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함께 읽는 사람들]책 읽는 모임“이런저런” ― 성미산 마을 아빠들의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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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0-06 18:02 조회 6,576회 댓글 0건본문
대체로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 시작은 우발적이었다. 마흔 고개를 넘어 한창 무르익는 중년의 사내 둘이 마을 카페에 모여서 맥주잔을 부딪치며 중년의 터널을 지나는 낯섦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이런 풍경이야 새삼스러울 게 전혀 없는 심상한 풍경일 터. 그러다 이야기는 이제 막 접어들고 있는 삶의 후반전과 아직 한참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랄 생활 또는 교육 환경에까지 이르렀던 모양이다. 이 두 사람은 이렇게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살아서는 안 되겠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후반부 인생을 고민해야겠다며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나 나누자고 했다 한다. 그리고 내게 함께하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어왔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문예반과 연합독서동아리를 경험하고 대학시절에도 함께 책을 읽고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을 그려왔던 터라 좀 시큰둥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 그 지긋지긋한(?) 책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해낸 고마운 독자(?)들이 반갑기도 했다. 그래서 덜컥 ‘그러마’ 했던 것이 이 모임의 시작이었다.
기실 이 두 사내와 나는 성미산 자락에 깃들어 살면서 아이들 키우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품을 나누었던 성산동공동육아협동조합 성미산어린이집의 조합원들이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의 경험을 가진 아빠들이라면 대부분 그렇지만, 어떤 현안을 두고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낯설지도 않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 뿐 아니라 삶에서 지향하는 가치도 비슷한 점이 많은 터라 이러한 모임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모임의 중심이 ‘술’이나 ‘어린이집의 현안’이 아니라 ‘책’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울 뿐.
2011년 9월 16일, 『스캇 펙 박사의 평화 만들기』를 첫 번째 도서로 골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첫 모임부터 지각한 내가 도착했을 때는 두 사람이 서로 의미를 새길 만한 단락을 읽어 주고 있었다. 일테면 이런 식이다. 한 사람이 아래 구절을 낭독한다.
“공동체는 서로 정직하게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운 개인들, 태연자약한 가면의 이면을 뚫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인들, 그리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기’와 ‘서로 반기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개인이 모인 집단이다.”
나름 공동육아의 경험, 성미산을 중심으로 한 성미산 마을 살이의 경험으로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없지 않은 이들이었지만, 스캇 펙의 정의를 낭독하는 순간, 우리들은 각자의 경험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었고, 우리들이 마주치는 문제의 기원과 그것을 풀어갈 방법에 대해서도 책 안의 제안뿐 아니라 그 이상의 대안을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18년 차 편집자에게 책이 고단한 밥벌이의 수단에서 생각을 바루는 수단으로 바로 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은 격주에 한 번씩 목요일 또는 금요일 저녁 8시에 시작해서 세 시간 가량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자리를 옮겨 술 한 잔 털어 넣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차츰 “아빠들이 모여서 책을 읽는대”라는 소문이 예의 그 성미산어린이집 엄마들 사이에서 돌면서, 선배 조합원과 유대관계를 이어갈 고리도 찾고 아내로부터 칭찬과 격려까지 받아가며 뒤풀이를 즐길 수 있다는 미끼에 주저하던 아빠들이 관심을 보이더니, 급기야 한 명이 자진해서 참석, 모두 네 명의 아빠들이 함께하게 되었다. 처음 네 명이 모인 날 뒤풀이 자리에서 모임의 이름이 정하자고 하자 그 자리에서 술상 위로 멋진 이름 후보들이 차려졌다. 떡 벌어지게 차려진 후보들 중에서 우리는 “이런저런”을 이견 없이 공식 이름으로 선택했다. 제안자의 설명이 그럴싸했기 때문이다.
