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교실 풍경]세상아! 엄마를 부탁해도 되겠니?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2-11 16:16 조회 7,066회 댓글 0건본문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은빈이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생활하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심리검사를 한 결과 우울한 성향이 깊게 나타나고 자살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분석이 되어서 나와 상담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 상담 한 시간 안에 끝나죠?”
“은빈이는 상담이 한 시간 안에 끝나는 것이 궁금하구나.”
“예. 저는 오늘 대형 레스토랑에서 알바 면접을 보거든요.”
“그래? 중요한 날이구나.”
“예. 지금 알바하고 있는 식당보다 월급도 많이 주는 곳이거든요. 꼭 합격해야 해요.”
“아, 그렇구나. 은빈이는 지금도 알바를 하고 있었구나.”
“예.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계속 해왔어요. 전 돈을 많이 벌어야 하거든요.”
“그렇구나. 그럼 은빈이가 돈을 언제부터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해지는데 말해줄 수 있겠니?”
나의 말에 은빈이가 짜증스런 표정을 잠시 지었다.
“그거 꼭 말씀드려야 해요? 선생님은 돈 많이 벌고 싶지 않으세요?”
“나도 많이 벌고 싶지. 그런데 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많이 쓰고 싶거든. 벌기만 하다가 쓰지 못하면 억울하잖아. 그래서 은빈이도 돈을 어떻게 쓰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져서 물어본 거야.”
“선생님은 돈 벌면 어디다 쓰고 싶으신데요?”
“나는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우리 딸들하고 아내, 그리고 우리 어머니하고 맛난 것 실컷 먹어. 난 음식을 좀 밝히는 편이고, 식구들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이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한단다.”
은빈이가 곧 울 것처럼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저도 선생님하고 같아요.”
나는 가만히 은빈이를 바라보았다. 은빈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저도 엄마랑 맛있는 식사하고 싶어요. 그리고 엄마에게 비행기 값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은빈이는 계속 눈물을 흘렸으나 속 시원한 울음은 아니었다. 두 손을 비비면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은빈이와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페이싱pacing 기법을 사용했다. 먼저 은빈이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세 번씩 함께 했다. 그리고 가만히 은빈이의 눈을 바라보다가 지금 가장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몸의 부위에 손을 대보라고 했다. 은빈이가 가슴에 손을 대면서 몸을 웅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나는 은빈이에게 아픈 가슴에 주의를 집중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보라고 했다.
엄마에게 돈을 드리고 싶어요
“저희 엄마는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 중국 아주 시골에서 오신 분이에요. 그런데요. 중학교 1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요. 아버지가 돈이 없다고 하면서 엄마에게 중국까지 가는 비행기 값을 주지 않았어요. 그때 엄마가 이렇게 가슴을 붙잡고 너무 아프다고 울었어요. 저는 아버지에게 엄마 비행기 값 해주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버지는 제 가슴을 발로 차셨어요.”
은빈이의 감정이 너무 깊게 들어가는 것 같아서 나는 은빈이에게 잠시 말을 멈추고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괜찮아, 괜찮아’ 하고 말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도 은빈이처럼 내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괜찮아, 괜찮아’ 하고 낮게 말했다. 나와 함께 자신의 몸을 위로하는 시간을 보내고 조금 숨결을 고른 은빈이가 다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저는 돈을 벌어서 엄마에게 드리고 싶어요.”
“그랬구나. 은빈이가 그렇게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구나.”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은빈이의 가슴에서 손이 내려오고 은빈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은빈이와 함께 숨을 세 번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면서 페이싱을 마쳤다. 나는 은빈이에게 물 한 잔을 권했다. 천천히 물을 마시던 은빈이가 진지한 얼굴이 되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그런데요. 전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지금 막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요. 전 엄마를 싫어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 엄마를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데?”
“짜증나고 부담스럽고 답답해요.”
“그렇구나. 은빈이는 엄마를 위해 살고 싶으면서도 엄마를 생각하면 짜증나고 부담스럽고 답답하구나.”
“예.”
나는 가만히 은빈이를 보다가 시계를 바라보았다. 은빈이도 시계를 바라보고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네. 오늘은 은빈이가 마음을 잘 보여줘서 나와 많이 가까워진 귀중한 시간이 된 것 같다. 다음에 한 번 더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렇게 은빈이와의 첫 상담은 매듭을 지었다.
딱따구리와 나무
일주일 후 은빈이와 다시 마주 앉았다.대형 레스토랑 알바에 합격했다는 자랑을 은빈이는 먼저 늘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합격한 소식을 제일 처음에 엄마에게 전했고 선생님이 두 번째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엄마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다고?”
