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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하찮은 것 없으니 한갓된 일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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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7-08 00:07 조회 8,96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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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J군에게,
입춘 즈음에 화암사花巖寺라는 절을 다녀왔다. 안도현 시인이 ‘잘 늙은 절 화암사’라고 했던 그 천년 사찰. 절 입구에 흔히들 있는 일주문도 사천왕상도 없는 절. 그러나 천년의 기품과 기운이 머물러 있는 국보. 그림책 공부를 하면서 그렇게 만난 ‘사람’이 있단다. 바로 『몽실 언니』의 저자 권정생1) 선생님이지. 그분을 몰랐던 어린 시절, 그분이 계신 곳 지척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분의 존재를 몰랐었지. 이제는 이 땅에 계시지 않는 선생님의 그림책을 공부하면서 그분의 존재감은 보물에서 국보가 된 화암사 극락전의 그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분의 이름, ‘정생正生’은 내게 ‘바르게 산다는 것’을 고민케 하고, ‘하찮은 것에게도 그 존재 이유를 묻는 하느님의 존재’를 기억케 하며, ‘만물과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의 의미를 자문케 하는 이정표가 되었단다. 그래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네게 아껴 놓은 보물을 꺼내 놓듯 권정생 선생님을 소개해본다.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신 선생님의 책에는 화려한 존재들은 등장하지 않는단다. 외로운 노인, 거지, 바보, 깜둥 바가지, 늙은 황소, 벙어리, 절름발이 장애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모두 힘없고 소외된 것들이지.2) 오늘 소개하려는 그림책 『강아지똥』3)은 그림책에 등장하기에 민망한 이름이기도 하지. 그러나 하찮은 것이라 불리는 강아지똥에서도 새 생명의 기운이 움트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강아지똥』에 나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한번 잘 들어보렴.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아 버렸어요. 비는 사흘 동안 내렸어요. 강아지똥은 온 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어요……. 부서진 채 땅 속으로 스며들어 가 민들레 뿌리로 모여들었어요. 줄기를 타고 올라가 꽃봉오리를 맺었어요.


1) 권정생(1937.09.10~2007.05.17) 선생님은 일제 때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광복 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가족과 헤어져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등을 했고, 전신 결핵을 앓으면서 걸식을 하다 열여덟 살에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로 들어온다. 스물두 살에 다시 객지로 나가 떠돌던 그는 5년 뒤 이 마을로 돌아왔고, 스물아홉 살 때부터 16년 동안 마을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교회 종지기로 산다. 선생님의 작품 가운데는 『하느님의 눈물』, 『우리들의 하느님』 등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승화시킨 것이 여럿 있다.

2) 아동문학평론가 이재복은 『강아지똥』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강아지똥』이 있기 전까지 우리 어린이들은 대개 왕자나 공주 이야기만을 즐겨 읽어 왔습니다. 그런데 『강아지똥』의 세계는 왕자나 공주가 사는 세계와는 전혀 딴판인, 그 반대되는 세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동화에 웬 똥이 나오고, 왜 그렇게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지요.”
3) 월간 <기독교교육> 제1회 아동문학상 수상작이며, 7차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 「강아지똥」(상영시간 33:43, 이루마 음악)도 한번 보길.



이 대목을 읽으면 나는 눈물이 난다. 강아지똥이 빗물에 ‘스며듦/녹아듦’은 곧 죽음을 빗댄 것이고,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이 화려하게 태어나는 모습으로 읽히기 때문이지. 그러나 이 장면을 그려낸 정승각 선생님4)의 모자이크식 그림을 통해서 나의 눈물은 ‘행복한 눈물’로 바뀐다고나 할까. 강아지똥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교회의 종지기로 평생을 살며 기독교의 화육신化肉身 신앙을 가지신 그분의 글이 불교의 생명 윤회적 사상과 멀지 않음은 나만의 오해일까? 국방부 추천 금서5)로 올랐던 그분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을 읽다보면 오해가 풀릴 거야.6)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살 아래 같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 게 아닌가?”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살던 곳 언덕에 뿌리고 집도 깨끗이 태워 없애 자연에게 돌려주세요.”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유언)
“좋은 글은 읽고 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말씀으로 글을 맺는다. 그의 삶과 글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구나. 그럼 평안을 빌며….




4) 정승각 선생님의 그림은 권정생 선생님의 글과 참으로 잘 호흡한다. 『오소리네 집 꽃밭』, 『황소 아저씨』, 『내가 살던 고향은』 등 두 분이 쓰고 그린 다른 책도 함께 읽어보길.
5) ‘국방부 추천 금서’, 이 말이 재미있지. 국방부 금서에 올려져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추천 필독서’로 알고 이 책을 찾아 읽었다는 출판계의 웃지 못할 뒷담화가 있다.
6)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피가 되고 내 피가 내 이웃의 피가 되고 그래서 인류는 한 목숨 한 핏줄로 이어진 것을 알 때만이 평화는 가능해질 것이다.”(『우리들의 하느님』 63~67). 이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불교의 생명공동체 ‘인드라망’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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