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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작가가만난작가] 동화작가 송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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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21:04 조회 13,41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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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청년의 운명을 바꿔놓은 만남
유영진 선생님은 처음부터 동화로 등단하신 게 아니라20대 초반인 197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셨어요. 남다른 문학 소년기, 혹은 문학 청년기를 보내셨을 것 같은데요.
송 언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책에 빠지기 시작했어. 중학교 2학년 되기까지는 열등감의 지배를 꽤 받았고, 지극히 결핍된 삶을 살다가 우연히 열 권짜리 삼국지를 읽었어. 그때 현실의 삶 너머에 이야기의 세계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지. 고등학교 1학년 마칠 무렵, 그동안 내가 읽은 책이 천 권쯤 되었을까 싶은데, 뭔가 글로 토해 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더군. 제도권학교에서 느끼는 답답함, 내가 처했던 남루한 가족 환경, 이런 틈바구니에서 갈등하다가 학교고 뭐고 다 버리고 내식대로 한번 살아 보자고 자퇴서를 내고는 과감하게 학교를 때려치웠어. 그러다가 그냥저냥 흘러가는 삶이 위태롭게 느껴져 검정고시를 거쳐 교대에 들어갔지. 고등학교 때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앞으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묻더군. 그때 나는, “네가 콧방귀를 뀔지모르겠는데, 내 꿈은 작가가 되는 거야. 아마도 안 되겠지만 말이야” 했던 기억이 나. 그때는 작가 되는 길이 바늘구멍이었어. 세속적인 말로는 하늘의 별 따기. 문예지도 많지 않았고, 그 당시 신춘문예가 400대 1, 500대 1하던 때였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잠복시켜 놓고 선택한 게 교대였어. 가정환경도 여의치않았고, 에라, 교대에 가서 아이들이랑 놀지 뭐, 그렇게 생각했어.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엔 애착이 없어서, 시골 어디 한가한 초등학교에 가서 꽃피는 아이들이랑 한세상 놀아보자 뭐, 그랬지.
유영진 작가가 되는 게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하신 거죠. 그런데 선생님은 춘천교대에 가셔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송 언 한양대 명예교수이자 시인인 이승훈 선생님이 그때 춘천교대에 있었어. 그분이 들어오셔서 첫날 문학강연을 하는데, 그때 제목이 지금도 기억나. ‘문학 인식과 문학적 인식의 차이’. 그날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 철없던 시절에 습작한 시 세 편을 골라서 선생님 연구실을 찾아갔어. 그게 내 운명을 바꿔 놓은 거야.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 선생님께서 내 시를 찬찬히 훑어 보더니“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게 잘 안 되더라고. 계속 써 봐. 시 좋네” 하시더군. 그 뒤 연구실로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고 개인 교습을 받다시피 했지. 나한테는 가장 충격적인 문학의 만남이 아니었던가 싶어. 춘천교대를 다닌 이외수 선배님이나 최승호 선배를 알게 된 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된 뒤의 일이 었지.

아이들과 첫만남 그리고 헤어짐
유영진 교사가 되고 나서 또 한 번 전환점이 왔지요?
송 언 1982년에 소설이 당선되고, 1983년에 교사 발령을 받았어.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이 다 이루어진 거야. 작가가 못 될 거 같아 선생 한다고 한 건데, 오히려 딜레마가 찾아온 거지. 지금도 마음이 아픈 게, 첫해 아이들이 재미난 옛날이야기 해 달라고 조르는데 화를 냈어. “이철없는 것들아, 내가 등단한 소설가인데, 너희들이랑 옛날이야기 할 정신이 어디 있냐.” 애들이 귀찮았던 거야.

사실은 내가 철이 없었던 거지. 아이들만 없으면 살겠다. 빨리 아이들 곁을 떠나 소설을 써야 하는데, 단편 하나라도 건져야 하는데……. 애들이 날 귀찮게 하니까 학교가 정말 재미없더라고. 또 하나는, 막상 학교 현장에 들어서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 선생을 때려 치든가, 학교 현장을 확 바꾸든가 결단을 내리지 않고서는 하루도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 그때 때맞춰 전교조가 뜨더군. 옳다구나 가입을 했는데, 오로지 가입했다는 이유 하나로 밥줄이 끊겨서 10년 동안 해직 생활을 했지. 밥줄 끊겨 학교 현장을 떠나고 나니까, 그제야 아이들이 나한테 바란 것이 무엇인가 고민이 되더구먼.
유영진 오히려 해직당하고 나서 아이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거군요. 떠나고 싶었던 아이들인데 거꾸로요. 1989년도에 전교조 사태로 해직되고 이중현, 이재복 선생님 등과 교육문예창작회를 통해 삶의 동화 운동을 전개하셨잖아요. 1990년대 초반에 「신악동전」이란연작소설을 쓰다가 동화로 오게 된 계기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죠.