“예.”
“그랬구나. 어머니가 무척 기뻐하셨겠구나.”
“예. 근데요, 잔소리가 더 많으셨어요. 시간을 너무 빼앗겨서 공부를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냐. 가뜩이나 몸이 약한데 건강은 괜찮겠느냐, 그러셨어요.”
“그래서 뭐라고 말씀드렸니?”
“네엥~ 잘 알았사옵니당~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합격 소식을 듣고 얼마 후에 어머니에게 그 소식을 전했니?”
“금방 했어요.”
“그렇구나. 금방 했구나. 엄마가 잔소리하실 것을 알면서도 금방 했구나.”
“제가 잘못한 건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조금만 더 혼자서 기쁨을 누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냥 내 생각이 그랬다는 이야기야.”
나는 은빈이에게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동물이 무엇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은빈이는 ‘딱따구리’라고 하였다. 말을 할 때나 자신을 딱딱 쪼아대는 것 같아 싫을 때가 많다고 하였다.
“그럼 은빈이는 뭐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당연히 딱따구리가 쪼아대는 나무죠.”
“그렇구나. 어머니는 딱따구리고 은빈이는 딱따구리가 쪼아대는 나무라고 생각하는구나.”
“예. 그렇지만 딱따구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나무에 있는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나무에 새끼들 집을 짓기 위해서 하는 일이잖아요. 나무에게도 새끼에게도 좋은 일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은빈아, 그렇지만 나무는 아프잖아.”
“그렇죠. 아프죠.”
“딱따구리에게 나무를 쪼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무를 쪼는 것을 그만둬 달라고 요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프다고 말하고 싶은 거잖아. 은빈아, 엄마가 뭘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엄마 때문에 내가 많이 아프다고 그것만 알아달라고 말할 수 있는 거잖아.”
은빈이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를 껴안고 가려 하지 마…
“머나먼 땅에서 여기까지 와서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런 엄마를 힘들게 하기 싫어서 착한 딸로만 지내려고 은빈이는 애를 많이 썼던 것 같아. 우리 은빈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공부하면서 알바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 번 돈을 엄마를 위해 다 써버리면 우리 은빈이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은빈이는 얼마나 힘이 빠질까? 그리고 알바를 위해 번 돈을 쓰고 났을 때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엄마가 행복할까? 은빈이가 레스토랑에 합격했을 때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계신 어머니라면 딸이 그렇게 돈을 버는 것에 대해 행복해하시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은빈이는 조심스레 신중한 음성으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말씀은 잘 알겠어요. 그러니까 너무 착한 딸로만 살지 말라는 말씀이잖아요. 그건 저도 생각했던 것이라 잘 알고 노력하고 있는 일인데요. 그런데요, 선생님. 사실 저희 엄마가 그렇게 나쁜 분이 아니신데요. 왜 저는 엄마가 무진장 싫어질 때가 있을까요?”
“이 세상의 모든 딸은 이 다음에 자신이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살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단다. 즉 자신의 미래 모습이 엄마인 것이지. 그래서 엄마가 힘들게 살면 자기도 힘들게 살까봐 짜증이 나고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거란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렵고 아버지에게 무시당하는 엄마를 보면서 은빈이는 그렇게 될까봐 마음이 불편해진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해. 결국 엄마와의 관계는 은빈이 자신의 문제인 거야.”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 그럼 전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금 상황이 은빈이에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먼저 해주고 싶어. 우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그냥 밀고 나가렴. 다만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쓰기 위해선 건강하고, 재미있는 생활도 있어야 하니까 돈을 버는 데에 100% 투자했던 시간 중에 40% 이상은 건강과 공부나 취미 생활에 양보를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가 힘드시다고 해서 엄마를 네가 껴안고 가려고 하지 마. 그저 너 이외의 많은 세상에게 엄마를 부탁해. 엄마도 충분히 세상과 잘 지내실 수 있어. 은빈이라는 딸을 이렇게 키워 놓으셨잖아. 그리고 엄마도 엄마보다 자신에게 먼저 애정과 시간을 쏟아서 멋지고 곱게 성장한 딸을 기대하실 거야. 그래야 이 다음에 할머니가 되셨을 때 딸의 어깨에 기대어 쉴 수 있으시지 않겠니?”
나는 어머니를 닮아 키가 훤칠하게 크고 눈이 깊은 예쁜 은빈이에게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 책 사이에는 이런 글이 적힌 카드 한 장을 꽂아 놓았다.
“오늘부터 엄마와 잘 헤어지는 연습을 하는 은빈이가 되기 바란다. 그것은 엄마에게 돌아오는 첫걸음인 동시에 엄마를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란다.”