“모임 이름을 ‘이런저런’으로 제안한 데는 의미가 있어요. 책을 읽고 각자가 떠오른 이런저런 생각을 두서없이 이야기해도 좋은 모임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 하나고요,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생각에 ‘이런~!’, 또는 ‘저런~!’ 하면서 공감을 하자는 뜻이에요. 다양한 생각이 존중 받아야 할 테고, 다양한 기호도 반영되어야 할 테고, 더욱이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공감이란 미덕이 몹시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서요.”
이런 제안에 네 명의 중년 사내들은 이견 없이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런 후 우리는 이 모임을 “이런저런독서모임”, 책 모임 “이런저런”, “이런저런책모임” 등으로 부르고 있다. 역시 이름도 이런저런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이면 먼저 각자 준비한 시를 읽는다. 모임 시작을 시 낭송으로 하자니 처음에는 다들 시쳇말로 “손발이 오글거릴” 만큼 민망해 했으나, 눈을 감고 친구가 골라서 낭송해주는 시 한 수는 어느새 굳은살이 박인 중년의 감성을 포근하고 촉촉하게 적셔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집에서 두 딸과 더러 초를 켜놓고 시 낭송을 한다는 한 아빠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한동안 놓았던 시집을 들추는 재미도 솔찮고, 시가 아니어도 좋은 글귀, 단편동화를 낭송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때가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며, 아마도 이 시간이 있기에 “이런저런” 모임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읽을 책의 주제는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책을 제안하고, 자연스럽게 제안자가 이끈다.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는 터라 더러는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오지만 누구도 타박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삶의 연륜이 그 빈 구석을 채울 수 있기도 하거니와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공감 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어놓은 숨통이 모임의 참여도를 더 높이고 있다는 게 모두의 생각이다. 더불어 모임이 끝나더라도 책은 끝까지 읽는 게 지금까지의 성과라면 성과겠다.
모임 중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자원자가 열심히 정리한다. 물론 그는 책을 꼼꼼히 읽고 그 내용을 A4 7~8매로 발췌까지 하는 모범생(?) 아빠이기도 하다. 그런 자원자 덕분에 별도의 서기를 두지도 않는다. 다들 제멋대로 책을 읽고 느끼며 기록하고 새기는 분위기다. 그 자연스러움과 분위기는 모임 구성원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도 한몫했다. 모임을 시작한 지 석 달째로 접어들 무렵 모임 자리에 새로운 아빠 한 명이 책을 들고 찾아왔다. 그동안 ‘직장 일이 바빠서’라는 이유로 참석은 못하고 모임의 주제 도서를 따라 읽었다는 그도 더 늦기 전에 이 모임에 발을 딛기로 했다 한다. 직장 일은 늘 바쁠 테고, 한 달에 두 번 이 일로 좀 바빠 보겠다는 게 참석자의 첫 소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또 그즈음 마을에 반가운 곳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가 그곳이다. 보리출판사의 지원과 몇몇 뜻 있는 출판사들의 협조로 만들어진 동네책방은 그 품안에 책 읽는 동아리를 품고 싶어 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회원들이 아니었으니, 카페를 떠돌던 우리는 책방에서 자리를 잡고, 우리들이 읽어야 할 책을 그 책방에서 구매하는 의리로 화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공동체를 주제로 한 책, 생태주의와 교육,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책을 10개월가량 읽어왔다. 앞서 얘기한 『스캇 펙 박사의 평화 만들기』,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우리들의 하느님』,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장기비상시대』,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피로사회』, 『모모』, 『학교를 잃은 사회, 사회를 잊은 학교』,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곽재구의 포구기행』까지 우리의 독서 기행은 이어졌고, 이제는 스티브 호킹의 『위대한 설계』에 도전하며 천체물리학과 존재의 근본 질문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 명의 아빠들이 거의 동시에 합류했다. 성미산어린이집을 거쳤던 아빠들만이 아니라 새로운 구성원도 함께하게 되어 이제 말 그대로 마을의 독서모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덟 명의 중년 사내들이 책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는 밤이 깊은 줄을 모른다. 어느새 젊은 시절의 수컷기질은 사라지고 수다스런 아저씨들이 된 모습인 것 같아 안쓰럽다는 아내들의 이야기도 한 귀로 흘릴 만큼, 이 모임을 통해서 청년의 혈기를 느끼고 매번 모임이 기다려지기는 것은 바로 삶을 함께 나눌 친구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저런 모임은 책만 읽지 않는다. 지난 연말에는 “이런저런북콘서트”를 기획해서 다섯 명의 아빠와 그 식구들, 그리고 이웃들을 동네책방으로 초대해서 시 낭송회를 비롯해서 아주 훈훈한 북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아빠들의 책모임을 궁금하게 여기던 가족과 이웃들에게 우리는 큰 박수는 물론 격려를 얻기도 했다. 그 콘서트에 왔던 아빠들 중 두 명이 나중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멋진 성과를 얻기도 했다. 물론 그 콘서트에서도 우리는 ‘초를 켜고’ 시를 낭송했더랬다.
