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학부모 명예사서]날마다 어머니들을 조금씩 자라게 만드는 일 ― 창원 안골포초 명예사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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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2-11 16:12 조회 6,950회 댓글 0건본문
내년이면 벌써 중학생이 되는 큰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던 날, 포대기로 들쳐 업은 둘째의 요란한 잠투정이 창피스러워 강당 바깥을 서성이면서 연신 눈물을 훔친 기억이 있다. 학부모가 되는 감동의 순간을 그렇게 맞이하면서 절대 앞서가길 욕심내지 않는 엄마가 되리라 스스로에게 약속했었다. 학교생활에 적응도 잘하고 공부도 재밌어하고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아서 학교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다행으로 여기던 어느 날, 큰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교실에 청소해 주러 오는 엄마들도 있고, 도서관에서 일해 주는 엄마도 있어. 엄마는 왜 안 해?” 그러면서 부끄러운 내색을 하던 딸아이에게 “동생이 아직 어리니까 데리고 다니기 힘들잖아. 좀 더 크면, 그때.”라는 핑계를 대면서 피하기만 했던 일은 여태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첫 아이에게 가지는 기대감도 컸었고, 그만큼 해주고 싶었던 것들도 많았지만,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을 키우는 일에 바쁘고 지쳐 입학을 시켜놓고 3학년이 되도록 운동회나 수업 참관일이 아니면 학교에 발걸음 한 번 하기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큰아이가 4학년이 될 무렵 지금의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고, 둘째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시간적으로 여유로워진 나는 그동안 늘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던 큰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학교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다소 낯가림이 있던 터라 직접 알아볼 생각은 못하고 있다가 새 학기 안내장으로 배부된 도서관 명예사서 신청서를 받고서 서둘러 지원했다. 학교에서 하는 자원봉사는 처음이었음에도 망설임 없이 덤빌 수 있었던 건 책을 좋아하던 내게 도서관이라는 곳이 익숙함으로 다가와서였으리라.
한 걸음씩 다양한 명예사서 역할에 다가서기
명예사서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명예사서가 하는 일이 도서 대출・반납 업무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외에 도서관 주변 환경 꾸미는 ‘게시판팀’, 학년별로 정기적인 빛그림 공연을 하는 ‘빛그림팀’, 학교나 도서관 주최의 행사가 있을 때 준비나 진행을 돕는 ‘행사팀’, 하자가 생긴 책을 보수하는 ‘보수팀’, 거기에 1~4학년을 대상으로 ‘아침 책읽어주기’ 활동까지.
이전의 학교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여러 활동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명예사서들이 이 모든 일들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자신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었다. 모든 학부모 명예사서들이 이렇게 시간을 들이고 수고를 더해 이 일을 하는 데에는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내 아이 하나 챙기기에도 바쁜 일상을 거의 도서관 일로 보내는 몇몇 어머니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해답을 찾기도 전에 시작된 도서관 봉사는 만만치 않았다.
유치원생 아들의 등, 하원 시간을 핑계로 첫해엔 사서도우미와 게시판팀에만 자원한 나에게 십진분류표에 맞춰 책을 정리하는 일마저도 얼마나 어려웠던지… 한글 자음과 모음을 순서대로 중얼거리며 서가를 누비던 일을 새삼 떠올려보니 웃음이 난다. 한 번은 아이들이 부탁하는 도서검색이 서툴러 한 아이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한 난처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 느껴지던 뿌듯함은 아마도 친구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나를 엄마라고 소개하는 딸아이 얼굴에서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드러내기 민망한 이기심 때문이었음을 이쯤에서 고백한다.
아이들에게 감동을, 부모에게 보람을–빛그림 공연
3년여의 활동을 꾸준히 해오면서 도서관 일이 익숙해지고, 올해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 내가 새롭게 시작한 봉사 활동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빛그림 활동. 도서관 봉사를 하면서도 기회가 되지 않아 볼 수 없었던 빛그림 공연을 올해 입학식 때 처음 보게 되었는데, 참 매력적인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띄운 스크린 속 인물들의 움직임에 맞춰 목소리 연기를 하는 명예사서 어머니들이 얼마나 부럽고 멋있게 보였는지 모른다. 멋진 겉모습만큼 힘든 과정이 있었음을 그땐 미처 몰랐으므로. 그렇게 나는 속사정은 모른 채 올해 새로 꾸려진 빛그림 팀원이 되고야 말았다. 겁도 없이.
