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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사서의 소리]나의 해고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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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1-06 18:25 조회 5,93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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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달력을 넘기다 두 장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니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싶어 아쉬움에 저절로 한숨이 가늘게 새어 나온다. 올해로 한 학교에서 근무한 지 9년째가 되었다. 내년에도 무사히 근무할 수 있을 것인지 2%가 부족한 확신 속에서 2년 전 해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혹시 내년 계약 해지를 통보받거나 계속 근무를 할지라도 고용 안정이 되지 않는 한 언제든지 해고의 위험에 놓여 있는 사서 선생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동병상련의 마음이 서로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도서실 창밖으로 눈길을 던지자 새삼스레 약간 노란색을 띄며 울긋불긋해진 나뭇잎에 시선이 꽂힌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낙엽이 지고 또 한 해가 지나갈 것이라는 시간의 무상함과 함께 올해는 해고의 위험이 없이 조용히 넘어가 주겠지 하는 스스로의 주문을 마음속으로 되뇌어본다. 2년 전 해고장을 받아들고 처음엔 아무런 느낌 없이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가 잠시 후 갑자기 분노가 솟구치던 때가 엊그제 일처럼 떠올라 또다시 가슴이 일렁거린다. 그랬다. 2년 전 설날이 이틀도 남지 않은 어느 날,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로 설레임과 함께 미소 가득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나는 일주일 전 발령받은 행정실장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마주한 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딱 맞는 얼굴로 황망히 서 있었다.

“이거 발령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좋지 않은 일로 찾아와서 너무 미안합니다.”
행정실장은 슬그머니 내 책상으로 해고장을 내밀었다. 나는 해고장을 쓱 한번 훑어보았다.
“왜 제가 해고되어야 하는대요?”

“아, 저… 내년 학교 예산이 부족해서 사서를 안 쓰기로 했다고 하네요.”
“저희 학교가 사서 지원교인지는 아시죠? 인건비 천만 원이 아까워서 도서실 문을 닫겠다고 한다는 거예요?”
“참, 교장선생님 결정이시니… 저도 어쩔 수 없이 (해고)서류 전달하니 이해해 주십시오.”
해고장 받은 본인보다 더 어쩔 줄 모르는 행정실장이 딱해 보여 더 이상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네, 어쨌든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사인은 못 해주고요, 설날 연휴 동안 생각 좀 해보고 답을 드리겠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해고장의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는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처음 이 학교에 와서 일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며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2004년도에 도서관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각 학교에 도서관이 만들어질 때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사서로 채용이 되어 리모델링만 해 놓고 여기 저기 쌓여 있는 책들을 퇴근 시간까지 넘기면서 한 권, 한 권 먼지를 닦아가며 분류하고 라벨 작업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보냈다. 더구나 3월이 출근일인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보름 정도 빨리 나와 정리해 주기를 원해 일찍 출근해서 일했다. 3월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겨울 날씨처럼 너무 추워 창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곳에서 오로지 도서실을 빨리 개방해야지 하는 일념으로 일만 했었다. 그래서인지 새 가구에 실내 장식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환경이라 화학약품 냄새에 머리가 아프고 목이 아픈데도 그때는 왜 그런지도 모른 채 퇴근 시간이면 병원으로 달려가 약을 지어 먹으며 한 달을 보냈던 거 같다.

어쨌든 3월 중순 모든 책을 서가에 정리해 놓고 아이들을 맞을 준비가 다 끝나자 지역 교육장을 모시고 개관식까지 성공적으로 치렀다. 아이들이 도서실에 와서 서가를 살펴볼 때면 뿌듯한 마음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14회가 넘도록 실시했던 독서교실이며 교과연계 도서목록을 만들기 위해 반년 동안 자료를 모으고 도서를 살펴보는 일, 매월 행사를 만들어 아이들을 도서관에 오게 했던 여러 가지 일들, 이제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체계가 잡혀 제 집 드나들 듯 편안하게 도서실에 오게 된 과정들이 머릿속에서 아우성을 치며 순간순간 지나가고 있었다.

이천오백 일이 넘는 시간 동안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내 인생의 몇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장소에서 이제 반년밖에 같이 근무한 적이 없는 교장이 종이 한 장으로 나를 도서실 문밖으로 내치려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말대꾸와 도서목록
전해 2학기에 부임한 교장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별로 좋지가 않았다. 퇴근 시간 무렵에 갑자기 도서실에 오신 교장선생님은 서가를 한 바퀴 휙 둘러보시고는 “왜 이리 전집류가 많은가요?”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셨다. 순간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셔야 할 것은 아셔야 된다는 생각에, “전집류는 사서가 근무하기 전 구입된 책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꼭 전집류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책들은 전집류로 구입하는 게 좋은 것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세계 문학 전집이라든가 위인전 등은 낱권으로 구입하기보다 전집으로 구입하는 게 더 좋습니다.” 했더니,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인상을 쓰며 “전집류 사지 말라면 사지 마세요. 어디다 대고 말대꾸하는 거야!” 하고는 한번 힐끔 쳐다보며 휑하니 도서실 문을 나가시는 게 아닌가.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어처구니없는 눈길로 교장선생님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었다. 말대꾸라… 의견을 이야기하는 게 말대꾸라면 이 사람에게는 앞으로 무조건 예스맨이 되어야겠구나 싶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도서를 구입하기 위해 수서목록을 열심히 만들어 결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교장실로 호출되었다. 잠깐 앉으라며 불쑥 내미는 게 30장이 넘는 도서목록을 주면서 이번 도서는 이 업체에서 사라고 하시는 거였다.
“수서목록은 이미 담당선생님께 넘겼고요, 도서 구입은 행정실에서 업체를 정하기 때문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실장님과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는데, 이 목록으로 다시 작성해서 결재 올리세요.”