송 언 내가 떠나고 싶어서 떠났으면 이야기가 좀 달랐을 거야.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쫓겨난 거라, 아이들에게 이 정도는 해 주고 떠나왔어야 하는데, 하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마음을 무겁게 하더라고. 교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아이들이 원하는 건 다 들어주고 떠나와야지, 고민할 때쯤, 교육운동 차원에서 교육문예창작회가 출범했어. 그 단체에서 ‘삶의 동화운동’을 시작하면서, 어린이문학에 대해 처음으로 뜨거운 고민을 하게 되었지.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삶의 동화 운동’을 펼치다
유영진 ‘삶의 동화 운동’을 통해 어떤 것을 추구하신 건지요?
송 언 「신악동전」 얘기를 먼저 하면, 아이들이 귀찮고 학교 현장이 껄끄러웠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짬짬이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긴 하더라고. 허구한 날 애들하고 생활하니까. 그때만 해도 젊었으니까 거의 6학년을 맡았어. 그러다 보니 악동들이라고 할까. 그때는 악동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사실 소외받고 상처받은 아이들이지. 그 아이들 이야기를 쓰고 싶더라고. 그런데 동화라는 개념이 생성되기 전이라 소설로 쓴 거지. 그러다 이중현 선생과 이재복 선생을 만났고. 함께 ‘삶의 동화 운동’을 펼쳤지. 뒤늦게 철이 좀 든거지 뭐.
유영진 그 당시에 모였던 분들이 초등학교 현장에서 두고 떠나온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내지는 삶을 변화시키
고자 하는 의지들을 동화를 통해서 풀어내고자 하신 거라 생각 되네요.



송 언 생각해 보니 내가 해직될 무렵까지가 어린이문학의 암흑기가 아니었던가 싶어. 그 암흑기를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 같은 분들이 횃불을 들고 건너왔다고 봐야겠지. 아무튼 전교조 활동이 분수령이었어. 교육운동과 문학운동이 결합했으니까. ‘삶의 동화 운동’이 어린이문학 운동에 의미 있는 주춧돌을 놓았다고 생각해. 현실의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힘겨워하는지를 동화로 들려주고자 했으니까. 그 당시엔 거칠었지만 정신만은 제법 살아 있었지. 소설 쓰다가 동화 장르로 넘어오기 쉽지 않은데, 그나마 초등학교 현장 경험이 있고, ‘삶의 동화 운동’에 참여한 바탕이 있기 때문에, 소설을 접고 동화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아. 같은 서사 장르인데도 소설에서 동화의 강으로 건너오기가 만만찮은 일이거든.



소설에서 동화로 강을 건너기까지
유영진 서초동 꽃마을 철거민 투쟁 이야기를 그린 『하느님께 보내는 편지』나 「오늘 재수 똥 튀겼네」 같은 초기 작품도 현실주의 작품이었고, 초기작 이후 십여 년 만에 쓴장편동화 『사라진 세 악동』 역시 현실주의적인 작품이었거든요. 그러다 어떤 계기로 2000년대 후반에 가장 잘 나가는 (웃음) 저학년 동화작가로 변신하게 된 건가요?

송 언 앞에서 말한 작품들이나, 그 무렵에 썼던 역사동화 『바리 왕자』 같은 것들이 소설 쪽에 가까운 이야기야. 그때는 내가 동심에 대한 탐색이 없었으니까 그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지.
유영진 십 년 전쯤 술자리에서, 선생님께서 40대까지는 동화를 쓰고 50대에는 다시 소설을 쓸 거야, 라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지금은 밑으로 확 내려가서 진짜 꼬맹이들, 살아 숨 쉬는 아이들이 생생하게 그려진 저학년 동화를 열심히 쓰고 있거든요. 결국 선생님은 자기 예언을 배반한 건데 말이지요.

송 언 그때는 동심을 내 손아귀에 쥐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겠지. 동화작가로서 내 인생의 첫 번째 분수령은 해직이고, 두 번째 분수령은 복직일 텐데, 복직되기 일 년 전에 소설을 딱 접었어. 소설을 버리지 않고는 동화를 얻기 어렵다는 절박감이 찾아온 거지. 그런데 복직하고 6학년만 내리 4년을 했어. 동심이 손에 잡혀야 동화를 쓰든 동화를 삶아 먹든 할 텐데 참. 솔직히 말해서 6학년 아이들에게서 동심을 건져 올린다는 건 좀 무모한 일이잖아. 사춘기의 정의를 문학으로 빗대서 얘기하면, 아이들이 동심을 버리고 어른의 세계를 기웃거리는 시기라고 보거든. 동화의 세계에서 소설의 세계로 건너가는 시기가 곧 사춘기라고 봐. 그러니까 동심을 떠나어른의 세계를 기웃기웃하며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동화 속에 잡아 가둔다는 게 어디 쉬운 노릇이겠어? 6학년맡은 4년 동안 당연히 동화를 못 쓰고 끙끙댔지.