은빈이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생활하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심리검사를 한 결과 우울한 성향이 깊게 나타나고 자살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분석이 되어서 나와 상담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 상담 한 시간 안에 끝나죠?”
“은빈이는 상담이 한 시간 안에 끝나는 것이 궁금하구나.”
“예. 저는 오늘 대형 레스토랑에서 알바 면접을 보거든요.”
“그래? 중요한 날이구나.”
“예. 지금 알바하고 있는 식당보다 월급도 많이 주는 곳이거든요. 꼭 합격해야 해요.”
“아, 그렇구나. 은빈이는 지금도 알바를 하고 있었구나.”
“예.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계속 해왔어요. 전 돈을 많이 벌어야 하거든요.”
“그렇구나. 그럼 은빈이가 돈을 언제부터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해지는데 말해줄 수 있겠니?”
나의 말에 은빈이가 짜증스런 표정을 잠시 지었다.
“그거 꼭 말씀드려야 해요? 선생님은 돈 많이 벌고 싶지 않으세요?”
“나도 많이 벌고 싶지. 그런데 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많이 쓰고 싶거든. 벌기만 하다가 쓰지 못하면 억울하잖아. 그래서 은빈이도 돈을 어떻게 쓰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져서 물어본 거야.”
“선생님은 돈 벌면 어디다 쓰고 싶으신데요?”
“나는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우리 딸들하고 아내, 그리고 우리 어머니하고 맛난 것 실컷 먹어. 난 음식을 좀 밝히는 편이고, 식구들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이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한단다.”
은빈이가 곧 울 것처럼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저도 선생님하고 같아요.”
나는 가만히 은빈이를 바라보았다. 은빈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저도 엄마랑 맛있는 식사하고 싶어요. 그리고 엄마에게 비행기 값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은빈이는 계속 눈물을 흘렸으나 속 시원한 울음은 아니었다. 두 손을 비비면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은빈이와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페이싱pacing 기법을 사용했다. 먼저 은빈이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세 번씩 함께 했다. 그리고 가만히 은빈이의 눈을 바라보다가 지금 가장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몸의 부위에 손을 대보라고 했다. 은빈이가 가슴에 손을 대면서 몸을 웅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나는 은빈이에게 아픈 가슴에 주의를 집중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보라고 했다.
엄마에게 돈을 드리고 싶어요
“저희 엄마는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 중국 아주 시골에서 오신 분이에요. 그런데요. 중학교 1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요. 아버지가 돈이 없다고 하면서 엄마에게 중국까지 가는 비행기 값을 주지 않았어요. 그때 엄마가 이렇게 가슴을 붙잡고 너무 아프다고 울었어요. 저는 아버지에게 엄마 비행기 값 해주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버지는 제 가슴을 발로 차셨어요.”
은빈이의 감정이 너무 깊게 들어가는 것 같아서 나는 은빈이에게 잠시 말을 멈추고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괜찮아, 괜찮아’ 하고 말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도 은빈이처럼 내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괜찮아, 괜찮아’ 하고 낮게 말했다. 나와 함께 자신의 몸을 위로하는 시간을 보내고 조금 숨결을 고른 은빈이가 다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저는 돈을 벌어서 엄마에게 드리고 싶어요.”
“그랬구나. 은빈이가 그렇게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구나.”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은빈이의 가슴에서 손이 내려오고 은빈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은빈이와 함께 숨을 세 번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면서 페이싱을 마쳤다. 나는 은빈이에게 물 한 잔을 권했다. 천천히 물을 마시던 은빈이가 진지한 얼굴이 되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그런데요. 전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지금 막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요. 전 엄마를 싫어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 엄마를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데?”
“짜증나고 부담스럽고 답답해요.”
“그렇구나. 은빈이는 엄마를 위해 살고 싶으면서도 엄마를 생각하면 짜증나고 부담스럽고 답답하구나.”
“예.”
나는 가만히 은빈이를 보다가 시계를 바라보았다. 은빈이도 시계를 바라보고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네. 오늘은 은빈이가 마음을 잘 보여줘서 나와 많이 가까워진 귀중한 시간이 된 것 같다. 다음에 한 번 더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렇게 은빈이와의 첫 상담은 매듭을 지었다.
딱따구리와 나무
일주일 후 은빈이와 다시 마주 앉았다.대형 레스토랑 알바에 합격했다는 자랑을 은빈이는 먼저 늘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합격한 소식을 제일 처음에 엄마에게 전했고 선생님이 두 번째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엄마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다고?”
“예.”
