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교사의 책]힘내라, 대한민국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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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2-11 15:56 조회 6,134회 댓글 0건본문
내가 교사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 십여 년 전 세상물정 전혀 모르던 철부지 여고생은, 교대를 가면 안 되겠냐는 부모님의 애처로운 눈을 외면하며, 절대로 교사만은 안 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었다. 교육은 인간의 일생을 좌지우지하는 일이라서 나 같이 인성이 부족한 사람은 안 된다고 구차한 변명을 했지만, 사실 아이들에게 들볶이는 고단한 교사의 일상이 초라해 보였던 듯싶다. 그리고 분명 무의식 어딘가에는,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학창시절 선생에게 받은 자잘한 상처 아닌 상처들이 교사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었을 터였다. 그래서였을까. 먼 길을 돌고 돌아서 결국에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앞에 섰을 때, 교사로서의 사명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훌륭한 선생은 감히 꿈꿀 수 없었다. 단지 소박한 다짐 한 가지를 했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상처만 주지 말자.’
당신은 선생 자격이 있는가?
하지만 아무리 작은 다짐이라도, 초심을 지키기가 어디 말처럼 쉽던가. 내가 선택한 단어 하나, 질문 하나, 눈빛 하나가 아이들에게 행여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던 처음의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새 “×× 때문에 너무 힘들어~”라고 뒤에서 아이들 흉을 보는 그저 평범한(?), 참으로 못난 선생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전문직이라지만 교육과정과 평가에 대한 자율성이 주어진 것도 아니요, 정부는 수시로 공무원으로서의 잣대를 들이밀고, 학부모는 입시교육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빠른 길만을 요구한다. 게다가 평범한 과목도 아니고 사서교사다 보니 이런저런 고충이 많을 수밖에.
그러나 『선생이란 무엇인가』의 저자는 교육현실을 ‘탓하고만’ 있지 말라며, 나의 무력감을 부끄럽게 한다. 그는 대학에서 비정규직 시간강사를 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수업이 잘되면 내 탓, 수업이 잘 안 되면 학생 탓을 하지 않는다.
『선생이란 무엇인가』
한석훈 | 한언출판사 | 2012
수업 시간만큼은 교사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으며, 따라서 결코 잠자는 교실과 배움 없는 교실은 허용할 수 없다는 그의 믿음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다.
그는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지겹도록 묻고 또 묻는다. “왜 사는가?”, “선생인 나는 도대체 왜 사는가?” 그리고 이 무거운 존재론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루소의 자연주의·듀이의 아동중심교육·성리학의 인간중심사상 등을 살펴본다. 저자가 수많은 교육사상 속에서 공통적으로 찾은 답은 ‘인간’. 다시 말해 교육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이란 모름지기 “영혼의 성숙을 돕는” 존재여야 하며, 선생은 아이들이 “자기실현”에 다다르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글 중간 중간에는 현장사례·학생의 글·신문기사·단행본·논문 등 수많은 자료들이 풍부하게 곁들여져 있어 읽기가 수월하고, 이야기가 추상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리고 어쩜 그리 꼭 필요한 부분만을 재인용했는지 절묘하다.
물론, “당신은 과연 선생 자격이 있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지적 앞에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공교육 밖의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가 바라보는 학교 안팎의 모습이 상당히 날카롭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범죄자를 감옥에 가둔다고 범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왕따 현상의 심리적 원인으로 “우리 사회의 가치 일원화라는 의식의 병폐”를 지적한다. 또한 구성주의 수업이 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문제는 이런 수업을 진행하려면 선생은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토론 수업은 속된 말로 ‘개판’이 돼 버리기 쉽다”는 표현에서는 웃음과 함께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당신이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 조심스레 욕심이 난다. 혹시 나도 될 수 있을까? “이상을 잃지 않았지만 현실도 수용할 수 있고, 그저 주어진 순간에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깊숙이 다가가는” 진짜 선생 말이다.
