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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교실 풍경]그게 바로 너야, 아주 멋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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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1-05 16:05 조회 6,44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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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리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경협이가 그런 경험을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경협이는 울면서 말했다. 그랬다. 경협이는 틀림없이 고등학교 1학년 때 행동들을 뉘우쳤고, 고등학교 2학년 이후에 최선을 다해 노력을 다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으나 결과는 자신이 진학하고 싶은 대학에 도전하기 어려운 상황과 만나게 되었다.

네가 좀 알아서 하면 안 되니?
경협이가 중학교 3학년 때, 형 경률이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성적은 좋았으나 몸이 유난히 약한 경률이 때문에 부모님은 초긴장 상태에 있었다. 성적도 무난하고 별다른 특기도 없고 별다른 말썽도 피우지 않고 잘 지내는 경협이에게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다. 경협이가 어떤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부모님이 하는 말씀은 단두 마디였다. ‘뭔데?’, ‘네가 좀 알아서 하면 안 되니?’ 밤새도록 컴퓨터 게임을 해도 부모님은 관심이 없었다. 어느 때는 사흘 내내 아침을 먹지 못한 적도 있었다. 시간이 흐른 후 아침을 못 먹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했다가 심하게 야단만 맞았다. 형이 자주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황이어서 경협이는 부모님을 원망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협이와 경률이는 서로 사이가 좋은 형제였기 때문에 경협이는 철없는 자신을 스스로 나무라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던 중에 권투 도장을 다니게 되었다. 자신의 주먹이 생각보다 세다는 것을 알게 된 경협이는 권투 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꼭 그만큼 성적은 바닥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왔을 때는 최하위권이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3월 중순부터 상황은 벌어지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중학교에서 올라온 남학생들끼리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경협이는 그런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두 학생이 싸우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고, 자신과 같은 중학교 출신인 친구가 무참하게 얻어맞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상대방 친구에게 펀치를 날렸다. 한 방으로 상대는 제압되었고, 경협이는 그 학교 짱이 되어버렸다. 경협이에게 맞은 아이와 경협이 친구가 일종의 ‘결승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경협이는 싸움하는 곳에 자주 가야 했다. 경협이는 싸움을 싫어했다. 그래서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러다가 정말 화가 나면 야수와 같이 강펀치를 날렸다. 그것은 아주 약한 아이가 억울하게 일방적으로 맞을 때였다. 그리고 여러 명이 한 명을 때리는 것도 경협이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 과정에서 경협이는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다. 경찰서에 온 경협이 부모님은 화도 내지 않으시고 한숨만 쉬시면서 경협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곧 집에서 경협이는 또다시 잊혀진 아이가 되었다. 형 경률이가 재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능 시험 전날 병원에 실려 가서 시험을 보지 못한 경률이 때문에 부모님은 또 힘겨운 일 년을 보내고 계셨던 것이다. 다행히 경률이는 시험을 잘 치러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경협이는 두 번이나 전학을 하면서 주먹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아파도 좋다, 너와 함께 있으니까
경협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동생에게 늘 미안해했던 경률이가 도와주었다. 성적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집안에는 웃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성적만 올라간 것이 아니었다. 경협이에게 친구가 생겼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우 친구 태민이었다. 경협이는 ‘태민이의 보디가드’라 불릴 정도로 태민이를 챙겨주었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이었다. 태민이와 경협이 모두 심하게 감기를 앓고 있었다. 걷기가 힘든 태민이를 경협이가 등에 업고 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택시를 타고 가도 됐으나 경협이는 그냥 태민이를 업은 채로 학교에 가고 싶었다. 길은 눈이 얼어서 미끄러웠다. 경협이는 수십 번을 넘어지면서도 태민이를 업고 걸어갔다. 온몸을 열에 시달리며 두 친구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각이었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도착하자마자 조퇴하여 병원 응급실로 함께 가야 했다. 응급실 옆 침대에 누워 있던 태민이가 경협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협아, 아파도 좋다. 너랑 함께 있으니까.”

경협이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할 말을 왜 네가 하니?”
그날 경협이는 지나간 몇 년 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다 녹아 없어지는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선생님. 저 정말 고등학교 2학년부터 열심히 공부했어요. 태민이와 만나고 난 후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데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제 성적으로는 의대를 가기 어려울 것 같아요. 모의고사 점수는 오를 생각을 하지 않구요. 내신은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까지 성적이 너무 좋지 않구요. 선생님, 저 정말 고1 때까지 주먹질하던 김경협이 아니거든요. 저 변했거든요.”
“그랬구나. 경협이는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하는구나. 경찰서 들락거리던 김경협이와 모범 청소년 표창을 받게 된 김경협이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예. 정말 노력 많이 했어요, 선생님. 근데 잘 안 되요.”
“누구 때문에 그렇게 노력을 했니?”
“예? 저 때문이죠. 제가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서….”

