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교사의 책]문화, 하루하루 쌓여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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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1-06 18:24 조회 7,041회 댓글 0건본문
“엄마가 신경 쓰지 않아도 우리 아이가 혼자 알아서 책을 잘 읽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매년 학부모 독서교육 연수에서 어김없이 이 질문이 나오면, 도서실은 웃음바다가 되곤 했다.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겸연쩍었으니까 말이다. 솔직히 아이의 독서 습관은 가정환경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면서도 물은 것 아니겠는가. 손 안 대고 코 풀고 싶지 않은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엄마가 신경 쓰지 않아도, 잔소리하지 않아도, 아이 혼자 알아서 TV랑 컴퓨터 끄고, 알아서 숙제하고, 알아서 책도 읽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냐 말이다. 아마 나도 우리 꼬맹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눈에 불을 켜고 ‘하루아침에 스스로 책벌레 되는 방법’을 찾아 헤맬지 모르겠다.
그래서 차마 “부모님이 먼저 책 읽기를 좋아하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고민 끝에 부족한 답이나마 찾은 것이 ‘전통문화’라는 단어였다. 김치를 먹고 남향집을 선호하는 우리네 전통문화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것처럼, 가정에서 책 읽기도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보곤 한다.
아빠와 3218일 동안 매일 책 읽기
다음에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이 책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 좋을 듯싶다. 매일 밤 딸에게 책 읽어주기 ‘전통’을 만든 아빠와 따알~(개콘 버전)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이들은 참 대단하다. 아주 간단한 규칙, ‘12시 전 10분 이상 아빠가 책 읽어주기’를 9년 동안 매일 했다. 말이 쉬워 매일이지, 3218일 동안 같은 일을 매일 반복했다는 사실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야구 경기를 보고 자정을 넘어 귀가한 피곤한 날 밤에도, 아빠가 성대를 다쳐 목소리가 안 나오는 날 밤에도, 심지어 딸아이가 멀리 여행을 간 날은 전화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빠와 딸이 책을 읽은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아빠가 초등학교 사서교사라는 사실만으로는 무언가 2% 설명이 부족한 느낌이다. 답은 프롤로그에 담긴 아빠의 짧은 고백에서 찾았다. “어릴 적 어머니가 책을 읽어주셨다.” 아! 이 얼마나 간결한 답인가. 어머니는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들은 딸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그 딸은 책 읽어주기가 “대대로 이어질 집안의 전통”이라 말하며, 먼 미래에 태어날 자신의 아이에게 읽어줄 책을 한 권씩 한 권씩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정독서교육 성공 노하우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책을 아무리 꼼꼼히 읽어봐도 독서 마라톤 자체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이야기가 전부이다. 아무런 보상도 대가도 바람도 없이 그냥 읽어줌, 읽고 싶은 책을 같이 찾아봄, 책은 일단 도서관에서 대출을 했다가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이 생기면 구입함, 그리고 부록으로 실은 함께 읽은 책 목록(그것도 그냥 기억나는 대로 적은 것). 이게 다라고? 정말? 정말이다.
340쪽에 달하는 분량은 독서 방법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담은 소녀의 재잘거림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 앨리스(딸)는 아빠의 도서전을 돕기 위해 교내 방송으로 홍보를 하다가 방송실에 갇히기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영어 과목에서 C를 받은 나머지 너무나 슬퍼하며 “나는 진심으로 이해해줄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하루 종일 아빠를 기다리기도 한다.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앨리스의 수다가 때론 책 읽기와 별 관계없이 보임에도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부모와 아이가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든 에피소드의 중심은 딸아이와 아빠의 끊임없는 대화에 놓여 있으며, 아빠가 얼마나 “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이 발랄한 소녀에 대해 좀 더 궁금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을 방문해보자. http://makeareadingpromise.com 앨리스가 운영하는 누리집으로, 그녀가 직접 연출한 책 소개 영상뿐 아니라 오디오북 녹음 장면, 졸업식 및 ALA 시상식에서 연설한 장면 등을 담고 있다. 책 읽는 가정에서 큰 아이가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될지 궁금하다.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것, 도서관 문화
앞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앨리스와 아빠의 일상에는 보이지 않게 도서관이 늘 함께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가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이 생기면” 구입하는 모습은, 일단 아이와 함께 서점으로 가서 책을 사 오는 우리네의 일상과 많이 다르다. 그들은 어떤 전통과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차이는 왜 만들어졌을까? 『북미 도서관에 끌리다』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지면 9월호에 소개한 『북미 학교도서관을 가다』에 이어지는 책으로, 이번에는 공공도서관 체험기를 담았다. 저자는 역시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서울모임 선생님들로, 단순히 북미 아홉 곳 공공도서관의 역사와 소개가 아니라, 교육 현장에 대한 자기 성찰적 고백과 우리 독서문화를 담고 있다.