모든 아이들이 배우는 수업하기
앞의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수업은 흔히 ‘구성주의’로 불리는 형태이다. 교사의 독백이 아니라 대화가 오가며, 아이들이 머리로 고민하는 수업 말이다. 현장에서 이런 모습의 수업이 적용되기 어려운 까닭은 본문의 지적대로 엄청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인데,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정작 내가 구성주의적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답답할 따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선생님들께 사토 마나부의 책이 도움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배움의 공동체’를 주창한 일본의 교육학자로, 교사가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배움’에 초점을 맞추며, 방법론적으로는 협동학습을 제시한다. 협동학습 하면 언뜻 머릿속에 모둠학습이 떠오를 수 있지만 그것과는 달리, 배움의 주체가 ‘개인’이기 때문에 모둠 활동을 하나의 결과로 정리하지 않는다. 주어진 과제를 모둠의 다른 학생의 도움을 받아 개인의 책임 아래 해결해나가는 형태인 것이다.
따라서 과제 해결을 위해 친구 사이의 대화와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배움의 공동체가 자리 잡은 교실에는 “어떤 질문이나 발언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안도감과 기대감”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 내 말을 늘 주의 깊게 들어주고 때론 내게 도움을 준다면, 그 아이의 마음은 안정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배움의 공동체를 도입한 모든 학교에서 학교폭력 및 등교거부 학생 감소 현상이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저자는 책에 크게 두 가지를 담았는데, 하나는 1장의 협동학습에 대한 구체적수업 디자인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2장의 배움의 공동체를 도입한 학교의 실제이야기로 사례가 무려 21개에 달한다. 무엇보다 2장은 단순히 수업사례뿐만 아니라 협동수업을 어떻게 학교 전체에 자리 잡게 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담고 있어 의미 있다. 더불어 “학교 안팎에서 진행되었던 교사들의 자발적인 수업연구가 교육행정에 의한 연수 제도 확충과 병행하여 쇠퇴했다”, “학교는 내부로부터밖에는 변화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10월호 같은지면에 소개한 손우정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해냄)와 연결해 읽을 수 있다.
『학교의 도전』
사토 마나부 | 우리교육 | 2012
그래, 힘내자!
현장에서 고전 분투하는 선생님들을 위해 “생각한 대로 잘 되지 않아도 낙담하지 않을 용기와 힘을 주는 책”을 소개한다. 저자 우치다 타츠루는 “그냥 내버려둠으로써 최소한 교육이 더 나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감히 외친다. “정치인과 언론, 교육 관료들은 제발 부탁이니 교육은 현장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두시라!”고. 올레! ‘그래 맞아!’라고 외치고 싶다.
이처럼 읽고 있으면 속이 다 시원한 말들을 자주 만난다. “학교는 원래부터 이익이 창출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익을 올릴까가 아니라, 어떻게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로 고쳐 물어야 한다.”, “‘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곤란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잘 모를 정도로 복잡하고 곤란하다’ 이러한 현상 인식을 먼저 공유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등등, 일본도 한국과 교육 상황이 비슷한 까닭일까, 현장 교사의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말들이 이곳저곳 눈에 띈다. 이 모든 지적은 그가 교육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타성이 강한 제도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쉽게 알기 어려워 교육에 대한 논의는 조심스럽게 해야 하며, 교육은 시간을 포함한 개념이기 때문에 학교는 원래부터 이익이 창출되지 않는 곳이라서 경제논리로 설명될 수 없다는 지적은 정확하다.
동시에 다음의 구절들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본문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 가르치면 아이들은 가까운 장래에 자기 혼자만 유능하고 상대적으로 나머지는 자기보다 무능한 상태를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102쪽).”, “교사 자신이 배움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137쪽).”, “글로벌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삶의 방식을 어떻게 학교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190쪽).” 저자의 시원하고도 세심한 교육철학 속을 여행하다보면, 책을 덮을 때쯤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앞에 두고 있는 교사들 말고는 없다”는 구절의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이 지적은 명쾌한 동시에 책임감으로 다가와 나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겨주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그래, 힘내자!’ 혼잣말 해본다.