뿐만 아니라 봄볕이 세상의 생명들을 푸르게 불러낼 즈음 우리는 “이런저런봄나들이”도 다녀왔다. 모두들 가벼운 가족 나들이도 자가용을 이용하던 이들이었으나, 그간 생태와 피크오일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고민했던 터라 이번 나들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에너지절약형 나들이로 기획했다. 여덟 가구 중 한 가정이 빠진 일곱 가구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짐을 들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서오릉까지 다녀온 나들이, 나들이에서도 자리에 앉아 참석한 모든 식구들이 시 한 편씩을 낭송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을 이롭게 하고 우리 스스로가 행복할 만한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고 실천하며 지낼 거라 믿는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이 모임은 철저히 구성원들을 위한 모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하거나 교육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행복한 가정을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늘 아이와 가정, 또는 그보다 더 큰 사회적 대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실천을 모색해도 좋은 존재라는 자각을 이 모임을 통해서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부른다. 박사, 낙지, 멋대로, 또치, 참나무, 졸졸시냇물, 차마고도, 짱돌. 나이도 직업도 다 다르지만 서로 의지하고 배우며 실천하고 행복해 하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모임, 이 모임이 이웃들의 가슴에도 이런저런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철석같이 믿는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문예반과 연합독서동아리를 경험하고 대학시절에도 함께 책을 읽고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을 그려왔던 터라 좀 시큰둥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 그 지긋지긋한(?) 책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해낸 고마운 독자(?)들이 반갑기도 했다. 그래서 덜컥 ‘그러마’ 했던 것이 이 모임의 시작이었다.
기실 이 두 사내와 나는 성미산 자락에 깃들어 살면서 아이들 키우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품을 나누었던 성산동공동육아협동조합 성미산어린이집의 조합원들이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의 경험을 가진 아빠들이라면 대부분 그렇지만, 어떤 현안을 두고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낯설지도 않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 뿐 아니라 삶에서 지향하는 가치도 비슷한 점이 많은 터라 이러한 모임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모임의 중심이 ‘술’이나 ‘어린이집의 현안’이 아니라 ‘책’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울 뿐.
2011년 9월 16일, 『스캇 펙 박사의 평화 만들기』를 첫 번째 도서로 골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첫 모임부터 지각한 내가 도착했을 때는 두 사람이 서로 의미를 새길 만한 단락을 읽어 주고 있었다. 일테면 이런 식이다. 한 사람이 아래 구절을 낭독한다.
“공동체는 서로 정직하게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운 개인들, 태연자약한 가면의 이면을 뚫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인들, 그리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기’와 ‘서로 반기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개인이 모인 집단이다.”
