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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집에 가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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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14:13 조회 6,42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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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78년의 일이었다. 1978년이라…… 마치 고대 수메르나 이
집트문명, 정도를 떠올리는 기분으로 나는 중얼거려 본다. 정말이지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리고 정말
이지 내가 자란 곳은 도서관과는 거리가 먼 공업도시였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공장과 공해가
가득했던 그 도시에 크고 작은 도서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도 그야말로
‘도서관’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지어졌다. 도서관이 뭔가요 선생님? 유익한 책을 모아둔 곳이란다. 도
서관도 생겼으니 이제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제 정말 큰일 났구
나, 라는 생각을 하는 소년이었다. 나라는 인간은, 하여간에!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나는 멀뚱멀뚱 도서관이란 건물을 구경만 하던 소년이었다. 방과 후엔 늘 운
동장에서 공을 차던 때였으므로 더더욱 그랬다. 간혹 그쪽으로 공을 주우러 갈 일이 생겨도 온몸이 쭈
뼛거렸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마치 공부라는 무기로 지구의 아이들을 학살하려는 화성인
들의 전초기지에 다가가는 심정이었다. 그런 도서관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소나기 때문이었다.

집이 가까운 아이들은 뿔뿔이 도망가고 텅 빈 운동장을 혼자서 배회했었다. 교실로 가는 문은 잠겨있
었고 문이 열린 곳은 오로지 도서관뿐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비를 피하려 도서관의 육중한 샷시문을
열어야 했다. 맙소사! 성 베네딕토 성당보다 더 고요한 실내에는(가본 적은 없지만 그런 기분이었다)
이미 화성인들의 앞잡이가 된 여자아이들이 잔뜩, 앉아있었다. 땀 냄새가 심한…… 게다가 비를 맞은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를 아이들은 흘끔 쳐다보았다. 뭘 봐 이것들아! 그런 심정으로 나는 묵묵히 빈자
리에 앉아 멀뚱멀뚱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는 쉽사리 그치지 않았고, 도서관은 마치 무덤 속처럼 고요
했다.

당장 공이라도 튕기며 책상 사이를 누비고 싶었지만, 저 멀리 앉아있는 담당교사의 존재를 무시
할 수 없었다. 만약 소란을 피운다면 벌떼처럼 몰려온 여선생과 여자아이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이라
도 박힐 분위기였다. 아아! 이보다 끔찍한 곳이 있을까, 결국 얼굴을 묻고 나는 쿨쿨 잠이 들었다
집에 가서 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여선생이었다. 침을 닦으며 정신을 수습하고 보
니 화성인의 전초기지가 문을 닫는 시간이었다. 아아 하고 공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맑게 하늘
이 개어있었다. 비교적 상쾌한 정신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도서관의 용도
하나를 가슴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잠자기 정말 킹왕짱 좋은 곳이야!’였다. 그랬다. 나
는 그 후로 매일같이 도서관을 애용하는 소년으로 변해있었다. 매일같이 공을 차고, 땀을 말리며 잠을
자던, 그 꿈같은 여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곳은 더없이 시원했고, 또한 누구도 떠들지 않았으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나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았다. 여름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될 즈음
에는 나는 이미 도서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집에 가서 자! 입이 아팠던 처녀
선생님 역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어쩌면 나는, 화를 내기엔 너무도 귀여운 소년이 아니었
을까…… 지금의 나는 조심스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잠자는 도서관의 소년! 이 무슨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도 어울리는 한 쌍이란 말인가!

서늘해진 가을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었고, 어느 순간 아무리 엎드
려 있어도 갑자기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잠이라도 부르려는 기분으로 나는 한 권의
책을 뽑아들었고, 그것은 지금도 생생한 1976년판 계림문고 『괴도 루팡』이었다. 루팡과 홈즈, 서유기
와 수호지, 집 없는 천사와 소공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나는 한 권 한 권 계림문고를 읽어나
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최초의 독서였고, 기나긴 독서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긴
세월이 흘렀다. 나는 작가라는 인간이 되었고, 지금도 가끔 그 작고 고요했던 지방학교의 도서관을 떠
올린다. 나를 작가로 만든 것은 어쩌면 그 도서관이 아니었을까? 작업실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글
을 쓰는 새벽이다. 졸음이 몰려온다. 집에 가서 자! 다정하게 어깨를 흔들던 그 목소리가 그립고 또 그
립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도서관들은 몰래, 또 틀림없이 내일의 작가들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잠든 소년들을 깨우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선생님, 그리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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