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책으로 말걸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수연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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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2-11 16:00 조회 7,369회 댓글 0건본문
내 책상 위에는 항상 소설책들이 꽂혀 있다. 나를 만나러 온 아이들 중 그 책들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제법 있다. 수연이도 그런 아이 중 하나였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항상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 수연이. 책을 많이 읽는 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수연이와 책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 심심하다며 내 책꽂이에 있는 책을 다 가져다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고, 1교시에 빌려 간 책을 틈틈이 읽었다며 5교시에 가져다 줄 정도로 책 읽는 속도가 빨랐다. 그런데 항상 내가 책에 대해 물어보면 “재미있네요.”라고 대답하거나, 이런 부분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라는 정도로 대답해 버리니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도 항상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를 든든함이 있었다. 그런 수연이와 처음 이야기를 오래 나누게 된 것이 핸드폰에서였다. ‘카카오스토리’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들을 올렸고,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리플을 달기 시작했다. 그 첫 책이 『개 같은 날은 없다』였고, 간단한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니 아이들은 흥미를 느끼며 꼭 읽어봐야겠다고 했다. 수연이에게 문자가 온 것은 꽤나 늦은 밤이었다.
수연 — 『개 같은 날은 없다』 빌려주세요!
나 — 시작이 좀 끔찍한데 괜찮겠어?
수연 — 사는 게 더 끔찍하죠.
나 — 이런… 네게는 개 같은 날이 있구나.
수연 — 개 같기만 해도 다행이게요…
나 — 헉! 이런. 우울할 때가…
수연 — 아니에요. 그냥요. 요즘 그냥 우울해서요. 저 『손톱이 자라날 때』 기억나요. 그렇게 그냥 벽 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면 좋겠어요.
나 — 넌 그 아이처럼 교실에서 없는 듯이 지내는 아이가 아니잖아.
수연 — 그냥 제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그런 거예요. 조금만이라도 놓아버리면 바로 벽이 될 걸요. 이제 아이들의 유치한 말에 맞장구치기도 힘들어요. 그냥 벽이 되어 버리면 될 것 같아요.
나 — 내가 너를 벽으로 안 만들 테다! 네가 그렇게 힘들게 아이들과 맞추느라 불편하면 아이들도 그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너도 계속 힘들고.
수연 — 아이들이 착해요. 그래서 다들 공포에 떨고 있을 거예요. 언제 이 집단에서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공포 말이죠. 전 이제 뭐가 무서운지 모르겠어요. 혼자 다니는 것도 이제는 안 두려운데…
수연이가 갑자기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늦은 밤 새벽까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이 이야기들을 처음 듣는 것 같지 않았다.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책을 빌려가며, 다시 돌려주며 수연이는 이런 이야기들을 온몸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왜 그때는 알아듣지 못했을까? 그리고 왜 지금 그 아이의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온 것일까? 새벽까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수연이와의 대화를 다시 읽어 보았다.
수연 —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아마 지금 쌤이랑 나눈 대화가 너무 찌질했다는 것 때문에 속상할 것 같아요.
나 — 밤이니까 다 이해해. 그리고 내 앞에서 좀 찌질하면 안 되나?
수연 — 그죠. 쌤이니까. 내일 일찍 오세요. 저도 일찍 갈게요.
아침에 만난 수연이는 평소와 같았다. 내 앞에 어제 빌려 준 『오, 나의 남자들!』을 돌려주었다. 평소처럼 어땠는지 물어보았더니 재미있었다고 했다. 우리 학교에는 왜 잘생긴 남자들이 없는지를 투덜거리며 웃겨보려고 했더니 수연이가 갑자기 “제가 얼굴을 지적할 형편이 안 되잖아요.”리고 한다. 공부도 잘하고, 책을 많이 보아서 아는 것이 많은 수연이가 저런 이야기를 할 줄 몰랐다. 수연이의 목소리가 너무 쓸쓸해서 도저히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수연이는 모르는 사람이 한 번 보면 기억에 잘 남지 않을 정도로 특징 없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수연이의 보조개가 어느 누구보다도 예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수연이를 보면 자꾸 웃겨주고 싶어진다. 수연이가 『오, 나의 남자들!』을 바로 내게 주지 않고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뭔가 오늘은 이 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수연 — 금영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은 청소년기에 한 번씩 겪는 것 같아요.
