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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교사 책과 함께 시원한 수다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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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3 16:06 조회 6,0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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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 버금가는 수다 떨기의 달인인 것을, 난 다섯 명의 남학생과 ‘동고동락’을 한
후에야 알았다. ‘청소년 인문학 읽기 전국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나는 작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직후 일단
다섯 명의 학생을 꾸려 지도해보고자 했다. 학생들끼리 책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선뜻 하겠다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도서부원들을
중심으로 꾸려볼 생각이었으나 도서부 학생들은 냉랭무응답. 학생들은 ‘토론’을 어렵다고 인식하고 있는데다
귀찮아했고, 입시를 눈앞에 둔 부담감 또한 무시 못할 것이었다.

당시 2년차 사서교사였던 나 역시 학생들과 함께 하는 이러한 활동이 주어진 업무외의 또 다른 시도였기
 때문에 기대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도서부 학생과, 도서관을
자주 찾아와 잠깐씩 책 이야기를 했던 학생, 책도 도서관도 좋아하지 않지만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에게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자며 꼬드겨(?) 겨우겨 우 모임을 꾸렸다. ‘동고동락同考動樂’이라는 팀이
탄생한 것이다.

시작은 지정된 인문학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논제를 정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
했다. 이런 토론 활동이 처음인 동고동락 아이들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지?’, ‘책 속의 어떤 내용
을 이야기해야하는 걸까?’, ‘몇 번째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등의 고민으로 서로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했다. 다양한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기는 했지만 아이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우선 책을 읽고 든 느낌과 인상 깊었던 부분, 책 내용 가운데 이야기해보고 싶은 부분,
우리 주변이나 사회에서 책 내용과 연관되어 있는 부분 이렇게 세 영역으로 나누어 미리 책을 읽고 생
각하여 짧게 글을 쓰게 한 후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 더불어 2분 동안 자기소개하기 준비까지. “이것
도 다 한번은 거쳐야 할 토론활동의 과정이며 너희를 위함이니라.”라고 억지를 쓰는 준비성 없고 게으
른 선생님 때문에 동고동락 아이들은 꽤나 어리둥절하고 좌충우돌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뭔가를 생각해왔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 내용의 사실 여부와 원인과 결과 규명 등 스토리 중심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단순히 책에 대한 감상 나누기에 그쳤던 동고동락은 어느새 자신들의 이야기와 고민, 우리 사회의 경
제, 종교, 역사,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점에 대한 저마다의 의견과 해결책을 제시하며 이야
기하고 있었다. 사실 책은 이렇게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인지도 모
른다. 동고동락 아이들이 이를 스스로 터득하고 점차 자신들의 이야기로 빠져드는 재미나고도 시원
한, 때로는 치열하고도 열정적인 수다에 어느 샌가 나는 지도자가 아닌 열혈 청자가 되어 있었다.

작년 청소년 인문학대회는 신종인플루엔자 때문에 취소되어 대회를 준비해왔던 동고동락 아이
들은 매우 아쉬워했다. 하지만 책과 함께 하는 시원한 수다의 맛을 알게 된 그들이었기에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계속되었다. 동고동락 아이들 중 세 명은 이제 고3이 되어 한창 수시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2학년 두 명은 다른 학생들과 함께 준비하여 지난 8월 열린 인문학대회 본선에 올랐다.

솔직히 ‘동고동락’은 빡빡한 도서관 수업과 행정업무로 답답했던 나 스스로를 위해 만들었던 하
나의 돌파구였음을 인정한다. 단순히 정보를 서비스하는 데 급급해하고 그것마저 벅차했던 나는, 학
생들과 책을 통해 소통하면서 사서교사로서의 의미와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 모임을 시작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임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생각
을 공유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나는 다시 허기를 느끼게 될 것이고 또 다른 돌파구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미나고
시원한 수다로 소통을 즐기는 동고동락이 나와 함께 존재한다면 이 역시 행복한 고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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