동안 계속되는데요, 오랜 기간이에요. 선생님들 만나는 때도 있더라고요.
백창우 전시 기간 동안 조금 별난 만남이 세 번 있어요. 깜짝 공연도 하면서 전시회 오신 분들이랑 노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김응 얼마 전에 권정생, 이오덕, 임길택 선생님의 노래상자가 나왔잖아요. 이번에는 아주 특별한 노래상자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 납니다』가 나왔고요. 가만히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제목 그대로 눈물이 나요.
백창우 글에도 짤막하게 썼지만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을 노래로 만들면서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주 특별한 노래상자에는 너무 슬퍼서, 너무 길어서, 너무 지루해서, 혹은 너무 어려워서 담지 못한 노래, 그리고 노래라고 하기엔 좀 뭐한 노래라서 정규 음반에 담지 못하고 남겨놓았던 노래들을 담았어요. 저한테는 제목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노래들이 아주 특별한 것들이에요.
김응 아동문학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권정생, 이오덕, 임길택 선생님의 작품으로 노래를 만든 까닭이 있으실 것 같아요.
백창우 사는 것과 글이 그대로인 사람들이 있어요. 세 분은 시로 만나나 사람으로 만나나 같은 점이 많은 분들이에요. 선생님들처럼 살지는 못해도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노래를 만들었어요. 선생님들 살아 계실 때도 한 곡 두 곡 만들어 공연 자리에서 관객들과 함께 불렀는데요, 한자리에 모아보겠다는 생각은 돌아가신 뒤에 했어요.
김응 아주 특별한 노래상자에서 권정생 선생님 편지 글은 조월례 선생님이, 이오덕 선생님 편지 글은 이오덕선생님 아드님이 직접 낭송을 해주셨더라고요. 편지 내용도 그렇지만 이오덕 선생님 아드님이 낭송을 해주시니 꼭 이오덕 선생님이 다시 살아오신 것 같아 마음이 더 짠했어요.
백창우 아드님이 선생님의 모습과 목소리를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음반을 들은 분들은 이오덕 선생님이 직접 낭송하셨나 하는 분들이 많아요. 아드님이 이름을 밝히는 게 쑥스럽다고 하셔서 음반에는 ‘시골 사람’으로 담았어요. (웃음)
김응 노래상자에 슬픈 노래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이홍렬 씨가 낭송한 「뺑덕이」와 「늙은 개」를 듣고 있으니까 권정생 선생님이 뺑덕이랑 함께 지냈을 풍경이 그려져 웃음이 났어요. 울다가 웃게 만든다고 할까요.
백창우 사람들한테 권정생, 이오덕, 임길택 시인은 삶을 허투루 살지 않아 글도 참 재미없을 거라는 굳은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집에서는 좀 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유쾌하고 장난기가 있고, 편안하고 친근한 모습도 있다는 것을요. 권정생 선생님과 같이 살던 개 뺑덕이 얘기도 담고,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재미있는 시도 담았어요. 임길택 선생님의 「배고프면 밥 먹고 해 떨어지면 잠들고」와 같이 개인만이 알 수 있는 삶의 한 장면도 담았고요.
김응 처음 작업한 이오덕 선생님의 「콩밭 개구리」부터 최근에 만든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까지는 30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어요. 굉장히 긴 시간인데요, 정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작업한 음반이에요.
백창우 이오덕 선생님의 『일하는 아이들』을 만난 뒤로「콩밭 개구리」라는 열 마디짜리 짤막한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걸 시작으로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고, 권정생선생님을 만나고, 임길택 선생님을 만나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예요. 그분들이 쓰신 글을 빼놓지 않고 읽을 수 있었고, 그렇게 읽다 보니까 그 안에 있었던 것들을 끄집어낼 수가 있었어요.
김응 지금껏 만든 노래가 굉장히 많으실 것 같아요. 한 천곡쯤 되나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백창우 글쎄요, 언제 한번 세어보고 답할게요. (웃음) 누군가 저한테 “노래 만드는 일이 참 힘들겠어요.”라든지 “이렇게 많이 만들었으니 얼마나 애를 썼겠어요.”라고 하는데요, 저한테는 재미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애썼다기보다 즐거움이 컸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덮었을 거예요. 지금도 재미있기 때문에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 거고요.
김응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 먹고사는 일과도 연결이 되는 셈이네요.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삶의 모토랄까. 선생님은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백창우 맞아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하지 못할 때도 있고요, 하고 싶은 일과 돈을 벌어서 먹고사는 일이 따로 있을 수 있는데 나는 어찌 하다 보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도 살잖아요. 참 행복한 사람이에요.
내 노래에는 나이나 장르의 경계가 없다
김응 선생님은 늘 기존의 형식이나 틀을 깨고 새로움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 음반들을 쭉 듣고 있으면 동요의 틀에서 좀 벗어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백창우 잘 보면 제가 만든 책이나 음반에는 동요집이란 말을 잘 안 써요. 노래상자 아니면 노래모음이라는 말을 써요. 어릴 때 어머니가 노래를 자주 들려주셨어요. 자장가나 전래동요를 불러주기도 하고, 「반달」이나「따오기」 같은 창작동요를 불러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세 동무」 같은 흘러간 옛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그네」 같은 가곡을 불러주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갈래를 나누지 않고, 그냥 노래를 불러주셨어요.
김응 어머니가 노래를 좋아하셨나 봐요. 선생님이 어머니를 많이 닮으셨군요.
백창우 뜨개질을 하실 때나 밥을 안칠 때마다 흥얼흥얼 하셨어요. 커서 생각해보니까 어머니한테는 애초에 갈래 같은 건 없었던 거예요. 그냥 좋아하는 노래가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저도 이 노래는 어떤 사람이 듣고 불러야지 생각하면서 만들지 않았어요. 어른 노래 따로 아이 노래 따로가 아니라 내 마음의 결과 만나는 노래,또 뭔가 찡하고 흔들리는 노래면 되는 거예요.
김응 노래만이 아니라 시에서도 경계와 갈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아이들이 읽는 시를 꼭 동시라고 해야하나, 동시는 꼭 어린이들만 읽는 것인가. 노래나 시나금을 그어놓고 갈래를 구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인데 말이에요.
