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함께 읽는 사람들]나는 왜 책방 풀무질에서 ‘책읽기모임’을 꾸리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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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2-09 17:52 조회 6,067회 댓글 0건본문
어려움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후원하는 기쁨
책방 풀무질은 20년이 되었다. 난 사람들에게 늘 말한다. 살아오면서 가장 기쁜 일이 두 개 있다고. 하나는 어렵고 힘든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꿋꿋하게 지켜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 아이가 대안교육운동을 하는 배움터에 다니도록 힘쓰는 일이라고.
그런데 책방은 언제부턴가 수험서나 대학 교재를 팔면서 목숨 줄을 잇고 있다. 말로는 인문사회과학 책방이라고 하면서 학력중심사회, 일등지상주의를 지켜주는 책들을 팔아서 책방을 이끌고 있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책방 문을 닫아야 했다. 그리고 책방 일을 하지 않으면 초등대안학교인 삼각산재미난학교를 마치고 이제 중등 과정인 제천간디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는 내 아이 교육비를 댈 수 없었다. 이런 죄스러운 마음에서 생태・평화・인권 나눔을 실천하는 모임에 달마다 오천 원에서 오만 원까지 돈을 내고 있다. 1993년 책방을 처음 열었을 땐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인권운동사랑방, 민주화운동실천가족협의회, 양심수후원회, 전태일기념사업회, 풀꽃세상을여는모임, 기찻길옆작은학교, 밤골아이네공부방, 민중언론 참세상, 오마이뉴스에 돈을 냈는데 이젠 참여연대, 지율스님이 꾸리는 ‘공간초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들야간학교, 유엔아동기금, 굿네이버스, 참교육학부모회, 책방 레드북스, 베트남평화모임 ‘나와우리’, 작은도서관 함께놀자, 용산 수다방, 장기기증운동본부, 약수동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 다솔공부방, 꿈틀작은도서관, 녹색당, 진보신당에 돈을 내고 있다.
사실 책방 풀무질에서 돈을 내는 곳은 위에 적은 것보다 더 있다. 내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개인에게 후원하는 것도 있다. 책방 풀무질에서 여러 곳에 돈을 내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 같아 알리기 부끄럽다. 하지만 굳이 여러 모임 이름을 밝히는 것은 그런 후원은 내가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책방에서 한 권 한 권 책을 사가고 책방에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낼 땐 내 이름을 쓰지 않고 꼭 ‘책방 풀무질’이라고 한다. 아무튼 책방 풀무질에서 달마다 돈을 내는 곳은 30군데가 넘고 50만 원이 넘는다. 20년 동안 낸 돈이 1억 5천만이 넘었다. 큰 기업에서야 그 정도 돈이면 한 번 내는 불우이웃돕기 돈밖에 안 되겠지만 책방 풀무질로선 참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뿌듯하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무지 마음이 어지럽다. 책방에서 책이 덜 팔리면서 책방 살림이 눈에 띄게 힘들어졌다. 그럴수록 책을 팔고 난 책값을 출판사에 주어야 되는데 제대로 주지 못해 빚이 늘고 있다. 때론 책값을 안 준다고 책을 보내지 않는 출판사도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에서는 그런 일이 없는데 수험서를 내는 출판사의 경우 줄 돈이 쌓여서 책을 받으려면 큰돈을 내야 한다. 이런데도 달마다 50만 원 가까이 후원을 하고 있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되새겨 보게 된다. 어쩌면 책방 풀무질이 돈을 받아서 꾸려야 하는데 다른 곳에 돈을 내면서 거짓으로 착한 척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척 괴롭다. 그래서 내가 돈을 내는 곳을 줄여야 하나, 왜 내가 돈을 내는 곳의 활동가나 도서관은 책방 풀무질에서 책을 사지 않을까 원망도 한다. 그래도 아직까진 책방을 연 뒤로 돈을 낸 곳을 한 곳도 줄이진 않았다.
책방에서 돈으로 후원하는 얘기를 길게 했다. 언제가 한 번 꼭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으니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아무튼 책방 풀무질은 힘들지만 꿋꿋하게 꾸리고 있는 것이 내가 사는 큰 기쁨이요, 내 아이가 그 돈으로 스스로와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 배움터에 다니는 것이 두 번째 기쁨이다.