우리 학교는 각각 1~2학년, 3~4학년, 5~6학년 대상으로 한 학기마다 세 차례에 걸쳐 공연을 한다. 먼저, 대상 학년에 맞는 주제의 그림책을 선정하고, 그 그림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본을 만든다. 그런 다음 대본에 맞춰 화면을 편집하는데, 그 과정 중에는 그림 화면에 약간의 움직임 효과를 넣어 아이들의 눈이 쉬지 못하게 하는 일과 필요한 음향 효과 그리고 이야기와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삽입해 아이들의 귀가 심심하지 않게 하는 일, 거기에 전문 연기자 뺨칠 정도라고 자부하는 팀원들의 목소리 연기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까지 결코 쉽지 않은 연습과 노력이 숨어 있다.
하루 두 번의 공연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들이 적지 않음에도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이유를 굳이 들자면, 많은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그것들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웃으며 연기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웃고, 눈물 나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울어준다면 우린 그 공연을 성공했다고 말한다. 우리와 마음이 통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우리에겐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교육적인 내용이냐? 깊이가 있는 작품이냐? 아니면 메시지가 담겨 있냐? 이런 질문에 내 대답은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이다. 학업에 마음이 지쳐가는 아이들이 빛그림을 통해 때로는 즐거움과 재미로 웃음을 찾고, 때로는 눈물과 감동을 얻기도 하면서, 그 시간만큼은 마음이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비단 아이들뿐이겠는가? 공연을 통해 우리의 마음 역시 크나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책으로 추억을 나누는 시간
–아침 책읽어주기 활동
두 번째 일은 아침 책읽어주기 활동이다. 4학년까지는 매주 금요일 아침에, 5~6학년은 매주 수요일 아침 8시 40분부터 9시 수업시작 전까지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이다. 처음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을 마주보고 섰을 때 그 떨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전교생 앞에서 졸업생 답사를 뻔뻔스레 읽어내던 시절도 있었건만, 고작 서른 명, 그것도 초등학생들 앞에서 목소리도 모자라 손까지 떨며 책장을 넘다니, 어지간히 긴장을 했었던 모양이다. 구연동화를 하듯 잘하려고 욕심낼 필요도 없고 그저 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듯이 그냥 편하게 읽어주고 나오면 된다는 사서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용기가 생겼다. 용기에 힘입어서일까? 고맙게도 손 떨림은 두어 번으로 끝이 났다.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지니 그제야 아이들 표정이 눈에 들어왔는데, 어쩜 그렇게들 집중을 잘해서 듣는지 신기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림책읽기 중간이나 끝에 나누는 북토킹을 통해 요즘 아이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또래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고학년이 될수록, 남학생일수록 그림책을 우습게 볼 거라는 내 생각을 보란 듯이 저버리고 6학년 남학생들은 나에게 최고의 청중이 되어주고 있다. 그러니 더 좋은 책, 더 재미있는 책을 고르는 시간이 즐겁다.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내가 읽어 주던 책 한 권을 추억할 수 있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일주일에 두 번, 나의 아침은 더없이 설렌다.
더 좋은 프로그램들로 아이들의 마음을 채워주기에 열심인 사서선생님과 모든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보듬어 주는 명예사서 어머니들의 열정이 우리 학교 반딧불 도서관을 전국 최고의 도서관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도서관에 손을 더하는 일
도서관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작은 행사는 사서선생님 혼자서 하시기도 하지만 봄에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여름방학독서캠프, 가을에 평화책전시회, 겨울방학독서캠프 등은 준비부터 진행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을 필요로 한다. 전체적인 아이템과 행사의 의의, 목적 등을 회의를 통해 사서선생님이 이야기하면 세부 진행은 팀원들이 의논한 후 각자의 역할을 맡게 되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신나는 활동으로 만들기 위해서, 때로는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아이들과 만나기 전에 명예사서들이 직접 경험해 보고 아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하여 미비점을 발견하고 보완 방법을 찾기도 한다.