백창우 현대로 올수록 갈래라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자꾸 갈래를 나눠야 평론가들도 편하게 얘기할 것 같고요. 그런 게 없었던 시절에는 이야기가 있었고 노래가 있었을 뿐이잖아요. 그 갈래를 나누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더라도 그 갈래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윤동주나 소월의 시 가운데는 아이들이 읽어서 좋은 시가 많잖아요. 그냥 이 시가 나한테 좋으면 동시든 시든 관계없이 좋은 시인 거예요.
김응 시와 동시의 경계를 긋지 않고 쓰려면 특히 마음속에 어린이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어른들도 한때는 어린이였잖아요. 동시, 동요는 꼭 어린이들만 읽고 듣는 시, 노래가 아니라 마음속에 어린이가 살아 있는 사람이 읽고 듣고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백창우 김응 씨처럼 동시를 쓰는 사람은 어른이어도 틀림없이 마음 안에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모른 척할 뿐이지 그 안에는 아이가 하나씩 있을 거예요. 바로 어른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아홉 살 때 삶, 스무 살 때 삶, 서른 살 때 삶이 시냇물처럼 흘러온 것이지 어느 날 금 딱 그어놓고 새로 시작하는 것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른의 마음 안에 아이의 마음이 있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김응 아, 지난번 모임에서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귀신 얘기하니까 엄청 무서워하셨잖아요. 그 모습 보면서 꼭 아이 같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러고 보면 「내 이름은 무섬이」도 선생님 경험에서 만들어진 노래 같아요.
백창우 제 마음이 담겨 있는 노래예요. 천둥 치는 날 너무 무서워요. 사실 어른이나 아이나 다 무서워하는데 어른들은 좀 안 무서워하는 척하는 훈련이 됐고, 아이들은 그런 꾸밈이 덜하기 때문에 무서울 때는 무서워하는 것 아닌가요?
김응 어른이 될수록 속마음을 많이 감추는 것 같긴 해요. 굴렁쇠아이들과 함께 하니까 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잖아요. 아이들하고는 어떻게 지내세요?
백창우 오랫동안 아이들하고 살아서 애들이 저한테 곡이 후졌다고 해도 상처 안 받아요. 어쩌다 아이들이 “선생님 이것 괜찮은데요.” 하면 진짜 좋은 노래인 것 같아 막 신나요.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을 아이들한테 들려주면 아이들은 마음으로 느껴요. “이거 너무 눈물이나요, 근데 좋아요.” 아이들 말 듣고 참 좋았어요.
누구든 한 줄의 시를 쓸 수 있다
김응 선생님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도 하지만, 네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잖아요.
백창우 사실은 사람들이 다 시인인데, 뭐랄까, 시인이라는 존재가 마치 라이선스를 가진 존재인 것처럼 여기는 세상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아리랑」이나 민요를 조금만 살펴보면 그 안에 엄청난 시의 구절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시인이라는 라이선스를 가지고 쓴 게 아니잖아요. 그냥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잖아요. 결국 시인은 그런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든 시골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누구든 한 줄의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응 저는 요즘 시인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시인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시집도 너무 빨리 많이 내는 것 같아요. 일이 년에 한 권씩 내기도 하니까요.
백창우 목숨 걸고 시 쓰는 분들한테는 참 죄송해요. 저는 목숨 걸고 쓰지 않고요, 그냥 썼어요.
김응 노래 만들 때는 목숨 걸고 하시는 것 아닐까요. 다른사람이 선생님 작업을 볼 때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백창우 아니에요. 목숨 걸고 하지 않아요. 시를 쓰거나 노래를 만드는 놀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거침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게 나한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재미있는 거예요.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김응 어릴 때부터 그러셨어요?
백창우 누나와 형들은 어른들이 정해놓은 세계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공부를 하더라도 그 길을 스스로 결정하기에는 어려웠으니까요. 아버지 50대, 어머니 40대에 저를 얻었으니 그야말로 덤이자 부록이었지요. 있으나 없으나 하는 존재였어요. 그래서 많이 봐주셨어요.
김응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요?
백창우 무척 엄하셨어요. 형제 가운데 하나만 잘못해도 다 같이 회초리를 맞는 거예요. 제 차례가 되면 어머니가 주로 말리는 역할을 하셨어요. 밥 먹는 것도 자유롭지 않았어요. 밥상에서도 서열대로 자리가 정해져 있었어요. 반찬도 조금씩 다르고요. 생선도 가장 어른 앞에 가장 좋은 부분이 놓이는 것처럼요. 근데 저는 늘 아버지 옆에 앉았어요. 그러니 맛있는 걸 맘대로 먹을 수 있었고요. 하고 싶은 것도 맘대로 할 수 있었어요.
김응 어린 시절부터 자유가 보장된 셈이네요.
백창우 좋게 얘기하면 그렇지만, 사실 저는 제멋대로 살았던 것 같아요. 다행히 책을 일찍 만나 망나니로 끝나지 않은 거예요. 어릴 때 만났던 책들이 제 길들을 마련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집이 북에서 넘어왔던터라 뿌리 내릴 곳이 없으니까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나 다녔거든요. 늘 낯선 곳에 가서 새로 풍경을 익히고 사람을 익혀야 했기 때문에 혼자 노는 일이 많았어요. 당연히 혼자 놀다 보면 심심해서 집에 있는 책들을 보게 되고요. 그러니까 노래를 내멋대로 만들지만 그것에 바탕에는 내가 뛰어놀았던 자연과 책들이 놓여 있다고 생각해요.
김응 책은 지금도 정말 많이 좋아하시잖아요. 헌책방 다니는 것도 좋아하시고요. 어린 시절부터 그랬던 거군요. 저희 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위인전이든 사전이든 활자로 된 것들은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 댁에는 책이 많았어요?
백창우 그때만 해도 책이 없던 시절이니까, 그렇게 따지면 많았고요. 요즘 세상에서 보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고요. 중·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책꽂이에 형들책이 있었지 제가 쓸 수 있는 책꽂이는 없었어요. 꼬마가 어디 누구 것을 빼고 쓰겠습니까. 옷장 밑에 달린 서랍 두 칸에다 내 책을 쌓아놓았어요. 가장 좋아했던 건 삼중당 문고였어요. 작아서 많이 들어가니까요. 제 첫 책꽂이는 그 서랍이에요.
김응 주로 무슨 책을 읽으셨어요? 특별히 기억나는 책이 있으세요?
