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교사 하늘을 꿈꾸는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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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4 22:09 조회 5,672회 댓글 0건본문
나는 나무를 좋아한다.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고 가지를 하늘 높이 뻗쳐 올린 그 모습은 너무 멋지다. 하늘을 꿈꾸는 그 자세야말로 내가 나무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다. 나무의 가지와 그 끝에 달린 열매를 보면 나는 그 뿌리가 어떻게 땅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뿌리가 튼실해야 땅 위로 드러난 나무의 모습도 당당해 보이는 것이다.
나는 독서를 나무의 뿌리에 거름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부지런히 거름을 주어야 나중에 그 나무는 열심히 이파리와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평소 열심히 독서를 해야 나중에 알찬 열매를 딸 수 있다. 창의력은 독서에서 나온다. 문학이나 예술뿐만 아니라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비롯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산업의 원동력은 창의력에서 비롯된다. 나무의 열매에 아름다운 색깔과 향기와 맛을 내게 해주는 것이 창의력이라면, 그 창의력을 샘솟게 하는 것이 바로 독서인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책 한 권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배우다 둔 필사본 천자문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학교에 도서실조차없어 동화책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다 고향에서 50리나 떨어진 읍내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비로소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이종사촌 여동생 집에서 하숙을 했는데, 그 집에는 마침 책이 아주 많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부부가 사는 집이었다.
그 집 남편은 군대에 입대하였고, 내게 아줌마뻘인 아내는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대학 때 사서 읽던 책들이 결혼 후 한 집으로 들어오자 제법 장서다운 면모를 갖추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장서라고까지 할 수도 없는 규모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그렇게 책이 많은 집을 처음 보았던 것이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외지에서 온 유학생이라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심심하던 차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책을 손에 잡았던 모양이다.
중학교 때 나의 독서법은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었다. 누가 옆에서 독서법을 지도해주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나갔다. 『삼국지』, 『수호지』,『열국지』 등 중국의 대하소설들을 비롯하여 박종화의『자고 가는 저 구름아』 등 역사소설을 마치 폭식하듯 읽어치웠다. 뭣도 모르고 『금병매』를 읽다가 교사인 아줌마에게 들켜 “어린애가 벌써부터 그런 거 읽으면 못쓴다.”는 핀잔을 듣기도 하였고,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읽을 때는 “네가 그런 어려운 소설을 이해하겠니?”라며 대견스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기도 하였다.
나중에 내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과 동화를 쓰게 된 것도 중학교 때 폭식을 하듯 독서를 한 덕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감히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당시 국군장병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조차 편지지에 다섯 줄 정도 쓰고 나면 더 이상 채울 말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나였으므로, 독서를 좋아하긴 했지만 글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가 사업을 하다 실패하는 바람에, 당시 기성회비도 내기 힘들정도로 우리 집안은 몰락하였다. 나는 대학입시를 포기하고 학교도서실에 파묻혀 책만 읽었다.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특히 그 무렵 신구문화사에서 나온 『전후문학전집』은 내 일그러진 청춘기에 영혼을 살찌워준 양서들이었다. 당시 독서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나쁜 길로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감수성이 예민할 때였다.
때마침 그 무렵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시 단원을 끝낸 후 시 한 편씩 써내라고 하셨는데, 그때 내가 써낸 시가 선생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시를 잘 쓰는 학생 몇몇을 모아 작은 공부 모임을 만들어, 학과 시간 이외에 별도로 시를 가르쳐주셨다. 당시 가정의 파산으로 방황하던 나에게 어두운 길을 비춰주는 등불이 되어준 것이 바로 시였다. 나는 매일 시를 몇 편씩 썼고, 선생님의 칭찬을 들을 때마다 미친 듯이 저 깊고 깊은 문학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나는 대학 전공도 문예창작학과를 택하였고, 늦깎이지만 37세때 소설로 데뷔하여 현재까지 명색이 전업 작가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40세 때 생전 처음 장편동화를 썼는데, 그것이 수상작에 뽑혀 동화작가까지 겸하고 있다.
소설이나 동화나 내게 있어서 글을 쓰게 하는 힘은 중학교 시절부터 폭식을 하듯 책을 읽던 독서 습관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해 가방 속에 늘 책 한두 권쯤 넣어가지고 다녀야 마음이 든든하다. 빈손으로 다니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고, 뭔가 잃어버린 느낌이 들어 무겁지만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하늘을 꿈꾸는 나무처럼 열망을 불태운다. 저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독서의 자양분이 상상력을 발동시키기 때문에, 내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