손에 잡힐 듯 동심을 맛보고
유영진 동심을 손에 쥐기 못했기 때문에 그 시기에 집중적으로 옛이야기나 역사동화가 나왔던 건가요?

송 언 꼭 그렇다기보다는, 복직할 무렵 우연찮게 옛이야기 다시 쓰는 일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차츰 빠져들게된 거야. 옛이야기의 세계는 고대소설까지 포함하니까소설 쓰던 사람들에겐 궁합이 좀 맞더라고. 그래서 옛이야기 다시 쓰는 일에 한동안 매달렸던 거지 뭐. 역사동화 쪽은 스스로 찾아간 것이고. 현실 속의 동심이 내손에 안 잡히니까. 그러다가 동화를 제대로 쓰려면 낮은학년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쑥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처음으로 2학년을 맡았어. 교단일기인 『선생님, 쟤가 그랬어요』와 동화 『멋지다 썩은 떡』, 『잘한다 오광명』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바로 그때 만났지. 그제야 비로소 ‘동심이 이런 것이었나?’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를테면 동심의 손맛을 좀 본 셈이지. 생생한 아이들 세계의 표정, 언어, 행동 따위를 놓치기 전에 그날그날 기록하자, 동심의 세계가 조금씩 손에 좀 잡힐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2학년 아이들과 일 년을 지낸 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 그 뒤 주로 1~4학년 아이들이랑 지냈어. 아이들의 삶을 꼬박꼬박 기록하면서 ‘아, 이제 좀 알겠다. 아이들이 이렇게 노는구나. 동심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 개인적으로 동심을 알고 쓴첫 번째 동화는 「슬픈 종소리」라 생각해.

유영진 동심을 탐구하기 전까지는 소설 쪽에 무게가 더 실렸다면, 동심을 발견하면서 진짜 동화 작가가 되었다는 거네요. 선생님이 평소 강의 같은 데서 동심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시고 작품 평가의 기준에서도 동심을 중요시하시는데요. 한편에서는 동심이 추상적인 관념이라고도 하는데 말이지요.
송 언 아니야. 동심을 모르는 사람에겐 추상적이겠지만 아는 사람에겐 구체적이지.



“선생님, 친구처럼 대해줘서 고마웠어요.”
유영진 그러면 선생님이 손에 잡은 동심은 구체적으로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송 언 그거야 요즘 내가 쓰고 있는 작품들 속에 들어 있지.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슬픈 종소리」 이후에 낸 작품들의 세계. 그게 바로 내가 파악하거나 나를 찾아온 동심의 세계야.

유영진 동심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 작품으로 보여 준다. 이런 말씀이네요.
송 언 작가는 작품으로 보여 주는 거지. 말로 한다고 동심이 단박에 손에 잡히나.
유영진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네요. 내작품이 내가 탐구하는 동심의 세계다. 멋지네요.
송 언 동심은, 동심을 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 같아. 아이들이 보여 줘도 안 보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아. 그러니까 내가 본 것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나에게 특별히 보여 준 것일 수도 있고…….

유영진 왜 아이들이 선생님한테만 특별히 보여줬을까요?
송 언 1998년, 마흔 셋에 복직하면서, 내 나이가 적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런 나를 격의 없이 받아 주면 아이들곁에 머물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목을 친다. 1989년엔 정권이 내 목을 쳤지만, 아이들이 날 내치면 스스로 떠나야지 어쩌겠어. 작년에 1학년과 놀았고, 올해도 1학년 하고 있는데, 작년에 나랑 굉장히 친하게 지낸 꼬마 제자가, 1년 내내 날 갖고 놀다가, 12월 말쯤 색종이에 편지를 써서 줬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어. ‘선생님이 저를 1년 동안 친구처럼 대해 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내가 더 고마웠지. 아이들 마음이 이래. 다시 말해 동심과 친구가 되었을 때 보이는 세계가 있다는 거지. 내가 150살이다, 오대산 산신령과 친구다, 하며 뻥을 치는 것도 동심과 격의 없는 친구가 되기 위해 짐짓 그래보는 거야. 현실의 나이 그대로 어린이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 쉽지 않거든. 그런 경지가 있다면 좀 가르쳐 줘.

유영진 그러니까 선생님의 문학적 삶에서 세 번의 전환점이 있었군요. 이승훈 교수님과의 만남이 첫 전환점이고. 해직 때 만나게 된 교문창과 삶의 동화 운동, 그리고 복직하면서 다시 만나게 된 동심의 아이들.
송 언 이승훈 선생님은 문학을 해도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게 된 만남이었고, 해직은 소설에서 동화로 넘어오는 계기가 되었고, 복직 뒤 「슬픈 종소리」를 쓰면서‘아. 이제는 동화를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할까?



