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 책으로 크는 아이들, 배움과 나눔과 만남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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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20:50 조회 6,051회 댓글 0건본문
토트 가정 독서모임 이야기
나는 8년째 우리 집에서 가정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현
재 군복무 중인 우리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던 2003년에 큰아이 친구들과 시작하
여 2006년까지 활동한 1기 모임과 그 바통을 이어받아 2007년, 작은아이가 똑같이
중학교 2학년이던 때에 친구들과 시작하여 현재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 2기 모임. 아
이들은 거의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30분에 우리 집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감상을 나
누고 글을 쓰고 토론을 했다. 그러다 방학이 되면 책을 읽고 직접 작품의 배경지를 찾
아가기도 하고 작가의 생가나 글을 썼던 현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 모임
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깨달으며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고 나누는, 배움과 나눔과 만
남의 기쁨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토트가정독서모임의 출발 배경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크게 신경을 쓴 것은 ‘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
책은 자아를 튼튼하게 해 주고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내 오랜 독서 경험과 책 읽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를 통해 책(독서)의 가장 큰 미
아하고 책을 통해 내 울타리 밖 세상을 넘겨다보고 꿈꾸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나로
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2001년부터 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개했던 독서운
동이 아이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 놓는 것을 체험한 나로서는 책이 지니고 있는 힘
과 가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러한 책을 꼭 주고 싶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책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이가 책
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범위도 넓어 동화와 소설, 역사책, 철학책, 시집 등을 두루두루
읽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그런 책들은 죄다 멀리 한 채
만화책에만 빠져드는 게 아닌가. 또한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어도 나름
대로 자신있게 살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뭔가에 잔뜩 주눅이 든 사람처럼
매사에 자신감 없어하고 식구들과의 대화조차 피하려 하곤 했다. 단순히 사춘기적
증상 같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아이는 ‘공부’와 ‘성적’만을 강조하는 중학교 생활에
서 기쁨을 찾지 못하는 듯해 보였고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로서는 그만큼 더 ‘열
등감’에 시달려야 했고, 그렇기에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큰 듯했다.
자칫 손을 잘못 내밀었다가는 오히려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줄까 싶어 선뜻 다가
가지도 못한 채 오래도록 애만 태웠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가정독서모임이
었다.
덕은 ‘자아를 튼튼하게 해주고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
다. 나는 학력이나 성적을 ‘절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자기는 대학에 가지 않고 ‘시인과 농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도 걱정을 하기보다는 ‘요놈이 대단하네!’하며 오히려 속으로 감탄을 했었다. 그런
데 어쩌다 이 아이가 이처럼 힘없이 주저앉고 좌절하나 싶으니 마음이 한없이 슬프
고 착잡했던 것이다.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 대부분이 ‘학교 성적’을 아이들을 평가하는 ‘최고
의 잣대’로 삼고 있었다. 특히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는 사립학교였기에 그 증상이 매
우 심했다. 이제 겨우 13년을 살고 있는 아이 혼자 그들을 상대로 하여 자기의 어설픈
꿈과 신념을 지켜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나는 아이를 격려하고 지원하고 싶었다. 아이의 자아를 튼튼하게 키워주고 싶고
남들에게 휘둘려 살기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살피고
깨달아 그 길을 향해 자신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싶었다. 그리고 ‘학교 성
적’이나 ‘공부’보다는 진정한 ‘배움의 길’을 걸으며 학교를 다니는 동안이나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깊고 넓게 확장시키고 성숙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책만큼 좋은 것이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아이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이었
다. 아이는 아직 혼자 설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우리 큰아이, 작은
아이가 한데 어울려 함께 책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책모임으로 새롭게 출발
그러나 가족 셋이서 하는 책모임은 재미도 없고 구속력도 없어 6개월이 지나도록 아
무런 진전이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학교에서처럼 친구들과 함께 하는 ‘독서 동아
리’ 형태로 꾸려보고자 했다. 학교 아이들을 통해 ‘독서 동아리’는 아이들에게 ‘책 읽
는 기쁨’뿐만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고 추억거리들을 공유케 하면서 ‘나눔
의 기쁨’과 ‘만남의 기쁨’까지도 안겨준다는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우리
두 아이와 상의하여 함께 할 만한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2003년 1월, 우리 큰아이와 큰아이의 친구 둘, 내 제자 아이 둘, 우리 작은아이, 이
렇게 여섯이서 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모임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 어떤 형태로 전개가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원칙만큼은 분명히
하고자 했다. 나는 이 모임이 학원가에서 흥행하는 ‘독서논술’ 모임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뿐더러 아이들의 성적 향상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 또한 바라지 않았다.
