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를 놓아 줄게,
인생책을 만날 수 있도록
김담희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최문희 편집장
“사서선생님, 책 추천해 주세요.” 인터뷰 중간중간 종이 울리고 나면 멀리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말소리. 양해를 구하고 사서실에서 나와 경청하고자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는 모습이 어쩐지 익숙해 보인다. 김담희 선생님 매일의 모습인 듯싶다. 취재를 다녀 보면 도서관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사서선생님에게 편하게 질문하는 학생이 많은 곳일수록 북큐레이션·수업·도서부 프로젝트 등이 활성화되어 있다. 하지만 익산으로 처음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선생님의 지난 시간은 녹록지 않았다. 공무직 사서도 기간제 사서교사도 상주한 적 없던 학교도서관에는 추억의 유물로 불리던 대출카드, 수기로 적힌 청구기호 스티커가 나부꼈다. 업무용 컴퓨터 한 대 없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학교도서관에 시계추를 달고 독서교육의 장으로 단장하기까지 선생님에겐 꽤 지난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익산시 어양동에 자리한 한 공립중학교, 평생독자를 기르는 도서관의 엔진을 다시금 돌리기 시작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 |
익산으로 학교를 옮기신 지 2년 차에 접어드셨어요. 전주에서부터 협력수업 베테랑으로 입소문이 나셨는데, 다른 지역으로 오셔서 적응 시간이 필요하셨을 것 같아요. 학교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제가 전주에서 근무했던 우림중은 혁신학교였어요. 6년 6개월간 일했는데, 워낙 교육 예산이 풍부하고 수업을 하거나 지원하는 학교도서관의 역할을 교과교사에게 알리기 수월했어요. 운 좋게도 여러 동료를 만나 좋은 결과물을 쌓을 수 있었고(『우리가 우리에게: 좌충우돌 혁신 적응기』, 김병관·전주우림중교육공동체), 사서교사로서 여러 수업도 시도할 수 있었어요. 학교 이동 시기를 맞닥뜨리면서 익산 이리영등중으로 왔는데, 제가 지망하는 학교를 쓸 때 1순위로 선택한 곳이에요. 교직 문화가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하지만 작년 2월 중순, 교감선생님께서 도서관 문을 처음 열어 주신 날부터 3월 2일까지 잠을 못 잤어요. 도서관 입구부터 멀리 보이는 데까지 온갖 책과 비품, 쓰레기가 쌓여 있었거든요.
새로 부임하신 이리영등중에서 사서교사가 근무한 적이 없었나요?
네. 제가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첫 사서교사였어요. 기간제 사서교사도 교육공무직 사서도 일한 적 없는 곳이었어요. 주로 중국어선생님께서 도서관 업무를 맡아서 해 주셨는데, 애정을 갖고 일해 주신 흔적이 보였지만 도서관에 상주하는 전문인력으로 근무하신 게 아니기에 한계가 있었어요. 건물도 낡았지만 그래도 지원 당시 살펴보니 교실 세 칸이 넘는 규모의 도서관인 게 눈에 띄더라고요. 가능한 한 넓은 곳에서도 일해 보고 싶었고요. 그렇게 작년부터 이 학교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정한 목표는 ‘도서관으로 보이는 도서관을 만들자’였어요. 제가 처음 학교에 왔던 무렵, 이곳 도서관은 책 창고에 가까웠거든요. 점심시간만 개방한 건 물론 학생들이 대출·반납하는 방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도서관 바깥에 선 상태로 “책 빌릴 수 있나요?”, “도서관 책걸상 써도 되나요?”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래서 도서관의 이용률을 높이는 것을 우선 목표로 잡고 사서교사가 ‘도서관에 왔다’는 걸 홍보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어요. 그리고 올해의 목표는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자’예요. 도서관을 애정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학생이든 교사든 가리지 않고 도서관 서비스를 즐겁게 경험하게 하려고요.
전북사서교사협의회 중등 대표직을 맡으신 바 있죠. 지역 현황을 상세히 마주하셨을 텐데, 전북의 독서교육 분위기와 사서교사 배치율이 궁금합니다.
