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 청소년 문학에 나타난 자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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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21:27 조회 7,011회 댓글 0건본문
청소년 문학에 나타난 자살
류 대 성 여러 선생님들께서 가장 궁금해 하신 것이 바로 집필 동기인데요. 어떻게 이 문제에 특히 관심을 갖고 소설을 쓰게 되셨는지요. 학생들에게 읽히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박 채 란 청소년 소설의 주제가 ‘청소년 자살’인 게 아니라, 문학이 항상 삶과 죽음을 다룬다고 생각해요. 시의적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얘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이런 얘기를 써 보고 싶다’는 내적 충동과 요구가 먼저예요. 하나의 작품이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는데,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는 저한테 ‘왜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어요. ‘이래서 난 살아야 한다’는 대답이 되었던 이야기라고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네요. 그래도 외적으로 자극을 받은 게 있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그 무렵 중고등학교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그때 가르친 친구 중 하나가 작가의 말에 나오는 글을 쓴 친구예요. “선생님 제가 죽으려고 했는데요, 우동이 있어서 살았어요” 하는 말이 저한테 아주 크게 다가왔어요. 저도 작고 사소한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물론 이 이야기는 이전부터 제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거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걸 써도 괜찮겠단 확신을 얻었어요.
이 명 옥 창작에서 내적 요구와 사회적인 의미의 접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김 태 희 책이 되어 나왔을 때는 사회 안의 문제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맞아요. 작가의 내적 동기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 책을 받아들일 때는 그런 자기장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저희는 청소년 문학을 하는 출판사라서 청소년 자살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고, 처음에는 얘네들이 이런 소동을 벌이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원고를 진행하면서, 남들한테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일로 ‘죽고 싶다’거나 ‘내가 죽을 지경까지 가게 한 그 사람을 괴롭게 해야지’ 하는 욕구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내가 살아 있는 것이 굉장히 소중한 것이구나’하는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 책을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명 옥 그 말씀에는 동감해요.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를 풀어놓고 보여줬을 때 정리되는 대목들이 있거든요. 나를 풀어내거나 남을 통해 간접 체험을 함으로써 ‘시도조차 안 하지 않을까’라는 부분에서 긍정을 해요. 자살에 대해서도, 위험하므로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다뤄야 할 부분이고 어떤 식으로든 풀어주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요.
왕 지 윤 선생님의 중2 시절은 어땠나요?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친구들 가운데 어떤 친구와 닮았다고 생각하세요?
박 채 란 태정이의 카리스마, 선주의 우울함, 새롬이의 앙증맞음, 하빈이의 엉뚱함 모두 제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제가 강연을 갔는데 어떤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그럼, 선주 엄마가 차갑고 무섭고 못됐는데, 그것도 선생님 안에 있는 거예요?” 멋있는 질문이었어요. 그런 면도 있겠죠. 아이들의 성격과 어른들의 부조리한 모습, 무능력하면서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도 저한테 그대로 있을 것이고,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저의 청소년 시절도 그런 모습들이 모여 있었을 거예요. 겉으로 보기에는 태정이와 가장 비슷하고 조금친해지면 선주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이 찬 미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께서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박 채 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쓴 소설이 죽음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때 저도 죽을까 말까 여러 번 생각했죠. 대학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쓴 것도 죽음에 관한 것이었고요. 시간이 지나 이 책을 쓰면서 든 느낌은, 너무 잘 살고 싶은 거예요. 잘 살고 싶은 욕구가 없으면 죽을걸 왜 생각하겠어요?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되죠. 지금 이건 아닌 것 같고, 무언가 바꾸고 싶은데 그럴 힘도 없고 그럴 때, ‘죽을까? 이걸 끝내버릴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죽고 싶었던 그 시점이 너무 삶을 갈망하던 시기인 거죠. 저뿐만 아니라 한 번씩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해당되고, 죽고 싶다는 마음밑에는 사실 ‘너무 잘 살고 싶어’라는 것이 깔려 있을 거예요. ‘아, 나는 너무 잘 살고 싶어’라고 말하기는 쪽팔리잖아요. 그러니까 메시지를 바꿔서 올라온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왕 지 윤 구슬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어떤 종교적 영향이 있었나요?
박 채 란 한 친구가 굉장히 힘든 청소년기와 20대 초반을 지냈는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내가 전생에 이생을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이번 생이 주는 고통과 슬픔을 맛보기 위해서 이생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그 아이디어가 맘에 들었어요. ‘내가 커피 살 테니까 그 아이디어 내게 팔아라.’ 그래서 그것을 오랫동안굴리고 굴려서 생각해봤어요. 어떻게 보면 그건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어요. 또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데 이걸 선택했다니…….’ 이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안가지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면 ‘이 고통도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게 저한테 편해요. 아마 그래서 그 논리를 선택한 것 같아요. 어떤 분은 불교 같은 느낌이 든다고도 하셨지만, 특정 종교에 기반을 둔 것은 아니고, 저의 짧은 생각이라고 봐 주시면 돼요.
이 명 옥 보충하자면, 이 이야기는 플라톤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영혼들이 와서 새로운 삶을 선택할 때, 가리고 선택하지만 결국은 자기와 똑같은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거죠. 딱히 불교적인 것은 아니고, 일반적일 수 있는 이야기예요.
류 대 성 이야기 구성이나 인물 설정 방식 자체가 현실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비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질문들이 많았어요.
박 채 란 책을 만들면서 수정을 일곱 번 했는데, 마지막에 고치면서 이 책을 만드신 편집자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저도 현실적인 것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짓눌려 있어서 원래 하빈이가 진짜 천사 같은 느낌은 아니었어요. 아픈 애, 저는 거기까지만 생각했는데. 처음 원고를 보고 담당 편집자께서 하빈이가 천사냐 아니냐 묻는 거예요. 읽는 사람이 하빈이를 천사라고 생각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편집자 분이, ‘하빈이가 천사일 수 있는 가능성을 독자에게 남겨두는 것이 어떨까’하고 말씀하셨어요. 다시 고민을 해 봤죠. 하빈이가 만일 천사라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쳐 나간 것이죠.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들에 비현실을 조금 곁들여서 풀고 싶은 제 개인적인 소망이었어요. 어떤 친구들은 그 부분을 재미있어 하고 매력을 느끼는가 하면, 반면에 ‘이런 애가 어디 있어요?’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다양한 자원들을 통해 자기에게 맞는 이야기를 풀어나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류 대 성 저는 식물학적, 생태학적 상상력이 너무 좋아서 책에 나오는 식물들도 찾아봤어요. 평소에 식물 같은 거 키우지도 못하는데 아주 좋았거든요.
박 채 란 저도 공부를 많이 했어요. 식물을 좋아하지만 잘 키우지 못하기 때문에 사진으로만 본다는 원칙을 갖고 있죠.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에 나오는 식물들은 BBC <식물의 사생활>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많이 참고했어요. 그 후에도 책을 보면서 ‘아주 신기하다. 인간으로서 겸손해야 하는구나. 나는 쟤네들만 못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었고요. 강연을 나가서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파워포인트로 식물들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정말 호기심이 많아요. 조금만 던져주면 감자넝쿨 딸려나오듯이 거기에서 다음으로, 다음으로 가는 힘들이 있어요. 아이들이 이 책에서 나온 식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식물도감이라도 찾아보게 된다면 감사하지요.
자살 문학을 바라보는 시선
류 대 성 자살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에 대해 선생님들이 많이 궁금해 하셨어요. 가벼운 에피소드로 다루는 것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아니면 실제자살 시도가 아닌 안전한 방식으로, 세 명의 해프닝으로 풀어간 것이 어떤 의도가 있으셨는지, 또 아이들에게 이것이 다른 영향으로 비춰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도 있었거든요.