나는 이 모임이 진정으로 아이들에게 즐겁기를 바랐고, 진정한 배움과 나눔과 만남
의 장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렇기에 아이들과 상의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해 잘
지켜나가자고 약속했다.
아이들은 이 모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1기 모임 아이들은 2003년부터 2004년
까지 거의 매주 한 번씩 모여 그림책과 동화책과 국내외 소설과 역사, 철학, 종교, 과
학 책들을 읽어나갔다. 물론 아이들의 책읽기 능력이 천차만별이어서 유교에 대한
책을 읽더라도 어떤 아이는 「만화중국고전」(채지충 글・그림, 대현출판사) 시리즈
가운데 공자와 맹자 관련 책만 읽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모로하시 데쓰지의 『공자 노
자 석가』(동아시아)뿐 아니라 『공자 속의 붓다, 붓다 속의 공자』(박민영 지음, 들녘)
까지도 읽는 아이가 있기도 하고, 글을 쓸 때도 어떤 아이는 반쪽도 안 쓰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두 쪽을 빽빽이 쓰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모두 모임을 하기 전에 비해 책
을 더 많이, 잘 읽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글 솜씨도 늘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모임이 조금씩 흔들거렸다. 한 아이는
학교 공부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며 탈퇴하고, 네 명의 고등학생 역시 매월 치러지
는 모의고사에 정규고사로 인해 정신없이 바쁜 탓인지 모임에 빠지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책을 읽고 떠나는 여행’ 프로젝트였다.
책을 읽고 떠나는 여행
무리할 것 없이, 학기별로 독서 기행의 주제를 정해 관련 책들을 각자 알아서 읽은 후
(집에서 각자 읽든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읽든 자유였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는 함
께 모여 그동안 읽은 책에 대해 얘기 나누고 여행할 곳에 대해 더 조사한 후 방학을 이
용해 직접 현장으로 떠나자는 것이었다. 1기 모임 아이들은 이 여행을 너무도 좋아
하여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2년간을 통해 5차례의 독서기행을 함께 했다. 아이들
이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다산과 영랑과 고산의 숨결이 넘실대는 강진과 해남이었다.
아이들은 이 여행을 위해 다산과 영랑과 고산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찾아 읽었다. 그
리고 두 번째는 퇴계와 유학에 대해 공부한 후 영주의 소수서원과 안동을 둘러본 후
안동 가까이 있는 영양 주실마을에 들러 조지훈 생가와 문학관을 둘러보고 왔다. 그
리고 세 번째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춘천 실레마을 김유정 문학촌을 찾아갔
고, 이어서 「토지 1~21」와 판소리 관련 책들을 읽은 후 하동과 남원을 찾아가고, 「아
리랑 1~12」과 「태백산맥 1~10」, 채만식과 양귀자, 신동엽을 공부 후에는 김제와 군
산과 부여를 둘러보고 왔다.
아이들은 이 여행들을 준비하며 관련 책들을 각자 읽을 수 있는 만큼씩 적게는 5
권에서 많게는 10권 넘도록 읽곤 했다. 여행 중에도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그날그
날 여행기를 간단히 써서 발표하며 느낌과 생각을 함께 나눴다. 여행 후에는 다시 전
체적인 기행문을 써서 발표하고 각자 찍은 사진들을 가져와 함께 웃고 즐기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함께 경험한 추억들을 되새겼다(더 자세한 내용은 『 책으로 크는
아이들』(백화현 지음, 우리교육, 2010)을 참조하기 바람).
책으로 크는 아이들
1기 모임 아이들은 떠났지만 그 뒤를 이어 우리집에서는 2기 모임 아이들이 4년째
독서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아이들 역시 첫해에는 그림책과 동화책으로부터 시
작했으나 점차 국내외 소설과 역사, 정치, 경제, 과학, 환경, 종교, 철학, 예술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으며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있다. 이 아이들은 1기
아이들과는 달리 여행보다는 탐구 활동을 좋아하는 탓에 방학 때 여행을 하기보다
는 매주 역사 인물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를 정해 탐구 보고서를 써서 발표하며
토론하는 것을 더 즐긴다는 점 말고는 1기 아이들과 비슷하게 활동하고 있다.