“그랬구나. 어머니가 무척 기뻐하셨겠구나.”
“예. 근데요, 잔소리가 더 많으셨어요. 시간을 너무 빼앗겨서 공부를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냐. 가뜩이나 몸이 약한데 건강은 괜찮겠느냐, 그러셨어요.”
“그래서 뭐라고 말씀드렸니?”
“네엥~ 잘 알았사옵니당~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합격 소식을 듣고 얼마 후에 어머니에게 그 소식을 전했니?”
“금방 했어요.”
“그렇구나. 금방 했구나. 엄마가 잔소리하실 것을 알면서도 금방 했구나.”
“제가 잘못한 건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조금만 더 혼자서 기쁨을 누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냥 내 생각이 그랬다는 이야기야.”
나는 은빈이에게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동물이 무엇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은빈이는 ‘딱따구리’라고 하였다. 말을 할 때나 자신을 딱딱 쪼아대는 것 같아 싫을 때가 많다고 하였다.
“그럼 은빈이는 뭐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당연히 딱따구리가 쪼아대는 나무죠.”
“그렇구나. 어머니는 딱따구리고 은빈이는 딱따구리가 쪼아대는 나무라고 생각하는구나.”
“예. 그렇지만 딱따구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나무에 있는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나무에 새끼들 집을 짓기 위해서 하는 일이잖아요. 나무에게도 새끼에게도 좋은 일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은빈아, 그렇지만 나무는 아프잖아.”
“그렇죠. 아프죠.”
“딱따구리에게 나무를 쪼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무를 쪼는 것을 그만둬 달라고 요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프다고 말하고 싶은 거잖아. 은빈아, 엄마가 뭘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엄마 때문에 내가 많이 아프다고 그것만 알아달라고 말할 수 있는 거잖아.”
은빈이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를 껴안고 가려 하지 마…
“머나먼 땅에서 여기까지 와서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런 엄마를 힘들게 하기 싫어서 착한 딸로만 지내려고 은빈이는 애를 많이 썼던 것 같아. 우리 은빈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공부하면서 알바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 번 돈을 엄마를 위해 다 써버리면 우리 은빈이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은빈이는 얼마나 힘이 빠질까? 그리고 알바를 위해 번 돈을 쓰고 났을 때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엄마가 행복할까? 은빈이가 레스토랑에 합격했을 때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계신 어머니라면 딸이 그렇게 돈을 버는 것에 대해 행복해하시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은빈이는 조심스레 신중한 음성으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말씀은 잘 알겠어요. 그러니까 너무 착한 딸로만 살지 말라는 말씀이잖아요. 그건 저도 생각했던 것이라 잘 알고 노력하고 있는 일인데요. 그런데요, 선생님. 사실 저희 엄마가 그렇게 나쁜 분이 아니신데요. 왜 저는 엄마가 무진장 싫어질 때가 있을까요?”
“이 세상의 모든 딸은 이 다음에 자신이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살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단다. 즉 자신의 미래 모습이 엄마인 것이지. 그래서 엄마가 힘들게 살면 자기도 힘들게 살까봐 짜증이 나고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거란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렵고 아버지에게 무시당하는 엄마를 보면서 은빈이는 그렇게 될까봐 마음이 불편해진 것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해. 결국 엄마와의 관계는 은빈이 자신의 문제인 거야.”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 그럼 전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금 상황이 은빈이에게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먼저 해주고 싶어. 우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그냥 밀고 나가렴. 다만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쓰기 위해선 건강하고, 재미있는 생활도 있어야 하니까 돈을 버는 데에 100% 투자했던 시간 중에 40% 이상은 건강과 공부나 취미 생활에 양보를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가 힘드시다고 해서 엄마를 네가 껴안고 가려고 하지 마. 그저 너 이외의 많은 세상에게 엄마를 부탁해. 엄마도 충분히 세상과 잘 지내실 수 있어. 은빈이라는 딸을 이렇게 키워 놓으셨잖아. 그리고 엄마도 엄마보다 자신에게 먼저 애정과 시간을 쏟아서 멋지고 곱게 성장한 딸을 기대하실 거야. 그래야 이 다음에 할머니가 되셨을 때 딸의 어깨에 기대어 쉴 수 있으시지 않겠니?”
나는 어머니를 닮아 키가 훤칠하게 크고 눈이 깊은 예쁜 은빈이에게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 책 사이에는 이런 글이 적힌 카드 한 장을 꽂아 놓았다.
“오늘부터 엄마와 잘 헤어지는 연습을 하는 은빈이가 되기 바란다. 그것은 엄마에게 돌아오는 첫걸음인 동시에 엄마를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