김 광 재 저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부분이었어요. 혹시 모방할까 염려도 됐고요.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 상당히 위험하고 구체적이잖아요. 자살이나 죽음은 꼭 다뤄야 할 주제지만, 다른 의미에서 권해주고 싶지않은 책이에요. 제가 공감을 못했던 이유는, 원인들이 너무 사소했어요. 특히 남자친구와 문제라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거든요. 청소년 문제가, 꼭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함께 풀어가야 할 어른들이 없었던 것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신 정 임 저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아이를 둔엄마예요. 아이들이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를 읽고는, ‘엄마, 얘들이 왜 죽으려고 하지? 이해가 안 돼’ 하더라고요. 그 즈음 최진영 씨 기사를 보고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하는 말이 “엄마, 자살은 나쁜 거예요. 자살하면 남겨진 조카들이랑 엄마가 얼마나 가슴아프겠어요. 열심히 잘 살면 좋은데, 아저씨가 그런 건 안 좋은 거죠” 이렇게 나름대로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을 보고 일단안심했어요. 그래도 학부모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좋은 것, 긍정적인 것만 보여주고 싶거든요. 자살을 쉽게 접하게 되면서 흔하고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 같아요. 베르테르 효과도 있을 수 있고요.
류 대 성 토론회 준비하면서 논문을 찾아봤어요. 청소년상담원에서 2007년에 나온 ‘청소년 자살예방 체계 구축방안’이라는 논문인데, 1982년에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자살 사망율 1위였어요. 1982년 사망원인 중5.8%였는데 20년만인 2005년에 24.7%로 늘어났어요. 성인, 청소년 할 것 없이, 매년 5% 이상 증가했다는 거죠. 이제 자살 문제는 숨겨두고 덮어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청소년 문제도, 아까 어른이 빠졌다고 말씀하셨는데, 조사결를 보면 아이들이 자살을 생각할 때 첫 번째 상담자로 선택한 사람이 당연히 선배나 친구예요. 30%가 넘거든요. 부모나 교사는 1%가 안 돼요. 어떻게 보면 소설 속의 참담한 현실이지만, 실제 현실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같아요.
김 광 재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의문들이 사실은 어른들한테서 많이 오잖아요. 근본적으로는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성장 과정에서 늘 비슷한 또래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어른들과 소통하는 습관이 없었지요. 책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하지만, 저는 좀 더 어른들이 개입하고 반성하는 부분이 아쉬웠다고 할까요.
박 채 란 ‘너무 힘들어, 죽고 싶어’ 하고 생각하는 아이가 도서관에 가서 제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감사해요. 하지만 저도 제 책을 들고 다니면서 “얘들아, 혹시 죽음을 생각하니? 이거 읽어 봐”라고 말하지는 못하지요. 작가가 아니라 한 명의 평범한 사람으로서 무겁고 어둡고 힘든 이야기를 ‘이런 게 현실이야’하고 들이밀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소한 부분이라는 말씀에 동의하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로 죽고 싶은 아이들도 어딘가에 기댈 언덕이 있어야 하잖아요?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진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야, 그런 사소한 일로 죽고 싶냐?” 하면, 그 아이는 어디에 마음을 기대겠어요? 그런 아이들이, 안 읽으면 정말 좋고요, 어딘가에 기댈 곳이 없을 때 이 책을 보고 ‘아, 나만그런 것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면 좋겠어요.
이 지 영 『우아한 거짓말』이나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나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다고 봅니다. ‘끝까지 살아라’라는 것이지요.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혹시나 하는 우려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청소년기에 짧은 생각에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으니, 주어진 생을 좀 더 살아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살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겠지만, 자살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런세상이 오는 걸까요? 제 생각은 좀 다른데, 자살이라는 문제에 대해 쉬쉬하고 감추기보다는 내놓고 이야기하고 제대로 맞닥뜨릴 수 있게 돕는다면, 청소년들의 죽음을 좀 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거든요.
이 정 옥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를 읽으면서 제가 느낀것은, ‘작가가 참 착한 사람이구나.’ 사소하든 중대하든어떤 이유에서든 자살하지 마라. 이것에 어른들은 공감하지만 아이들도 과연 공감할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류 대 성 아이들 입장에서는 작가님의 접근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거대 담론으로 넘어가면 아이들은 보지 않아요. 사회적 문제로 접근하면 아이들은 “이게 뭐야?”하고 던져 버리거든요. 그런데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하면 관심을 가져요. 동일시하는 감정을 못 느끼면 어떤 책도 아이들은 안 읽거든요. 경제적 스트레스, 학원 문제 이것은 어른들이 해결해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어디에가서도 하소연하거나 해결할 수 없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그 문제는 회피한 채 아이들이 나약하다든지……. ‘옛날에는 밥도 못 먹고 살았는데, 너희들이 걱정할 것이 뭐가 있냐? 너희들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데 이게 뭐냐?’ 라는 식으로 접근하는데, 어른들 입장에서 사회적인 요소들이나 부모들과의 관계를 풀어낼 수 있는 접근방법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아이들은 대체로 충동적이기 때문에 대책이나 근본적인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아주 단순하게 접근을 하거든요. 가장 큰 원인은 아이들이 예측할 수 없이 충동적이라는 것입니다.
정 현 아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은 못 되지만, 도서관에 있으면 학생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가장 큰 문제가 친구 문제라고 봅니다. 밥 먹으러 같이 가는 친구가 사정이 있어서 어디 가면 밥을 굶는대요. 아이들은 혼자서 밥 먹는 걸 남에게 보여주기 굉장히 싫어하더라고요. 혼자서 밥 먹으러 가는 것을 주변에서 이상하게 바라본다는 거죠. 왜 너는 항상 혼자 먹냐고 물어보고, 선생님들도 친구들과 같이 먹으라고 하고……. 커서도, 혼자 밥 먹으러 가면 이상한 것이 돼죠. 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성적 고민도 많고요. 또 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어떤 친구하고 싸워서 따돌림 당하거나, 반에서 힘이 있는 아이들과 싸워서 친하던 친구들까지 자기를 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 같긴 한데요. 아직까지는 우리 학교에서 자살까지 생각하는 학생들은 못 만나봤어요.
예 주 영 지금 이야기를 듣고는, ‘오히려 현실은 이렇게 사소한 것일수록 아이들을 자살충동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내가 그것을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은 정말 삶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구나, 간단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충동적이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는 같이 읽어보고 토론해 볼 좋은 책인 것 같고, 같이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왜 이런 것으로 자살충동을 일으킨 것 같은가라는 것부터 이야기를 하면 자기 이야기도 나올 것이고,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사소한 것부터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풀려지는 것도 있을 것이고, 진지하게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 명 옥 주제가 소통부재고, 청소년 문제 입장에서는 자살이잖아요. 생각해 보면 우리 어른들이 스스로 이 구조 속에서 소통하려는 의지가 너무 없어요. 안전망 속에 가두어 놓고 금기만 많이 만들어 놓으면 그 안에서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죠. 아이들을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거든요. 『19분』이라는 책을 봤는데, 실화를 근거로 한 책이래요. 거기서 보면 아까 말씀하신 그대로예요. 자존감이 훼손을 받는 것이 아주 사소한 데서부터 시작된 왕따. 그러면서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컴퓨터 안에 자기가 이기고 정복할 수 있고 학대할 수 있는 장면들을 찾아서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죽이고 해서, 그런 것을 게임 결과라고 하거든요. 열어 놓고 같이 할 수 있는 통로들을 어른들이 엮어야 한다, 이런 것을 통해서 뭔가 정리가 되면 방법을 찾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토론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학교도서관저널>은 학교, 학교 밖, 부모, 출판사 등 다 연결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담론으로 만들고 대안을 찾으면서 연결해 가는 그런 소통의 장을 찾아야 하지않을까요.