그들이 보고 온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것들”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도서관 문화를 만들어낸 철학이 아닐까? 그리고 그 철학의 핵심에는 ‘민주주의’가 굳건히 서 있는 듯싶다. 책에 따르면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미국 건국 초기의 정치사상가들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그 시민교육의 바탕에 도서관과 교육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한다. 일반인 대상 세계 최초 무료 도서관인 보스턴 공공도서관의 ‘Free to All’ 정신도, 도서관을 우선순위에 넣은 토론토 시의 도시계획 원칙도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그래서일까,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인가? 반문하게 된다). 더불어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조용하지만 날카롭다. “그냥 도서관이 아니라 ‘다시 가고 싶은 도서관’이 되어야” 하고(p.85), 100년이 지나도 책이 반납될 수 있도록 “늘 그 자리에 있어주어야” 하며(p.87), “입구가 좁아 전시할 공간이 없다는 변명보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도서관을 운영하느냐의 문제 아니겠는가”라는 지적(p.145)은 지금 당장 사서교사로서 나의 모습을 반성케 한다.
부수적으로, 미의회도서관과 뉴욕공공도서관의 규모와 참고도서관 성격은 언제 보아도 놀랍고, 토론토 시의 상호대차시스템과 도서관끼리의 네트워크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눈에 띄는데, 잉글우드도서관 어린이실의 쿠션을 가득 넣은 욕조는 당장 우리 아이에게 해주고 싶고, 페어팩스도서관의 개에게 책 읽어주기(read to therapy dog) 프로그램과 월요일 프레잉 팬 농장(Fraying pan farm mondays)은 공공도서관 사서에게 신선함을 던져줄 것이다. 머리말에 담겨 있는 고백처럼, 슬프게도 우리는 도서관을 직접 체험하며 자란 세대가 아니기에, 우리에게는 도서관보다 서점이 친근하고 공공도서관에는 책모임이 아니라 ‘문화교실’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에게 책 읽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까닭이겠지… 그러나 희망을 가져본다. 이 책을 쓴 선생님들처럼 늘 현장에서 고민하는 ‘동지’가 있으니까.
가장 무서운 말은? 학교 가지 마라!
공공도서관 프로그램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문화교실’의 본질은 학교의 일제식 수업과 같다. 특정 주제에 통달한 전문 강사의 정답을 담은 이야기를 나란히 나란히 앉아 조용히 듣는, 일방적 지식 전달의 전형적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면 우리는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것보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틀리다’라는 이름 아래 배타하는 데 익숙하다.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정답만을 강요당한 12년이라는 주입식 교육이 뼛속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그 아래에 자리 잡은 왜곡된 입시제도는 개인의 힘으로 바로잡기엔 벽이 너무 견고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공교육을 바꾸자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대표가 남한산초등학교. 블록수업, 계절학교, 자연친화적인 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면 언뜻 대안학교를 떠올리기 쉽지만, 공립초등학교이다. 전교생 26명으로 한때 폐교 위기에 처했던 이 학교는 지역사회와 손을 잡고 학교를 살려낸다. 그 이후 대폭 개편된 교육과정과 특성화교육의 활성화로 소위 혁신학교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이 책은 2009년 9월 MBC PD수첩 <행복을 배우는 작은 학교들>에 출연한 남한산초등학교 졸업생 일곱 명의 글을 묶은 것이다. 현재 20대에 막 들어선 이 아이들은 참으로 멋지게 컸다. “지금의 삶은 나의 삶”이여야 하고, “내 인생의 주체는 나”이어야 함을 안다. 심지어 대안교육의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기도 하며, 자기만의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시험’. 보다 정확하게는 왜곡된 ‘입시교육문화’이다. 이들은 일반 중고등학교 진학 후 남한산초등학교와는 너무나 다른 학교문화에 충격과 좌절을 경험했을 것이다. “지식을 쑤셔 박는 수업”, “이러한 배움은 시험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 “아이의 배움이 아니라 평가만을 위한 시험”, “일반 중고등학교의 방식은 완전히 갈아엎어야 된다”. 분노와 슬픔이 담긴 아이들의 외침에, 책 읽기를 중간 중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힘들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데 정작 교사인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왜곡된 교육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오늘 하루 침묵으로 일조한 것은 아닐까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