나 — 초등학교 때까지는 크고 대단해 보였던 부모님들이 중학교 들어와서는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어른들의 세상이 엿보이는 것이겠지?
수연 — 그러면서 어른이 별거 아니라는 것도 느끼고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죠?
나 — 그런데 넌 정말 이 책을 보면서 어른스러운 것들을 느꼈구나. 난 이 책 보면서 내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나더라고. 나도 남녀공학 다녔으면 어땠을까? 강동원 같은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요즘 학교 애들 많이 사귀는 것 같던데…
수연 — 아이들이 갑자기 많이 사귀는 것 같아요. 은정이는 카톡 대화명에 “나도 남친 있었으면”이라고 올렸잖아요.
나 — 나도 봤어. 그런데 올린 지 정말 오래되었는데 아직 안 생겼다니 이제 좀 내리지.
수연 — 사실 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은정이가 부러워요. 은정이는 예쁘잖아요. 자신 있으니 그렇게 올린 거 아닐까요? 저 이 책 읽으면서 약간 배신감 같은 거 느꼈어요. 제목만 보고 정말 읽고 싶지 않은 책이었는데 선생님이 재미있다고 하셔서… 그리고 평범한 아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날씬하고 결국 예쁘니까 가장 인기 있는 학교 선배가 금영이를 좋아한 것 같아요.
나 — 잘생긴 애들은 자기가 잘생겼으니 얼굴은 안 볼 수도 있잖아.
수연 —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겠죠. 저… 저도 연애하고 싶어요!
다른 아이들이 들어오자 수연이는 민망했는지 얼른 자리를 떴다. ‘연애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참 많이 돌아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니 다른 사람 이야기 같았고, 이야기도 이어지지 않았다고 생각되었다. 주위의 많은 곳에서는 연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자는 외모, 남자는 능력이라는 상품으로 관계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당연한 감정들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밤 수연이에게 문자가 왔다.
수연 — 저 연애하고 싶다는 거 비밀이에요.
나 — 이런, 그게 창피한 거야?
수연 — 애들이 욕할 거예요.
나 — 많은 아이들이 연애하고 싶어 해. 좀 더 드러내서 이야기하면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아. 그럼 벽이 안 되어도 되잖아. 다른 아이들도 네가 자신들과 다르게 말하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연애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게 얼마나 자연스러우면 모든 대중가요 가사가 대부분 사랑이고, 많은 예술 작품들이 사랑을 표현하려고 애쓰겠니? 물론 난 아이들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야. 안심해. 그리고 넌 누구보다도 보조개가 예쁘니 많이 웃는 거 명심하고.
수연 — 『개 같은 날은 없다』 빌려주세요!
나 — 시작이 좀 끔찍한데 괜찮겠어?
수연 — 사는 게 더 끔찍하죠.
나 — 이런… 네게는 개 같은 날이 있구나.
수연 — 개 같기만 해도 다행이게요…
나 — 헉! 이런. 우울할 때가…
수연 — 아니에요. 그냥요. 요즘 그냥 우울해서요. 저 『손톱이 자라날 때』 기억나요. 그렇게 그냥 벽 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면 좋겠어요.
나 — 넌 그 아이처럼 교실에서 없는 듯이 지내는 아이가 아니잖아.
수연 — 그냥 제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그런 거예요. 조금만이라도 놓아버리면 바로 벽이 될 걸요. 이제 아이들의 유치한 말에 맞장구치기도 힘들어요. 그냥 벽이 되어 버리면 될 것 같아요.
나 — 내가 너를 벽으로 안 만들 테다! 네가 그렇게 힘들게 아이들과 맞추느라 불편하면 아이들도 그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너도 계속 힘들고.
수연 — 아이들이 착해요. 그래서 다들 공포에 떨고 있을 거예요. 언제 이 집단에서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공포 말이죠. 전 이제 뭐가 무서운지 모르겠어요. 혼자 다니는 것도 이제는 안 두려운데…
수연이가 갑자기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늦은 밤 새벽까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이 이야기들을 처음 듣는 것 같지 않았다.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책을 빌려가며, 다시 돌려주며 수연이는 이런 이야기들을 온몸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왜 그때는 알아듣지 못했을까? 그리고 왜 지금 그 아이의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온 것일까? 새벽까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수연이와의 대화를 다시 읽어 보았다.