류 대 성 좋은 말씀이에요. 학생들의 자살 문제를 두고 우리끼리 읽고 토론하는 과정이었지만, 작가님이 학부모들 대상으로 토론회를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먼저 알고 접근하는 방식이랑 아이들끼리 이야기하는 방식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엄마, 아빠와 손잡고 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면 훨씬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예 주 영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유서 쓰기 이벤트를 하면서, 유서를 쓰는 것이 자살을 심각하게 받아들일까 걱정이 됐어요. 발표한다고 하니까 한 아이는 자기를 드러내는 게 부담스럽다며 짧게 썼고, 다른 아이는 진지하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보여 드렸대요. 부모님이 보시고는 ‘정말 이렇게 고민을 많이 했냐?’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해서 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시간이 그아이에겐 소중했던 것 같아요. 금기시되고 하지 말아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면서 해소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아가 청소년 문학을 고민하다
왕 지 윤 요즘 청소년 문학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는데요. 편집자로서 죽음뿐만 아니라 글이 왔을 때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소재나, 시리즈로 이어갈 때 고민하는 부분이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김 태 희 크게는 두 가지, 죽음과 성에 관한 부분이 너무 선정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을까 고민스럽죠. 저희 입장에서도 청소년들에게 그것이 가장 민감한 소재이고, 자칫 잘못하면 정말 가볍게 보이거나 선정적으로 비칠 것같아서요. 죽음이든 성, 낙태, 임신 이런 것들은 그런 소재가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험하다, 가볍다 이렇게 쉽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소재를 다룰 땐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청소년을 어리게만 보면 안 된다. 청소년 문학이니까 문학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편집자로서 본연의 마음이지만, 책으로 만들어 나갈 때에는 책이라는 것이 한번 유통되면 다시 회수할 수 없는 것이고 일단 읽고 나면 그 사람들 기억 속에 각인되는 것이고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공공성의 문제, 아이들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늘 염두에 둬요.
신 정 임 제가 하고 있는 독서모임 선생님께서 청소년 소설을 몇 권 권해 주셔서 읽어봤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건 청소년 문학이 아니라 학부모 문학이에요. 이게 말이 청소년 문학이지 학부모 문학이라면, 학부모들이 보고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소통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지만,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의 삶이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때에는 엄마들 모임도 있고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면 대강 알게 되는데, 중학교는 잘 모르겠고 고등학교는 더더욱 모르겠거든요. 중학교 선배 엄마들 만나면 손댈 것이 없다, 학교 갈 일도 없고 그냥 돈많이 벌어서 학원 보내는 것 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세요. 그런 것에 대해 좀 알려주거나, 아니면 아이들에게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을 보여주는 문학작품이 있으면 좋겠어요.
김 태 희 학부모들이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가, 지금 아이들 이야기도 있지만 나의 청소년기와 맞닿는 지점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여기에 있는 아이들을 다루는 작품이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현실문제, 학교 입시문제, 구체적으로 학교생활이 어떻고 하는 이런 외향적인 문제만 다룬 것도 많고 소재가 편협하고……. 외국에서는 청소년 문학을 먼저 시작해서 그렇겠지만, 정말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들이 있더라고요. 다양한 책 읽기를 통해 서로 공존하고 소통하면서 사는 것을 바라는데, 작가들도 쓰기 힘들어 하는 부분이 있고, 어쨌든 현실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으니까요. 이 확고부동한 현실을 깨뜨려 나가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류 대 성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한 번쯤 깨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요? 현장에서 느끼는 건,정면돌파를 안 하세요. 어른들 입장에서 결론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아이들은 다 알아요. 아이들이 충분히 고민할 만한 소재들도, 글을 쓰시는 분이나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기도 전에 미리 자기검열을 하면 아이들의 읽을 기회를 없애는 것이죠. <학교도서관저널>이 파격적인 소재나 문제가 될 만한 소설들을 부모님, 학생, 작가까지 모여 함께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아요.
김 태 희 금기를 깨는 건 좋은데,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정말 잘 써야 하겠지요. 잘 쓰는 것이 정말 힘들어서 <학교도서관저널>에서도 그런 책이 나왔을 때 그런 반향을 주시면 작가한테 굉장히 큰 힘이 되고 책을 내는 출판사에도 좋은데, 그런 책이 나왔는데 나왔는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이 지 영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 청소년기는 동화에서 소설로 넘어가는 시기잖아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때까지 동화책을 재미있게 읽던 아이들이, 중학교에만 올라가면 갑자기 책과 멀어지고 입시에 시달리다가 대학에 가면 다시 부족한 독서량을 지적받게 되는 모순된 구조가 있죠. 그렇기에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시기에 징검다리가 되는 책들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고 공감할 만한 책들이 필요하죠. 특히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입시에 시달리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전혀 안 하고 사는 것 같지는 않아요. 게임이나 인터넷 같은 취미 생활은 시간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하거든요. 그 시선이나 관심이 책에 가지 않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의 관심을 당기는 책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경계하는 점이라면 우리가 먼저 검열을 하지 말자는 거죠. 이런 소재를 다루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작품이 소재주의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 다루려는 주제를 정말 깊숙하게 파고드는가를 먼저 보는 편이에요.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민감했던 작품은 『위저드 베이커리』였어요. 쉽게 입에 담기 어려운 소재였던지라 실제 항의도 받았어요. 어떤분은, 자기는 너무 재미있게 읽었지만 도저히 애한테는 읽으라고 못 권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명 옥 청소년 문학의 독자층을 청소년이라고 하지만, 검열에서 염두에 두는 사람은 학부모, 선생님들이죠. 너무 눈치를 보느라고 정말 청소년들이 바라는 부분, 욕구와는 거리가 먼 큰 문학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닌 것인지, 시장성을 보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네요.
이 지 영 주요 구매층이 학부모와 교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 독자층이 아닌 어른의 시선에 맞추어 책을 내면 결국 외면당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항상 신경 쓰고 있지요. 청소년 문학은 어쨌든 지금 굉장히 활황기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트렌드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어요. 이제 독자들의 눈도 점점 높아져 요즘 청소년들의 생활을 다룬 실감나는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하고, 새로운 형식, 새로운 서사에 목말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
왕 지 윤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누셨는데, 이제 정리를 해 볼까요?
김 광 재 예전에 ‘국경없는 마을’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도 하셨잖아요. 그런 생활과 이런 책을 쓴것이 연관이 있나요?
박 채 란 20대 넘어서 글을 쓰면서 제가 제 안에 갇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글이라는 것이 제 안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세상과 만나면서 무언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쓸 수 있는 것이 없더라고요. 소설을 쓰는데 쓸 게 없는 단계에 이르렀어요. 밖에 나가서 무언가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 내가 갈 수 있는 현장이 어딜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국경없는 마을』이라는 책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어떻게든 세상하고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것을 만난 거죠. 소수자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시는데, 저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었고 글을 쓰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는 데 그 기회가 생긴 것뿐이었어요. 『국경없는 마을』이라는 책도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티보다는 저의 문학적 감수성이 더 많이 반영되어 있어요.
예 주 영 애들은 어떤 목표나 진로를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무조건 대학이에요. 과도 중요하지 않고 대학 이름. 그래서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꿈을 찾을 수 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만나고 싶어요.
김 광 재 저는 바람이 둘 있어요. 하나는 <학교도서관저널>에서 이런 모임을 어른들끼리만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해야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고요. 두번째는 편집자님께 드리고 싶은 말인데요. 사계절은 ‘1318’이잖아요. 그런데 주로 ‘15’에서 끝나지 않나요? 18에 가까운 청소년 문학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명 옥 청소년 문제가 다루어져야 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여기까지는 무엇 저기까지는 무엇 하는 식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살 문제는 사회적 문제니까 그것은 그것으로 인정하고요. 그것을 바람직하게 풀어가는 방법에 있어서 ‘뭐 이런 사소한 걸로……’ 이렇게 볼 것이 아니라, 유서 쓰는 이벤트처럼 같이 드러내면서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학교든지 학교 밖에서든지 마련해야죠.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잘 사는 것이니까, 그런 것들을 건강하게 풀어내는 역할을 <학교도서관저널>에서 같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신 형 란 학교도서관에 있으면 애들이 보여요. 왕따인지어떤지. 담임선생님들은 반만 보지만 저희들은 전체를 보잖아요. 또 아이들이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요. 요즘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쌓이거든요. 저희 학교는 평준화 학교가 아니에요. 중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전학 온다든지 그러니까, 너무나 살벌하죠. 아이들이 참 착한데, 로봇 같아요. 엄마들이 시키는 대로 학교 끝나면 뭐하고 뭐하고…….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이 없으니까 그렇게 하게 되고 끊임없는 경쟁을 하는 것이 안좋은 것 같아요.