나름 공동육아의 경험, 성미산을 중심으로 한 성미산 마을 살이의 경험으로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없지 않은 이들이었지만, 스캇 펙의 정의를 낭독하는 순간, 우리들은 각자의 경험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었고, 우리들이 마주치는 문제의 기원과 그것을 풀어갈 방법에 대해서도 책 안의 제안뿐 아니라 그 이상의 대안을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18년 차 편집자에게 책이 고단한 밥벌이의 수단에서 생각을 바루는 수단으로 바로 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은 격주에 한 번씩 목요일 또는 금요일 저녁 8시에 시작해서 세 시간 가량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자리를 옮겨 술 한 잔 털어 넣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차츰 “아빠들이 모여서 책을 읽는대”라는 소문이 예의 그 성미산어린이집 엄마들 사이에서 돌면서, 선배 조합원과 유대관계를 이어갈 고리도 찾고 아내로부터 칭찬과 격려까지 받아가며 뒤풀이를 즐길 수 있다는 미끼에 주저하던 아빠들이 관심을 보이더니, 급기야 한 명이 자진해서 참석, 모두 네 명의 아빠들이 함께하게 되었다. 처음 네 명이 모인 날 뒤풀이 자리에서 모임의 이름이 정하자고 하자 그 자리에서 술상 위로 멋진 이름 후보들이 차려졌다. 떡 벌어지게 차려진 후보들 중에서 우리는 “이런저런”을 이견 없이 공식 이름으로 선택했다. 제안자의 설명이 그럴싸했기 때문이다.
“모임 이름을 ‘이런저런’으로 제안한 데는 의미가 있어요. 책을 읽고 각자가 떠오른 이런저런 생각을 두서없이 이야기해도 좋은 모임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 하나고요,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생각에 ‘이런~!’, 또는 ‘저런~!’ 하면서 공감을 하자는 뜻이에요. 다양한 생각이 존중 받아야 할 테고, 다양한 기호도 반영되어야 할 테고, 더욱이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공감이란 미덕이 몹시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서요.”
이런 제안에 네 명의 중년 사내들은 이견 없이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런 후 우리는 이 모임을 “이런저런독서모임”, 책 모임 “이런저런”, “이런저런책모임” 등으로 부르고 있다. 역시 이름도 이런저런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이면 먼저 각자 준비한 시를 읽는다. 모임 시작을 시 낭송으로 하자니 처음에는 다들 시쳇말로 “손발이 오글거릴” 만큼 민망해 했으나, 눈을 감고 친구가 골라서 낭송해주는 시 한 수는 어느새 굳은살이 박인 중년의 감성을 포근하고 촉촉하게 적셔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집에서 두 딸과 더러 초를 켜놓고 시 낭송을 한다는 한 아빠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한동안 놓았던 시집을 들추는 재미도 솔찮고, 시가 아니어도 좋은 글귀, 단편동화를 낭송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때가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며, 아마도 이 시간이 있기에 “이런저런” 모임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읽을 책의 주제는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책을 제안하고, 자연스럽게 제안자가 이끈다.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는 터라 더러는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오지만 누구도 타박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삶의 연륜이 그 빈 구석을 채울 수 있기도 하거니와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공감 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어놓은 숨통이 모임의 참여도를 더 높이고 있다는 게 모두의 생각이다. 더불어 모임이 끝나더라도 책은 끝까지 읽는 게 지금까지의 성과라면 성과겠다.
