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저자 [독자가 만난 작가] 박은봉 역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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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9-30 05:15 조회 10,167회 댓글 0건본문
인터뷰 김경란 서울 양재초 사서
박혜리 부천 원미초 사서
신정임 서울 반포중 사서
사진・정리 서정원 기자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춘 역사책 쓰기
신정임 역사를 처음 접한 학생들은 역사 공부를 재미있어하기도 하지만 낯선 용어, 많은 인물과 사건으로 인해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작가님 저서인 『한국사 편지』는 쉬운 입말체의 글로 역사적 사건들을 재미있고 친근하게 들려줘서 한국 역사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풍부한 사진과 그림 자료가 함께 있어 사건을 상상하거나 비교해 보기도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을 쓰시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박은봉 『한국사 편지』를 쓰게 된 계기는 사사로운 것이었어요. 『한국사 편지』에서 편지를 받는 어린이가 세운이로 나오지요? 제 딸의 실제 이름이에요. 세운이가 3학년이 되었을 때였어요. 이제 역사책을 읽혀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세운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서점에 가서 어린이 역사책을 다 훑어 봤지요. 저는 딸에게 책을 골라줄 때 항상 제가 살펴보고 딸에게 권하곤 했거든요. 그런데 한 권도 사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마음에 드는 역사책이 없었던 거죠. 쉽고 재밌다 싶으면 내용이 엉터리고, 내용이 충실하다 싶으면 너무 어려워서 아이들이 읽기에 부담이 됐죠.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내용이 충실한 역사책은 왜 없을까 생각해보았죠. 가장 큰 문제는 어린이 역사책을 쓰는 필자들의 전문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어린이 역사책은 아동문학 하작가는 분들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분들은 역사를 전공한 분들이 아니니까 전문성 부분에서 취약했던 거죠. 그래서 내가 직접 써볼까 생각했어요. 그동안 해온 일이 대중역사서를 쓰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때까지는 어른을 대상으로 썼는데, 이번에는 독자를 어린이로 정해서 딸 세운이로 대표되는 우리 아이들이 읽을 만한 역사책을 한번 써 볼까 생각하게 된 거죠. 마침 그러던 차에 출판사하고 자연스럽게 연결이 됐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생각쟁이>라는 어린이 잡지에 일 년 반 정도 연재를 했어요. 그 원고를 바탕으로 내용을 새롭게 고쳐서 단행본으로 내게 된 책이 『한국사 편지』예요. 1권 쓸 때는 세운이가 5학년이었는데, 다섯 권을 다 끝내고 나니까 중학교 1학년이 되었더라고요. 3년이 걸린 거죠. 출발은 개인적인 것이었지만,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역사책을 읽힐 수 있을까로 확대되서 결국 책이 나오게 됐네요.
김경란 『한국사 편지』를 보면 굉장히 다양한 사진을 볼 수 있는데, 그 사진들은 직접 취재하시면서 찍으신 건가요?
박은봉 사진을 직접 찍은 건 아니고요, 사진을 선택할 때 제가 의견을 적극적으로 냈어요. 이 사진은 이런 걸로 교체했으면 좋겠다든지, 이런 사진도 들어가면 좋겠다든지요. 왜냐면 똑같은 사진이라도 역사책에 실리는 사진은 달라야 한다는 게 제생각이었거든요. 사진 한 컷 한 컷이 텍스트와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구성되어야 하죠. 대개 사진이나 그림은 보기 좋으라고 넣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사 편지』는 처음부터 사진이나 삽화, 지도를 포함한 이미지 자료가 줄글 텍스트를 보완하거나 혹은 텍스트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보충해 주는 기능을 갖도록 기획했어요. 이미지와 텍스트가 긴밀한 구조적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사 편지』의 특징 중 하나가 충실한 캡션이에요. 대부분 캡션은 출판사 편집부에서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한국사 편지』의 캡션은 제가 전부 다 직접 썼습니다.