“그래? 그런데 그렇게 노력했는데, 왜 지금 힘들어야지? 자신을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 어느 정도는 즐거운 기분이 들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제가 억울해요. 그렇게 노력했는데 왜 저는 의대를 갈 수 없는지 모르겠다구요.”
“내 생각을 조금 이야기해도 괜찮을까? 내가 보기에 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보여지거든. 중학교 3학년부터 현재까지 너는 늘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어. 주먹질을 하던 경협이나 태민이를 도와주던 경협이나 늘 같은 경협이었어. 물론 의대를 가고 싶은 지금 너도 그렇고 말이야.”

경협이와 나 사이에 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그 시간이 흘러가게 두었다. 경협이의 마음속에서 지나간 시간 속 경협이와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경협이의 긴 한숨을 듣고 난 후 나는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김경협, 네가 돌봐주었던 많은 친구들 말이야. 그 친구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니? 그 친구들 속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누구니?”
한참을 생각하던 경협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제 발견했구나. 그래, 그 사람은 바로 경협이 너였지.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던 외로운 경협이. 네가 진짜로 챙겨주고 싶었던 사람은 얻어맞고 있는 친구들도 아니고 몸 불편한 태민이도 아니고, 바로 너였어.”
경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태민이가 응급실에서 자신에게 한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와닿았는지 알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아직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았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말이야….”
나는 가만히 경협이의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는 정말 멋진 친구라는 거야. 힘든 시간들을 잘 견뎌와서 참 멋진 친구, 자기 아픔을 견디기도 어려울 텐데 그것을 뛰어넘어 자신과 같이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했던 멋진 친구. 너무 억울하고 힘겨운데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아파하고 다른 이에게 와서 아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멋진 친구. 그게 바로 김경협이란 친구야. 이 이야기를 너에게 해주고 싶었어.”
“선생님. 그런데요, 죄송한데요, 제 답답함은 아직 풀리지가 않았어요. 전 의대를 가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마음의 답답함은 풀리지가 않아요.”
“선생님이 다시 한번 질문을 해볼게. 누구를 위해서 가고 싶니?”
“음… 아까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를 위해서 가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예요.”

“그렇구나. 아까와 조금 다르다고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선생님 마음을 경협이가 잘 받아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자, 그럼 이번에는 조금 아픈 질문을 하나 할게. 너는 지금 의대에 가기 어려운 자신의 상황을 왜 나에게 말하니?”
“그건 선생님께서 해결해주실 것 같아서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네가 결정을 해 놓았는데 선생님은 어떤 답을 너에게 줄 수 있을까? 그럼 다시 한번 질문해볼게. 너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나와 지금 얘기하고 있니?”

“음… 잘 모르겠어요.”
“우선순위를 생각해보자. 일차적으로 네가 힘들다는 것을 내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니? 해결에 앞서서 너의 힘든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 것은 아니니? 의대 진학에 관한 것은 그 다음 문제가 아닐까?”
경협이가 또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어색한 표정과 눈물을 함께 보였다.

“경협아. 나는 말이야. 우선 무리를 해서라도 모든 것을 이루고 싶은, 그래야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네 마음속 김경협이에게 그만 힘들어하라고 위로해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가 보기에 아직은 부모님과 고민을 나누는 연습이 부족한 듯싶어. 그러니 네 마음속 연약하고 어린 김경협이를 위해 오늘은 용기를 내서 부모님과 네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어. 형하고도 좋구 말이야. 네 가족들은 완벽한 김경협이보다 솔직한 김경협이를 더 만나고 싶어 할지 몰라.”
참으로 길었던 상담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경협이는 그날 밤새워 식구들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경률이와 일주일 동안 자료를 조사한 후에 의과대학에서 물리치료학과로 진로를 수정했고, 당당히 합격했다. 운동을 잘하고 다른 이들을 보살피는 시간을 가져왔던 경협이와 물리치료학과는 궁합이 아주 잘 맞았다. 나에게 합격 소식을 알리러 온 경협이에게 내가 선물한 책은 만화 『닥터 노구치』(무츠 도시유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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