나는 이 아이들과의 모임 활동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많은 이들이 오늘날은 인문
학이 죽은 시대라고 말하고, 아이들은 이제 사춘기가 되어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
제로 고민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은 더 이상 ‘정의’니 ‘자유’니 ‘선’이니 하는 ‘정신
적인 가치’들을 추구하지도 않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경쟁’과 ‘능력’만을 외
쳐대는 소수의 권력과 자본에 짓눌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나’를 성찰할 시
간도 없고 ‘너’를 들여다 볼 여유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달랐다. 이 아이
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씩 책을 읽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며
함께 성장해 나갔다. 나와 너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기도 하고 우리 사회를 보다 선하
고 정의롭게 하기 위한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이 아이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든 가능성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굳
이 이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함께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토
론할 기회가 제공된다면 아이들은 배움의 기쁨과 나눔과 만남의 기쁨을 스스로 체
득할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마음과 정신을 쑥쑥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온종일 의자에 앉혀둔 채 교과서와 문제집만을 쥐어주는 어른이 아니라 어떻게 아
이에게 진정한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나눔과 만남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 이제 우리 어른들은 이 문제를 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고 생각한다.
한 술 밥에 배부를 수도 없고, 모두가 같은 방식일 필요도 없겠지만, 책을 좋아하
는 부모라면 가정에서 아이와 아이 친구들을 데리고 독서모임을 운영해 볼 것을 적
극 권장하고 싶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즐기면
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감도 생기고, 그렇게 죽 걷다 보면 아이도 부모도 참 좋
아진다. 이런 작은 독서모임들이 전국 곳곳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우리 아이들이 책
과 함께 쑥쑥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읽어 행복한 사람들. <함께 읽는 사람들>은 가정, 학교, 지역에서 ‘책 읽는 모임’을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작은 책 모임들이 활성화되어 책으로 좋은 세상을 열어 가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8년째 우리 집에서 가정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현
재 군복무 중인 우리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던 2003년에 큰아이 친구들과 시작하
여 2006년까지 활동한 1기 모임과 그 바통을 이어받아 2007년, 작은아이가 똑같이
중학교 2학년이던 때에 친구들과 시작하여 현재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 2기 모임. 아
이들은 거의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30분에 우리 집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감상을 나
누고 글을 쓰고 토론을 했다. 그러다 방학이 되면 책을 읽고 직접 작품의 배경지를 찾
아가기도 하고 작가의 생가나 글을 썼던 현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 모임
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깨달으며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고 나누는, 배움과 나눔과 만
남의 기쁨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토트가정독서모임의 출발 배경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크게 신경을 쓴 것은 ‘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
책은 자아를 튼튼하게 해 주고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내 오랜 독서 경험과 책 읽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를 통해 책(독서)의 가장 큰 미
아하고 책을 통해 내 울타리 밖 세상을 넘겨다보고 꿈꾸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나로
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2001년부터 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개했던 독서운
동이 아이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 놓는 것을 체험한 나로서는 책이 지니고 있는 힘
과 가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러한 책을 꼭 주고 싶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책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이가 책
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범위도 넓어 동화와 소설, 역사책, 철학책, 시집 등을 두루두루
읽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그런 책들은 죄다 멀리 한 채
만화책에만 빠져드는 게 아닌가. 또한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어도 나름
대로 자신있게 살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뭔가에 잔뜩 주눅이 든 사람처럼
매사에 자신감 없어하고 식구들과의 대화조차 피하려 하곤 했다. 단순히 사춘기적
증상 같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아이는 ‘공부’와 ‘성적’만을 강조하는 중학교 생활에
서 기쁨을 찾지 못하는 듯해 보였고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로서는 그만큼 더 ‘열
등감’에 시달려야 했고, 그렇기에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큰 듯했다.
자칫 손을 잘못 내밀었다가는 오히려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줄까 싶어 선뜻 다가
가지도 못한 채 오래도록 애만 태웠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가정독서모임이
었다.
