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사서의 소리]내 목소리를 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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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2-11 15:59 조회 6,590회 댓글 0건본문
사람마다 제 몫이 있고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다. 목소리는 목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몫에서도 나온다. 목소리가 아닌 몫 소리에서 더 깊은 울림이 전해진다. 제대로 자기 목소리를 냈을 때 가슴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다. 교육의 장소인 학교에서 제 몫을 다하고도 존재감 없이 제 그늘을 만들고 지키는 이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금은 학교도서관과 사서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나가야 할 때다.
학교도서관에서 일어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나 미담을 ‘사서의 소리’에 실으면 되는 거겠지 생각하고 원고 청탁을 가볍게 수락했는데 원고 청탁서를 보는 순간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 생각해야 했다.
원고의 감을 잡으려고 이 코너에 실린 원고들을 찾아 읽었다. 제 몫을 다하며 지혜롭게 대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2년 7개월째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비춰졌다. 이곳 동두천·양주 지역 사서 선생님들과 정기모임을 갖으며 나누고 공감하다가 다른 목소리를 들으니 새롭다. 지금 여기에 잠시 멈춰 서서 사서로서의 진솔한 내 목소리를 듣고 내는 게 의미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만의 생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모아서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학교도서관을 선택했다. 취업이 어려운 현실에서 그것도 사십대에 출근할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싶었고 무엇보다 나만의 전문성에 대한 자긍심이 있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 즐겁게 학교를 드나든다. 마치 일과 연애를 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학부모 독서치료를 3학기째 이끌면서 내 자존감 지수도 올라갔다. 방과 후 에세이 쓰기 반을 만들어 아이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누군가의 수업을 보조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나만의 전문성을 발휘하며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나만의 생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현실이 보였다. 내 자리는 언제나 불안했던 것이다. 2010년 3월 1일자로 출근한 게 아니어서 올 초에 꿈꿨던 무기계약은 2013년으로 밀려났다. 그야말로 무기계약을 위하여 관리자들의 눈치를 때로는 봐야 한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 고용이 안정되는 줄 알았는데 허울 좋은 무기계약이라는 말에 그만 무기력해지고 만다.
즐겁게 일하고 받았던 월급에 대한 만족도에도 변화가 일었다. 호봉제가 아니기 때문에 정체된 느낌이다. 그때서야 노조에서 내는 목소리와 주변 사서 선생님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에 내가 취해 살고 내 방식대로 듣고 해석하며 살았던 것이다. 호봉제와 교육공무직은 이뤄져야 한다. 교육의 현장에서 또 다른 교육의 부재를 느끼는 아이러니가 없어야 한다. 사서 선생님들이 고용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처우개선이 돼야 학교와 학교도서관에 미래가 있다. 학교도서관은 학교의 심장이요, 도서실에 근무하는 사서 선생님은 살아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멀리 내다보는 정책이길 기대한다.
몫 소리… 목소리는 몫에서도 나온다
『짖어봐 조지야』(줄스 파이퍼, 보림, 2000)라는 그림책이 있다. 조지는 제대로 짖지 못하는 강아지다. 짖어보라고 하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다른 동물 소리를 낸다. 자기 목소리로 짖는 가운데 성대모사 하듯이 다른 동물 소리를 낸다면 그야말로 조지는 목소리 달인이다. 조지는 의사의 도움으로 제 목소리를 찾게 된다. 제대로 짖게 된 조지가 이제는 사람 목소리로 ‘안녕’ 인사하면서 이야기에 반전을 준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반전을 꿈꾸고 이뤄내기 위해 지금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리라.
사서로서의 목소리를 내 보라고 할 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모여 우리들만의 고유 목소리가 되어 결집된 그 힘을 역동적으로 들어낼 수 있다. 지금은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손 내밀어 주는 의사 역할 담당자가 필요하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성대 결절 수술을 시키는 의사도 의사요,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사도 의사다. 아마도 의사소통이 잘되는 의사 선생님은 문제해결 능력도 뛰어날 것이라 믿는다.
글쓰기로 자기 목소리 내는 법을 알려줬다. 도서부와 문예창작부가 연합하여 원고 쓰는 날이었다. 잘된 작품을 추려서 전국대회 문학공모전에 내보냈더니 수상자 명단에 우리 학교와 아이 이름이 있다. 이 일을 그냥 지나칠까 아니면 학교에 알릴까 살짝 고민하다 터트렸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이다. 장려상 받은 아이 어머니가 학교로 전화를 하고 다음날 찾아왔다.
“아이 아빠는 어젯밤 이 일로 잠을 설쳤어요. 우리 애에게 기회를 주신 것 너무 감사드려요.”
내게도 음료수 박스를 들고 찾아오는 학부모님이 생겼다고 기뻐하는 ‘사서 샘의 도서관일기’엔 다양한 내 목소리가 있다. 억울하거나 화가 났을 때 나는 글쓰기로 푼다. 날것의 감정을 발효시키면 나만의 창조적 에너지가 된다. 우리들의 다양한 목소리는 더할 수 없는 창조적인 자원이요 에너지원이다. 새해 학교도서관 이야기가 새롭게 써지길 바라고 ‘사서 샘의 도서관일기’엔 어떤 목소리가 담길지 기대된다.