3년 전 나는 여기 반딧불 도서관에서 내 아이를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 계단을 오른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보잘 것 없는 내게 이런 일들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며, 아이들을 통해 조금씩 자라는 나를 확인하는 요즘이 행복하다.
“엄마, 우리 교실에 청소해 주러 오는 엄마들도 있고, 도서관에서 일해 주는 엄마도 있어. 엄마는 왜 안 해?” 그러면서 부끄러운 내색을 하던 딸아이에게 “동생이 아직 어리니까 데리고 다니기 힘들잖아. 좀 더 크면, 그때.”라는 핑계를 대면서 피하기만 했던 일은 여태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첫 아이에게 가지는 기대감도 컸었고, 그만큼 해주고 싶었던 것들도 많았지만,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을 키우는 일에 바쁘고 지쳐 입학을 시켜놓고 3학년이 되도록 운동회나 수업 참관일이 아니면 학교에 발걸음 한 번 하기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큰아이가 4학년이 될 무렵 지금의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고, 둘째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시간적으로 여유로워진 나는 그동안 늘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던 큰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학교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다소 낯가림이 있던 터라 직접 알아볼 생각은 못하고 있다가 새 학기 안내장으로 배부된 도서관 명예사서 신청서를 받고서 서둘러 지원했다. 학교에서 하는 자원봉사는 처음이었음에도 망설임 없이 덤빌 수 있었던 건 책을 좋아하던 내게 도서관이라는 곳이 익숙함으로 다가와서였으리라.
한 걸음씩 다양한 명예사서 역할에 다가서기
명예사서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명예사서가 하는 일이 도서 대출・반납 업무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외에 도서관 주변 환경 꾸미는 ‘게시판팀’, 학년별로 정기적인 빛그림 공연을 하는 ‘빛그림팀’, 학교나 도서관 주최의 행사가 있을 때 준비나 진행을 돕는 ‘행사팀’, 하자가 생긴 책을 보수하는 ‘보수팀’, 거기에 1~4학년을 대상으로 ‘아침 책읽어주기’ 활동까지.
이전의 학교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여러 활동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명예사서들이 이 모든 일들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자신의 일처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었다. 모든 학부모 명예사서들이 이렇게 시간을 들이고 수고를 더해 이 일을 하는 데에는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내 아이 하나 챙기기에도 바쁜 일상을 거의 도서관 일로 보내는 몇몇 어머니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해답을 찾기도 전에 시작된 도서관 봉사는 만만치 않았다.
유치원생 아들의 등, 하원 시간을 핑계로 첫해엔 사서도우미와 게시판팀에만 자원한 나에게 십진분류표에 맞춰 책을 정리하는 일마저도 얼마나 어려웠던지… 한글 자음과 모음을 순서대로 중얼거리며 서가를 누비던 일을 새삼 떠올려보니 웃음이 난다. 한 번은 아이들이 부탁하는 도서검색이 서툴러 한 아이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한 난처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 느껴지던 뿌듯함은 아마도 친구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나를 엄마라고 소개하는 딸아이 얼굴에서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드러내기 민망한 이기심 때문이었음을 이쯤에서 고백한다.
아이들에게 감동을, 부모에게 보람을–빛그림 공연
3년여의 활동을 꾸준히 해오면서 도서관 일이 익숙해지고, 올해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 내가 새롭게 시작한 봉사 활동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빛그림 활동. 도서관 봉사를 하면서도 기회가 되지 않아 볼 수 없었던 빛그림 공연을 올해 입학식 때 처음 보게 되었는데, 참 매력적인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띄운 스크린 속 인물들의 움직임에 맞춰 목소리 연기를 하는 명예사서 어머니들이 얼마나 부럽고 멋있게 보였는지 모른다. 멋진 겉모습만큼 힘든 과정이 있었음을 그땐 미처 몰랐으므로. 그렇게 나는 속사정은 모른 채 올해 새로 꾸려진 빛그림 팀원이 되고야 말았다. 겁도 없이.