대선이 얼마 안 남았다.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을 자본에서 가치 중심으로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반 모든 문제와 현상들에 대해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는” 후보, “우리 모두가 조금씩 범인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진 후보를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자.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
우치다 타츠루 | 민들레 | 2012
당신은 선생 자격이 있는가?
하지만 아무리 작은 다짐이라도, 초심을 지키기가 어디 말처럼 쉽던가. 내가 선택한 단어 하나, 질문 하나, 눈빛 하나가 아이들에게 행여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던 처음의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새 “×× 때문에 너무 힘들어~”라고 뒤에서 아이들 흉을 보는 그저 평범한(?), 참으로 못난 선생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전문직이라지만 교육과정과 평가에 대한 자율성이 주어진 것도 아니요, 정부는 수시로 공무원으로서의 잣대를 들이밀고, 학부모는 입시교육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빠른 길만을 요구한다. 게다가 평범한 과목도 아니고 사서교사다 보니 이런저런 고충이 많을 수밖에.
그러나 『선생이란 무엇인가』의 저자는 교육현실을 ‘탓하고만’ 있지 말라며, 나의 무력감을 부끄럽게 한다. 그는 대학에서 비정규직 시간강사를 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수업이 잘되면 내 탓, 수업이 잘 안 되면 학생 탓을 하지 않는다.
『선생이란 무엇인가』
한석훈 | 한언출판사 | 2012
수업 시간만큼은 교사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으며, 따라서 결코 잠자는 교실과 배움 없는 교실은 허용할 수 없다는 그의 믿음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다.
그는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지겹도록 묻고 또 묻는다. “왜 사는가?”, “선생인 나는 도대체 왜 사는가?” 그리고 이 무거운 존재론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루소의 자연주의·듀이의 아동중심교육·성리학의 인간중심사상 등을 살펴본다. 저자가 수많은 교육사상 속에서 공통적으로 찾은 답은 ‘인간’. 다시 말해 교육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이란 모름지기 “영혼의 성숙을 돕는” 존재여야 하며, 선생은 아이들이 “자기실현”에 다다르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글 중간 중간에는 현장사례·학생의 글·신문기사·단행본·논문 등 수많은 자료들이 풍부하게 곁들여져 있어 읽기가 수월하고, 이야기가 추상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리고 어쩜 그리 꼭 필요한 부분만을 재인용했는지 절묘하다.
물론, “당신은 과연 선생 자격이 있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지적 앞에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공교육 밖의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가 바라보는 학교 안팎의 모습이 상당히 날카롭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범죄자를 감옥에 가둔다고 범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왕따 현상의 심리적 원인으로 “우리 사회의 가치 일원화라는 의식의 병폐”를 지적한다. 또한 구성주의 수업이 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문제는 이런 수업을 진행하려면 선생은 엄청나게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토론 수업은 속된 말로 ‘개판’이 돼 버리기 쉽다”는 표현에서는 웃음과 함께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당신이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 조심스레 욕심이 난다. 혹시 나도 될 수 있을까? “이상을 잃지 않았지만 현실도 수용할 수 있고, 그저 주어진 순간에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깊숙이 다가가는” 진짜 선생 말이다.
