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 책을 통해 느끼는 ‘함께’라는 즐거움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15:00 조회 7,064회 댓글 0건본문
직 장 인 월 요 병 치 료 제 , ‘ 맛 있 는 책 읽 기 ’
일요일 저녁, 어느새 주말이 다 가고 내일 다시 출근을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
음이 어두워진다(물론 나는 아주 평범한 교사이며 아이들을 사랑하고, 하루라도 못
보면 입 안에 가시가 돋지는 않지만 아주 많이 보고 싶어 한다. 사실이다). 직장인이
라면 대부분 겪는 월요일 공포증.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케줄을 적어놓은 다이어리
를 확인해보니 나의 희망 ‘맛책’ 모임은 이번 주가 아니라 다음 주다. 이번에 읽기로
한 책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 ‘과거 미지의 대륙을 탐사
했듯이 가까운 미래에 저 세상인 영계를 탐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마
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친 내용인데, 너무 재미있어서 벌써 다 읽어버렸다. 왜 내일이
아니라 다음 주 월요일인 걸까? 누구나 싫어하는 월요일을 남들과 달리 기다릴 수 있
게 만들어 주고, 함께 모여서 한바탕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우리의 소중한 모임 ‘맛책’.
만나서 신나게 떠들 수 있는 다음 주를 기다리며 ‘맛책’이 걸어온 길을 추억해본다.
건강한 책읽기 모임의 탄생
정식 명칭은 숙명여자고등학교 교사 동호회 ‘맛있는 책읽기’, 줄여서 ‘맛책’이라고
부르는 이 모임은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에 시작되었다. 2006년 가을, ‘책을 읽고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몇몇 동료 교사
들이 뜻을 모았다. 역사는 11월 22일 수요일, 손석춘의 『신문 읽기의 혁명』을 읽으
면서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방과 후 요일을 정하기 어려워 점심시간에 도서관 테
이블에 모여서 옹기종기 한 마디씩 나눴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해 신규 임용 교사
였던 나로서는 모임 덕분에 책을 정기적으로 읽게 되는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선
배 교사들과 모임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서 설랬다. 그 후 2주에 한 번씩 책 한 권을 읽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햇수로 5년
간 지속되어 온 모임이 우리 ‘맛책’이다.
강산이 반 정도 바뀔 수 있는 5년 동안 무엇이 우리 모임을 지속시켜 왔을까. 곰
곰이 생각해보니 우선 ‘맛책’에는 가장 평범한 ‘책’이 있다. 2007년 1월 1일, 새 마
음으로 ‘한 해를 바르게 살자’라고 다짐하며 내가 간 곳은 집 주변에 있는 지역 도
서관이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자리를 잡고 반듯이 앉아 ‘맛책’에서 읽기로 한 베르
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꺼냈다. 아마도 모임 책이 아니었다면 절대 내
가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책이 아니었는데, 과학교과 한문정 선생님께서 “어렵긴 하
지만 방학 동안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며 추천해주신 책이었다. 정말로 책장 한 장
넘기기가 영어 단어 백 개 외우기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읽어가기로 약속한 책이
기에 졸며 깨며 꾹 참고 앉아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읽어나갔다. 그렇게 읽어낸 책의
맨 마지막 장을 넘길 때의 희열과 뿌듯함이란. 물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모임에
서 한문정 선생님이 쉽게 설명해주셨다. 게다가 교내에서 우연히 만난 교장 선생님
께서 마침 “새해 첫 날에는 뭐했어요?”라고 물어보셔서, “저는 그날 도서관에 가서
이번에 ‘맛책’에서 읽기로 한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다 읽었습니다.”라
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 후 이 모임을 통해 얼마나 많은 분야의 다양한 책을 읽
었던가. 모임의 다른 선생님들도 스스로는 만나기 어려운, 자기 분야와는 상관없는
책을 읽어가며 새롭게 알게 된 세계의 감동을 이야기해주셨다.
이렇게 모임 구성원들이 형식 없이 자유롭게 추천해서 읽은 책 가운데 내 인생
에 영향을 미친 책들이 참 많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이후의 삶을 강력
하게 변화시킨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진정한 인생 선배가 고전을 통해 깨달
음을 준 신영복의 『강의』, 사회교과 강소연 선생님이 대공황 이후부터 멋지게 정리
해주셔서 현재의 세계경제 흐름을 알게 된 강상구의 『신자유주의 역사와 진실』, 치
기 힘든 공은 무리해서 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
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맛책’의 매력을 소개합니다
‘맛책’ 모임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가장 먼저 우리 모임의 고정 장소, 바로 숙명
여자고등학교 도서관이 되겠다. 4만 5천여 권의 장서를 소장한 숙명인의 자랑거
리 1순위, ‘숙명 도서관’은 우리 모임의 아지트나 다름없다. 특히 우리 모임의 빛과
소금! 숙명여고 사서교사 예주영 선생님께서 모임의 총무를 맡아주시어 도서관을
더욱 친근하게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작년에 리모델링을 하면서 앉아서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따뜻한 온돌방이 마련되었다. 안 그래도 사랑스러운 도서관에
구성원 모두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도서관에 계시는 두 분의
사서선생님과 도서 동아리 ‘시리우스’ 학생들이 책을 잘 정리해주고, 우리가 활용
하기 편리하게 준비해준 덕분이다.