이 찬 미 저는 청소년기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청소년 문학이 다루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지고 고민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특히 『우아한 거짓말』의 화연이 같은 아이들도 비빌 언덕, 기댈 언덕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어떤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 정 임 아이들에게 책을 검열하거나 통제하려 했던 생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 문학에 대해서는, 아이들과 같이 읽고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다음에 아이와 함께 이런 자리에 같이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아니면 공부 말고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아주거나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을 해 보고, 어떤 건의사항 같은 것을 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 채 란 글을 쓰거나 예술을 하거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결국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밝은 빛을 만들려면 깊은 어둠이 있어야 한다는 것. 좋은 것만 쓰면 반쪽짜리 가짜가 되고. 진짜 사랑을 이야기하려면 진짜 증오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제 과정과 큰 욕심이 조금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선택한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부분이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는 거예요. 말씀을 들으면서, 이 한 권의 책이 공공적인 물건으로서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면서도 동시에 제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저는 다시 한 사람의 작가로서 자신의 글을 써야 하는 그런 모순된 상황을 안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많은 책 중에 제 책을 누군가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딘가 돌아다니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책임도 느껴요.
이 지 영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작품의 층위가 깊다 보니 언뜻 읽어서는 메시지를 잡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짚어주셨어요. 저는 처음에 주인공들의 나이가 너무 어리게 설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생각하는 것이나 쓰는 어휘가 중1, 중3이라고 보기에는 많이 성숙한 게 아닌가했는데, 김려령 작가의 생각은 확고하시더라고요. 화연이 같은 아이들을 실제 곁에서 지켜보니 중학교 이상 올라가면 이 아이들을 바로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자기가 하는 짓이 나쁜 짓인지도 모르면서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아이들한테 ‘네가 하고 있는 것이 잘못’이라는 확실한 깨달음을 주면서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고 바로잡을 수 있는 시기는 중학교 때라는 거죠. 천지가 너무 약하다, 화연이가 나쁜 아이니까 격리하면 된다, 그런 식으로 단순히 이해하기보다는, 두 아이를 다 감싸안는 진심 어린 말이 하나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전달된다면, 편집자로서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김 태 희 오늘 여러 선생님들 만나서 좋았고, 다음에 기회가 또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알기로는, 작가가 작품에서 죽음을 다룰 때 어느 누구도 함부로 죽이지 않아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죠. 특히 자살은 조심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어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도 자기만족을 위해서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같이공유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요.
박민규 씨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만든 옷을 입고 고마워하고 다른 사람이 농사지은 쌀을 먹고 고마워하는 것처럼, 내가 작가로서 봉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 작품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위안을 주는 것이라고.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한테도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앞으로 책을 만들 때에도 그런 바탕에서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한 김려령 작가에게 질문지를 보내어 답을 들어 보았습니다.
저 널 『우아한 거짓말』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후기에 나와 있듯이 개인적인 체험이나 주변의 사례에서 시작되었나요?
김 려 령 실제로 저도 어린 나이에 생을 내려놓으려 한 때가 있었고,안타깝게도 천지보다 더 어린 나이에 스스로 떠나간 어린 지인도 있습니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에도 저는 지인을 한 분 더 잃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셨지만, 그분도 스스로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제 개인적 체험 때문만은 아닙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합니다. 청소년 자살률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요. 단 한 사람의 자살이라도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살 방지를 위해 많은 선생님들이 일선에서 청소년들에게 이성적 호소를 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작가인 저는 감성과 무의식에 호소하여 그분들의 교육을 뒷받침하고 싶었습니다. 제발 생을 내려놓지 말라고.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 널 화연이가 천지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 섬뜩합니다. 아이들간의 이런 괴롭힘의 모습을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게 그려 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천지가 다른 이들에게 봉인된 용서의 편지를 보낼 정도라면 천지는 이미 상처를 견뎌 낼 만한 힘이 있고 자존감이 있는 아이 같은데 이런 아이가 자살을 한다는 설정은 너무 과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김 려 령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너무 몰라서 섬뜩한 행동을 하곤합니다. 자신의 행동의 파장을 생각지 못하고, 현재 위치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지요. 화연의 행동은 제 경험과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또, 천지가 용서의 편지를 남긴 것이 과연 상처를 견뎌 낼 힘이 생겼기 때문일까요? 천지는 살면서 많은 용서를 했고 또 배신을 당했습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그런 일이 또 반복될까 봐 겁이 나지는 않았을까요? 용서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용서. 혹은 남은 자들을 위한 용서가 아니라 떠나는 자신을 위한 용서는 아니었을까요? 그만큼 천지는 몸이 아니라 영혼이 아픈 아이였습니다. 떠나는 자이기에 가능한 용서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훌훌 털어버리고 가고 싶은 마음. 제가 과거에 그 자리에 있었을 때 그랬거든요. 용서가 꼭 상처를 극복할 힘이 있을 때 하는 걸까요? 용서를 하면 정말 상처가 다 아물까요? 스스로 떠난 많은 아이들이 자존감이 없어서 떠난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 널 천지의 자살이 가엾기도 하지만 곱게 보이지도 않는데요. 남은 자를 용서하고 떠난 게 아니라 괴로움을 겪어 보라고 죽은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을 용서했다면 자살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보는데요. 이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김 려 령 질문과 비슷한 독자 서평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용서가 아니라 무서운 복수로 보셔도 좋은 작품입니다. 여러 각도로 해석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거든요. 독자마다 다르게 읽어주셨으면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작품 속 인물들도 그러합니다. 천지가 자신에게 복수하려고 남긴 편지라고도 볼 수 있고, 진정으로 용서했기에 남긴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요. 용서를 했으니 자살하지 않아야 했다는 건 우리의 바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지가 용서를 해도 주변 사람들이 변하지 않으면, 그 용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용서입니다. 용서하는 행동이 오히려 만만하게 보여 다시 반복됐던 괴롭힘. 천지는 이미 그런 경험을 많이 하고 떠났지요.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떠난 아이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남은 사람들. 누군가 그렇게 아프게 떠났을 때,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얼마나 힘든지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떠난 사람만 아픈 게 아니라 보낸 사람도 많이 아프다는,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저 널 집 안에 있던 쥐를 내쫓는 장면이 있는데, 이 에피소드가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설정된 것인지요?
김 려 령 쥐라는 동물은 가까이 올까 두렵고 겁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쫓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맞설 수 있는 두려움입니다. 천지 엄마와 만지가 쥐를 쫓아내기로 결정한 건, 천지의 죽음의 진실을 대면할 두려움을 좇아내는 상징입니다. 쥐를 쫓아낸 뒤 진실과 마주하기로 결정하지요. 한편, 쥐들의 강한 생명력처럼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삶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저 널 이 책에서, ‘우아한 거짓말’이란 무엇인가요?
김 려 령 우아한 거짓말은, 자신은 타격을 입지 않으면서 상대를 가격하는 거짓말입니다. 숨은 의도는 명확하게 각인시키되, 자신은 혹시 모를 구설수에서 빠지는 것이지요. 악의적인 의도는 숨기고 겉으로는 우아하게 포장해서 말하는 교활한 언어이기도 합니다. ‘예쁘긴 한데, 은근히 촌스러운 면도 있어.’라고 할 경우, 말하는 사람이 꽤 중립적 시선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요. ‘나도 들은 말인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며 헛소문을 퍼뜨릴 수도 있고, ‘혼자두면 불쌍하잖아.’식의 착한 이미지를 남기고 곁에서 괴롭힐 수도 있지요.