백창우 처음 만난 책은 형과 누나가 보던 책이었어요. 『뤼팽』이나 『톰 소여의 모험』도 꽂혀 있고, 『아리랑』 같은 잡지도 있었고, 문예지도 있었고, 시집도 있었어요. 윤동주, 소월, 한용운 시집, 세계의 명시 같은 흔히 그 시절 청소년이나 청년이 볼 만한 것들이었어요. 처음에는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보다가 워낙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재미없어 보일 것 같은 책까지 다 보게 되는 거예요. 그때 처음 만났던 시가 재미없었다면 더 보지 않았을 텐데, 그 속에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그 뒤로도 계속 책을 찾아보게 된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형들이 연애편지 쓰려고 가지고 있었던 시집이 저를 무엇을 만드는 사람으로 해주지 않았나 싶어요.
김응 열여섯 살 무렵부터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셨는데,처음 만들었던 노래 생각나세요? 혹시 시를 가지고 만드셨어요?
백창우 교회에 함께 다니던 친구한테 주려고 만들었던 것 같아요.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 생일이 되면 선물로 노래를 하나씩 만들어줬거든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 거니까요.
아이들을 위한 진짜 동요는 무엇인가
김응 선생님은 아이들 시나 말을 가지고 노래로 만드는 일에 집착 수준으로 열심히 하시는데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것 같아요.
백창우 지금 아이들은 늘 누군가 만들어준 것을 구경하거나 읽는 사람이지 만드는 존재가 아니에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꾸미고 싶어 한단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전래동요나 전래놀이가 나올 수 있었잖아요. 이오덕 선생님의 시골 아이들 시나 임길택 선생님의 탄광 마을 아이들 시나 여러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만든 학급문집에는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그대로 담아낸 글이 많았어요. 그것들을 만난 뒤로 아이들 글도 찾아 읽고, 아이들 말도 적어두고 그랬어요.
김응 아무래도 아이들이 진솔하게 쓴 시나 말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게 되잖아요. 임길택 선생님 노래상자에 있는 「옷 사줘」를 들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시는 딱 두 줄이잖아요. “엄마, 옷 사줘.입을 게 없단 말이야. / 너 팔아서 사줄까. 돈 없다.”
백창우 참 좋은 시예요. 바로 그 아이가 직접 겪은 일이거든요. 이렇게 아이들이 자기 안에 있는 것들만 꺼내놓아도 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글쓰기를 했으면 싶어요.
김응 자기 안에 있는 걸 꺼낸다는 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해당되는 것 같아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마음속에 쌓인 감정들이 치유된다고 할까요.
백창우 어디서라도 자기 고백을 하면 조금이나마 후련해지잖아요. 그런 통로 없이 쌓아만 두니까 사는 게 힘들다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거예요.
김응 선생님이 계속 아이들 시와 말로 노래를 만들려면 아이들이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이오덕, 임길택 선생님 같은 분이 많아야 할 것 같아요.
백창우 두 분 선생님은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멍석을 펴준 분들이에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쓴 글모음집을 본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썼는데도 참 재미가 없더라고요. 쓰지 말아야 하는 게 있는 것처럼 썼어요. 어른들을 흉내 낸 말도 많았고요.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아이들이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어요.
김응 우리 창작동요를 보면 보통명사로 어린이, 아이 정도가 나올 뿐 구체적인 이름이 나오지 않아요. 선생님노래에는 산복이, 수경이, 자숙이, 영미, 정숙이 등등 실제 아이들 이름이 많이 나오는 것도 재미있어요.
백창우 그 아이들이 다 있는 아이들이고, 실제 그 아이들얘기인 거예요. 정숙이네 논둑 도랑가인데 그냥 어린이 네로 보통명사가 되면 생생하지 않잖아요. 구체적인 삶이나 풍경이 거의 안 보이는 게 우리 창작동요의 현실이에요.
김응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야말로 동심천사주의로 동시와 동요를 만들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린이는 착하고 밝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이요.
백창우 “천 번을 불러도 또 부르고 싶은 어머니” 이게 창작동요의 노랫말이에요. 아이들 세계에서 있기 힘든 일이에요. 이건 아이들을 너무도 모르는 어른들의 생각일뿐이에요.
김응 선생님이 쓴 「동요는 죽었다」, 「뻔하고 뻔하고 뻔하다」라는 글을 보면 창작동요제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더라고요. 저도 창작동요제를 보면서 왜 저렇게 노래부르는 모습이나 목소리가 똑같을까, 왜 저렇게 재미없고 감동이 없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실망한 적이 많거든요.
백창우 기타 중에 가장 비싼 기타는 수제 기타입니다. 어떤 장인이 나무를 말려 손으로 깎고 다듬어 만든 기타가 가장 비쌉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기타들은 쌉니다. 손으로 만든 기타가 소리도 좋을 수 있지만 만든 사람의 마음과 손맛이 깃들어 세상에 하나뿐인 것이 되었기 때문에 비싼 것이라 생각해요. 세상에 나온 문학과 예술도 마찬가지지요.
김응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이 만든 노래를 듣다 보면 노래를 부르는 아이나 노래 속에 아이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이 되는 것 같아요. 거기에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과 이야기와 삶이 들어가 있고요.
백창우 아이들 세상에서는 문제 하나에 답이 하나인 경우가 없어요. 답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아요. 자유롭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 동요 작가들은 답을 가지고 동요를 만들어요. 동요는 이 정도 길이여야 한다. 그러니 두 마디짜리 동요도 없고, 백 마디짜리 동요도 없어요. 못갖춘마디를 가진 동요도, 슬픈 곡도 별로 없어요. 동요는 밝고 진취적이어야 한다는 어른의 생각이 우리 동요와 교과서 동요 속에 스며들어 있는 거예요.
자연음악, 손맛나는 음악
김응 선생님이 만든 노래에는 플롯, 첼로, 피아노와 같은 다양한 악기 소리가 담겨 있어요. 컴퓨터 음악으로 만들면 쉽고 빠를 텐데, 자연 음악 중심으로 만드는 까닭이 있겠지요.
백창우 노래에는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할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시냇물 소리는 집과 학교를 다니면서 날마다 들었는데 질린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김응 음식으로 치면 된장이나 고추장을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과 같은 거네요.
백창우 고추장, 된장이 다 클래식이잖아요. 십 년 이십 년뒤에 만나도 싫증나지 않는 반가운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손맛이 나는 음악이요. 첼로든 기타든 자연에 있는 나무, 줄, 풀로 만든 거잖아요. 깡통이나 나무도 저는 다 악기라고 생각해요.
