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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말을 알아들어야 거리를 좁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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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8-04 16:27 조회 5,82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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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아들은 벌써부터 아빠의 품을 떠나려고 한다. 가물에 콩 나듯, 휴일을 이용해 아빠 노릇을 해보려고 하지만 아들은 친구들과 놀 계획만 이것저것 풀어놓고는 하루 종일 감감 무소식이다. 말은 또 왜 이리 엇갈리는지, 아들이 쓰는 말 중에 몇몇은 도무지 뜻을 알아들을 수 없다. ‘쩐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해대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말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래저래 『청소년 사전』의 ‘부모와 아이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는 부제는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조급증, 자녀가 못 미덥다는 증거?
『청소년 사전』은 20년 넘게 ‘고길동 신부’라는 별칭으로 청소년 상담을 해온 서울대교구 조재연 신부가 쓴, 부모를 위한 멘토링 책이다. 가족, 학교, 유혹, 마음 등 네 가지 열쇳말을 통해 부모와 자녀의 대화가 ‘왜’ 엇갈리는지 보여주면서, 평행선으로만 달리던 말의 길에 접점을 찾게 해준다. 조급증의 사전적 정의는 ‘조급해하는 버릇이나 마음’이지만 청소년들이 부모들의 말에서 체감하는 조급증은 ‘자녀가 못 미덥다는 증거’일 뿐이다. 외모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나이인 청소년, 친구들과 한시라도 더 붙어 있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의 심리를 모르지 않건만, 부모들은 그것마저 이해하지 못해 조급증을 낸다.
사실 부모의 조급증은 청소년기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걸음이 느리면, 말이 느리면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 부모 마음이다. 하지만 아이는 제 속도에 맞춰 걷고, 말하고,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조 신부의 조언은 “느린 것이 아니라 제 속도대로 가고 있는 거예요”다. 세상 모든 일에 ‘빨리빨리’라고 외칠 수 있어도 자녀 키우는 일에 ‘빨리빨리’란 어불성설이다.

학교 생활에서도 청소년과 부모의 말과 길은 다르기만 하다. ‘학교 폭력’은 학교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폭력 정도로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청소년들은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상”이라고 말한다. 청소년기 자존심을 누구도 감당 못할 것이기에, 그들은 ‘도와달라’고 선뜻 말하지 못한다. 보복의 두려움도 커서 피해 학생들은 계속 움츠러들기만 한다. 조 신부는 이런 아이들에게, 그리고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단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빨리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요. 두려워서 머뭇거리다가, 주저하다가 때를 놓치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요.”
유혹에 노출되기 가장 쉬운 나이가 바로 청소년기다.

하루 24시간을 학교와 학원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가장 많을 나이 아니던가. 술, 담배, 클럽 등이 청소년들을 유혹하지만 그중 최고는 아마도 게임일 것이다. 『청소년 사전』은 게임을 이렇게 정의한다. “잠시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하는 것이며 조절 가능함. (아마도)” 청소년들은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라는 단어는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성인들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조 신부는 게임 중독을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치료가 필요함을 역설하면서도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하도록 주변에서 도울 것을 강조한다.

자녀와 거리를 좁히는 정확한 처방
청소년들이 겪는 사춘기는 마음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춘기는 마냥 어린이로 살지 않겠다는, 일종의 성장통인 셈이다. 청소년들의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초조하다. 때론 우울하고, 때론 분노의 감정을 다스릴 수 없을 때도 많다. 독특하게도 조 신부는 ‘외모’를 마음이라는 열쇳말에 넣는다. 그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요즘 청소년들은 “눈을 찢어야 하거나, 코는 높여야 하거나, 턱을 깎아야 하거나, 지방 흡입을 해야 하거나, 혹은 모두 다 필요하거나”로 인식한다.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의 단면이 청소년들에게도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외모에 대한 조 신부의 처방은 단순해서 오히려 반갑다. “어떤 눈으로 ‘나’를 보느냐에 따라 자신을 달리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사랑스럽게 보는 눈을 가지게 될 때,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된답니다.” 세상은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면 얼굴에 칼을 대라고 말하지만 그것보다 더 확실한 처방, 그래서 정확한 처방인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청소년 사전』은 조금 투박하지만 청소년기 자녀와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오롯한 처방으로 가득하다.

부모들은 “내 뱃속으로 낳은 아이인데 내가 왜 몰라요”라고 항변하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지금부터 그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주 조금 귀를 기울이면 될 뿐이다. 다 못 알아들어도 좋다. 아주 조금, 자녀들의 말에 귀 기울이면 언젠가 마음을 활짝 열어 보여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청소년 사전』을 읽어 그네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미리부터 알고 있다면 더 쉬워지지 않겠는가. 오늘은 열두 살 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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