수연 —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아마 지금 쌤이랑 나눈 대화가 너무 찌질했다는 것 때문에 속상할 것 같아요.
나 — 밤이니까 다 이해해. 그리고 내 앞에서 좀 찌질하면 안 되나?
수연 — 그죠. 쌤이니까. 내일 일찍 오세요. 저도 일찍 갈게요.
아침에 만난 수연이는 평소와 같았다. 내 앞에 어제 빌려 준 『오, 나의 남자들!』을 돌려주었다. 평소처럼 어땠는지 물어보았더니 재미있었다고 했다. 우리 학교에는 왜 잘생긴 남자들이 없는지를 투덜거리며 웃겨보려고 했더니 수연이가 갑자기 “제가 얼굴을 지적할 형편이 안 되잖아요.”리고 한다. 공부도 잘하고, 책을 많이 보아서 아는 것이 많은 수연이가 저런 이야기를 할 줄 몰랐다. 수연이의 목소리가 너무 쓸쓸해서 도저히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수연이는 모르는 사람이 한 번 보면 기억에 잘 남지 않을 정도로 특징 없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수연이의 보조개가 어느 누구보다도 예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수연이를 보면 자꾸 웃겨주고 싶어진다. 수연이가 『오, 나의 남자들!』을 바로 내게 주지 않고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뭔가 오늘은 이 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수연 — 금영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은 청소년기에 한 번씩 겪는 것 같아요.
나 — 초등학교 때까지는 크고 대단해 보였던 부모님들이 중학교 들어와서는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어른들의 세상이 엿보이는 것이겠지?
수연 — 그러면서 어른이 별거 아니라는 것도 느끼고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죠?
나 — 그런데 넌 정말 이 책을 보면서 어른스러운 것들을 느꼈구나. 난 이 책 보면서 내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나더라고. 나도 남녀공학 다녔으면 어땠을까? 강동원 같은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요즘 학교 애들 많이 사귀는 것 같던데…
수연 — 아이들이 갑자기 많이 사귀는 것 같아요. 은정이는 카톡 대화명에 “나도 남친 있었으면”이라고 올렸잖아요.
나 — 나도 봤어. 그런데 올린 지 정말 오래되었는데 아직 안 생겼다니 이제 좀 내리지.
수연 — 사실 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은정이가 부러워요. 은정이는 예쁘잖아요. 자신 있으니 그렇게 올린 거 아닐까요? 저 이 책 읽으면서 약간 배신감 같은 거 느꼈어요. 제목만 보고 정말 읽고 싶지 않은 책이었는데 선생님이 재미있다고 하셔서… 그리고 평범한 아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날씬하고 결국 예쁘니까 가장 인기 있는 학교 선배가 금영이를 좋아한 것 같아요.
나 — 잘생긴 애들은 자기가 잘생겼으니 얼굴은 안 볼 수도 있잖아.
수연 —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겠죠. 저… 저도 연애하고 싶어요!
다른 아이들이 들어오자 수연이는 민망했는지 얼른 자리를 떴다. ‘연애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참 많이 돌아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니 다른 사람 이야기 같았고, 이야기도 이어지지 않았다고 생각되었다. 주위의 많은 곳에서는 연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여자는 외모, 남자는 능력이라는 상품으로 관계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당연한 감정들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밤 수연이에게 문자가 왔다.
수연 — 저 연애하고 싶다는 거 비밀이에요.
나 — 이런, 그게 창피한 거야?
수연 — 애들이 욕할 거예요.
나 — 많은 아이들이 연애하고 싶어 해. 좀 더 드러내서 이야기하면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아. 그럼 벽이 안 되어도 되잖아. 다른 아이들도 네가 자신들과 다르게 말하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연애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게 얼마나 자연스러우면 모든 대중가요 가사가 대부분 사랑이고, 많은 예술 작품들이 사랑을 표현하려고 애쓰겠니? 물론 난 아이들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야. 안심해. 그리고 넌 누구보다도 보조개가 예쁘니 많이 웃는 거 명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