모임 중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자원자가 열심히 정리한다. 물론 그는 책을 꼼꼼히 읽고 그 내용을 A4 7~8매로 발췌까지 하는 모범생(?) 아빠이기도 하다. 그런 자원자 덕분에 별도의 서기를 두지도 않는다. 다들 제멋대로 책을 읽고 느끼며 기록하고 새기는 분위기다. 그 자연스러움과 분위기는 모임 구성원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도 한몫했다. 모임을 시작한 지 석 달째로 접어들 무렵 모임 자리에 새로운 아빠 한 명이 책을 들고 찾아왔다. 그동안 ‘직장 일이 바빠서’라는 이유로 참석은 못하고 모임의 주제 도서를 따라 읽었다는 그도 더 늦기 전에 이 모임에 발을 딛기로 했다 한다. 직장 일은 늘 바쁠 테고, 한 달에 두 번 이 일로 좀 바빠 보겠다는 게 참석자의 첫 소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또 그즈음 마을에 반가운 곳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가 그곳이다. 보리출판사의 지원과 몇몇 뜻 있는 출판사들의 협조로 만들어진 동네책방은 그 품안에 책 읽는 동아리를 품고 싶어 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회원들이 아니었으니, 카페를 떠돌던 우리는 책방에서 자리를 잡고, 우리들이 읽어야 할 책을 그 책방에서 구매하는 의리로 화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공동체를 주제로 한 책, 생태주의와 교육,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책을 10개월가량 읽어왔다. 앞서 얘기한 『스캇 펙 박사의 평화 만들기』,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우리들의 하느님』,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장기비상시대』,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피로사회』, 『모모』, 『학교를 잃은 사회, 사회를 잊은 학교』,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곽재구의 포구기행』까지 우리의 독서 기행은 이어졌고, 이제는 스티브 호킹의 『위대한 설계』에 도전하며 천체물리학과 존재의 근본 질문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 명의 아빠들이 거의 동시에 합류했다. 성미산어린이집을 거쳤던 아빠들만이 아니라 새로운 구성원도 함께하게 되어 이제 말 그대로 마을의 독서모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덟 명의 중년 사내들이 책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는 밤이 깊은 줄을 모른다. 어느새 젊은 시절의 수컷기질은 사라지고 수다스런 아저씨들이 된 모습인 것 같아 안쓰럽다는 아내들의 이야기도 한 귀로 흘릴 만큼, 이 모임을 통해서 청년의 혈기를 느끼고 매번 모임이 기다려지기는 것은 바로 삶을 함께 나눌 친구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저런 모임은 책만 읽지 않는다. 지난 연말에는 “이런저런북콘서트”를 기획해서 다섯 명의 아빠와 그 식구들, 그리고 이웃들을 동네책방으로 초대해서 시 낭송회를 비롯해서 아주 훈훈한 북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아빠들의 책모임을 궁금하게 여기던 가족과 이웃들에게 우리는 큰 박수는 물론 격려를 얻기도 했다. 그 콘서트에 왔던 아빠들 중 두 명이 나중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멋진 성과를 얻기도 했다. 물론 그 콘서트에서도 우리는 ‘초를 켜고’ 시를 낭송했더랬다.
뿐만 아니라 봄볕이 세상의 생명들을 푸르게 불러낼 즈음 우리는 “이런저런봄나들이”도 다녀왔다. 모두들 가벼운 가족 나들이도 자가용을 이용하던 이들이었으나, 그간 생태와 피크오일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고민했던 터라 이번 나들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에너지절약형 나들이로 기획했다. 여덟 가구 중 한 가정이 빠진 일곱 가구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짐을 들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서오릉까지 다녀온 나들이, 나들이에서도 자리에 앉아 참석한 모든 식구들이 시 한 편씩을 낭송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을 이롭게 하고 우리 스스로가 행복할 만한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고 실천하며 지낼 거라 믿는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이 모임은 철저히 구성원들을 위한 모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하거나 교육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행복한 가정을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늘 아이와 가정, 또는 그보다 더 큰 사회적 대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실천을 모색해도 좋은 존재라는 자각을 이 모임을 통해서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부른다. 박사, 낙지, 멋대로, 또치, 참나무, 졸졸시냇물, 차마고도, 짱돌. 나이도 직업도 다 다르지만 서로 의지하고 배우며 실천하고 행복해 하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모임, 이 모임이 이웃들의 가슴에도 이런저런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철석같이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