김응 음악에서는 목소리도 훌륭한 악기가 되잖아요.
백창우 물론이에요. 목소리는 최고의 악기예요. 컴퓨터음악은 화학조미료라고 할 수 있어요. 몇 달 먹으면 질려서 못 먹잖아요. 요즘은 몇 달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찾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빨리 바꿔요. 인공적인 거라 아주 지겨워지는 거예요. 좀 투박하더라도 어머니가 무쳐주는 나물의 맛이나 직접 담근 김치의 맛이 제 음악 속에 있었으면 해요.
김응 보통 노래는 동요 아니면 가요로 나뉘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청소년들을 위한 노래 작업도 하신 걸로 알아요. 청소년은 아동문화와 성인문화 사이에 끼여 자기 문화를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인 요즘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에요. 문학에서도 요즘은 청소년소설, 청소년시라고 해서 활발하게 작품이 나오거든요.
백창우 우리나라가 참 웃기는 나라예요. 청소년문학이따로 있어야 할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얼마나 그런 게 없으면, 안 읽으면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보여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오히려 그런 말이 없었던 시절에 청소년 모임을 활발히 했어요. 책 읽고 이야기 나누고 뭔가를 주장해야 할 때는 토론도 하고요. 「내무거운 책가방」과 같이 아이들의 생활과 생각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불렀고, 공연도 했어요. 청소년 아이들이 직접 쓴 공동창작시 「밥 먹으며 시계 보고 시계 보며 또 먹고」를 가지고 「좋겠다」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요. “학교 시간은 더럽게 긴데 잠자는 시간은 왜 이리 짧을까/학교가 잠자는 곳이면 좋겠다, 책상이 침대라면 좋겠다/공부 시간은 무척이나 긴데 점심시간은 왜 이리 짧을까/도시락이 책가방만 했으면 좋겠다, 책가방이 도시락만 했으면 좋겠다” 자기 가방이 무겁다는 얘기를 재미있게 썼잖아요.
김응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상황은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참 슬픈 현실이에요. 이틀이 멀다 하고 아이들이 뛰어내렸다는 얘기가 들려오잖아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통로로 자기 목소리를 낼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아이들 세계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그걸 노래로 만드는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백창우 제 노래에서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자기가 겪은 이야기, 학교 이야기, 시험 이야기 같은 거예요. 어제 정선초등학교에 갔는데, 「문제아」를 불렀더니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빽빽 소리를 지르며 부르더라고요. “눈을 흘겨도 문제아 욕을 해도 문제아/장난을 쳐도 문제아/싸움을 해도 문제아/문제아가 되는 건 쉽지만 보통아이가 되는 건 어려워~”
김응 따라 부르기도 쉽지만 누구나 가사 내용 가운데 하나쯤은 해당되지 않겠어요. 노래 가사를 바꿔 부를 수도 있고요.
백창우 근데 노래 가사를 들으면 어른들은 걱정하지요. 시험지를 찢어버리겠다는 걸 흥얼거리고 다녀 봐요.
김응 얘기 나온 김에 노래 좀 들려주세요.
노래와 이야기가 있는 공연
백창우 선생님은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기타를 치며「좋겠다」를 시작으로 교과서를 찢어 종이비행기를 만든다고 금지되었던 「꿈이 더 필요한 세상」, 무지무지 지
루한 노래 「뺑덕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딱지 따먹기」 들을 부르셨다. 마지막 곡은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 속이 후련해지는 「다닥다닥 붙은 집」이었다.
김응 이렇게 선생님 노래 듣고 있으니까, 나팔꽃 공연 때 모습이 생각나요. 고무신 신고 기타 하나 메고 무대에 올라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 나팔꽃 공연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이고, 시와 노래와 이야기가 있는 공연이잖아요.
백창우 우리 시와 음악이 날마다 새로운 무엇을 가져야겠다는 뜻에서 시인과 노래하는 사람들이 만났고, 나팔꽃이란 이름을 지었어요. 나팔꽃은 아침마다 피는 꽃,소리를 담은 것 같은 모양을 한, 사람과 가까운 곳에 아무 데서나 피는 꽃이잖아요. 조만간 다시 공연장에서 만나야겠지요.
김응 네, 나팔꽃 공연도 보고 싶고, 선생님 꿈인 동요박물관 만드는 일도 빨리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어제 공연하고 오셔서 피곤하실 텐데,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바깥으로 나오려는 순간) 선생님, 비가 꽤많이 와요. 천둥도 치고요. 문 꼭 잠그고 계세요. (웃음)
백창우 그러네요. 어휴, 천둥 치니까 무서워요. 이불 푹 뒤집어쓰고 구구단 외워야겠어요.
김응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 문학예술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그동안 잡지사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다. 동시집 『개떡 똥떡』을 냈다.
백창우 1980년대 중반, 포크그룹 ‘노래마을’을 이끌며 <남누리 북누리>, <나이 서른에 우린>,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같은 노래들을 발표했고, 어린이 노래패인 ‘굴렁쇠 아이들’을 만들어 전래동요와 창작동요를 음반에 담아내고 있다. 또한 여러 가수들에게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임희숙>, <부치지 않은 편지-김광석> 같은 노래를 써 주기도 했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시노래모임 나팔꽃’동인으로 음반과 공연을 연출하고 있다. 그 동안 <길이 끝나는 데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를 비롯한, 시집 네 권과 스스로 노래한 음반 두 장, 작곡집을 여러 장 냈고, 창작 동요집인 <보리 어린이 노래마을> 시리즈로 ‘제44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어린이 청소년 부문을 수상했다.
백창우 어젯밤 늦게 사북에서 와서 상태가 좋지 않아요. 아직 덜 깬 상태라서요.
김응 선생님도 야행성이신가 봐요. 저도 어제 새벽에 잠이 들었어요. 그래도 선생님 뵙기 전에 ‘백창우 이태수의 조금 별난 전시회’도 다녀왔어요.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던데요. 엄마랑 아빠랑 함께 나온 아이들도 있고요. 전시회장에는 자주 나가세요?
백창우 공연이나 외부 일이 없으면, 거기 가서 책도 읽고 그래요.
김응 선생님은 음악 하는 분이고, 이태수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는 분인데, 어떻게 두 분이 같이 전시회를 열게 된 거예요?
