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저자 시대의 색채로 껴안다 그림책작가 권윤덕 아픔을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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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4 18:53 조회 11,154회 댓글 0건본문
평화로 가는 한 발자국을 내딛기까지
정순희 평화그림책 작업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권윤덕 한국에서는 정승각 작가가 먼저 하자고 제안했어요. 어쨌든 여기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순희 세 나라가 모여서 평화그림책을 만들겠다고 한 시도 자체가 존경스러운 일이에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권윤덕 그런 면에서 보면 일본의 다시마 세이조 선생님이 큰 역할을 하신 거지요. 그분이 주 제안자시니까.
정순희 『꽃할머니』 완성하시는 데 한 3년 걸렸다고 들었는데요.
권윤덕 시작은 4년 전에 했어요. 구상은 3년 되었고, 본격적으로 한 건 2년 정도…….
정순희 『꽃할머니』 시작하시고, 4년 중에 1년은 울면서 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선생님 성품상 맨 정신으로 그려내시는 것이 아주 힘드셨을 것 같은데, 아픔을 극복하신 방법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그것이 작품으로 나오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요?
권윤덕 초반에 증언집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증언집을 보면 여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요. 남자들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요. 한 사람 증언이 한 20쪽 가량 되는데, 그런 증언집이 대여섯 권입니다. 한 사람이 증언한 내용이 소설 한 권 분량이거든요. 한 권에 스무 명 정도의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그런 것이 대여섯 권이면…… 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가 소화해야 하잖아요. 아침에 읽기 시작해서 저녁때까지 읽다 보면 진짜 하루 종일 울어요. 종일 울다가 나중에는 너무 기진맥진해서…… 그럴 때는 산에 갔어요. 오후쯤 되면 산에 가서 식히고 오곤 했지요. 산에 다닌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일기를 쓰는 것도 도움이 되었어요. 이것을 어디에 풀어낼 데가 없으니까, 누구를 붙잡고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까 일기를 쓰게 되는 거지요. 그때 쓴 일기의 양이 꽤 됩니다. 너무 힘들 때에는 일기를 썼던 것 같아요.
작년에 일본에서 출간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그때도 혼자 많이 울었어요. 일본에서 온 편지에 출간을 못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고 있거든요. 그걸 보고 일기에서 항목별로 분석했죠. 이것은 왜 말이 되고, 저것은 왜 말이 되는데,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관점이 다른지 등등…… 그런 식으로 계속 일기에 쓰면서 정리했어요. 그것으로 버틴 것 같아요.
정순희 일기가 작품에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었나요?
권윤덕 일기를 쓰는 일은 많은 도움이 됐지요.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 정리할 수 있으니까. 특히 일본에서 책을 못 내겠다고 했을 때 거기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하는데, 내가 일기에서 정리한 내용을 가지고 답장을 할 수 있었어요. 어떤 부분은 내가 일본 측 말을 적절히 수용하기도 하고…… 정리하다 보면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서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어느 것이 그런 부분인지 일기를 쓰면서 정리할 수 있었어요.
정순희 눈물 뒤에는 분노가 있잖아요. 그 분노 조절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것이 일기를 쓰면서 조절되던가요?
권윤덕 일기는 주로 나의 하소연이고…… 사실 분노는 대중과 내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하다보니 많이 소화된 것 같아요. 대중과 소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도 되지만, 내 분노를 그대로 받아줄 사람이 대중 가운데에는 많지 않거든요. 사람들도 그렇게 끔찍한 내 분노를 표현한 책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분노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다
정순희 이 책의 마무리는,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이야기로 끝이 나잖아요. 증언록이 아니라 작품이니까 어느 정도 수위 조절이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을 위해서 수위 조절을 어떻게 하셨는지요?
권윤덕 아까 이야기한, 내 안의 분노를 없애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모니터링하면서, 사람들이 끔찍해하고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그것…… 사실 그때만 해도 내 속의 이야기는 분노고 고발이었거든요.
정순희 사실 그때 우리는 끝까지 못 봤잖아요?