김경란 책을 집필하실 때 따님 세운이가 많이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박은봉 그렇습니다. 『한국사 편지』를 어떻게 작업했냐면요, 한 꼭지를 쓰기 전에 그 꼭지에 대한 사전 설명이나 지식 없이 그냥 세운이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 주제에 대해서 네가 알고 있는 걸 말해보라고 했죠. 그러면 배운 것, 읽은 것, 본 것, 말이 되든 안 되든 다 이야기합니다. 물론 적절히 질문을 던져야죠. 그렇게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아이의 사고 전개방식, 느낌 등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 했어요. 그런 다음 아이가 서 있는 지점에서 출발하여 내가 말해주고 싶은 지점까지 이끌어가는 거예요. 엄마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나란히 서서 함께 걸어가는 거죠. 먼저 대화를 하고 초고를 쓰고, 다 쓴 초고를 읽혀요. 읽으면서 이해 못할 부분은 표시해달라고 한 다음 초고 수정을 하고 또 다시 읽힙니다. 이런 과정을 매 꼭지 다 거쳤어요. 특히 매 꼭지 도입부에 나오는 따옴표 안의 대화는 실제로 아이와 주고받았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거예요. 이를테면 “부여가 나라 이름이야? 도시 이름인 줄 알았는데…”라든지 백의민족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하얀색 민족”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실제 그대로입니다.
신정임 작가님의 책이 왜 이렇게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나 했더니 예비 독자랑 함께 만든 책이라 눈높이를 잘 맞추신 거군요.
박은봉 제가 『한국사 편지』를 쓸 때 목표로 삼은 게 두 가지였어요. 첫째, 역사도 재미있다는 걸 알려주자. 둘째,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쓰자. 우선 역사도 재미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죠. 아이를 동참시켜야 되겠구나 싶었어요. 누구든지 자신이 소외당하거나 대상화됐을 때 짜증나고 재미없는 거거든요.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서 하면 좀 어려운 것도 재밌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서술을 위해서 아이와 계속 대화하려고 했어요. 가끔씩 딸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얘기를 시키기도 했고요. 그런 시간을 자꾸 가졌어요.
오늘의 역사 교육은?
신정임 아이들에게 박은봉 작가님이 써주길 바라는 역사책이 무엇인지를 물어봤어요. 한 학생의 질문지를 읽어보면, “저는 이 질문지를 통해서 작가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역사책을 집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금의 제 또래 학생들은 안중근 의사가 누군지조차 모르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저는 역사 과목이 다른 과목에 비해서 중요도가 낮게 책정이 되어서 아이들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 현 한국사 교육의 실태와 한국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 학생들이 가져야 할 역사의식에 관한 역사책을 내어주셨으면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의 한국사 교육의 실태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은봉 지금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학생들이 한국사를 제대로 안 배우고 어른이 되는 꼴로 되어 있어요.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근현대사가 선택으로 되어 있어요.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국사는 당연히 필수였어요.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필수였죠.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전근대까지는 필수인데 근현대사는 선택이 되었어요. 근현대사가 선택이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1점이 아쉬운 상황에서 그 복잡하고 어렵다는 근현대사를 선택하겠습니까? 안 하죠. 그러다 보면 한창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기에 정규교육에서 근현대사를 배우지 못한 채 그냥 성인이 되는 거예요. 더군다나 집중이수제를 실시하면서 한국사 교육은 점점 더 뒷전으로 밀려났어요.
근현대사 교육은 매우 중요해요. 현재의 우리 삶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근현대사 교육은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접하는 일과 아주 밀접하게 닿아있는 것입니다. 근현대사를 모르면 오늘밤 아홉시 뉴스에서 나오는 남북 관계 뉴스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면 매스컴이 주는 정보나 떠도는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됩니다. 판단력이나 사고력, 자기 안목을 기를 기회를 잃는 거죠. 이렇게 근현대사 교육은 굉장히 중요한데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되어 있는 것은 바뀌어야 합니다.
신정임 학생들이 바람직하게 역사 공부를 하고 제대로 된 사관을 알고 관심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교육하는 것이 좋을까요? 또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재밌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박은봉 선생님들은 예전에 어떠셨어요?
김경란 전 재밌었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몰랐는데 고등학교 때 세계사 선생님이 너무 잘 가르치시는 거예요. 굳이 책을 외우지 않아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끔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면서 잘 가르쳐주셔서 제가 한때 대학을 사학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요.
박은봉 그 분은 분명 다른 선생님하고 다르게 가르쳤을 거예요. 그렇죠? 아마 무언가를 외우라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게 중요해요. 외울 필요가 없다는 거요. 사실 역사는 외울 수 있는 과목이 아니에요. 역사학자들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갑론을박하지만 제 생각에 역사란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예요. 인간 혹은 인간 집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온갖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예요. 거기에는 제도도 있고 문화도 있고 정치도 있고 다 있지만 결국은 다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로 이해를 하면 외울 필요가 없어요. 이야기는 외우지 않아도 절로 알게 되잖아요. 연도, 인명, 지명 등을 달달 외지 말고 하나의 이야기로 맥락을 이해하면 돼요. 그런데 지금 우리 역사 교육은 팩트 위주의 암기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재미없고 어려운 것이죠.