백창우 하루하루 비슷비슷하게 가는 일이 좀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뭐 재미난 일 없을까, 뭐 다른 일 없을까하다가 늘 보던 전시회 말고 조금 다른 전시회를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얘기 끝에 시작하게 됐어요. 오래 준비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좀 옮겨놓는다는 생각으로요. 전시 끝날 때까지 조금씩 변화해 나가면서 움직이는 전시회가 되도록 하려고요.
김응 이태수 선생님하고는 처음 작업하신 게 언제예요?
백창우 김용택 동요집 『우리 반 여름이』를 함께했어요. 임길택 시인의 『할아버지 요강』에 이태수 선생이 그림을 그리고, 제가 곡을 쓰기도 했고요.
김응 전시회가 6개월 동안 계속되는데요, 오랜 기간이에요. 선생님들 만나는 때도 있더라고요.
백창우 전시 기간 동안 조금 별난 만남이 세 번 있어요. 깜짝 공연도 하면서 전시회 오신 분들이랑 노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김응 얼마 전에 권정생, 이오덕, 임길택 선생님의 노래상자가 나왔잖아요. 이번에는 아주 특별한 노래상자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 납니다』가 나왔고요. 가만히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제목 그대로 눈물이 나요.
백창우 글에도 짤막하게 썼지만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을 노래로 만들면서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주 특별한 노래상자에는 너무 슬퍼서, 너무 길어서, 너무 지루해서, 혹은 너무 어려워서 담지 못한 노래, 그리고 노래라고 하기엔 좀 뭐한 노래라서 정규 음반에 담지 못하고 남겨놓았던 노래들을 담았어요. 저한테는 제목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노래들이 아주 특별한 것들이에요.
김응 아동문학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권정생, 이오덕, 임길택 선생님의 작품으로 노래를 만든 까닭이 있으실 것 같아요.
백창우 사는 것과 글이 그대로인 사람들이 있어요. 세 분은 시로 만나나 사람으로 만나나 같은 점이 많은 분들이에요. 선생님들처럼 살지는 못해도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노래를 만들었어요. 선생님들 살아 계실 때도 한 곡 두 곡 만들어 공연 자리에서 관객들과 함께 불렀는데요, 한자리에 모아보겠다는 생각은 돌아가신 뒤에 했어요.
김응 아주 특별한 노래상자에서 권정생 선생님 편지 글은 조월례 선생님이, 이오덕 선생님 편지 글은 이오덕선생님 아드님이 직접 낭송을 해주셨더라고요. 편지 내용도 그렇지만 이오덕 선생님 아드님이 낭송을 해주시니 꼭 이오덕 선생님이 다시 살아오신 것 같아 마음이 더 짠했어요.
백창우 아드님이 선생님의 모습과 목소리를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음반을 들은 분들은 이오덕 선생님이 직접 낭송하셨나 하는 분들이 많아요. 아드님이 이름을 밝히는 게 쑥스럽다고 하셔서 음반에는 ‘시골 사람’으로 담았어요. (웃음)
김응 노래상자에 슬픈 노래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이홍렬 씨가 낭송한 「뺑덕이」와 「늙은 개」를 듣고 있으니까 권정생 선생님이 뺑덕이랑 함께 지냈을 풍경이 그려져 웃음이 났어요. 울다가 웃게 만든다고 할까요.
백창우 사람들한테 권정생, 이오덕, 임길택 시인은 삶을 허투루 살지 않아 글도 참 재미없을 거라는 굳은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집에서는 좀 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유쾌하고 장난기가 있고, 편안하고 친근한 모습도 있다는 것을요. 권정생 선생님과 같이 살던 개 뺑덕이 얘기도 담고,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재미있는 시도 담았어요. 임길택 선생님의 「배고프면 밥 먹고 해 떨어지면 잠들고」와 같이 개인만이 알 수 있는 삶의 한 장면도 담았고요.
김응 처음 작업한 이오덕 선생님의 「콩밭 개구리」부터 최근에 만든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까지는 30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어요. 굉장히 긴 시간인데요, 정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작업한 음반이에요.
백창우 이오덕 선생님의 『일하는 아이들』을 만난 뒤로「콩밭 개구리」라는 열 마디짜리 짤막한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걸 시작으로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고, 권정생선생님을 만나고, 임길택 선생님을 만나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예요. 그분들이 쓰신 글을 빼놓지 않고 읽을 수 있었고, 그렇게 읽다 보니까 그 안에 있었던 것들을 끄집어낼 수가 있었어요.
김응 지금껏 만든 노래가 굉장히 많으실 것 같아요. 한 천곡쯤 되나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백창우 글쎄요, 언제 한번 세어보고 답할게요. (웃음) 누군가 저한테 “노래 만드는 일이 참 힘들겠어요.”라든지 “이렇게 많이 만들었으니 얼마나 애를 썼겠어요.”라고 하는데요, 저한테는 재미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애썼다기보다 즐거움이 컸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덮었을 거예요. 지금도 재미있기 때문에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 거고요.
김응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 먹고사는 일과도 연결이 되는 셈이네요.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삶의 모토랄까. 선생님은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백창우 맞아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하지 못할 때도 있고요, 하고 싶은 일과 돈을 벌어서 먹고사는 일이 따로 있을 수 있는데 나는 어찌 하다 보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도 살잖아요. 참 행복한 사람이에요.
내 노래에는 나이나 장르의 경계가 없다
김응 선생님은 늘 기존의 형식이나 틀을 깨고 새로움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 음반들을 쭉 듣고 있으면 동요의 틀에서 좀 벗어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백창우 잘 보면 제가 만든 책이나 음반에는 동요집이란 말을 잘 안 써요. 노래상자 아니면 노래모음이라는 말을 써요. 어릴 때 어머니가 노래를 자주 들려주셨어요. 자장가나 전래동요를 불러주기도 하고, 「반달」이나「따오기」 같은 창작동요를 불러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세 동무」 같은 흘러간 옛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그네」 같은 가곡을 불러주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갈래를 나누지 않고, 그냥 노래를 불러주셨어요.
김응 어머니가 노래를 좋아하셨나 봐요. 선생님이 어머니를 많이 닮으셨군요.
