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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지은이가 독자에게]속 시원한 글쓰기 한 방 날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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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1-06 18:54 조회 6,05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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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옹이 어머니께,
두 해 전이었던가요? 아들이 글을 대충 써서 걱정이라고 한탄한 게.
“우리 아들이 문장을 만들려고 하지를 않아요. 말인지 글인지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갈겨써요. 심지어 성난 이야기를 쓸 땐 욕을 글로 써요. 어쩌면 좋죠? 이제 중학생인데, 얘 좀 제대로 지도해주세요.”
아들이 글쓰기는 좋아하냐고 제가 물었죠. 글하고는 전생에 원수를 진 일이 있는지 만리장성을 쌓고 산다며 한숨을 내쉬었죠. 용돈을 미끼로 겨우 글을 쓰게 한다고. 아들이 돈에 눈멀어 쓴 글을 한독자에게번 보자고 했더니, 낯부끄러워 보내지 못하겠다면서 보내준 슬옹이의 글. 그 글이 얼마 전 한겨레출판에서 펴낸 『속 시원한 글쓰기』 104쪽에 실렸어요. 책이 나오자 제가 쓴 글보다는 슬옹이 글 칭찬이 더 많습니다.

생각나세요?
“돈 받으려고 제멋대로 갈겨쓴 글이 이 정도면 앞으로 글 쓰라고 다그치지 마세요. 좋은 글솜씨 망가질 수 있으니 절대 글쓰기 공부 시키지 마세요. 중학교 1학년이잖아요. 이때는 슬옹이처럼 열심히 뛰어노는 게 글감이고, 제 감정을 솔직히 말할 줄 아는 게 문장이고, 있는 그대로 옮길 줄 아는 게 글의 얼개 짜기예요.”
답답한 어머니 가슴 달래기는커녕 화를 돋운 건 아닌지, 걱정을 했답니다.

문법이나 맞춤법이 생긴 뒤에 글을 쓴 게 아닙니다. 글을 익힌 뒤에 말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살아남으려니 기저귀 갈아 달라, 젖 달라 땡강 쓰다 말을 배웁니다. 인류가 문자를 쓴 기간도 말만 있었던 역사에 비하면 보잘것없고요. 문법이니 맞춤법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글 이전에 말이 존재했고, 말은 삶에서 비롯합니다. 눈치챘나요? 글과 말, 글과 삶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글자로 글을 쓰지 말고, 인류의 가장 오랜 소통 수단인 입말을 살려 삶으로 쓰자는 말입니다.

수다 떨기 달인도 그 이야기를 글로 옮기라면 볼펜을 쥔 손가락이 굳고, 앞에 놓인 흰 종이보다 더 하얗게 생각이 사라집니다. 글은 말과 달리 뭔가 고상하고, 유식해야 쓸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게 그놈의 숙제로 내준 일기와 글짓기 때문입니다. 검사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생각과 행동을 솔직하게 옮기지 못하는 일기. 맞춤법이 틀리면 빨간 볼펜으로 부끄럽게 만드는 선생님의 ‘열정’이 수다 떨기처럼 쉽고, 놀이처럼 재밌는 글쓰기와 멀어지게 했습니다. 솔직하지 못한 일기를 써야 하고, 쓰지 못하고 글을 지어야 했던 고통. 학교 교육이 원고지 앞에선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글짓기 공부를 시키면 열심히 하지 않는 슬옹이, 억지로 글 한번 쓸 때는 놀이처럼 제멋대로 갈겨쓰는 슬옹이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어머니나 선생님 시키는 대로 ‘글짓기 공부’를 따라 한다면 대한민국 문학의 미래는 깜깜할 테니까요.

『속 시원한 글쓰기』가 출판되고 나서 저는 정신이 없습니다. 이제껏 문학 강의를 듣거나 창작법 책을 붙들고 공부해도 헤어나지 못했던 글쓰기 악몽을 속 시원하게 떨칠 수 있었다는 독자들이 글을 보냅니다. 그 글들을 읽고 답장을 쓰다 밤을 새기도 합니다. 피곤해도 보내온 글을 꼼꼼하게 읽는 까닭이 있습니다. 제 글쓰기 스승은 뻔뻔함이었기 때문이죠. 글만 쓰면 들고 가 뻔뻔하게 ‘자랑질’할 때 싫다 하지 않고 읽어주던 벗들. 그 뻔뻔함을 받아주었던 벗들에게 진 빚을 이제 갚으려고 합니다.


오도엽 시인. 작가


『속 시원한 글쓰기』
오도엽 | 한겨레출판 | 2012

슬옹이 어머니,
『속 시원한 글쓰기』를 슬옹이에게 먼저 읽으라고 하지 마세요. 이 책은 청소년들이 읽기 전에 부모나 선생님들이 먼저 읽어야 합니다. 그 까닭은 책에 담겨져 있으니 주저리주저리 말하지 않겠습니다. ‘논술 시험 볼 일도, 자기소개서 쓸 일도 없는 내가 읽어서 뭐해?’ 이런 생각하지 말고 책을 펼치세요. 옆에서 수다 듣듯 술술 책장이 넘어갈 테니까요. 책을 덮는 순간, 종이를 펼치고 연필을 쥘 거예요. 아이들은 책으로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과 교사의 삶을 보고 배운답니다.
아참, 얼마 전 슬옹이한테서 메일이 왔답니다.

“청소년 기자학교 때 샘이 준 비밀 일기장에 엄마 몰래 글을 쓰고 있어요. 넘 재밌어요^.^ 제 꿈을 샘처럼 건달 작가로 바꿨어요. 샘, 열심히 쓰세요. 제 글이 나오는 순간 샘은 쪽팔려 글 안 쓸 수도 있으니까요. ㅋㅋㅋ”
날이 찹니다. 살림도 인심도 꽁꽁 얼어 몸을 움츠리게 합니다. 힘든 세상, 속 시원한 글쓰기 한 방 날리고 가슴을 쫘악 펴세요. 내 삶을 바꾸고, 세상도 아름답게 바꿀 수 있게요. 고맙습니다.

이천십이년 시월,
가을 한가운데서 오도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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