류 대 성 여러 선생님들께서 가장 궁금해 하신 것이 바로 집필 동기인데요. 어떻게 이 문제에 특히 관심을 갖고 소설을 쓰게 되셨는지요. 학생들에게 읽히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박 채 란 청소년 소설의 주제가 ‘청소년 자살’인 게 아니라, 문학이 항상 삶과 죽음을 다룬다고 생각해요. 시의적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얘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이런 얘기를 써 보고 싶다’는 내적 충동과 요구가 먼저예요. 하나의 작품이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는데,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는 저한테 ‘왜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어요. ‘이래서 난 살아야 한다’는 대답이 되었던 이야기라고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네요. 그래도 외적으로 자극을 받은 게 있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그 무렵 중고등학교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그때 가르친 친구 중 하나가 작가의 말에 나오는 글을 쓴 친구예요. “선생님 제가 죽으려고 했는데요, 우동이 있어서 살았어요” 하는 말이 저한테 아주 크게 다가왔어요. 저도 작고 사소한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물론 이 이야기는 이전부터 제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거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걸 써도 괜찮겠단 확신을 얻었어요.
이 명 옥 창작에서 내적 요구와 사회적인 의미의 접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김 태 희 책이 되어 나왔을 때는 사회 안의 문제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맞아요. 작가의 내적 동기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 책을 받아들일 때는 그런 자기장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저희는 청소년 문학을 하는 출판사라서 청소년 자살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고, 처음에는 얘네들이 이런 소동을 벌이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원고를 진행하면서, 남들한테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일로 ‘죽고 싶다’거나 ‘내가 죽을 지경까지 가게 한 그 사람을 괴롭게 해야지’ 하는 욕구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내가 살아 있는 것이 굉장히 소중한 것이구나’하는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 책을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명 옥 그 말씀에는 동감해요.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를 풀어놓고 보여줬을 때 정리되는 대목들이 있거든요. 나를 풀어내거나 남을 통해 간접 체험을 함으로써 ‘시도조차 안 하지 않을까’라는 부분에서 긍정을 해요. 자살에 대해서도, 위험하므로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다뤄야 할 부분이고 어떤 식으로든 풀어주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요.
왕 지 윤 선생님의 중2 시절은 어땠나요?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친구들 가운데 어떤 친구와 닮았다고 생각하세요?
박 채 란 태정이의 카리스마, 선주의 우울함, 새롬이의 앙증맞음, 하빈이의 엉뚱함 모두 제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제가 강연을 갔는데 어떤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그럼, 선주 엄마가 차갑고 무섭고 못됐는데, 그것도 선생님 안에 있는 거예요?” 멋있는 질문이었어요. 그런 면도 있겠죠. 아이들의 성격과 어른들의 부조리한 모습, 무능력하면서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도 저한테 그대로 있을 것이고,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저의 청소년 시절도 그런 모습들이 모여 있었을 거예요. 겉으로 보기에는 태정이와 가장 비슷하고 조금친해지면 선주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이 찬 미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께서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박 채 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쓴 소설이 죽음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때 저도 죽을까 말까 여러 번 생각했죠. 대학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쓴 것도 죽음에 관한 것이었고요. 시간이 지나 이 책을 쓰면서 든 느낌은, 너무 잘 살고 싶은 거예요. 잘 살고 싶은 욕구가 없으면 죽을걸 왜 생각하겠어요?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되죠. 지금 이건 아닌 것 같고, 무언가 바꾸고 싶은데 그럴 힘도 없고 그럴 때, ‘죽을까? 이걸 끝내버릴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죽고 싶었던 그 시점이 너무 삶을 갈망하던 시기인 거죠. 저뿐만 아니라 한 번씩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해당되고, 죽고 싶다는 마음밑에는 사실 ‘너무 잘 살고 싶어’라는 것이 깔려 있을 거예요. ‘아, 나는 너무 잘 살고 싶어’라고 말하기는 쪽팔리잖아요. 그러니까 메시지를 바꿔서 올라온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왕 지 윤 구슬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어떤 종교적 영향이 있었나요?
박 채 란 한 친구가 굉장히 힘든 청소년기와 20대 초반을 지냈는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내가 전생에 이생을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이번 생이 주는 고통과 슬픔을 맛보기 위해서 이생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그 아이디어가 맘에 들었어요. ‘내가 커피 살 테니까 그 아이디어 내게 팔아라.’ 그래서 그것을 오랫동안굴리고 굴려서 생각해봤어요. 어떻게 보면 그건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어요. 또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데 이걸 선택했다니…….’ 이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안가지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면 ‘이 고통도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게 저한테 편해요. 아마 그래서 그 논리를 선택한 것 같아요. 어떤 분은 불교 같은 느낌이 든다고도 하셨지만, 특정 종교에 기반을 둔 것은 아니고, 저의 짧은 생각이라고 봐 주시면 돼요.
이 명 옥 보충하자면, 이 이야기는 플라톤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영혼들이 와서 새로운 삶을 선택할 때, 가리고 선택하지만 결국은 자기와 똑같은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거죠. 딱히 불교적인 것은 아니고, 일반적일 수 있는 이야기예요.
류 대 성 이야기 구성이나 인물 설정 방식 자체가 현실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비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질문들이 많았어요.
박 채 란 책을 만들면서 수정을 일곱 번 했는데, 마지막에 고치면서 이 책을 만드신 편집자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저도 현실적인 것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짓눌려 있어서 원래 하빈이가 진짜 천사 같은 느낌은 아니었어요. 아픈 애, 저는 거기까지만 생각했는데. 처음 원고를 보고 담당 편집자께서 하빈이가 천사냐 아니냐 묻는 거예요. 읽는 사람이 하빈이를 천사라고 생각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편집자 분이, ‘하빈이가 천사일 수 있는 가능성을 독자에게 남겨두는 것이 어떨까’하고 말씀하셨어요. 다시 고민을 해 봤죠. 하빈이가 만일 천사라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쳐 나간 것이죠.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들에 비현실을 조금 곁들여서 풀고 싶은 제 개인적인 소망이었어요. 어떤 친구들은 그 부분을 재미있어 하고 매력을 느끼는가 하면, 반면에 ‘이런 애가 어디 있어요?’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다양한 자원들을 통해 자기에게 맞는 이야기를 풀어나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류 대 성 저는 식물학적, 생태학적 상상력이 너무 좋아서 책에 나오는 식물들도 찾아봤어요. 평소에 식물 같은 거 키우지도 못하는데 아주 좋았거든요.
박 채 란 저도 공부를 많이 했어요. 식물을 좋아하지만 잘 키우지 못하기 때문에 사진으로만 본다는 원칙을 갖고 있죠.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에 나오는 식물들은 BBC <식물의 사생활>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많이 참고했어요. 그 후에도 책을 보면서 ‘아주 신기하다. 인간으로서 겸손해야 하는구나. 나는 쟤네들만 못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었고요. 강연을 나가서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파워포인트로 식물들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정말 호기심이 많아요. 조금만 던져주면 감자넝쿨 딸려나오듯이 거기에서 다음으로, 다음으로 가는 힘들이 있어요. 아이들이 이 책에서 나온 식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식물도감이라도 찾아보게 된다면 감사하지요.
자살 문학을 바라보는 시선
류 대 성 자살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에 대해 선생님들이 많이 궁금해 하셨어요. 가벼운 에피소드로 다루는 것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아니면 실제자살 시도가 아닌 안전한 방식으로, 세 명의 해프닝으로 풀어간 것이 어떤 의도가 있으셨는지, 또 아이들에게 이것이 다른 영향으로 비춰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도 있었거든요.