백창우 뜨개질을 하실 때나 밥을 안칠 때마다 흥얼흥얼 하셨어요. 커서 생각해보니까 어머니한테는 애초에 갈래 같은 건 없었던 거예요. 그냥 좋아하는 노래가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저도 이 노래는 어떤 사람이 듣고 불러야지 생각하면서 만들지 않았어요. 어른 노래 따로 아이 노래 따로가 아니라 내 마음의 결과 만나는 노래,또 뭔가 찡하고 흔들리는 노래면 되는 거예요.
김응 노래만이 아니라 시에서도 경계와 갈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아이들이 읽는 시를 꼭 동시라고 해야하나, 동시는 꼭 어린이들만 읽는 것인가. 노래나 시나금을 그어놓고 갈래를 구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인데 말이에요.
백창우 현대로 올수록 갈래라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자꾸 갈래를 나눠야 평론가들도 편하게 얘기할 것 같고요. 그런 게 없었던 시절에는 이야기가 있었고 노래가 있었을 뿐이잖아요. 그 갈래를 나누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더라도 그 갈래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윤동주나 소월의 시 가운데는 아이들이 읽어서 좋은 시가 많잖아요. 그냥 이 시가 나한테 좋으면 동시든 시든 관계없이 좋은 시인 거예요.
김응 시와 동시의 경계를 긋지 않고 쓰려면 특히 마음속에 어린이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어른들도 한때는 어린이였잖아요. 동시, 동요는 꼭 어린이들만 읽고 듣는 시, 노래가 아니라 마음속에 어린이가 살아 있는 사람이 읽고 듣고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백창우 김응 씨처럼 동시를 쓰는 사람은 어른이어도 틀림없이 마음 안에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모른 척할 뿐이지 그 안에는 아이가 하나씩 있을 거예요. 바로 어른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아홉 살 때 삶, 스무 살 때 삶, 서른 살 때 삶이 시냇물처럼 흘러온 것이지 어느 날 금 딱 그어놓고 새로 시작하는 것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른의 마음 안에 아이의 마음이 있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김응 아, 지난번 모임에서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귀신 얘기하니까 엄청 무서워하셨잖아요. 그 모습 보면서 꼭 아이 같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러고 보면 「내 이름은 무섬이」도 선생님 경험에서 만들어진 노래 같아요.
백창우 제 마음이 담겨 있는 노래예요. 천둥 치는 날 너무 무서워요. 사실 어른이나 아이나 다 무서워하는데 어른들은 좀 안 무서워하는 척하는 훈련이 됐고, 아이들은 그런 꾸밈이 덜하기 때문에 무서울 때는 무서워하는 것 아닌가요?
김응 어른이 될수록 속마음을 많이 감추는 것 같긴 해요. 굴렁쇠아이들과 함께 하니까 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잖아요. 아이들하고는 어떻게 지내세요?
백창우 오랫동안 아이들하고 살아서 애들이 저한테 곡이 후졌다고 해도 상처 안 받아요. 어쩌다 아이들이 “선생님 이것 괜찮은데요.” 하면 진짜 좋은 노래인 것 같아 막 신나요.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을 아이들한테 들려주면 아이들은 마음으로 느껴요. “이거 너무 눈물이나요, 근데 좋아요.” 아이들 말 듣고 참 좋았어요.
누구든 한 줄의 시를 쓸 수 있다
김응 선생님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도 하지만, 네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잖아요.
백창우 사실은 사람들이 다 시인인데, 뭐랄까, 시인이라는 존재가 마치 라이선스를 가진 존재인 것처럼 여기는 세상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아리랑」이나 민요를 조금만 살펴보면 그 안에 엄청난 시의 구절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시인이라는 라이선스를 가지고 쓴 게 아니잖아요. 그냥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잖아요. 결국 시인은 그런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든 시골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누구든 한 줄의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응 저는 요즘 시인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시인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시집도 너무 빨리 많이 내는 것 같아요. 일이 년에 한 권씩 내기도 하니까요.
백창우 목숨 걸고 시 쓰는 분들한테는 참 죄송해요. 저는 목숨 걸고 쓰지 않고요, 그냥 썼어요.
김응 노래 만들 때는 목숨 걸고 하시는 것 아닐까요. 다른사람이 선생님 작업을 볼 때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백창우 아니에요. 목숨 걸고 하지 않아요. 시를 쓰거나 노래를 만드는 놀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거침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게 나한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재미있는 거예요.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김응 어릴 때부터 그러셨어요?
백창우 누나와 형들은 어른들이 정해놓은 세계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공부를 하더라도 그 길을 스스로 결정하기에는 어려웠으니까요. 아버지 50대, 어머니 40대에 저를 얻었으니 그야말로 덤이자 부록이었지요. 있으나 없으나 하는 존재였어요. 그래서 많이 봐주셨어요.
김응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어요?
백창우 무척 엄하셨어요. 형제 가운데 하나만 잘못해도 다 같이 회초리를 맞는 거예요. 제 차례가 되면 어머니가 주로 말리는 역할을 하셨어요. 밥 먹는 것도 자유롭지 않았어요. 밥상에서도 서열대로 자리가 정해져 있었어요. 반찬도 조금씩 다르고요. 생선도 가장 어른 앞에 가장 좋은 부분이 놓이는 것처럼요. 근데 저는 늘 아버지 옆에 앉았어요. 그러니 맛있는 걸 맘대로 먹을 수 있었고요. 하고 싶은 것도 맘대로 할 수 있었어요.
김응 어린 시절부터 자유가 보장된 셈이네요.
백창우 좋게 얘기하면 그렇지만, 사실 저는 제멋대로 살았던 것 같아요. 다행히 책을 일찍 만나 망나니로 끝나지 않은 거예요. 어릴 때 만났던 책들이 제 길들을 마련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집이 북에서 넘어왔던터라 뿌리 내릴 곳이 없으니까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나 다녔거든요. 늘 낯선 곳에 가서 새로 풍경을 익히고 사람을 익혀야 했기 때문에 혼자 노는 일이 많았어요. 당연히 혼자 놀다 보면 심심해서 집에 있는 책들을 보게 되고요. 그러니까 노래를 내멋대로 만들지만 그것에 바탕에는 내가 뛰어놀았던 자연과 책들이 놓여 있다고 생각해요.
김응 책은 지금도 정말 많이 좋아하시잖아요. 헌책방 다니는 것도 좋아하시고요. 어린 시절부터 그랬던 거군요. 저희 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위인전이든 사전이든 활자로 된 것들은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 댁에는 책이 많았어요?