모든 아이들이 배우는 수업하기
앞의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수업은 흔히 ‘구성주의’로 불리는 형태이다. 교사의 독백이 아니라 대화가 오가며, 아이들이 머리로 고민하는 수업 말이다. 현장에서 이런 모습의 수업이 적용되기 어려운 까닭은 본문의 지적대로 엄청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인데,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정작 내가 구성주의적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답답할 따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선생님들께 사토 마나부의 책이 도움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배움의 공동체’를 주창한 일본의 교육학자로, 교사가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배움’에 초점을 맞추며, 방법론적으로는 협동학습을 제시한다. 협동학습 하면 언뜻 머릿속에 모둠학습이 떠오를 수 있지만 그것과는 달리, 배움의 주체가 ‘개인’이기 때문에 모둠 활동을 하나의 결과로 정리하지 않는다. 주어진 과제를 모둠의 다른 학생의 도움을 받아 개인의 책임 아래 해결해나가는 형태인 것이다.
따라서 과제 해결을 위해 친구 사이의 대화와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배움의 공동체가 자리 잡은 교실에는 “어떤 질문이나 발언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안도감과 기대감”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 내 말을 늘 주의 깊게 들어주고 때론 내게 도움을 준다면, 그 아이의 마음은 안정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배움의 공동체를 도입한 모든 학교에서 학교폭력 및 등교거부 학생 감소 현상이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저자는 책에 크게 두 가지를 담았는데, 하나는 1장의 협동학습에 대한 구체적수업 디자인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2장의 배움의 공동체를 도입한 학교의 실제이야기로 사례가 무려 21개에 달한다. 무엇보다 2장은 단순히 수업사례뿐만 아니라 협동수업을 어떻게 학교 전체에 자리 잡게 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담고 있어 의미 있다. 더불어 “학교 안팎에서 진행되었던 교사들의 자발적인 수업연구가 교육행정에 의한 연수 제도 확충과 병행하여 쇠퇴했다”, “학교는 내부로부터밖에는 변화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10월호 같은지면에 소개한 손우정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해냄)와 연결해 읽을 수 있다.
『학교의 도전』
사토 마나부 | 우리교육 | 2012
그래, 힘내자!
현장에서 고전 분투하는 선생님들을 위해 “생각한 대로 잘 되지 않아도 낙담하지 않을 용기와 힘을 주는 책”을 소개한다. 저자 우치다 타츠루는 “그냥 내버려둠으로써 최소한 교육이 더 나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감히 외친다. “정치인과 언론, 교육 관료들은 제발 부탁이니 교육은 현장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두시라!”고. 올레! ‘그래 맞아!’라고 외치고 싶다.
이처럼 읽고 있으면 속이 다 시원한 말들을 자주 만난다. “학교는 원래부터 이익이 창출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익을 올릴까가 아니라, 어떻게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로 고쳐 물어야 한다.”, “‘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곤란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잘 모를 정도로 복잡하고 곤란하다’ 이러한 현상 인식을 먼저 공유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등등, 일본도 한국과 교육 상황이 비슷한 까닭일까, 현장 교사의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말들이 이곳저곳 눈에 띈다. 이 모든 지적은 그가 교육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타성이 강한 제도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쉽게 알기 어려워 교육에 대한 논의는 조심스럽게 해야 하며, 교육은 시간을 포함한 개념이기 때문에 학교는 원래부터 이익이 창출되지 않는 곳이라서 경제논리로 설명될 수 없다는 지적은 정확하다.
동시에 다음의 구절들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본문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 가르치면 아이들은 가까운 장래에 자기 혼자만 유능하고 상대적으로 나머지는 자기보다 무능한 상태를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102쪽).”, “교사 자신이 배움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137쪽).”, “글로벌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삶의 방식을 어떻게 학교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190쪽).” 저자의 시원하고도 세심한 교육철학 속을 여행하다보면, 책을 덮을 때쯤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앞에 두고 있는 교사들 말고는 없다”는 구절의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이 지적은 명쾌한 동시에 책임감으로 다가와 나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겨주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그래, 힘내자!’ 혼잣말 해본다.
대선이 얼마 안 남았다.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을 자본에서 가치 중심으로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반 모든 문제와 현상들에 대해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는” 후보, “우리 모두가 조금씩 범인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진 후보를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자.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교사를 춤추게 하라』
우치다 타츠루 | 민들레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