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나라 위해 몸 바친 선열들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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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8-04 17:02 조회 6,397회 댓글 0건본문
전국의 중고생 여러분, 공부하느라 고생 많지요? 혹시 감기 안 걸렸나요? 저는 이번에 혹독한 몸살감기에 걸려 고생을 많이 했어요. 대체 봄은 언제 오려는지 지금 이 글을 쓰는 때는 4월 초인데, 일기예보는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다고 하네요. 몸과 마음 모두 자꾸만 움츠러들지만, 언젠가 봄은 오고야 말겠지요. 여러분도 힘내세요.
오늘은 제가 쓴 책을 여러분에게 소개할게요. 책 제목은 『시로 쓰는 한국근대사 1』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쓴 『시로 만나는 한국현대사』의 속편 격인 책인데, 책 제목 그대로 우리 역사와 관계있는 시나 독자에게 민요, 격문 등에 제가 해설을 붙인 책입니다. 최제우의 ‘검결’로 시작하여 이범석의 ‘기전사가’까지 약 40여 편을 해설했어요. 오늘은 그중 두 편만 여러분들께 소개할게요.
아들 죽은 싸움터에 달려 나갔다 그 싸움 끝나고 왜놈에게 잡혔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참 열이 뻗치지요. 특히 올바른 나라를 만드는 데 가장 책임이 커야 할 분들이 오히려 나라를 망쳐 놓고 있지요.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어요.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명예(노블리스)’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정치가들은 정반대인 것 같아요.
이 책에 나오는 시 중 고은 시인이 쓴 정환직, 정용기 부자에 관한 시를 먼저 소개할게요. 구한말 정환직, 정용기 부자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어요. 정환직은 요즘으로 치면 대단한 고위직이었지만 자기 아들 정용기를 의병장으로 보냈고 아들은 결국 죽음을 당했어요. 아들 정용기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활달하고 용기가 뛰어났으며 정의로운 일에 솔선수범했어요. 민중계몽에 힘쓰던 중 부친의 명을 받고 영남에서 의병을 일으켰어요. 1906년 각지에서 모여든 군중의 추대를 받아 의병장이 되어 산남의진山南義陳의 기치를 내걸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순국했지요. 그러자 정환직 자신도 직접 의병장으로 나섰고 결국 자신도 순국하고 말았지요.
“몸은 죽을망정 마음마저 변할쏘냐/의는 무겁고 죽음은 오히려 가볍도다/뒷일을 부탁하여 누구에게 맡길꼬/생각하고 생각하니 새벽이 되었고나” 아들을 먼저 보내고, 잠시 후 자신마저 처형당해야 할 처지에 놓인 정환직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새벽에 남긴 시입니다. 그새벽에 정환직의 심정은 얼마나 비통했을까요? 정환직의 시 이외에도 이 책에는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시들이 많이 나와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두 겹 세 겹 늘어선 왜적의 경관들 우리의 의열 김상옥 의사를 노리네
다음에 소개하고 싶은 시는 화가 구본웅이 쓴 ‘김상옥 열사’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1923년 1월 22일 이른 아침, 서울 효제동에서 벌어진 김상옥 의사와 천여 명도 넘는 일본경찰 사이의 대치 장면을 그린 시입니다.
서울 효제동에서 태어난 김상옥 열사는 3·1운동 뒤 총독 암살을 계획했다가 실패하고, 그 길로 중국 상해로 건너갔어요. 거기서 김구 선생 등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했지요. 1922년 다시 국내로 들어오기 위해 농부 차림으로 변장을 한 후 압록강철교를 건넜는데, 이 과정에서 경비 중이던 일본경찰을 사살하거나 권총으로 머리를 때려눕히는 등의 격투를 벌인 끝에 국내 잠입에 성공했어요. 그리고 1923년 1월 12일 독립운동 탄압의 본거지였던 종로경찰서를 폭파했지요. 이후 서울에서 일본경찰의 추격을 피해 다니던 중 열흘 후인 1923년 1월 22일 그가 태어난 효제동에서 단신으로 일본경찰 천여 명과 대치하며 시가전을 벌였고, 결국 자신의 총으로 장렬하게 자결했어요. 그는 두 손에 권총을 쥐고 세 시간 반에 걸친 총격전을 벌였어요. 일본경찰 십여 명을 살상하였으나 중과부적, 마지막 남은 탄환 한 발을 가슴에 겨누고 벽에 기댄 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자결했지요. 김상옥 열사의 최후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지요? 일제는 당시 보도를 철저하게 금지했지만 일부 언론은 호외 또는 기사로 김 의사의 활동상을 연이어 보도했고, 보도금지가 해제되자 호외를 발행해 이 사건을 널리 알렸어요. 호외는 일본경찰과 맞서다 자결한 열사의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전하고 있어요. “그는 숨이 진 후에도 권총에 건 손가락을 쥐고 펴지 아니하고, 숨이 넘어가면서도 손가락으로 쏘는 시늉을 했다.”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홀로 무려 천여 명을 상대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김상옥 열사와 같은 애국선열들이 독립된 오늘의 우리 조국을 있게 한 거지요. 몇몇 한심한 정치인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될 소중한 대한민국입니다. 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김상옥 열사의 동상이 있어요. 꼭 찾아보세요.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다른 시들도 나중에 꼭 한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