김경란 무조건 책만 읽으라고 하는 것도 아닌 거겠죠?
박은봉 답사도 중요해요. 답사는 현장에 서 보는 거예요. 책에서 활자로 읽는 역사가 줄 수 없는 것을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에 가서 서 보면 얻을 수가 있어요. 그건 느낌입니다. 그 느낌을 느끼기 위해서 답사를 가는 거예요. 답사는 이성을 작동시켜서 지식을 얻으러 가는 게 아니라 현장에 서서 지식이 아닌 감성을 개발하는 거예요. 즉, 역사적 상상력을 개발하는 일입니다.
역사, 대중에게 더 가까이
김경란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읽은 학생이 자기가 보통 알고 있는 상식이랑 전혀 다른 내용이 많이 나온다고 하면서, 지은 분은 이걸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저도 어떻게 자료를 찾으셨는지 궁금해 해요.
박은봉 제가 무슨 보물찾기를 한 건 아니고요, 사실 학계에서는 다 하는 얘기예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거죠. 다시 말하면 역사학계에서는 공론화되어 있는, 정설로 인정된 이야기인데 그런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들이 대중과 충분히 공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이 모르고 있는 것뿐이에요. 전문 연구자들과 일반 대중 간에 원활한 지적 소통이 안 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인 거죠. 그래서 고쳐져야 할 잘못된 상식이 대중들 사이에서는 그대로 온존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학계에서 공론화되어 있는 것들을 갖다가 대중에게 풀어서 이야기한 거예요. 논문이라든지 연구서, 학술발표회 등에서 이미 다 했던 이야기들입니다.
김경란 근데 왜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박은봉 그건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역사의 대중화 작업이 충분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해요. 제가 책을 쓰는 이유가 사실은 역사의 대중화 작업이에요. 예전에 『세계사 100장면』, 『한국사 100장면』 같은 책을 쓰는 것부터 시작해서 『한국사 편지』를 쓴 것까지 다 역사 대중화 작업입니다. 저는 학계에서는 이미 공유하고 있는 연구 성과들을 일반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 싶어요. 그래야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역사의식이나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진일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박혜리 역사를 제대로 알면 일본을 좋아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역사왜곡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박은봉 최근에 일본의 어느 대학 교수님이 한・일관계 심포지엄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일본도 1945년 패전 후에 청소년들에게 근현대사를 가르치지 않았답니다.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었대요. 당시 대다수의 일본 학생들도 근현대사 대신 다른 과목을 선택하여 시험을 쳤답니다. 지금 한국에 대해 망언을 하고 있는 일본 정치가들이 바로 그 세대랍니다. 일본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잘 모르는 채 이야기한다는 거죠, 그래서 그 노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부끄러움과 동시에 아랫세대에게 미안함을 느낀다고 했어요. 저는 그 말이 매우 와 닿았어요. 이 얘기는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지금 일본에 대해 굉장히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는 것 같은데, 근현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채로 감정적으로 혹은 매스컴에서 뭔가 단편적인 것을 보고 그에 촉발되어서 즉흥적인 대응을 하는 것은 일본이 우리한테 망언하는 거와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일본을 제대로 미워하려면 먼저 근현대사 공부를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신정임 선거를 할 때 후보에 대한 판단도 그렇고, 특정 사건이 일어난 이유가 궁금할 때도 그렇고, 유기적으로 판단하는 게 잘 안되거든요.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감을 길러 놓으면 좀 나아질까요?
박은봉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해요. 역사 공부를 하다보면 수많은 인간들을 만나게 돼요. 거기에는 성공한 인간도 있고 실패한 인간도 있고 나쁜 인간도 있고 선한 인간도 있고 이도저도 아닌 인간도 있죠. 그것도 픽션이 아니라 실제로요. 그런 인물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아, 인간이란 이렇구나, 이런 존재구나’라는 일반적인 이해를 갖게 돼요. 그리고 나는 어떤 인간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저절로 하게 되지요.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게 역사학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
신정임 보통 역사라는 것이 이긴 자의 기록이 많다 보니 이긴 사람의 관점과 시선에 따라서 해석되어 전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역사책들을 보면 특정 관점을 갖고 전체 역사의 많은 사건과 일화들 중에서 특별하게 강조하고자 하는 사건과 일화들을 다루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도 그런 관점이나 철학이 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어떠신가요?