권윤덕 사람들은 그걸 볼 수가 없잖아요. 보지를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책을 본다는 것은 결국 내가 대중과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죠. 내가 이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 사람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도저히 소통할 수 없으니까. 결국 내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내 안의 분노를 어떤 방향으로 삭이고 어떤 방향으로 더 끌어가야 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죠.
정순희 그때 누가 도움을 주었어요?
권윤덕 모니터링하면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고, 한성옥 선생님(동화작가)도 찾아가서 한번 보여드렸거든요. 한성옥 선생님이 그런 지적을 하셨죠. 왜 이걸 가지고 그림책을 만들려 하느냐고, 아주 본질적인 질문을 하셨어요. 그때, 이렇게 그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을 갖고 내가 무언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을 보면서 사람들이 무언가 다른 넓은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분노나 고발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한계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까지의 책들이 그 한계를 넘지 못한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의 전환을 한 거죠. 그러고 나서, 이 책은 그런 분노나 끔찍함이나 고발보다는, 슬프고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3년 정도 지나니까 그게 소화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책의 기운이라는 것이, 분노가 있거나 독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책이 슬프고 아름다워서 읽는 사람이 그것을 끌어안아야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전달되는 것이지, 내 감정에 따라 막 만들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책도 아름다워지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무 아름다워지기만 해서…….
정순희 아름다워지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처음에 사인하신 책을 받았을 때, 더미북을 본 기억이 있어서 두려웠거든요. 근데 막상 펼쳐보니 편안하게 볼 수 있었어요. 책이 나오느냐 마느냐 옥신각신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이 책을 일본에서 출간하기 위해 많이 누그러뜨렸을 거라고 혼자서 짐작했어요. 책을 봤을 때 그 수위가 결코 낮지 않으면서도 아이들도 볼 수 있을 만큼 눈높이도 맞추고…… 어쨌든 제 예상보다 더 수위가 높았어요.
권윤덕 수위 조절과 일본 측 의견에 관련해서 고민한 부분이 적지 않았어요. 특히, 아이들에게 이렇게 끔찍한 것을 보여주어도 되느냐는 질문…… 그리고 또 하나는, 꼭 일본 측에서 지적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출간을 못하겠다고 할 때 든 생각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이 이 책을 보면서 ‘일본은 참 나쁘다’라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것이었어요. 그 부분을 많이 고려하면서 원래 앞부분에 들어갔던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된 그림들은 다 뺐어요. 그리고 뒷부분에 할머니들이 돌아왔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할머니들을 보듬지 못하고 한일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내용과 관련된 부분을 넣었죠. 맨 뒷장에 베트남 여성 이야기를 넣은 것도 그런 맥락이고요. 일본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런 식으로 조정한 거죠. 수위 조절이라기보다는 한 차원 더 높이, 뭔가 다른 세계로 확장시키려는 시도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네요. 그 끔찍한 위안부 문제를 지금 시점으로 가져올 때는 이유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적절했던 것 같아요.
정순희 제 생각에 책의 목적은 ‘평화’였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나 싶어요. 뒤에 보니 ‘독자들에게’라는 글이 있더라고요. 이 책을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셨는데, 어른이 보면 편하게 볼 수 있겠지만 아이들이 보기에는 학습지 같은 데 나오는 ‘이 책을 읽기 위한 지침’ 같은 느낌을 주면서 사족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세 살 때 즐겨 보던 그림책이 그때 왜 그렇게 좋았는지, 열 살이든 스무 살이든 나중에도 깨달을 수 있잖아요. 그림책을 그림책으로 받아들이게 해야지, 글로 너무 많이 풀어놨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책은 내용이 끔찍하긴 하지만 굉장히 감동적이거든요.
권윤덕 그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저도 사족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까 이야기한 그런 우려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이 ‘할머니들은 불쌍하고 일본은 나쁘다’고만 이야기할까봐요. 사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런 짓을 할 수 있고, 어느 나라든지 그런 짓을 할 수 있는데, 이 책이 일본에만 국한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일까 봐 좀 걱정됐죠. 나름대로 방향을 제시한다고 그렇게 쓰긴 했는데, 그것이 어쨌든 일종의 바람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이런 방향에서 읽어줬으면 한다는 우려에서 출발한 바람이요. 출판사에서도 넣을까 말까 논의가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 더 많았어요.