덕은 ‘자아를 튼튼하게 해주고 스스로 배울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
다. 나는 학력이나 성적을 ‘절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자기는 대학에 가지 않고 ‘시인과 농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도 걱정을 하기보다는 ‘요놈이 대단하네!’하며 오히려 속으로 감탄을 했었다. 그런
데 어쩌다 이 아이가 이처럼 힘없이 주저앉고 좌절하나 싶으니 마음이 한없이 슬프
고 착잡했던 것이다.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 대부분이 ‘학교 성적’을 아이들을 평가하는 ‘최고
의 잣대’로 삼고 있었다. 특히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는 사립학교였기에 그 증상이 매
우 심했다. 이제 겨우 13년을 살고 있는 아이 혼자 그들을 상대로 하여 자기의 어설픈
꿈과 신념을 지켜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나는 아이를 격려하고 지원하고 싶었다. 아이의 자아를 튼튼하게 키워주고 싶고
남들에게 휘둘려 살기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살피고
깨달아 그 길을 향해 자신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싶었다. 그리고 ‘학교 성
적’이나 ‘공부’보다는 진정한 ‘배움의 길’을 걸으며 학교를 다니는 동안이나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깊고 넓게 확장시키고 성숙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책만큼 좋은 것이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아이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이었
다. 아이는 아직 혼자 설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우리 큰아이, 작은
아이가 한데 어울려 함께 책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책모임으로 새롭게 출발
그러나 가족 셋이서 하는 책모임은 재미도 없고 구속력도 없어 6개월이 지나도록 아
무런 진전이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학교에서처럼 친구들과 함께 하는 ‘독서 동아
리’ 형태로 꾸려보고자 했다. 학교 아이들을 통해 ‘독서 동아리’는 아이들에게 ‘책 읽
는 기쁨’뿐만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고 추억거리들을 공유케 하면서 ‘나눔
의 기쁨’과 ‘만남의 기쁨’까지도 안겨준다는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우리
두 아이와 상의하여 함께 할 만한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2003년 1월, 우리 큰아이와 큰아이의 친구 둘, 내 제자 아이 둘, 우리 작은아이, 이
렇게 여섯이서 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모임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 어떤 형태로 전개가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원칙만큼은 분명히
하고자 했다. 나는 이 모임이 학원가에서 흥행하는 ‘독서논술’ 모임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뿐더러 아이들의 성적 향상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 또한 바라지 않았다.
나는 이 모임이 진정으로 아이들에게 즐겁기를 바랐고, 진정한 배움과 나눔과 만남
의 장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렇기에 아이들과 상의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해 잘
지켜나가자고 약속했다.
아이들은 이 모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1기 모임 아이들은 2003년부터 2004년
까지 거의 매주 한 번씩 모여 그림책과 동화책과 국내외 소설과 역사, 철학, 종교, 과
학 책들을 읽어나갔다. 물론 아이들의 책읽기 능력이 천차만별이어서 유교에 대한
책을 읽더라도 어떤 아이는 「만화중국고전」(채지충 글・그림, 대현출판사) 시리즈
가운데 공자와 맹자 관련 책만 읽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모로하시 데쓰지의 『공자 노
자 석가』(동아시아)뿐 아니라 『공자 속의 붓다, 붓다 속의 공자』(박민영 지음, 들녘)
까지도 읽는 아이가 있기도 하고, 글을 쓸 때도 어떤 아이는 반쪽도 안 쓰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두 쪽을 빽빽이 쓰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모두 모임을 하기 전에 비해 책
을 더 많이, 잘 읽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글 솜씨도 늘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모임이 조금씩 흔들거렸다. 한 아이는
학교 공부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며 탈퇴하고, 네 명의 고등학생 역시 매월 치러지
는 모의고사에 정규고사로 인해 정신없이 바쁜 탓인지 모임에 빠지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책을 읽고 떠나는 여행’ 프로젝트였다.