박은봉 그렇죠. 그게 사관에 관한 문제인데요, 사실 역사책에서 굉장히 중요한 게 사관이에요. 제가 전에 아이와 함께 역사책을 사러 갔다가 한 권도 못 사고 돌아왔을 때도 지식, 정보의 부정확함도 있었지만 책에 드러난 필자의 사관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관이 아예 없거나 사관을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고 썼거나, 한 책에 몇 가지 사관이 혼재되어 있거나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어요. 역사는 관점에 따라서 같은 사건도 달리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관점이 중요하죠. 필자가 어떤 관점으로 썼느냐, 그걸 알고 봐야 해요. 어떤 사관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어떤 사관으로 썼는지 알고 보자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한국사 편지』를 보시면 알겠지만, 지배층 중심의 역사가 아니에요. 한 사회를 살고 있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제 시선은 당대를 구성하는 다수, 그 보통 사람들을 향하고 있어요.
박혜리 역사적 기록을 보면 대부분 지배층의 기록이 많잖아요. 민중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그런 기록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런 기록이 따로 있나요?
박은봉 지배층의 기록에 비해서 민중의 기록은 남아있는 게 적습니다. 있더라도 파편화돼서 흩어져 있거나, 문자로 된 기록은 거의 없거나, 여러 가지 사료 면에서 상당히 취약하죠. 그래서 지배층의 기록을 많이 볼 수밖에 없는데, 지배층의 사료라도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해요.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은 관찬사서잖아요. 치자의 통치기록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보면서 백성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도 있는 거죠.
신정임 결국 그 정형화된 기록 사이의 행간을 읽어 내신다는 거죠?
박은봉 그렇죠. 그걸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관, 관점이에요. 저는 어린이들의 역사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이들에게 역사교육을 하는 목적은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가치관은 사물과 세계와 인간을 보는 눈이죠. 그걸로 역사를 보면 사관이고, 자기 인생을 보면 인생관이 돼요.
신정임 지나간 역사나 오래된 역사는 기록이 남고 그 기록에 대해서 비판을 하거나 행간을 읽어내는 게 가능한데 근현대사 같은 경우는 보이고 접하는 부분이 단편적이라서 전체 흐름으로 꿰서 비판을 하거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해석을 하기가 좀 어렵지 않을까요?
박은봉 역사학계에서는 그런 얘기들을 좀 합니다. 당대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역사학이 연구대상으로 삼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이 있다고요. 그래서 당대에 관한 연구는 역사학보다는 정치학이라든지 사회학 쪽에서 주로 하지요. 역사학의 연구대상은 적어도 30년, 한 세대는 흘러야 되지 않겠냐는 게 역사학자들의 얘기에요. 사료를 취합하기도 어렵고,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므로 거리두기가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사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를 다루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현대사입니다. 헤로도토스 당대에 벌어진 페르시아 전쟁을 다루고 있거든요.
박혜리 역사를 읽다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이러지 않고 이랬으면 우리가 좀 더 잘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작가님도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바뀌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순간이 있나요?
박은봉 보통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들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원인과 결과가 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필연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종종 가정을 해봅니다. ‘만약에’라고 가정해서 생각을 해보면 그 필연이 필연인 이유가 더 명확하게 드러나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 만약에 이랬다면 참 좋지 않았을까 싶은 순간은…… 지금 떠오르는 건, 조선시대 소현세자가 그때 그렇게 죽지 않고 왕이 되었더라면, 혹은 정조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 이후에 조선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정도입니다.
작가의 일상, 역사 연구가로서의 삶
신정임 작가님은 초등학교 때부터 역사를 좋아하셨나요?
박은봉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국사시간은 정말 싫었어요. 프린트물 나눠주고 쭉 읽어 가면서 밑줄 긋고 동그라미 표시하고…… 재미없었죠.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는데, 여섯 살 때인가 『이야기 한국사』라는 책을 읽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재미있는 설화만 모아놓은 책이었죠. 출판사는 기억 안 나고 열 권 정도 되는 분량이었는데 저는 그 책을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마르고 닳도록 읽었죠. 그때 읽은 이야기들이 지금도 기억나요. 어쩌면 그때 역사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된 것 같아요.