제가 중등 대표직을 맡았을 무렵에는 중학교 사서교사가 많지 않았어요. 소규모 조직이었기에 세밀하게 현장을 보진 못했지만, 전주의 경우 ‘도서관 도시’로서 여러 인프라를 워낙 잘 갖추고 있어서 학교도서관에서 활용하기 좋았어요. 시립도서관에서 작가와의 만남도 상시 운영해서 학생들을 데려가기 유용했어요. 도서관 프로그램이나 책방들도 많아서 학교 독서교육과 자연스레 결합할 수 있었죠. 익산의 경우 교육지원청의 지원이 우수한 편이에요. 주무관의 개인 역량일 수 있지만, 그분(김란주 주무관)이 학교도서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요. 2022년 기준 전북지역 사서·사서교사 배치율은 20.2%(김병욱 의원실)예요. 전국 시도 중에서도 하위권에서 세 번째인 셈인데, 사서교사 배치율은 18.4%예요. 인근 지역인 광주에서는 배치율이 90.9%인데, 사서교사 배치율은 15.6%예요. 공무직 사서들이 다수인 셈인데, 광주에는 사서교사 신규 발령이 정말 안 나요. 교육청에서 연수를 준비할 때마다 광주에선 공무직 사서가 필요로 하는 것들 위주로 구성한다고 들었어요. 반면 익산은 대부분 사서교사로 이뤄져 있어 저희 요구를 반영하는 편이에요. 지역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보니 분위기나 교육청의 인식도 차이가 나요.
이리영등중 '도담도담' 도서부원들과 김담희 선생님
각 학교 도서부 세 곳이 모여 교류하는 행사를 여셨다고 들었어요. "샘, 다음엔 익산 전체 도서부 불러 주세요~"라고 할 만큼 호응이 컸는데, 어떻게 기획하셨어요?
저는 도서관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봐요. 반 친구들, 다른 학년 학생들, 선생님과 일반 행정 직원, 청소하는 직원 등 교실 밖을 넘어서 다양한 인물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이에요. 그런 공간성을 학교 밖으로 확장해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도서부 일을 하는 다른 학교 친구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고, 서로 도서부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속한 도서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같은 지역 선생님들과 협업을 했어요. 익산에 와 보니, 노은주(현재는 전주에서 근무 중) 선생님께서 자리를 잘 잡고 계셨어요. 은주 선생님 덕분에 익산지역 중학교 사서교사 다섯 분이 모여서 ‘어벤져스’가 만들어졌어요. 모임을 꾸리자 교육청에서 활동을 지원해 주시겠다는 이야기도 듣고, 익산 독서교육 추진단이라는 이름으로 월별 각 학교도서관 탐방 등 다양한 주제별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어벤져스 모임원 중에서 세 사서교사가 논의해 도서부 교류 행사를 열었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각자의 도서관과 도서부 소개를 하는 자랑 타임, 각 도서부 학생들이 준비해 온 게임을 진행하는 게임 타임, 간식을 나눠 먹는 시간으로 진행했어요. 학생들은 새로운 얼굴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신나 하더라고요. 추후 대강당에서 비경쟁 독서토론을 하거나 주제도서를 읽고 독서캠프를 하는 등 행사의 규모를 더 넓혀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블로그에서 “작은 서점 및 문화공간 등 지역 내 인문교육 인프라를 활용한 인문학 나들이”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히셨어요. 그간 지역 인프라를 활용해 온 선생님만의 팁을 알려 주신다면요?
지역 책 공간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기획한 무렵은 전국 단위로 ‘작은 책방 붐’이 일어났던 시기와 겹쳐요. 전주를 비롯해 여러 곳에 동네 서점들이 생겼고 각 서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제가 그 서점들의 주 이용자였어요. 학교도서관의 목표는 평생 독자를 기르는 거잖아요. 저에게는 학생들이 사는 동네에서부터 책과 가까이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많이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학생들이 책과 문화를 알아야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가서도 책을 친근하게 여기는 감수성을 쌓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 지역에 이렇게 재미있는 책들이 모인 서점이 있고, 이 서점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책을 쓴 작가를 불러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너희가 알고 있고 마음만 동하면 책과 얼마든지 가까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주변에 많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요. 그런 목표로 ‘우리 동네 책공간 탐방’ 프로그램을 방학마다 열었어요. 동네에 있는 작은도서관부터 서점, 북카페, 만화 카페까지 책이 모인 모든 공간 정보를 목록화해서 가정통신문에 넣었어요. 방학 중 제가 소개한 책공간 중에서 세 곳 이상 탐방하고 인증사진을 찍어 오면 선물을 주는 미션이었죠. 우림중과이리영등중에서 계속하고 있어요. 제가 학생들을 직접 데리고 가는 경우도 있고요. 특히 지역 책방에서 책을 사 주면 학생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발령받으신 지 얼마 되진 않으셨지만 익산에서 제일 좋아하는 책방을 꼽아 보신다면요?
저도 아직 안 가 본 곳이긴 한데요. ‘두 번째 집(익산시 평동로11길 12)’이라는 책방과 ‘그림책방 씨앗(익산시 서동로8길 50-1)’이라는 그림책 전문 책방이 있어요. 『빈 옷장』, 『남자의 자리』 등 아니 에르노의 책들을 번역해 온 신유진 번역가가 운영하는 ‘르 물랑(익산시 중앙로3길 3)’이라는 카페도 추천해요. 반려자와 함께 운영하는 프랑스식 카페인데, 책이 엄청 많아요. 이런 곳들에 사서선생님들이 먼저 가 보시는 걸 추천해요. 어느 지역이든 그곳 책방 사장님들이랑 먼저 친해지고 나면, 유대 관계가 형성돼서 나중에 학생들을 데려가서 자연스럽게 안내할 수 있거든요.