책을 읽고 떠나는 여행
무리할 것 없이, 학기별로 독서 기행의 주제를 정해 관련 책들을 각자 알아서 읽은 후
(집에서 각자 읽든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읽든 자유였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는 함
께 모여 그동안 읽은 책에 대해 얘기 나누고 여행할 곳에 대해 더 조사한 후 방학을 이
용해 직접 현장으로 떠나자는 것이었다. 1기 모임 아이들은 이 여행을 너무도 좋아
하여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2년간을 통해 5차례의 독서기행을 함께 했다. 아이들
이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다산과 영랑과 고산의 숨결이 넘실대는 강진과 해남이었다.
아이들은 이 여행을 위해 다산과 영랑과 고산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찾아 읽었다. 그
리고 두 번째는 퇴계와 유학에 대해 공부한 후 영주의 소수서원과 안동을 둘러본 후
안동 가까이 있는 영양 주실마을에 들러 조지훈 생가와 문학관을 둘러보고 왔다. 그
리고 세 번째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춘천 실레마을 김유정 문학촌을 찾아갔
고, 이어서 「토지 1~21」와 판소리 관련 책들을 읽은 후 하동과 남원을 찾아가고, 「아
리랑 1~12」과 「태백산맥 1~10」, 채만식과 양귀자, 신동엽을 공부 후에는 김제와 군
산과 부여를 둘러보고 왔다.
아이들은 이 여행들을 준비하며 관련 책들을 각자 읽을 수 있는 만큼씩 적게는 5
권에서 많게는 10권 넘도록 읽곤 했다. 여행 중에도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그날그
날 여행기를 간단히 써서 발표하며 느낌과 생각을 함께 나눴다. 여행 후에는 다시 전
체적인 기행문을 써서 발표하고 각자 찍은 사진들을 가져와 함께 웃고 즐기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함께 경험한 추억들을 되새겼다(더 자세한 내용은 『 책으로 크는
아이들』(백화현 지음, 우리교육, 2010)을 참조하기 바람).
책으로 크는 아이들
1기 모임 아이들은 떠났지만 그 뒤를 이어 우리집에서는 2기 모임 아이들이 4년째
독서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아이들 역시 첫해에는 그림책과 동화책으로부터 시
작했으나 점차 국내외 소설과 역사, 정치, 경제, 과학, 환경, 종교, 철학, 예술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으며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있다. 이 아이들은 1기
아이들과는 달리 여행보다는 탐구 활동을 좋아하는 탓에 방학 때 여행을 하기보다
는 매주 역사 인물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를 정해 탐구 보고서를 써서 발표하며
토론하는 것을 더 즐긴다는 점 말고는 1기 아이들과 비슷하게 활동하고 있다.
나는 이 아이들과의 모임 활동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많은 이들이 오늘날은 인문
학이 죽은 시대라고 말하고, 아이들은 이제 사춘기가 되어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
제로 고민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은 더 이상 ‘정의’니 ‘자유’니 ‘선’이니 하는 ‘정신
적인 가치’들을 추구하지도 않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경쟁’과 ‘능력’만을 외
쳐대는 소수의 권력과 자본에 짓눌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나’를 성찰할 시
간도 없고 ‘너’를 들여다 볼 여유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달랐다. 이 아이
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씩 책을 읽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며
함께 성장해 나갔다. 나와 너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기도 하고 우리 사회를 보다 선하
고 정의롭게 하기 위한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이 아이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든 가능성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굳
이 이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함께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토
론할 기회가 제공된다면 아이들은 배움의 기쁨과 나눔과 만남의 기쁨을 스스로 체
득할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마음과 정신을 쑥쑥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온종일 의자에 앉혀둔 채 교과서와 문제집만을 쥐어주는 어른이 아니라 어떻게 아
이에게 진정한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나눔과 만남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 이제 우리 어른들은 이 문제를 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고 생각한다.
한 술 밥에 배부를 수도 없고, 모두가 같은 방식일 필요도 없겠지만, 책을 좋아하
는 부모라면 가정에서 아이와 아이 친구들을 데리고 독서모임을 운영해 볼 것을 적
극 권장하고 싶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즐기면
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감도 생기고, 그렇게 죽 걷다 보면 아이도 부모도 참 좋
아진다. 이런 작은 독서모임들이 전국 곳곳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우리 아이들이 책
과 함께 쑥쑥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읽어 행복한 사람들. <함께 읽는 사람들>은 가정, 학교, 지역에서 ‘책 읽는 모임’을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작은 책 모임들이 활성화되어 책으로 좋은 세상을 열어 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