백창우 그때만 해도 책이 없던 시절이니까, 그렇게 따지면 많았고요. 요즘 세상에서 보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고요. 중·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책꽂이에 형들책이 있었지 제가 쓸 수 있는 책꽂이는 없었어요. 꼬마가 어디 누구 것을 빼고 쓰겠습니까. 옷장 밑에 달린 서랍 두 칸에다 내 책을 쌓아놓았어요. 가장 좋아했던 건 삼중당 문고였어요. 작아서 많이 들어가니까요. 제 첫 책꽂이는 그 서랍이에요.
김응 주로 무슨 책을 읽으셨어요? 특별히 기억나는 책이 있으세요?
백창우 처음 만난 책은 형과 누나가 보던 책이었어요. 『뤼팽』이나 『톰 소여의 모험』도 꽂혀 있고, 『아리랑』 같은 잡지도 있었고, 문예지도 있었고, 시집도 있었어요. 윤동주, 소월, 한용운 시집, 세계의 명시 같은 흔히 그 시절 청소년이나 청년이 볼 만한 것들이었어요. 처음에는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보다가 워낙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재미없어 보일 것 같은 책까지 다 보게 되는 거예요. 그때 처음 만났던 시가 재미없었다면 더 보지 않았을 텐데, 그 속에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그 뒤로도 계속 책을 찾아보게 된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형들이 연애편지 쓰려고 가지고 있었던 시집이 저를 무엇을 만드는 사람으로 해주지 않았나 싶어요.
김응 열여섯 살 무렵부터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셨는데,처음 만들었던 노래 생각나세요? 혹시 시를 가지고 만드셨어요?
백창우 교회에 함께 다니던 친구한테 주려고 만들었던 것 같아요.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 생일이 되면 선물로 노래를 하나씩 만들어줬거든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 거니까요.
아이들을 위한 진짜 동요는 무엇인가
김응 선생님은 아이들 시나 말을 가지고 노래로 만드는 일에 집착 수준으로 열심히 하시는데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것 같아요.
백창우 지금 아이들은 늘 누군가 만들어준 것을 구경하거나 읽는 사람이지 만드는 존재가 아니에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꾸미고 싶어 한단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전래동요나 전래놀이가 나올 수 있었잖아요. 이오덕 선생님의 시골 아이들 시나 임길택 선생님의 탄광 마을 아이들 시나 여러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만든 학급문집에는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그대로 담아낸 글이 많았어요. 그것들을 만난 뒤로 아이들 글도 찾아 읽고, 아이들 말도 적어두고 그랬어요.
김응 아무래도 아이들이 진솔하게 쓴 시나 말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게 되잖아요. 임길택 선생님 노래상자에 있는 「옷 사줘」를 들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시는 딱 두 줄이잖아요. “엄마, 옷 사줘.입을 게 없단 말이야. / 너 팔아서 사줄까. 돈 없다.”
백창우 참 좋은 시예요. 바로 그 아이가 직접 겪은 일이거든요. 이렇게 아이들이 자기 안에 있는 것들만 꺼내놓아도 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글쓰기를 했으면 싶어요.
김응 자기 안에 있는 걸 꺼낸다는 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해당되는 것 같아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마음속에 쌓인 감정들이 치유된다고 할까요.
백창우 어디서라도 자기 고백을 하면 조금이나마 후련해지잖아요. 그런 통로 없이 쌓아만 두니까 사는 게 힘들다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거예요.
김응 선생님이 계속 아이들 시와 말로 노래를 만들려면 아이들이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이오덕, 임길택 선생님 같은 분이 많아야 할 것 같아요.
백창우 두 분 선생님은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멍석을 펴준 분들이에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쓴 글모음집을 본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썼는데도 참 재미가 없더라고요. 쓰지 말아야 하는 게 있는 것처럼 썼어요. 어른들을 흉내 낸 말도 많았고요.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아이들이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어요.
김응 우리 창작동요를 보면 보통명사로 어린이, 아이 정도가 나올 뿐 구체적인 이름이 나오지 않아요. 선생님노래에는 산복이, 수경이, 자숙이, 영미, 정숙이 등등 실제 아이들 이름이 많이 나오는 것도 재미있어요.
백창우 그 아이들이 다 있는 아이들이고, 실제 그 아이들얘기인 거예요. 정숙이네 논둑 도랑가인데 그냥 어린이 네로 보통명사가 되면 생생하지 않잖아요. 구체적인 삶이나 풍경이 거의 안 보이는 게 우리 창작동요의 현실이에요.
김응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야말로 동심천사주의로 동시와 동요를 만들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린이는 착하고 밝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이요.
백창우 “천 번을 불러도 또 부르고 싶은 어머니” 이게 창작동요의 노랫말이에요. 아이들 세계에서 있기 힘든 일이에요. 이건 아이들을 너무도 모르는 어른들의 생각일뿐이에요.
김응 선생님이 쓴 「동요는 죽었다」, 「뻔하고 뻔하고 뻔하다」라는 글을 보면 창작동요제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더라고요. 저도 창작동요제를 보면서 왜 저렇게 노래부르는 모습이나 목소리가 똑같을까, 왜 저렇게 재미없고 감동이 없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실망한 적이 많거든요.
백창우 기타 중에 가장 비싼 기타는 수제 기타입니다. 어떤 장인이 나무를 말려 손으로 깎고 다듬어 만든 기타가 가장 비쌉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기타들은 쌉니다. 손으로 만든 기타가 소리도 좋을 수 있지만 만든 사람의 마음과 손맛이 깃들어 세상에 하나뿐인 것이 되었기 때문에 비싼 것이라 생각해요. 세상에 나온 문학과 예술도 마찬가지지요.
김응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이 만든 노래를 듣다 보면 노래를 부르는 아이나 노래 속에 아이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이 되는 것 같아요. 거기에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과 이야기와 삶이 들어가 있고요.
백창우 아이들 세상에서는 문제 하나에 답이 하나인 경우가 없어요. 답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아요. 자유롭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 동요 작가들은 답을 가지고 동요를 만들어요. 동요는 이 정도 길이여야 한다. 그러니 두 마디짜리 동요도 없고, 백 마디짜리 동요도 없어요. 못갖춘마디를 가진 동요도, 슬픈 곡도 별로 없어요. 동요는 밝고 진취적이어야 한다는 어른의 생각이 우리 동요와 교과서 동요 속에 스며들어 있는 거예요.