형식을 만들어가는 건 ‘마음’이다
정순희 저는 서양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서양식으로밖에 상상할 수가 없는데요. 저는 이 그림(16~17p)에서, 목이 잘려 몸만 나오는 이 부분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냐하면…… 이런 말이 있잖아요, 애들 혼내지 마라 혼 나간다. 그 ‘혼 빠진다’는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여기 이 사람들이 정말 자기 혼을 갖고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혼이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꿈보다 해몽인가요?(웃음)
권윤덕 이건 사실 일본군 병사 개인이 아니라 제도를 표현한 거예요. 누구나 ‘군국주의’라는 옷을 입으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게 바로 체제인 거고…….
정순희 작업하다가 때려치우고 싶은 적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일본 측에서도 하네 마네 하는 소리를 하고…… 끝까지 해내신 게 존경스러워요. 어쩜 이 대목에서 작가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성향이 작품 활동 하실 때 장점과 단점으로 어떻게 작용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권윤덕 이번에는 완벽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마음으로 작업하다가 힘들면 울다가 그리다가…… 그렇게 하나하나 힘든 과정을 거치다 보니 어느 순간 완성된 거지, 내가 완벽하게 틀에 짜 맞추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끝내고 나서는 마음이 참 편해졌어요. 내가 그림책을 다르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순희 지금까지 해 오셨던 작품이 딱 떨어지는 스타일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고 한 단계 더 올라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권윤덕 어느 부분은 사실적인 풍경이 들어가잖아요. 1970년대 고향에 돌아가서는 사실적 풍경이 나오고, 중간에는 상징적인 것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아주 추상적인 상징이 등장하고, 또 어떤 것은 신화처럼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 주고…… 매 장이 이런 식으로 뒤섞여 있어요. 일본에서는 이렇게 뒤섞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줬어요. 정보로 가려면 정보로 가고, 추상으로 가려면 추상으로 가야지, 이렇게 뒤죽박죽인 게 불편했나 봐요. 이제껏 이런 형식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조절하려 해도, 매 장마다 표현하는 감정이 다른데 형식에 맞추어서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결국, 내 안의 감정들을 쏟아내면서 형식이 만들어지는 거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순희 『만희네 집』도 그렇고 ‘벌레 시리즈’도 그렇고, 일관성이 있잖아요. 사실 벌레 시리즈에 비하면 이번 그림책은 다루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여러 형식이 뒤섞인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지점에서 부러운 게 뭐냐면, 제도권 교육을 받은 사람한테서는 이런 게 나오지 않아요. 정말 버릇처럼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관성이 나타나거든요. 기법을 찾을 때조차도 여기에 맞는 기법을 암암리에 찾는 그런 일관성이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구도, 기법,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신선함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탱화, 공필화 등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배우셨잖아요. 대학 때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욕구불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부러워요. 또 배우고 싶은 것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권윤덕 공부는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할 것 같아요. 특히 전통에 대한 공부는 정말 제대로 해야 해요.
정순희 지금까지도 탱화, 공필화, 수묵화 등 주로 전통적인 것을 배우셨잖아요.
권윤덕 기법을 익히는 것 말고, 그림에 대한 해석이랄까. 예를 들어, ‘감로탱(지옥 아귀도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 설법을 듣는 불화)’이라고 하면 감로탱에 나오는 인물들과 그 당시에 그렇게 그리게 된 사상, 그런 형식이 나오기까지 사회적 배경 같은 것들을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항상 한편에 갈증이 있어요.