김 광 재 저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부분이었어요. 혹시 모방할까 염려도 됐고요.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 상당히 위험하고 구체적이잖아요. 자살이나 죽음은 꼭 다뤄야 할 주제지만, 다른 의미에서 권해주고 싶지않은 책이에요. 제가 공감을 못했던 이유는, 원인들이 너무 사소했어요. 특히 남자친구와 문제라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거든요. 청소년 문제가, 꼭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함께 풀어가야 할 어른들이 없었던 것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신 정 임 저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아이를 둔엄마예요. 아이들이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를 읽고는, ‘엄마, 얘들이 왜 죽으려고 하지? 이해가 안 돼’ 하더라고요. 그 즈음 최진영 씨 기사를 보고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하는 말이 “엄마, 자살은 나쁜 거예요. 자살하면 남겨진 조카들이랑 엄마가 얼마나 가슴아프겠어요. 열심히 잘 살면 좋은데, 아저씨가 그런 건 안 좋은 거죠” 이렇게 나름대로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을 보고 일단안심했어요. 그래도 학부모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좋은 것, 긍정적인 것만 보여주고 싶거든요. 자살을 쉽게 접하게 되면서 흔하고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 같아요. 베르테르 효과도 있을 수 있고요.
류 대 성 토론회 준비하면서 논문을 찾아봤어요. 청소년상담원에서 2007년에 나온 ‘청소년 자살예방 체계 구축방안’이라는 논문인데, 1982년에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자살 사망율 1위였어요. 1982년 사망원인 중5.8%였는데 20년만인 2005년에 24.7%로 늘어났어요. 성인, 청소년 할 것 없이, 매년 5% 이상 증가했다는 거죠. 이제 자살 문제는 숨겨두고 덮어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청소년 문제도, 아까 어른이 빠졌다고 말씀하셨는데, 조사결를 보면 아이들이 자살을 생각할 때 첫 번째 상담자로 선택한 사람이 당연히 선배나 친구예요. 30%가 넘거든요. 부모나 교사는 1%가 안 돼요. 어떻게 보면 소설 속의 참담한 현실이지만, 실제 현실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같아요.
김 광 재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의문들이 사실은 어른들한테서 많이 오잖아요. 근본적으로는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성장 과정에서 늘 비슷한 또래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어른들과 소통하는 습관이 없었지요. 책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하지만, 저는 좀 더 어른들이 개입하고 반성하는 부분이 아쉬웠다고 할까요.
박 채 란 ‘너무 힘들어, 죽고 싶어’ 하고 생각하는 아이가 도서관에 가서 제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감사해요. 하지만 저도 제 책을 들고 다니면서 “얘들아, 혹시 죽음을 생각하니? 이거 읽어 봐”라고 말하지는 못하지요. 작가가 아니라 한 명의 평범한 사람으로서 무겁고 어둡고 힘든 이야기를 ‘이런 게 현실이야’하고 들이밀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소한 부분이라는 말씀에 동의하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로 죽고 싶은 아이들도 어딘가에 기댈 언덕이 있어야 하잖아요?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진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야, 그런 사소한 일로 죽고 싶냐?” 하면, 그 아이는 어디에 마음을 기대겠어요? 그런 아이들이, 안 읽으면 정말 좋고요, 어딘가에 기댈 곳이 없을 때 이 책을 보고 ‘아, 나만그런 것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면 좋겠어요.
이 지 영 『우아한 거짓말』이나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나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다고 봅니다. ‘끝까지 살아라’라는 것이지요.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혹시나 하는 우려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청소년기에 짧은 생각에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으니, 주어진 생을 좀 더 살아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살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겠지만, 자살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런세상이 오는 걸까요? 제 생각은 좀 다른데, 자살이라는 문제에 대해 쉬쉬하고 감추기보다는 내놓고 이야기하고 제대로 맞닥뜨릴 수 있게 돕는다면, 청소년들의 죽음을 좀 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거든요.
이 정 옥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를 읽으면서 제가 느낀것은, ‘작가가 참 착한 사람이구나.’ 사소하든 중대하든어떤 이유에서든 자살하지 마라. 이것에 어른들은 공감하지만 아이들도 과연 공감할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류 대 성 아이들 입장에서는 작가님의 접근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거대 담론으로 넘어가면 아이들은 보지 않아요. 사회적 문제로 접근하면 아이들은 “이게 뭐야?”하고 던져 버리거든요. 그런데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하면 관심을 가져요. 동일시하는 감정을 못 느끼면 어떤 책도 아이들은 안 읽거든요. 경제적 스트레스, 학원 문제 이것은 어른들이 해결해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어디에가서도 하소연하거나 해결할 수 없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그 문제는 회피한 채 아이들이 나약하다든지……. ‘옛날에는 밥도 못 먹고 살았는데, 너희들이 걱정할 것이 뭐가 있냐? 너희들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데 이게 뭐냐?’ 라는 식으로 접근하는데, 어른들 입장에서 사회적인 요소들이나 부모들과의 관계를 풀어낼 수 있는 접근방법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아이들은 대체로 충동적이기 때문에 대책이나 근본적인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아주 단순하게 접근을 하거든요. 가장 큰 원인은 아이들이 예측할 수 없이 충동적이라는 것입니다.
정 현 아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은 못 되지만, 도서관에 있으면 학생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가장 큰 문제가 친구 문제라고 봅니다. 밥 먹으러 같이 가는 친구가 사정이 있어서 어디 가면 밥을 굶는대요. 아이들은 혼자서 밥 먹는 걸 남에게 보여주기 굉장히 싫어하더라고요. 혼자서 밥 먹으러 가는 것을 주변에서 이상하게 바라본다는 거죠. 왜 너는 항상 혼자 먹냐고 물어보고, 선생님들도 친구들과 같이 먹으라고 하고……. 커서도, 혼자 밥 먹으러 가면 이상한 것이 돼죠. 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성적 고민도 많고요. 또 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어떤 친구하고 싸워서 따돌림 당하거나, 반에서 힘이 있는 아이들과 싸워서 친하던 친구들까지 자기를 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 같긴 한데요. 아직까지는 우리 학교에서 자살까지 생각하는 학생들은 못 만나봤어요.
예 주 영 지금 이야기를 듣고는, ‘오히려 현실은 이렇게 사소한 것일수록 아이들을 자살충동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내가 그것을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은 정말 삶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구나, 간단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충동적이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는 같이 읽어보고 토론해 볼 좋은 책인 것 같고, 같이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왜 이런 것으로 자살충동을 일으킨 것 같은가라는 것부터 이야기를 하면 자기 이야기도 나올 것이고,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사소한 것부터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풀려지는 것도 있을 것이고, 진지하게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 명 옥 주제가 소통부재고, 청소년 문제 입장에서는 자살이잖아요. 생각해 보면 우리 어른들이 스스로 이 구조 속에서 소통하려는 의지가 너무 없어요. 안전망 속에 가두어 놓고 금기만 많이 만들어 놓으면 그 안에서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죠. 아이들을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거든요. 『19분』이라는 책을 봤는데, 실화를 근거로 한 책이래요. 거기서 보면 아까 말씀하신 그대로예요. 자존감이 훼손을 받는 것이 아주 사소한 데서부터 시작된 왕따. 그러면서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컴퓨터 안에 자기가 이기고 정복할 수 있고 학대할 수 있는 장면들을 찾아서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죽이고 해서, 그런 것을 게임 결과라고 하거든요. 열어 놓고 같이 할 수 있는 통로들을 어른들이 엮어야 한다, 이런 것을 통해서 뭔가 정리가 되면 방법을 찾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토론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학교도서관저널>은 학교, 학교 밖, 부모, 출판사 등 다 연결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담론으로 만들고 대안을 찾으면서 연결해 가는 그런 소통의 장을 찾아야 하지않을까요.