또 하나의 매력은 ‘함께’라는 점이다. 우리 모임에서 항상 강조하는 부분은 ‘혼자
서 읽는 열 권의 책보다, 열 명이 읽는 한 권의 책이 더욱 값지다’이다. 한 권의 책을 같
이 읽고 와서 나누는 이야기는 무척 다채롭고 재미있다. 내가 읽고 느꼈던 감정을 다
른 구성원이 똑같이 느꼈다고 할 때의 반가움, 이와 반대로 내가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의 새로움, 몰랐던 지식을 공유하면서 얻는 깨달음
이 우리 모임의 ‘이야기’ 안에 있다. ‘맛책’의 개성 넘치는 멋진 선생님들과 나누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 읽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책의 매력을 다
시금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크고 중요한 매력은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에 있다. 우리 모
임의 가장 큰 특징은 세대를 아우르는 모임이라는 점이다. 보통 같은 직장에서도 또
래끼리만 어울리게 되고 다른 세대와는 자연스럽게 소통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데 비해, ‘맛책’ 모임은 20대부터 40대 이상의 선생님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사실 책을 읽고 만나서 그저 책 이야기만 한다면 어찌 정감 넘치는 모임이 되겠는
가. ‘맛책’의 구성원들은 가벼운 이야기부터 깊은 고민까지 나누고 한바탕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푼다. 또래끼리 나누는 공감대도 좋지만 인생 선배님들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배우며 나와 같은 젊은이들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물론 선
배 선생님들도 모임을 통해 여전한 젊음을 유지하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고
계시지 않을까(순전히 내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모임의 선생님들을 참 좋아
한다.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선생님들이다.
맛있게 책읽는 방법하나, 저자강연회
‘맛책’에는 저자 선생님이 두 분 계신다. 『수학 멘토』, 『수학 철학에 미치다』의 저자
인 수학교과 장우석 선생님과 『과학 선생님, 프랑스 가다』, 『과학 선생님, 영국 가다』
의 공동 저자인 과학교과 한문정 선생님이 그 주인공이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두 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은 당연하다.
외부에서 저자를 섭외해 온 적도 있다. 인근에 있는 중동고등학교에 재직하고 계
신 『철학, 역사를 만나다』의 저자 안광복 선생님이다. 가까운 곳에 계셔서 반가운 마
음에, 거절하셔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전화를 걸어 부탁드렸는데 승낙해
주셨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책에 관한 질문도 하는 아주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그 밖에도 함께 읽은 책의 저자 강연회가 열려 함께 찾아간 적도 있다. 시대의 이
슈가 된 책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는 무척 지적이셨고, 모임 선정도서는 아
니었지만 함께 읽고 연애의 지침으로 삼기로 한 책 『호모 에로스』의 작가 고미숙 씨
는 직접 뵈니 도통하신 분 같았다. 비록 나는 가지 못했지만 『고민하는 힘』의 저자 강
상중 씨 강연회도 사람됨이 느껴지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사실 강연회 가는 길
은 우리끼리의 나들이도 되기에 더욱 재미있다. ‘맛책’을 통해 좋은 이야기를 참 많
이 듣고 다녔다.
맛있게책읽는 방법둘, 나들이와 문화체험
책을 통해 성숙해진 몸과 마음은 만물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시간이 되
면 봄, 여름, 가을, 겨울맞이 나들이를 간다. 물론 가벼운 책을 읽고 이야기 주제를 잡
아 가면 금상첨화. 날씨 좋은 봄날에는 칼국수를 먹고 양수리에 가서 바람을 쐬며 이
야기를 나눠보고, 단풍 가득한 가을에는 미사리 조정경기장 잔디밭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4월에는 동동주와 함께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이야기했다. 역
시 모임 이름처럼 맛있게 책을 읽는다. 1박 2일 동안 밤을 새며 책을 이야기하자는 멋
있는 명분으로 떠났다가 결국은 고기를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MT도 수차례 있었다.
또 영화도 보고, 그림 감상도 한다. 모두 책읽기와 연결되는 활동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나서 마침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열린 고흐 전을 함께 관람했
다. 그림을 그릴 때 주고받았던 편지를 읽고 나서 본 고흐의 작품은 그 의미가 배가되
어 감동의 절정을 맛보았다. 이 밖에도 르느와르 전, 루오 전 등 좋은 전시가 있을 때
는 함께 미술관에 가서 문화적 감수성을 높였다. 또한 책읽기는 ‘영화’와도 연결된
다.
좋은 책을 읽고 이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 있을 때, 또는 반대로 어떤 선생님이 영
화를 너무 재밌게 보고 오셨는데 마침 원작이 있는 작품이었을 경우 영화와 책읽기
모임의 경계는 무너졌다. 심지어 영화를 열심히 볼 때는 2주 간격인 모임 사이사이
월요일마다 모이기도 했다. 그러면 매주 월요일이 ‘맛책’ 모임인 것인데, 피곤하기
보다는 오히려 월요일을 힘차게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책을 통해 느끼는 ‘함께’라는 즐거움
아무튼 내일은 ‘맛책’ 모임이 없는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이다. 내 삶의 활력소 ‘맛있
는 책읽기’ 모임은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마음을 열게 해주었
다. 비단 학교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여러 직장에서 ‘동호회’라는 이름으
로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모이기 위한 구실로 지식과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
는 ‘책’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을까.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만나면 얼마나
내면이 풍성해 질 수 있는지 그 증거가 바로 우리 ‘맛있는 책읽기’ 모임이 아닐까 싶
다. 벌써 다음 주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함께 읽어 행복한 사람들. <함께 읽는 사람들>은 가정, 학교, 지역에서 ‘책 읽는 모임’을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작은 책 모임들이 활성화되어 책으로 좋은 세상을 열어 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