시대의 울음을 대신 울기 위하여
정순희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권윤덕 『꽃할머니』 작업을 하면서, 내가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자라던 때인 70년대, 80년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꽃할머니가 고향에 돌아온 장면은 옛날 대구를 배경으로 그린 것인데 80년대 풍경이에요. 우체통이나 이런 소품을 그리면서, 이런 정서가 나한테 굉장히 맞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내가 젊은 시절을 겪었던 그 시대, 그게 나한테는 자산인 것 같아요. 대학교 때 사회운동하고 미술운동하고 하면서 거쳤던 그때의 고민들이, 어쨌든 사회 문제와 연관되어 있어요. 난 그런 것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순희 구체적인 계획이 잡혀 있나요?
권윤덕 당장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광주도 비켜갈 수 없을 테고, 6.25도……. 6.25는 한참 먼저 세대의 이야기지만, 어쨌든 그것을 통해 통일은 나의 과제로 있는 것이고, 그래서 통일 문제도 비켜갈 수 없으니까요. 환경이나 이런 쪽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하니까 놔두고…… 근래에는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어쨌든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가네요.
정순희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의 내용도 사소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외로움이나 왕따 문제와 연결될 수도 있고요. 지금까지 작업하신 책들을 보면, 지금 하신 대답에 전혀 어긋나지 않게 앞으로 계속 작업을 해나가실 거라고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권윤덕 특정한 시대를 경험한 세대들이 해야 할, 책임감이라고나 할까, 그 세대가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림책에서는 간단하고 재미있는 소품도 있지만, 간간히 큰 주제를 담은 이야기를 그 시대를 겪은 작가들이 했으면 좋겠어요. 한번 그렇게 하면 그만큼의 자기 성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는 차이가 있어요. 어차피 그림책작가의 길을 걸으려면 그런 과정은 겪어야 할 것 같아요.
정순희 우리나라 그림책계에 필요한 것이나, 이런 것은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점이 있나요? 후배들에게뿐만 아니라 범위를 넓혀서 그런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권윤덕 이 책을 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어요. 특히 여성계로부터요. 어떤 분은 내가 이렇게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자기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 미안하다며 점심을 사주시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그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이 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 같아요. 사실은 이 책이 나올 때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힘들고 불편한 이야기라서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특히 많은 여성들이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전에는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독자들이 먼저 이런 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에 앞서서 작가가 정말 좋은 작품을 내면 독자는 감동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예전에는 독자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만들어 독자에게 다가가느냐에 따라 독자들도 변해갈 것이기에, 작가들이 그런 작품을 내기 위해 작업을 하면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작가지는 그림책 폭이 많이 넓혀지리라 생각해요. 사실 독자의 수준은 이미 높은데, 작가가 그걸 쫓아가지 못하는 것같아요.
정순희 기사에 보면 늘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고 하셨는데, 누구나 그런 부채의식은 있잖아요. 영역은 달리할지라도. 대부분 작가들이, 언젠가는 한다, 이렇게 마음먹고 있는데요.
권윤덕 자기가 한발만 더 나가보면 그 시점이 조금 당겨질 수도 있어요. 사실 저도 이번 기회가 아니었으면 언제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아주 적절한 기회였지요.
정순희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같은 그림책 작가로서 느낀 점이 참 많습니다. 직업적 소명의식이랄까, 어떤 사회적 책임감도 새삼 느끼게 되었네요. 벌써부터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좋은 책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권윤덕 1960년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나 서울여자대학교 식품과학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술을 통한 사회참여운동을 해왔다. 아들 만희에게 보여줄 그림책을 찾다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1995년 첫 그림책 『만희네 집』을 출간하면서 그림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98년부터 산수화와 공필화, 불화를 공부했으며,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그림책 속에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품으로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일과 도구』,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씹지않고 꿀꺽벌레는 정말 안 씹어』, 『시리동동 거미동동』, 『만희네 집』 등이 있다.
정순희 이화여대 동양화과와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1995년 『바람 부는 날』이 제4회 황금도깨비 상에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1997년에는 『내 짝꿍 최영대』로 디자인하우스사 주관 ‘올해의 디자인상/그래픽 부문’을 수상했다. 작품으로 『누구야?』, 『나비가 날아간다』, 『새는 새는 나무 자고』, 『살꽃이야기』, 『어디 있니, 까꿍!』, 『꼬마야 꼬마야』, 『내 거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