김 사서교사가 기획한 ‘우리 동네 책공간 탐방’ 안내 포스터, 출처: blog.naver.com/eszes
해외 도서관은 물론, 여러 지역 공공·학교도서관을 탐방하고 계세요. 익산지역의 특색 있는 도서관도 소개해 주세요.
익산시립유천도서관(익산시 동천로 82, 도서 14,400권 보유, 2023년 3월 기준)은 유천생태습지 한가운데 있는 공공도서관이에요. 생태 전문 특화 도서관인데, 일반 장서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학생들과 함께 가기에 제격이에요. 일단 크고 예쁘고, 지은 지 얼마 안 된 곳이어서 벤치마킹할 부분도 많아요. 제 블로그에 썼지만, 학교도서관에 적용할 만한 공간 요소들이 있어요. 벽과 문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은 물론 이용자의 동선을 고려한 공간이 돋보여요. 서가 벽면을 전시 서가로 활용했고 깔끔하게 통일한 서가 안내판 디자인, 철제 격자무늬를 다양하게 배치함으로써 공간별로 차별성 있는 구획을 마련한 점도 학교도서관 리모델링에 적용할 만해요.
학교도서관 공간사업 지원과 관련해 아쉬운 점이 있나요?
도서관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면 좋겠어요. 예산이 적어서 본래 계획했던 리모델링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 종종 생기거든요. 지원액이 깎이면서 벽은 칠할 수 있지만 천장이나 바닥 공사는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요. 또 한 가지, 공직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저희는 지정된 곳에서 조달용품을 구매해야 돼요. 지역경제 활성을 위해 지역 업체만 활용해야 하고요. 서울·수도권에는 인구가 몰려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양한 인테리어를 하는 업체를 많이 찾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역에선 그런 인테리어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요. 교육청을 기반으로 한 공간개선 및 리모델링 사업이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운영되면, 한 업체가 여러 학교의 공간 프로젝트를 모두 맡아서 진행해요. 그러면 여러 학교의 도서관이 모두 똑같은 형태의 공간으로 획일화되는 상황이 벌어져요. 개별 학교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셈이죠. 어느 도서관에 가든지 똑같은 물품과 서가와 똑같은 대출·반납기가 있어서 아쉬워요. 각 개별 학교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도서관 공간 구축 가이드라인을 넓게 세워 줬으면 해요.
학기초마다 전체 교직원에게 협력수업에 관한 연수와 메시지 발송을 통해 꾸준히 수업을 홍보하고 계시죠. 매해 수업을 적극 알린 계기가 있나요?
제가 블로그에 올린 ‘매력적인 자료+읽고 쓰기 도구+사서교사의 팀티칭 3종 세트’는 전보라 선생님의 네이밍에요. 전보라 선생님께선 도서관협력수업의 대가시잖아요. 매년 학기초마다 교과교사에게 각인되도록 홍보하시는 걸 보고, 저도 협력수업을 적극 알리는 방법을 마련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여기에선 ‘제로 베이스’부터 쌓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사서교사의 역할부터 알려야겠다 싶었어요. 사실 사서교사는 비교과 교사 중에서도 가장 소수인 존재예요. 평생 사서교사를 못 만나고 졸업하는 학생, 사서교사를 평생 만나지 못하고 정년퇴직하는 교사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사서교사는 번번이 소수자로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것 같아요. 사서교사라면 굳이 듣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한 번씩은 들어 보셨을 거예요. 신규 시절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했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내성이 생겼어요. 제 역할을 공고히 하는 모습을 보여 주니 그런 말들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렇게 사서교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다가 사서교사가 상주하지 않는 곳에 오니,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끝난 게 아니다. 이런 노력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연거푸 마음먹었던 작년이 유독 힘들었어요.
협력수업을 하기도 전에 사서교사의 존재를 피력하셔야 했군요. 교육당국이 직업적 특별함을 말하지 않은 현실을 구체화하는 대책을 세우는 게 바람직할 텐데요.
또 다른 부담감도 있었어요. 으레 소수자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대표성을 띄게 마련이잖아요. 이곳에서 사서교사로 처음 일하면서 사서교사라는 직업을 욕보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제 일을 사랑해요. 일로서 인정받고 가치 있는 일을 했을 때 만족감을 느껴요. 퇴근 후에도 책방이나 도서관을 다닐 만큼 직업으로서의 자아가 큰 편이에요. 하지만 올해는 일하는 자아를 너무 키우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웃음) 수업 준비차 소설책 한 권을 읽어도, 그 사이에 ‘누가 들어와서 제 모습을 보시면 어쩌지.’ 하는 알 수 없는 강박에 시달렸던 것 같아요.