다시 만나게 된 동심
유영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겠지만,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작품이 있으신지요.
송 언 「슬픈 종소리」를 빼고 내 동화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슬픈 종소리」를 쓰고 나서 비로소 자신감을 얻게 되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스스로 ‘이 작품 잘나왔다’ 꼽고 싶은 게 있다면, 『김 구천구백이』, 『돈잔치소동』, 『바보 창수 대장 용수』, 그리고 최근에 나온 『축졸업 송언초등학교』.

유영진 어떤 면에서 애정이 가시나요?
송 언 내가 썼지만, 객관적인 눈으로 다시 보았을 때, 내마음에 좀 든다는 거지, 뭐. 『멋지다 썩은 떡』, 『잘한다오광명』도 애정을 갖고 있지만, 『돈잔치 소동』이 비교적 잘 나온 작품이다 싶고, 『김 구천구백이』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아. 「슬픈 종소리」는 잘 나왔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지. 「슬픈 종소리」이전과 이후로 갈라지니까. 내 작품 세계가 말이야.
유영진 『하느님께 보내는 편지』를 빼놓으신 게 의외네요.
송 언 「슬픈 종소리」 이전의 작품이고, 나름대로 열심히 취재하면서 쓰긴 했지만, 문학적 성취감이 높은 작품이라고 말할 용기는 없네.

더 넓은 동심의 세계로
유영진 앞으로 문학적인 삶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갖고 계신지요.

송 언 요즘 고민이 많아. 올해 가장 정신 차려 써야 할 작품이 다섯 권짜리 『김 배불뚝이의 모험』이라고, 낮은학년 동화책이야. 1학년 담임을 거듭 해 보니까 이 시기가 가장 순수한, 동심의 유일한 보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도권 교육의 쓰고 더러운 맛을 안 본 유일한 학년이 1학년이잖아. 1학년 아이들이랑 잘 놀면 청정 지역의 동심을 발견할 수 있어. 제도권에 물들지 않고 타락하지 않은 동심 말이야. 『김 배불뚝이의 모험』은 청정한 동심이 학교라는 제도화된 교육 현장에서 거침없이 부딪치고 쓰러져 나뒹굴다가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야.

이 작품이 내 동화문학의 승부처가 되었으면 해. 그리고 욕심이 좀 남아 있는데, 하나는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세계를 어떻게 탈피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느냐, 하는 거야.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조금만 더 나아가면 ‘그 얘기가 그 얘기’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거든. 나 혼자생각엔 2~3년만 더 가 보고, 학교를 떠나 학교 밖 아이들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선생님, 쟤가 그랬어요』 이후 학급일지를 9년째 쓰고 있는데, 내년이면 10년이야. 10년 기록만 있으면 어떤 동심에 대한 논쟁에서도 꿀릴건 없다고 생각해. 내년까지 10년 기록을 완성하면 언제든지 제도권 굴레를 떠날 거야. 도시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내 삶을 옮겨,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한바탕 또 놀고 싶어. 작품의 변화도 가져오고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 보고 싶은 거지. 그러려면 『김 배불뚝이의 모험』을 얼마나 멋진 작품으로 완성하느냐가 관건일 텐데…….

유영진 『멋지다 썩은 떡』, 『마법사 똥맨』 이런 일련의 작품들에서, 어떤 이들은 아이들은 살아 있지만 결국 주인공은 선생님이다, 이런 얘기들을 하거든요. 자칫하면 스테레오타입화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고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 보니 그간 학교 안에서의 동심을 탐구하셨다면 이후로는 학교 밖, 더 넓은 세상의 아이들 속에서 동심을 탐구하며 상상력을 갱신하시겠다는 말로 들리네요. 참 반가운 말입니다.
송 언 나를 우려해 주는 목소리와 내가 우려하는 목소리가 거의 같은 것 같아. 그렇긴 하지만 세상살이가 어디내 마음 같은가. 아니, 내 마음 같아도 재미없지. 나는 내안으로 들어온 동심의 이야기를 쓸 뿐이고, 읽는 사람은 자기 안으로 들어온 동심의 눈으로 내 작품을 보겠지.

송 언 서울 중광초 교사, 동화작가.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즐겁게 놀면서 동화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그동안 낸 동화책으로 『슬픈 종소리』, 『김 구천구백이』, 『잘한다오광명』, 『바보 창수 대장 용수』, 『축 졸업 송언초등학교』 등이 있다.

유영진 서울 자운초 교사, 어린이문학 평론가, 월간 <어린이와 문학>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2회 창비어린이 신인평론상을,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론 부문 창작 지원금을 받았다. 평론집으로 『몸의 상상력과 동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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