학교도서관에서 일어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나 미담을 ‘사서의 소리’에 실으면 되는 거겠지 생각하고 원고 청탁을 가볍게 수락했는데 원고 청탁서를 보는 순간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 생각해야 했다.
원고의 감을 잡으려고 이 코너에 실린 원고들을 찾아 읽었다. 제 몫을 다하며 지혜롭게 대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2년 7개월째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비춰졌다. 이곳 동두천·양주 지역 사서 선생님들과 정기모임을 갖으며 나누고 공감하다가 다른 목소리를 들으니 새롭다. 지금 여기에 잠시 멈춰 서서 사서로서의 진솔한 내 목소리를 듣고 내는 게 의미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만의 생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모아서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학교도서관을 선택했다. 취업이 어려운 현실에서 그것도 사십대에 출근할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싶었고 무엇보다 나만의 전문성에 대한 자긍심이 있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 즐겁게 학교를 드나든다. 마치 일과 연애를 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학부모 독서치료를 3학기째 이끌면서 내 자존감 지수도 올라갔다. 방과 후 에세이 쓰기 반을 만들어 아이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누군가의 수업을 보조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나만의 전문성을 발휘하며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나만의 생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현실이 보였다. 내 자리는 언제나 불안했던 것이다. 2010년 3월 1일자로 출근한 게 아니어서 올 초에 꿈꿨던 무기계약은 2013년으로 밀려났다. 그야말로 무기계약을 위하여 관리자들의 눈치를 때로는 봐야 한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 고용이 안정되는 줄 알았는데 허울 좋은 무기계약이라는 말에 그만 무기력해지고 만다.
즐겁게 일하고 받았던 월급에 대한 만족도에도 변화가 일었다. 호봉제가 아니기 때문에 정체된 느낌이다. 그때서야 노조에서 내는 목소리와 주변 사서 선생님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에 내가 취해 살고 내 방식대로 듣고 해석하며 살았던 것이다. 호봉제와 교육공무직은 이뤄져야 한다. 교육의 현장에서 또 다른 교육의 부재를 느끼는 아이러니가 없어야 한다. 사서 선생님들이 고용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처우개선이 돼야 학교와 학교도서관에 미래가 있다. 학교도서관은 학교의 심장이요, 도서실에 근무하는 사서 선생님은 살아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멀리 내다보는 정책이길 기대한다.
몫 소리… 목소리는 몫에서도 나온다
『짖어봐 조지야』(줄스 파이퍼, 보림, 2000)라는 그림책이 있다. 조지는 제대로 짖지 못하는 강아지다. 짖어보라고 하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다른 동물 소리를 낸다. 자기 목소리로 짖는 가운데 성대모사 하듯이 다른 동물 소리를 낸다면 그야말로 조지는 목소리 달인이다. 조지는 의사의 도움으로 제 목소리를 찾게 된다. 제대로 짖게 된 조지가 이제는 사람 목소리로 ‘안녕’ 인사하면서 이야기에 반전을 준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반전을 꿈꾸고 이뤄내기 위해 지금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리라.
사서로서의 목소리를 내 보라고 할 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모여 우리들만의 고유 목소리가 되어 결집된 그 힘을 역동적으로 들어낼 수 있다. 지금은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손 내밀어 주는 의사 역할 담당자가 필요하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성대 결절 수술을 시키는 의사도 의사요,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사도 의사다. 아마도 의사소통이 잘되는 의사 선생님은 문제해결 능력도 뛰어날 것이라 믿는다.
글쓰기로 자기 목소리 내는 법을 알려줬다. 도서부와 문예창작부가 연합하여 원고 쓰는 날이었다. 잘된 작품을 추려서 전국대회 문학공모전에 내보냈더니 수상자 명단에 우리 학교와 아이 이름이 있다. 이 일을 그냥 지나칠까 아니면 학교에 알릴까 살짝 고민하다 터트렸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이다. 장려상 받은 아이 어머니가 학교로 전화를 하고 다음날 찾아왔다.
“아이 아빠는 어젯밤 이 일로 잠을 설쳤어요. 우리 애에게 기회를 주신 것 너무 감사드려요.”
내게도 음료수 박스를 들고 찾아오는 학부모님이 생겼다고 기뻐하는 ‘사서 샘의 도서관일기’엔 다양한 내 목소리가 있다. 억울하거나 화가 났을 때 나는 글쓰기로 푼다. 날것의 감정을 발효시키면 나만의 창조적 에너지가 된다. 우리들의 다양한 목소리는 더할 수 없는 창조적인 자원이요 에너지원이다. 새해 학교도서관 이야기가 새롭게 써지길 바라고 ‘사서 샘의 도서관일기’엔 어떤 목소리가 담길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