사방에 눈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선생님도 그런 압박을 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그런 압박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저마저 사서교사가 교과교사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사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힘들었어요. 스스로 내 일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방학을 보내면서 충분히 회복을 했어요. 그리고 올해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저라도 중요하게 생각해 줘야 한다고 마음먹었어요. 스스로에게 그런 말들을 많이 해 주기로 했어요. 내 자신이 나의 중요함을 포기하는데, 어느 누가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동의하겠어요. 각 잡거나 부담을 떠안으려고 하기보다 학생들이랑 같이 재미나고 즐겁게 도서관 생활을 하려고요.
“학생들이 제 수업을 받고 난 직후 도서관에 자발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사서교사는 수업에서
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교과선생님과 수시로 협력수업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해요.”
(사진: 교과교사에게 협력수업을 알리는 ppt)
지역에서 근무하며 함께 공부하는 ‘익산 어벤져스’의 활약을 익히 들었어요. 어떤 수업을 연구 중이신지, 차후 함께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어벤져스는 4월은 도서관 행사, 6월은 이용자교육, 8월은 단독수업, 10월은 협력수업 등 월별로 주제를 정해서 격월로 만나요. 올해는 도서관 협력 스터디를 좀더 체계적으로 해 보기로 했어요. 어벤져스 멤버 다섯 명과 전북사서교사협의회에 소속된 분들과 한자리에서 모임을 가질 계획도 하는 중이에요. 동료들과 청소년소설 읽기클럽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오세란 평론가의 평론집을 중심으로, 그 책에 소개된 책을 일 년간 쭉 읽어 왔고요(편집자 주: 모임원들은 오세란 평론가와의 인터뷰를 <함께하는 국어교육>에 싣기도 했다). 올해는 청소년소설을 쓴 다양한 작가들의 책과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을 읽어 볼 예정이에요. 여섯 명이서 돌아가며 주제도서를 선정해서 그 작가의 전작을 읽는 방식으로 진행하려고요. 전북지역 중고등학교 사서선생님들이 하는 활동이라서 지역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사서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기에 앞서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밝히시며 “어쩌면 우리에게 산만한 공부는 필수일지도 모른다.”라고 하셨어요. 산만하게 도전해 보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어떤 분야든 두루 평균값은 해낸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한 가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 같진 않더라고요. 한 가지 일에 재능을 가진 친구를 보면서 특출난 재능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던 것 같아요. 사실 사서교사는 어떤 분야든 두루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편집자 주: 한국민족대백과에 따르면 ‘문헌정보학’의 정의는 “문헌을 수집·조직·축적·제공하는 도서관의 제 현상을 인식하고, 그 원칙·이론·기술 등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서교사는 단독수업과 협력수업만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는 마케팅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레크리에이션 강사처럼 행사도 잘 진행하고, 책도 당연히 많이 알아야 해요. 글쓰기·말하기·토론 교육과 도서관 운영도 효율적으로 해내야 해요. 가히 전방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중 하나를 눈에 띄게 잘하고 싶어서 도서관협력수업을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제가 수업 공부만 하다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더라고요. (웃음) 예컨대 하나에 몰두해 보자 싶었는데, 다른 분야가 재밌어 보였어요. 그게 제 특성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요즘이에요. 여러 분야를 산만하게 공부하는 게 제 적성에 맞더라고요. 한 우물만 파는 사람에 비하면 깊이가 얕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최근 『최재천의 공부』를 읽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지금은 서평 공부에 뛰어들고 있어요. 서평 쓰기야말로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겠더라고요.
서평 공부를 시작하셨다니, 이 또한 일에 열정적인 선생님의 면모로 느껴져요. 퇴근 이후의 삶에서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올해는 제가 그동안 잘 안 읽었던 분야의 책들을 주제별로 두세 권씩 읽어 보려고요. 낯선 분야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직업적으로는 산만한 공부가 될 것 같네요. (웃음) 퇴근 이후의 삶이라… 실은 저에게는 반려견이 있는데, 친할머니가 계시는 광주 집에 살고 있어요. 2009년생 노견이고, ‘단감’이라는 올해 열세 살 먹은 할머니예요. 그래서 광주 집에 가면 할머니 두 분이 계신 셈이에요. 단감 할머니와 제 친할머니를 보면서 노년에 대해 줄곧 생각하곤 해요. 늙음, 질병, 죽음 주제를 다룬 책들도 시중에 많이 나와 있잖아요. 주제를 정해서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만큼 할머니 두 분(?)과 함께하면서 노년에 관한 공부를 찬찬히 시작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