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가족체험활동]우리 동네 자전거방 아저씨가 가르쳐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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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2-09 17:57 조회 6,964회 댓글 0건본문
마을버스 운전기사를 겸하는 자전거방 아저씨
오늘도 작은딸은 자전거 고치러 가자고 한다. 한번 자전거를 타고 나면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다거나, 핸들이 잘 안 돌아가고, 브레이크가 잘 안 잡히고… 어찌나 고장이 잦은지 자전거 수리하는데 살짝 짜증이 나려고 할 참이었다. 그래도 친구들하고 자전거 타고 싶다는데 더 이상 오늘 내일 미룰 수가 없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자전거 수리점은 오늘도 ‘외출중’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처음 이 마을에 이사 왔을 때 자전거수리점이 있어 반가웠는데 갈 때마다 항상 외출중인 사장님을 보면서 저렇게 해서 장사가 될까 싶었다. 언제나처럼 문 앞에 적혀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해 보니 아저씨는 멀리 나와 있다며 40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하신다. 집에 다시 갔다 오기도 어중간해서 자전거방앞에 있는 평상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한산한 오후 시간, 평상에 앉아 작은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복길아!” 하며 반갑게 외치며 일어난다. 고개를 돌려보니 누르스름한 털에 다리가 짧은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는 거다. 아는 개냐고 물어보니 학교 앞 막창집에 사는 개란다. 딸아이 말로는 동네 떠돌던 개를 데려다 키운 뒤로 막창집이 장사가 잘 돼서 막창집 주인아줌마는 복덩이라고 하면서 ‘복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밥도 푸짐하게 챙겨 준다고 했다. 복길이와 노는 사이 자전거방 아저씨가 오셨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것 같다고 하니 타이어 안에서 튜브를 꺼내서 펌프로 바람을 넣고 물이 채워진 고무대야에 담아 구멍이 난 곳이 어딘지를 확인하셨다. 타이어 안에 튜브가 있는 줄 몰랐던 딸과 나는 무뚝뚝한 아저씨 옆에 쪼그려 앉아 놀라워하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근데, 올 때마다 안 계실 때가 많네요?” 하고 묻자 아저씨는 마을버스를 운행한다고 하셨다. 마을버스 운전기사를 하면서 버스 쉬는 날만 가게문을 여신다고, 오늘은 쉬는 날인데 볼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 오셨다고 한다. 딸과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마을은 창원 시내 외곽이라 시내로 가려면 7번 마을버스를 타고 창원역 쪽으로 나가서 거기서 창원 곳곳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는 7번 마을버스가 자주 다닌다. 아저씨가 마을버스를 운전하고 계셨다니! 반갑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이 대형마트나 인터넷으로 자전거를 사니 동네 자전거방만 해서는 생활이 힘들고 그러니 투잡(two job)을 하시는 것 아니겠는가? 매일 가게 문 잠겨 있다고 한심해했던 마음이 미안해졌다.
구멍 난 튜브에 ‘돼지본드’라는 것을 바르고 다시 펌프로 알맞게 바람을 넣으신 아저씨는 핸들도 봐주셨다. 한쪽 핸들이 잘못 끼워져 있다고 하시면서 손잡이 부분을 통째로 빼서 다시 꽂아주셨다. 브레이크까지 손봐 주시고 구석구석 기름칠도 해 주셨다. 자전거 종합 점검을 마치고 계산을 하는데 아저씨가 5천원을 달라고 하신다. 여기저기 다 수리했는데 5천원이라니 너무 적게 받으시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아저씨께 진심을 담아인사를 건네고 돌아오는 길, 수리된 자전거를 타며 딸아이는 이제부터 자전거 연습을 열심히 할 수 있다며 좋아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엄마, 우리 선생님이 직업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자전거 수리하는 것도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지? 아저씨 너무 신기하다. 돈도 5천원밖에 안 받으시고. 아저씨 진짜 착한 것 같다. 그치?”
딸아이 선생님이 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딸아이처럼 나도 자전거 수리하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감동스럽기도 하면서 그장인의 기술로는 생활이 안 되는 현실이 마음 아프기도 했다. 그날저녁, 자전거방 아저씨가 마을버스 운전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남편과 큰딸도 깜짝 놀라했다.
자전거방에서 자전거 운전면허증으로
며칠 뒤, 자전거 운전면허 시험장! 창원시가 자전거 도시를 내세우면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자전거 운전면허증’을 주고 있다. 학교를 통해 신청하고 정해진 토요일에 자전거 면허 시험장으로 가서 간단한 교육을 이수하면 된다. 요즘 아이들에게 무엇이든지 면허증이나 자격증을 주는 것이 못마땅하기도 하고, 자전거 면허가 뭐 필요할까 싶었는데 가서 보니 자전거 안전교육과 교통표지판 설명, 영상교육 등을 받고 실제로 정해진 몇 군데의 코스(직선코스, 곡선코스, 횡단보도 건너기 등)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것이 있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는 것에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물론 부모가 개인적으로 데려다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럴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아이들은 소외되는 것 같고, 또 각 코스에 서 있는 자원봉사자 중에서 아이들에게 함부로 하는 봉사자들이 있어 화가 나기도 했다.
욕심이 많은 작은 딸은 코스별로 선을 밟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자전거를 모는 탓에 자전거의 속도가 나지 않았다. 멀리서 그걸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 아이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긴장이 느껴졌다.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인 큰딸은 자전거 면허증을 따겠다는 동생을 유난스럽게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보더니 자기도 신청할 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우리 가족은 작은 딸을 기다리며 공원 옆에서 게이트볼을 치시는 어르신들 구경도 하고 요즘 호르몬 때문에 예민하다는 큰딸과 팔짱을 끼고 공원 산책을 하기도 했다.
1시간 30분 정도 지나서 모든 과정을 마친 작은딸이 얼굴이 뻘개져서 돌아왔다. 헬멧이 작았다는 둥, 팔꿈치 무릎 보호대가 갑갑했다는 둥, 동영상 보는데 너무 많이 기다려서 짜증이 났다는 둥, 1시간 30분 동안 쌓인 불평과 불만을 쏟아냈다. 이날 부산에 모터쇼를 보러 가기로 했던 남편은 자전거 면허다 뭐다 해서 오전 일정이 번거롭게 됐다며 내심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혼자서 용을 쓰며 최선을 다한 작은딸을 보고는 미안했던지 수고했다며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한 달 뒤, 학교에서 자전거면허증을 받아 온 작은딸은 그 면허증을 자랑스럽게 거실 책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 면허증을 보고 있으니 자전거와 얽힌 이런저런 일들이 떠올랐다. 딸아이와 같이 자전거방을 가면서 나누었던 이런저런 이야기, 복길이와 자전거방 아저씨, 면허 따는 날의 일들! 다음에 자전거방에서, 아니 마을버스에서 아저씨를 만나면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야겠다. 아저씨 덕분에 우리 아이가 면허증을 따게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