자연음악, 손맛나는 음악
김응 선생님이 만든 노래에는 플롯, 첼로, 피아노와 같은 다양한 악기 소리가 담겨 있어요. 컴퓨터 음악으로 만들면 쉽고 빠를 텐데, 자연 음악 중심으로 만드는 까닭이 있겠지요.
백창우 노래에는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할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시냇물 소리는 집과 학교를 다니면서 날마다 들었는데 질린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김응 음식으로 치면 된장이나 고추장을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과 같은 거네요.
백창우 고추장, 된장이 다 클래식이잖아요. 십 년 이십 년뒤에 만나도 싫증나지 않는 반가운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손맛이 나는 음악이요. 첼로든 기타든 자연에 있는 나무, 줄, 풀로 만든 거잖아요. 깡통이나 나무도 저는 다 악기라고 생각해요.
김응 음악에서는 목소리도 훌륭한 악기가 되잖아요.
백창우 물론이에요. 목소리는 최고의 악기예요. 컴퓨터음악은 화학조미료라고 할 수 있어요. 몇 달 먹으면 질려서 못 먹잖아요. 요즘은 몇 달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찾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빨리 바꿔요. 인공적인 거라 아주 지겨워지는 거예요. 좀 투박하더라도 어머니가 무쳐주는 나물의 맛이나 직접 담근 김치의 맛이 제 음악 속에 있었으면 해요.
김응 보통 노래는 동요 아니면 가요로 나뉘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청소년들을 위한 노래 작업도 하신 걸로 알아요. 청소년은 아동문화와 성인문화 사이에 끼여 자기 문화를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인 요즘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에요. 문학에서도 요즘은 청소년소설, 청소년시라고 해서 활발하게 작품이 나오거든요.
백창우 우리나라가 참 웃기는 나라예요. 청소년문학이따로 있어야 할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얼마나 그런 게 없으면, 안 읽으면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보여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 오히려 그런 말이 없었던 시절에 청소년 모임을 활발히 했어요. 책 읽고 이야기 나누고 뭔가를 주장해야 할 때는 토론도 하고요. 「내무거운 책가방」과 같이 아이들의 생활과 생각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불렀고, 공연도 했어요. 청소년 아이들이 직접 쓴 공동창작시 「밥 먹으며 시계 보고 시계 보며 또 먹고」를 가지고 「좋겠다」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요. “학교 시간은 더럽게 긴데 잠자는 시간은 왜 이리 짧을까/학교가 잠자는 곳이면 좋겠다, 책상이 침대라면 좋겠다/공부 시간은 무척이나 긴데 점심시간은 왜 이리 짧을까/도시락이 책가방만 했으면 좋겠다, 책가방이 도시락만 했으면 좋겠다” 자기 가방이 무겁다는 얘기를 재미있게 썼잖아요.
김응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상황은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참 슬픈 현실이에요. 이틀이 멀다 하고 아이들이 뛰어내렸다는 얘기가 들려오잖아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통로로 자기 목소리를 낼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아이들 세계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그걸 노래로 만드는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백창우 제 노래에서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자기가 겪은 이야기, 학교 이야기, 시험 이야기 같은 거예요. 어제 정선초등학교에 갔는데, 「문제아」를 불렀더니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빽빽 소리를 지르며 부르더라고요. “눈을 흘겨도 문제아 욕을 해도 문제아/장난을 쳐도 문제아/싸움을 해도 문제아/문제아가 되는 건 쉽지만 보통아이가 되는 건 어려워~”
김응 따라 부르기도 쉽지만 누구나 가사 내용 가운데 하나쯤은 해당되지 않겠어요. 노래 가사를 바꿔 부를 수도 있고요.
백창우 근데 노래 가사를 들으면 어른들은 걱정하지요. 시험지를 찢어버리겠다는 걸 흥얼거리고 다녀 봐요.
김응 얘기 나온 김에 노래 좀 들려주세요.
노래와 이야기가 있는 공연
백창우 선생님은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기타를 치며「좋겠다」를 시작으로 교과서를 찢어 종이비행기를 만든다고 금지되었던 「꿈이 더 필요한 세상」, 무지무지 지
루한 노래 「뺑덕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딱지 따먹기」 들을 부르셨다. 마지막 곡은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 속이 후련해지는 「다닥다닥 붙은 집」이었다.
김응 이렇게 선생님 노래 듣고 있으니까, 나팔꽃 공연 때 모습이 생각나요. 고무신 신고 기타 하나 메고 무대에 올라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 나팔꽃 공연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이고, 시와 노래와 이야기가 있는 공연이잖아요.
백창우 우리 시와 음악이 날마다 새로운 무엇을 가져야겠다는 뜻에서 시인과 노래하는 사람들이 만났고, 나팔꽃이란 이름을 지었어요. 나팔꽃은 아침마다 피는 꽃,소리를 담은 것 같은 모양을 한, 사람과 가까운 곳에 아무 데서나 피는 꽃이잖아요. 조만간 다시 공연장에서 만나야겠지요.
김응 네, 나팔꽃 공연도 보고 싶고, 선생님 꿈인 동요박물관 만드는 일도 빨리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어제 공연하고 오셔서 피곤하실 텐데,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바깥으로 나오려는 순간) 선생님, 비가 꽤많이 와요. 천둥도 치고요. 문 꼭 잠그고 계세요. (웃음)
백창우 그러네요. 어휴, 천둥 치니까 무서워요. 이불 푹 뒤집어쓰고 구구단 외워야겠어요.
김응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 문학예술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그동안 잡지사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다. 동시집 『개떡 똥떡』을 냈다.
백창우 1980년대 중반, 포크그룹 ‘노래마을’을 이끌며 <남누리 북누리>, <나이 서른에 우린>,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같은 노래들을 발표했고, 어린이 노래패인 ‘굴렁쇠 아이들’을 만들어 전래동요와 창작동요를 음반에 담아내고 있다. 또한 여러 가수들에게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임희숙>, <부치지 않은 편지-김광석> 같은 노래를 써 주기도 했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시노래모임 나팔꽃’동인으로 음반과 공연을 연출하고 있다. 그 동안 <길이 끝나는 데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를 비롯한, 시집 네 권과 스스로 노래한 음반 두 장, 작곡집을 여러 장 냈고, 창작 동요집인 <보리 어린이 노래마을> 시리즈로 ‘제44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어린이 청소년 부문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