류 대 성 좋은 말씀이에요. 학생들의 자살 문제를 두고 우리끼리 읽고 토론하는 과정이었지만, 작가님이 학부모들 대상으로 토론회를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먼저 알고 접근하는 방식이랑 아이들끼리 이야기하는 방식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엄마, 아빠와 손잡고 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면 훨씬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예 주 영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유서 쓰기 이벤트를 하면서, 유서를 쓰는 것이 자살을 심각하게 받아들일까 걱정이 됐어요. 발표한다고 하니까 한 아이는 자기를 드러내는 게 부담스럽다며 짧게 썼고, 다른 아이는 진지하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보여 드렸대요. 부모님이 보시고는 ‘정말 이렇게 고민을 많이 했냐?’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해서 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시간이 그아이에겐 소중했던 것 같아요. 금기시되고 하지 말아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면서 해소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아가 청소년 문학을 고민하다
왕 지 윤 요즘 청소년 문학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는데요. 편집자로서 죽음뿐만 아니라 글이 왔을 때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소재나, 시리즈로 이어갈 때 고민하는 부분이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김 태 희 크게는 두 가지, 죽음과 성에 관한 부분이 너무 선정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을까 고민스럽죠. 저희 입장에서도 청소년들에게 그것이 가장 민감한 소재이고, 자칫 잘못하면 정말 가볍게 보이거나 선정적으로 비칠 것같아서요. 죽음이든 성, 낙태, 임신 이런 것들은 그런 소재가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험하다, 가볍다 이렇게 쉽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소재를 다룰 땐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청소년을 어리게만 보면 안 된다. 청소년 문학이니까 문학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편집자로서 본연의 마음이지만, 책으로 만들어 나갈 때에는 책이라는 것이 한번 유통되면 다시 회수할 수 없는 것이고 일단 읽고 나면 그 사람들 기억 속에 각인되는 것이고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공공성의 문제, 아이들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늘 염두에 둬요.
신 정 임 제가 하고 있는 독서모임 선생님께서 청소년 소설을 몇 권 권해 주셔서 읽어봤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건 청소년 문학이 아니라 학부모 문학이에요. 이게 말이 청소년 문학이지 학부모 문학이라면, 학부모들이 보고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소통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지만,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의 삶이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때에는 엄마들 모임도 있고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면 대강 알게 되는데, 중학교는 잘 모르겠고 고등학교는 더더욱 모르겠거든요. 중학교 선배 엄마들 만나면 손댈 것이 없다, 학교 갈 일도 없고 그냥 돈많이 벌어서 학원 보내는 것 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세요. 그런 것에 대해 좀 알려주거나, 아니면 아이들에게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을 보여주는 문학작품이 있으면 좋겠어요.
김 태 희 학부모들이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가, 지금 아이들 이야기도 있지만 나의 청소년기와 맞닿는 지점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여기에 있는 아이들을 다루는 작품이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현실문제, 학교 입시문제, 구체적으로 학교생활이 어떻고 하는 이런 외향적인 문제만 다룬 것도 많고 소재가 편협하고……. 외국에서는 청소년 문학을 먼저 시작해서 그렇겠지만, 정말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들이 있더라고요. 다양한 책 읽기를 통해 서로 공존하고 소통하면서 사는 것을 바라는데, 작가들도 쓰기 힘들어 하는 부분이 있고, 어쨌든 현실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으니까요. 이 확고부동한 현실을 깨뜨려 나가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류 대 성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한 번쯤 깨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요? 현장에서 느끼는 건,정면돌파를 안 하세요. 어른들 입장에서 결론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아이들은 다 알아요. 아이들이 충분히 고민할 만한 소재들도, 글을 쓰시는 분이나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기도 전에 미리 자기검열을 하면 아이들의 읽을 기회를 없애는 것이죠. <학교도서관저널>이 파격적인 소재나 문제가 될 만한 소설들을 부모님, 학생, 작가까지 모여 함께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아요.
김 태 희 금기를 깨는 건 좋은데,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정말 잘 써야 하겠지요. 잘 쓰는 것이 정말 힘들어서 <학교도서관저널>에서도 그런 책이 나왔을 때 그런 반향을 주시면 작가한테 굉장히 큰 힘이 되고 책을 내는 출판사에도 좋은데, 그런 책이 나왔는데 나왔는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이 지 영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 청소년기는 동화에서 소설로 넘어가는 시기잖아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때까지 동화책을 재미있게 읽던 아이들이, 중학교에만 올라가면 갑자기 책과 멀어지고 입시에 시달리다가 대학에 가면 다시 부족한 독서량을 지적받게 되는 모순된 구조가 있죠. 그렇기에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시기에 징검다리가 되는 책들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고 공감할 만한 책들이 필요하죠. 특히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입시에 시달리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전혀 안 하고 사는 것 같지는 않아요. 게임이나 인터넷 같은 취미 생활은 시간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하거든요. 그 시선이나 관심이 책에 가지 않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의 관심을 당기는 책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경계하는 점이라면 우리가 먼저 검열을 하지 말자는 거죠. 이런 소재를 다루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작품이 소재주의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 다루려는 주제를 정말 깊숙하게 파고드는가를 먼저 보는 편이에요.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민감했던 작품은 『위저드 베이커리』였어요. 쉽게 입에 담기 어려운 소재였던지라 실제 항의도 받았어요. 어떤분은, 자기는 너무 재미있게 읽었지만 도저히 애한테는 읽으라고 못 권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명 옥 청소년 문학의 독자층을 청소년이라고 하지만, 검열에서 염두에 두는 사람은 학부모, 선생님들이죠. 너무 눈치를 보느라고 정말 청소년들이 바라는 부분, 욕구와는 거리가 먼 큰 문학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닌 것인지, 시장성을 보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네요.
이 지 영 주요 구매층이 학부모와 교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 독자층이 아닌 어른의 시선에 맞추어 책을 내면 결국 외면당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항상 신경 쓰고 있지요. 청소년 문학은 어쨌든 지금 굉장히 활황기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트렌드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어요. 이제 독자들의 눈도 점점 높아져 요즘 청소년들의 생활을 다룬 실감나는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하고, 새로운 형식, 새로운 서사에 목말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
왕 지 윤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누셨는데, 이제 정리를 해 볼까요?
김 광 재 예전에 ‘국경없는 마을’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도 하셨잖아요. 그런 생활과 이런 책을 쓴것이 연관이 있나요?
박 채 란 20대 넘어서 글을 쓰면서 제가 제 안에 갇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글이라는 것이 제 안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세상과 만나면서 무언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쓸 수 있는 것이 없더라고요. 소설을 쓰는데 쓸 게 없는 단계에 이르렀어요. 밖에 나가서 무언가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 내가 갈 수 있는 현장이 어딜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국경없는 마을』이라는 책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어떻게든 세상하고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것을 만난 거죠. 소수자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시는데, 저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었고 글을 쓰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는 데 그 기회가 생긴 것뿐이었어요. 『국경없는 마을』이라는 책도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티보다는 저의 문학적 감수성이 더 많이 반영되어 있어요.
예 주 영 애들은 어떤 목표나 진로를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무조건 대학이에요. 과도 중요하지 않고 대학 이름. 그래서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꿈을 찾을 수 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만나고 싶어요.
김 광 재 저는 바람이 둘 있어요. 하나는 <학교도서관저널>에서 이런 모임을 어른들끼리만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해야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고요. 두번째는 편집자님께 드리고 싶은 말인데요. 사계절은 ‘1318’이잖아요. 그런데 주로 ‘15’에서 끝나지 않나요? 18에 가까운 청소년 문학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명 옥 청소년 문제가 다루어져야 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여기까지는 무엇 저기까지는 무엇 하는 식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살 문제는 사회적 문제니까 그것은 그것으로 인정하고요. 그것을 바람직하게 풀어가는 방법에 있어서 ‘뭐 이런 사소한 걸로……’ 이렇게 볼 것이 아니라, 유서 쓰는 이벤트처럼 같이 드러내면서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학교든지 학교 밖에서든지 마련해야죠.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잘 사는 것이니까, 그런 것들을 건강하게 풀어내는 역할을 <학교도서관저널>에서 같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신 형 란 학교도서관에 있으면 애들이 보여요. 왕따인지어떤지. 담임선생님들은 반만 보지만 저희들은 전체를 보잖아요. 또 아이들이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요. 요즘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쌓이거든요. 저희 학교는 평준화 학교가 아니에요. 중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전학 온다든지 그러니까, 너무나 살벌하죠. 아이들이 참 착한데, 로봇 같아요. 엄마들이 시키는 대로 학교 끝나면 뭐하고 뭐하고…….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이 없으니까 그렇게 하게 되고 끊임없는 경쟁을 하는 것이 안좋은 것 같아요.