실천하는 삶을 위한 여섯 개의 책읽기모임
2003년 봄, 미국은 이라크를 쳐들어가 그곳 아이들을 무참하게 죽였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책방 일꾼이 뭘 하겠는가. 아침 9시 못 되서 책방 문을 열고 밤 12시까지 일을 하느라 전쟁을 멈추라는 집회에 한 번 나가기 힘들었다. 그때부터 새벽잠을 줄이고 글을 썼다. 돈에 눈먼 어른들이 벌이는 싸움에 눈빛 맑은 아이들을 지켜내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쓴 글이 모여 지지난해에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라는 책으로 나왔다. 책을 낸 뒤에 내 책에 함께 글을 썼던 사람들이 책읽기모임을 꾸리자고 했다. 난 이미 책읽기모임을 몇 개 하고 있어서 더 늘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내 친형도 앞으로 책방이 살아남으려면 인문학책읽기모임을 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책방에 드나들도록 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이렇게 해서 지금 책방 풀무질에서 꾸리고 있는 책읽기모임이 모두 여섯 개다. 철학모임, 고전읽기모임, 소설읽기모임, 시읽기모임, 어린이책읽기모임, 모임 ‘다시’. 모임 ‘다시’는 앞에 다섯 개 모임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 좀 더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였다. 다른 모임들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데 모임 ‘다시’만 두 번 만난다. 모임마다 오겠다고 하는 사람이 50명이 넘는데 실제 오는 사람은 10명쯤 된다. 모임은 책방 풀무질 안에 있는 작은 굴에서 한다. 열 사람 넘게 앉을 수 있다. 저녁 7시에 만나고 7시 30분에 열어서 9시에 마친다. 모임을 마치면 뒤풀이에 간다.
난 책읽기모임을 꾸리면서 모임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어 오지 않아도 좋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게 모두 책이다. 책 한 권 읽는다고 내가 바뀌거나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냥 몸, 마음 가벼울 때 모임에 나와서 모임에 나온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책방 풀무질은 기름진 밭이 되려고 할 뿐이지 씨앗은 스스로가 뿌리는 것이다. 그 씨앗이 그냥 죽어 없어질지 자라서 스스로와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 열매를 맺을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른다. 그래서 난 모임을 10이라고 하면 책읽기는 2, 뒤풀이는 3, 실천하는 삶을 5라고 말을 한다. 누구나 태어나면 아픈 삶을 산다. 시를 쓰는 것도 좋지만 삶이 시인 것이 더 좋다. 혁명가가 쓴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삶 속에서 혁명을 꿈꾸는 삶이 훨씬 아름답다. 그럼 책읽기는 2인데 뒤풀이는 왜 3일까. 책모임에서 책을 잘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책모임을 마치고 그 책을 떠나 한 달 동안 살아온 얘기를 풀어내며 서로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는 자리가 뒤풀이다. 눈과 눈이 마주치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노래를 부르며 이 땅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되새김한다. 뒤풀이에 와서 가까워지면 다음 모임에도 잘 나오고 어려운 책을 읽을 때도 꼭 읽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책을 읽어 오는 사람들은 다섯 가지가 있다. 책읽기모임을 하는 줄 모르고 책방 풀무질에 왔다가 모임 하는 것을 보고 술 생각이 나서 끼는 사람, 그냥 책이름만 알고 오는 사람, 책 머리말만 읽고 오는 사람, 책을 반 쯤 읽고 오는 사람, 책을 다 읽고 오는 사람. 약간 미친 사람도 있다. 책을 읽고 감동해서 스스로 느낌글을 써 온 사람이다.
이렇게 시작한 책읽기모임이 2년을 훌쩍 넘었다. 난 책방에서 하는 책읽기 모임 말고 어린이글쓰기모임, 수유 마을과 종로에서 하는 녹색평론읽기모임 두 개, 7년 째 이어온 환경책읽기모임, 수유리 어린이책읽기모임을 더해서 한 달에 열두 개 모임을 모두 하고 있다. 무척 힘들다. 그럴수록 책방 일은 엉망이 되고 모임마다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마시느라 몸이 많이 축났다. 이런 모임을 하기 앞서 15년 가까이 술을 안 마셨는데 최근 2년 사이에 마신 술로 몸에 살이 오르고 쉽게 지친다. 그래도 모임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덕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책방 풀무질은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날을 맞으러 힘차게 달려 나간다.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을 맞으러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 길에 책방에서 책을 사고 책읽기모임을 하면서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어 무척 기쁘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