김경란 작가님께서는 아무래도 역사책을 많이 읽으시겠죠? 역사 말고 다른 분야의 책도 많이 읽으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은봉 저는 일과 관련해서는 역사책을 읽지만, 다른 때는 일부러 다양한 책들을 많이 읽어요. 특히 자연과학 쪽의 책을 좋아해요. 역사는 인문학이잖아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같이 사유해나가면 세계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가 있어요. 인문학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면 자연과학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죠. 두 학문이 서로 어법도 다르고 접근 방법도 다른데, 실은 우리 삶에서는 공존하고 있어요. 인간은 우주 자연 안에서 살고, 자연은 인간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어법으로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하나로 연관되는 걸 느낄 수가 있어요. 요즘 새롭게 보고 있는 책들은 심리학에 관한 책들이에요. 심리학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죠.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하면 저 자신을 포함해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깨달음을 얻어 볼 요량으로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독서를 다양하게 하는 편이에요. 역사책만 읽는 게 아니라 역사책 아닌 걸 더 많이 읽으려고 하죠. 어린이들에게도 그렇게 권해요. 역사를 잘 하려고 하면 역사책만 봐서는 어렵다고요. 역사는 인접 학문에 대한 이해와 삶의 경험이 많을수록 잘할 수 있어요. 왜냐면 역사는 통합적 사고를 요구하기 때문이에요. 인접학문에 대한 지식, 자기체험이 풍부할수록 시간은 좀 걸릴지 모르지만 역사를 잘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관심 있는 책들을 다양하게 읽으라고 얘기해요. 네가 현재 관심 갖고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해라. 네가 지금 생물이 좋으면 생물을, 동화가 좋으면 동화를 열심히 파면 언젠가는 역사와 만난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신정임 글 쓰시면서 생긴 습관이나, 작업을 하시는 특정 시간대나, 어떻게 하면 글이 잘 써지거나 하는 게 있을까요?
박은봉 저는 특별한 습관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남들이 출근해서 일하듯이 연구소에 나와서 좀 늦게까지 하는 편이죠. 남들보단 좀 늦게 나와서 늦게 마치는 편이에요. 밤샘은 안 해요. 예전에는 밤샘을 했는데 이제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리고 글이 잘 안 써진다거나 생각이 막히거나 할 때는 걸어요. 연구소에서 조금만 가면 한강변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그냥 걷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보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라요. 그러면 그 생각을 얼른 잡아서 펼쳐나가죠.
박혜리 앞으로도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춘 책을 계속 내실 건가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박은봉 당분간은 어른 책 쓰는데 치중할 것 같아요. 최근에 낸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세계사』는 『세계사 뒷이야기』 개정판이에요. 『한국사 뒷이야기』 개정 작업을 마치는 것이 이번 여름방학 목표예요. 제목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국사』가 되겠죠? 『세계사 100장면』, 『한국사 100장면』 개정판도 예정되어 있어요. 내년 초까지는 개정판 작업을 해야 되겠다 싶고, 그 다음에 새로운 책은 뭐가 될지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박혜리 최근 『한국사 편지』가 300만 부를 돌파해서 전국지역아동센터에 3,000세트를 기증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렇게 하신 특별한 동기가 있을까요?
박은봉 예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일이예요. 300만 부 판매를 돌파하고 나서 이 기회에 하면 좋겠다 싶어서 했지요. 예전에 공부방이라고 불렸던 지역아동센터란 곳이 있어요. 저소득층 아이들이 방과 후 모여서 공부하는 곳인데 전국에 한 4,000여 곳이 있어요. 그중에 2,300여 곳이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아동센터에 『한국사 편지1~5』, 『엄마의 역사편지』,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두 권 총 여덟 권을 한 세트로 특별판을 별도 제작해서 한 세트씩 보냈어요. 그리고 돌아갈 가정이 없는 아이들을 위탁받아서 보육과 양육을 같이 하는 그룹홈이라는 곳이 있어요. 이 그룹홈 330여 개소에도 한 세트씩 보냈어요. 그리고 전국에 소년원이 열 군데 있더라고요, 거기에도 한 세트씩 보냈어요. 왜 이런 걸 하냐고요? 일전에 출판사가 조사한 통계를 본 적이 있어요. 『한국사 편지』가 제일 많이 팔린 곳이 서울의 강남 3구더라고요. 그 통계를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이 책에 아예 접근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겠구나 싶었죠. 그 아이들에게 이 책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중 한두 어린이라도 그걸 읽고서 인생에 뭔가 작은 변화라도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출판사가 제 취지를 이해해주고 동참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신정임 귀하고 좋은 책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작가님 뵙고서 역사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공부했다. 1992년부터 교양역사서 집필을 계속해왔으며, 지은 책으로 『한국사편지 1–5』, 『엄마의 역사편지』,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세계사 100장면』, 『한국사 100장면』, 『한국사 뒷이야기』, 『인물여성사–한국편』(공저),『박은봉ㆍ이광희 선생님의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1, 2』(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