이 찬 미 저는 청소년기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청소년 문학이 다루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지고 고민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특히 『우아한 거짓말』의 화연이 같은 아이들도 비빌 언덕, 기댈 언덕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어떤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 정 임 아이들에게 책을 검열하거나 통제하려 했던 생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 문학에 대해서는, 아이들과 같이 읽고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다음에 아이와 함께 이런 자리에 같이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아니면 공부 말고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아주거나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을 해 보고, 어떤 건의사항 같은 것을 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 채 란 글을 쓰거나 예술을 하거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결국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밝은 빛을 만들려면 깊은 어둠이 있어야 한다는 것. 좋은 것만 쓰면 반쪽짜리 가짜가 되고. 진짜 사랑을 이야기하려면 진짜 증오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제 과정과 큰 욕심이 조금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선택한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부분이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는 거예요. 말씀을 들으면서, 이 한 권의 책이 공공적인 물건으로서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면서도 동시에 제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저는 다시 한 사람의 작가로서 자신의 글을 써야 하는 그런 모순된 상황을 안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많은 책 중에 제 책을 누군가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딘가 돌아다니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책임도 느껴요.
이 지 영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작품의 층위가 깊다 보니 언뜻 읽어서는 메시지를 잡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짚어주셨어요. 저는 처음에 주인공들의 나이가 너무 어리게 설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생각하는 것이나 쓰는 어휘가 중1, 중3이라고 보기에는 많이 성숙한 게 아닌가했는데, 김려령 작가의 생각은 확고하시더라고요. 화연이 같은 아이들을 실제 곁에서 지켜보니 중학교 이상 올라가면 이 아이들을 바로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자기가 하는 짓이 나쁜 짓인지도 모르면서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아이들한테 ‘네가 하고 있는 것이 잘못’이라는 확실한 깨달음을 주면서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고 바로잡을 수 있는 시기는 중학교 때라는 거죠. 천지가 너무 약하다, 화연이가 나쁜 아이니까 격리하면 된다, 그런 식으로 단순히 이해하기보다는, 두 아이를 다 감싸안는 진심 어린 말이 하나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전달된다면, 편집자로서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김 태 희 오늘 여러 선생님들 만나서 좋았고, 다음에 기회가 또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알기로는, 작가가 작품에서 죽음을 다룰 때 어느 누구도 함부로 죽이지 않아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죠. 특히 자살은 조심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어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도 자기만족을 위해서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같이공유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요.
박민규 씨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만든 옷을 입고 고마워하고 다른 사람이 농사지은 쌀을 먹고 고마워하는 것처럼, 내가 작가로서 봉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 작품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위안을 주는 것이라고.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한테도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앞으로 책을 만들 때에도 그런 바탕에서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한 김려령 작가에게 질문지를 보내어 답을 들어 보았습니다.
저 널 『우아한 거짓말』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후기에 나와 있듯이 개인적인 체험이나 주변의 사례에서 시작되었나요?
김 려 령 실제로 저도 어린 나이에 생을 내려놓으려 한 때가 있었고,안타깝게도 천지보다 더 어린 나이에 스스로 떠나간 어린 지인도 있습니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에도 저는 지인을 한 분 더 잃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셨지만, 그분도 스스로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제 개인적 체험 때문만은 아닙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합니다. 청소년 자살률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요. 단 한 사람의 자살이라도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살 방지를 위해 많은 선생님들이 일선에서 청소년들에게 이성적 호소를 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작가인 저는 감성과 무의식에 호소하여 그분들의 교육을 뒷받침하고 싶었습니다. 제발 생을 내려놓지 말라고.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 널 화연이가 천지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 섬뜩합니다. 아이들간의 이런 괴롭힘의 모습을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게 그려 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천지가 다른 이들에게 봉인된 용서의 편지를 보낼 정도라면 천지는 이미 상처를 견뎌 낼 만한 힘이 있고 자존감이 있는 아이 같은데 이런 아이가 자살을 한다는 설정은 너무 과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김 려 령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너무 몰라서 섬뜩한 행동을 하곤합니다. 자신의 행동의 파장을 생각지 못하고, 현재 위치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지요. 화연의 행동은 제 경험과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또, 천지가 용서의 편지를 남긴 것이 과연 상처를 견뎌 낼 힘이 생겼기 때문일까요? 천지는 살면서 많은 용서를 했고 또 배신을 당했습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그런 일이 또 반복될까 봐 겁이 나지는 않았을까요? 용서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용서. 혹은 남은 자들을 위한 용서가 아니라 떠나는 자신을 위한 용서는 아니었을까요? 그만큼 천지는 몸이 아니라 영혼이 아픈 아이였습니다. 떠나는 자이기에 가능한 용서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훌훌 털어버리고 가고 싶은 마음. 제가 과거에 그 자리에 있었을 때 그랬거든요. 용서가 꼭 상처를 극복할 힘이 있을 때 하는 걸까요? 용서를 하면 정말 상처가 다 아물까요? 스스로 떠난 많은 아이들이 자존감이 없어서 떠난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 널 천지의 자살이 가엾기도 하지만 곱게 보이지도 않는데요. 남은 자를 용서하고 떠난 게 아니라 괴로움을 겪어 보라고 죽은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을 용서했다면 자살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보는데요. 이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김 려 령 질문과 비슷한 독자 서평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용서가 아니라 무서운 복수로 보셔도 좋은 작품입니다. 여러 각도로 해석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거든요. 독자마다 다르게 읽어주셨으면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작품 속 인물들도 그러합니다. 천지가 자신에게 복수하려고 남긴 편지라고도 볼 수 있고, 진정으로 용서했기에 남긴 것으로도 볼 수 있겠지요. 용서를 했으니 자살하지 않아야 했다는 건 우리의 바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지가 용서를 해도 주변 사람들이 변하지 않으면, 그 용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용서입니다. 용서하는 행동이 오히려 만만하게 보여 다시 반복됐던 괴롭힘. 천지는 이미 그런 경험을 많이 하고 떠났지요.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떠난 아이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남은 사람들. 누군가 그렇게 아프게 떠났을 때,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얼마나 힘든지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떠난 사람만 아픈 게 아니라 보낸 사람도 많이 아프다는,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저 널 집 안에 있던 쥐를 내쫓는 장면이 있는데, 이 에피소드가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설정된 것인지요?
김 려 령 쥐라는 동물은 가까이 올까 두렵고 겁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쫓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맞설 수 있는 두려움입니다. 천지 엄마와 만지가 쥐를 쫓아내기로 결정한 건, 천지의 죽음의 진실을 대면할 두려움을 좇아내는 상징입니다. 쥐를 쫓아낸 뒤 진실과 마주하기로 결정하지요. 한편, 쥐들의 강한 생명력처럼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삶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저 널 이 책에서, ‘우아한 거짓말’이란 무엇인가요?
김 려 령 우아한 거짓말은, 자신은 타격을 입지 않으면서 상대를 가격하는 거짓말입니다. 숨은 의도는 명확하게 각인시키되, 자신은 혹시 모를 구설수에서 빠지는 것이지요. 악의적인 의도는 숨기고 겉으로는 우아하게 포장해서 말하는 교활한 언어이기도 합니다. ‘예쁘긴 한데, 은근히 촌스러운 면도 있어.’라고 할 경우, 말하는 사람이 꽤 중립적 시선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요. ‘나도 들은 말인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며 헛소문을 퍼뜨릴 수도 있고, ‘혼자두면 불쌍하잖아.’식의 착한 이미지를 남기고 곁에서 괴롭힐 수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