우리 학교는 각각 1~2학년, 3~4학년, 5~6학년 대상으로 한 학기마다 세 차례에 걸쳐 공연을 한다. 먼저, 대상 학년에 맞는 주제의 그림책을 선정하고, 그 그림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본을 만든다. 그런 다음 대본에 맞춰 화면을 편집하는데, 그 과정 중에는 그림 화면에 약간의 움직임 효과를 넣어 아이들의 눈이 쉬지 못하게 하는 일과 필요한 음향 효과 그리고 이야기와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삽입해 아이들의 귀가 심심하지 않게 하는 일, 거기에 전문 연기자 뺨칠 정도라고 자부하는 팀원들의 목소리 연기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까지 결코 쉽지 않은 연습과 노력이 숨어 있다.
하루 두 번의 공연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들이 적지 않음에도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이유를 굳이 들자면, 많은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그것들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웃으며 연기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웃고, 눈물 나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울어준다면 우린 그 공연을 성공했다고 말한다. 우리와 마음이 통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우리에겐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교육적인 내용이냐? 깊이가 있는 작품이냐? 아니면 메시지가 담겨 있냐? 이런 질문에 내 대답은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이다. 학업에 마음이 지쳐가는 아이들이 빛그림을 통해 때로는 즐거움과 재미로 웃음을 찾고, 때로는 눈물과 감동을 얻기도 하면서, 그 시간만큼은 마음이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비단 아이들뿐이겠는가? 공연을 통해 우리의 마음 역시 크나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책으로 추억을 나누는 시간
–아침 책읽어주기 활동
두 번째 일은 아침 책읽어주기 활동이다. 4학년까지는 매주 금요일 아침에, 5~6학년은 매주 수요일 아침 8시 40분부터 9시 수업시작 전까지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이다. 처음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을 마주보고 섰을 때 그 떨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전교생 앞에서 졸업생 답사를 뻔뻔스레 읽어내던 시절도 있었건만, 고작 서른 명, 그것도 초등학생들 앞에서 목소리도 모자라 손까지 떨며 책장을 넘다니, 어지간히 긴장을 했었던 모양이다. 구연동화를 하듯 잘하려고 욕심낼 필요도 없고 그저 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듯이 그냥 편하게 읽어주고 나오면 된다는 사서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용기가 생겼다. 용기에 힘입어서일까? 고맙게도 손 떨림은 두어 번으로 끝이 났다.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해지니 그제야 아이들 표정이 눈에 들어왔는데, 어쩜 그렇게들 집중을 잘해서 듣는지 신기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림책읽기 중간이나 끝에 나누는 북토킹을 통해 요즘 아이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또래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고학년이 될수록, 남학생일수록 그림책을 우습게 볼 거라는 내 생각을 보란 듯이 저버리고 6학년 남학생들은 나에게 최고의 청중이 되어주고 있다. 그러니 더 좋은 책, 더 재미있는 책을 고르는 시간이 즐겁다.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내가 읽어 주던 책 한 권을 추억할 수 있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일주일에 두 번, 나의 아침은 더없이 설렌다.
더 좋은 프로그램들로 아이들의 마음을 채워주기에 열심인 사서선생님과 모든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보듬어 주는 명예사서 어머니들의 열정이 우리 학교 반딧불 도서관을 전국 최고의 도서관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도서관에 손을 더하는 일
도서관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작은 행사는 사서선생님 혼자서 하시기도 하지만 봄에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여름방학독서캠프, 가을에 평화책전시회, 겨울방학독서캠프 등은 준비부터 진행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을 필요로 한다. 전체적인 아이템과 행사의 의의, 목적 등을 회의를 통해 사서선생님이 이야기하면 세부 진행은 팀원들이 의논한 후 각자의 역할을 맡게 되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신나는 활동으로 만들기 위해서, 때로는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아이들과 만나기 전에 명예사서들이 직접 경험해 보고 아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하여 미비점을 발견하고 보완 방법을 찾기도 한다.
3년 전 나는 여기 반딧불 도서관에서 내 아이를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 계단을 오른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보잘 것 없는 내게 이런 일들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며, 아이들을 통해 조금씩 자라는 나를 확인하는 요즘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