교장선생님이 건네준 도서목록을 받아 도서실에 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출판연도가 오래된 전집류도 있었고 이미 도서실에 소장된 도서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 목록으로는 도저히 도서를 구입할 수 없어서 담당선생님과 의논하니 그냥 도서실에 없는 것으로 하여 목록 작성을 다시 하라는 것이었다. 본인도 교장선생님께 말씀 못 드린다 하면서…. 예전 같으면 도서선정위원회에서 이 도서는 불가하다는 의견이 있어 구입 못하겠다고 하면 넘어갔는데 이 교장선생님이 부임하면서부터는 도서선정위원회는 아예 없이 형식적으로 문서가 만들어져서 제동 걸 여지가 없게 되었다. 담당선생님조차도 건의할 수 없다 하니 그냥 목록에 맞추어 다시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도서실에 소장되어 있지 않는 책들로 목록을 작성하다보니 교장선생님이 주신 목록보다 한참 못 미치는 도서들을 구입하게 되었고, 결국 결재를 안 해주신다는 담당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도서실에 소장되어 있는 목록과 없는 것으로 구분하여 교장선생님이 주신 목록에 표시하여 내미니 그때서야 마지못해 결재해주는 일도 있었다.

그대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니 반년 동안 같이 근무하면서 교장선생님과 크게 부딪힌 일은 위 두 건 말고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뭐가 못마땅하셨을까? 어쨌든 해고장을 받아 든 나는 그래,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둔다 생각했다가도 아니, 그래도 7년을 근무했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종이 한 장으로 나가라 하는 것은 너무한 거 아닌가? 두 가지 생각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주위의 친했던 선생님들도 위로의 말은 건넬지언정 누구 하나 나서서 도서실이 꼭 있어야 된다거나 그동안 열심히 일했던 사서의 수고를 위해 대변해주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답답한 마음과 함께 그동안 보냈던 시간들이 너무 덧없어 마음이 더욱 가라앉았고 이대로 그만두고 나간다는 것은 분하고 억울하다는 마음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7년을 근무했는데, 20년 넘게 학교에서 보낸 교육자라는 분이 정말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추신 분이라면 사서인 나를 불러서 내년 예산이 부족하여 재계약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정말 고생했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하셔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랬다면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 인생의 몇 페이지를 차지했던 수많은 시간을 종이 한 장으로 대신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이대로 조용히 나갈 수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리라 결정했다. 어차피 내가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당해고 신청기간 동안 고용보험에서 주는 실업급여를 타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면 될 것이었다.
설 연휴가 끝나기 하루 전 행정실장에게 전화를 했다.

“실장님, 내일 아침에 출근하시면 교장선생님께 전달 말씀 부탁 드립니다. 제가 직접 뵙고 말씀 드릴 수도 있지만 감정이 격해지면 목소리가 높아져서 서로 얼굴 붉히고 나중에 뵙는 것도 어색할 것 같아서요…. 일단 저는 노동부에 부당해고신청서를 낼 겁니다. 그러면 심사 기간이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네요. 부당해고 결정이 되면 학교는 무조건 저를 채용해야 하고요, 심사기간 3개월 임금도 줘야 합니다. 또 사서 지원이 해지되었기 때문에 전액 학교 예산으로 저의 임금을 줘야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내일 오전 중으로 노동조합에서 교섭 들어갑니다. 준비하시도록 말씀 드려 주세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다음날 결연한 마음으로 학교에 출근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교장선생님의 호출이 있어 내려가 보니 행정실장과 함께 앉아 계셨다.

“사서선생님, 올해는 일단 근무하기로 합시다. 예산은 다른 데서 충당해 보기로 했어요.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말고 잘해 봅시다.”

해고장을 받아든 며칠 동안 속앓이를 했던 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시간에 다시 복직이 되는 상황에 적응이 되지 않아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교장선생님은 퇴직을 일 년 남겨둔 상태에서 노동부 심사라든가 노동조합 교섭이 부담스러웠을테지. 내가 쉽게 포기를 하지 않고 나의 권리를 찾겠다는 결심을 하면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구나. 교장실을 나오면서 한편으론 올해 근무를 하면서 또 어떤 일로 꼬투리를 잡아 힘들게 할까 내심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어쩌랴, 또 헤쳐 나가야지 싶었다.

해고 사건 이후 교장선생님이 바뀌고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허울 좋은 무기계약자로 고용이 불안하기는 일 년 근무한 사람이나 십 년 근무한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 조건이다.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학교의 희망이 도서관이라는 말은 누구나 동감하고 또 쉽게 말하지만 학교장의 마인드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도서관 운영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일뿐이다. 존 테일러 개토의 『교실의 고백』(민들레, 2006)에 나온 글로 평생 교육에 이바지하는 사서와 도서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

“도서관 사서와 학교 교사의 차이점은, 사서는 진짜 독자들을 관리하는 사람이고 교사는 교과서와 계약된 독자들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책은 교육을 하지만 교과서는 훈련을 시킵니다. 따라서 도서관과 도서관의 운영 방법은 학교 교육의 개혁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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