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책 읽는 부모] 아이 속도에 맞춰 인간답게 키워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6-21 14:41 조회 8,336회 댓글 0건본문
장동석 북칼럼니스트 9744944@hanmail.net
요즘 대개의 부모들은 불안하다. 내 아이가 버릇이 잘못 들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고, 말 안 듣는 아이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태산이다. 그런가 하면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한다는 걱정에서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이른바 ‘육아 불안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묻지 않는 그저 불안에 떠는 우리 시대를 향해 『슬로우 육아』는 “잠에서 깨어나라는 외침”과도 같은 새로운 관점, 즉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육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육아의 기본,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연습
『슬로우 육아』는 육아 불안 사회를 살고 있는 부모들에게 “부모는 무엇과 싸워야 하는가”라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음을 시작한다. 불안에 떨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할 실체를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불안을 조장하는 반면 대부분의 육아 잡지는 과도한 긍정주의, 즉 “모든 갓난아기 안에는 천재가 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내뱉는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속임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 과도한 긍정과 지나친 불안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진정한 해답일까. 저자는 먼저 양육을 둘러싼 거짓말에서 해방될 것을 권한다. 양육을 둘러싼 거짓말이란 이런 것들이다. 어려서부터 혼자 자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규칙적인 식습관은 서두를수록 좋다, 억지로 채소를 먹여야 한다, 독립심을 키워야 빨리 성장한다 등등. 물론 아이들에게 이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하지만, 좋고 싫음만을 아는 아이들에게 지나친 규칙은 결국 독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하나둘 습득할 수 있는 것을 무작정 강요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자유와 창의성을 빼앗는 것이다. “빨리빨리”만 외치는 우리네 부모들에게 시사점이 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우리 아이들이 ‘놀이 부족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놀이는 모든 아이들의 발달의 출발점인데,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빼앗음으로써 발달 자체를 기대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원에 가겠다고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놀이터에 가봐야 놀아줄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 상황을 지켜보기라도 한 듯 저자는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 학원에 모여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놀이터를 제 집인 양 뛰는 아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렇게 사회성을 배우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속도가 아닌, 오로지 아이 속도에 맞춰 인간답게 키우는 것이야말로 자녀들에게 남겨줄 커다란 유산인 것이다
엄마·아빠가 아닌 아이의 속도에 맞춰라
저자는 ‘회복력’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회복력이란 “스스로 만든 놀이를 통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자기 자신을 옹호하는 법”을 뜻한다. 문제는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회복력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만든 놀이가 없으니 회복력이 있을 리가 없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에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이래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자기 자신을 옹호할 수도 없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바로 회복력을 배워야 할 시간에 강요된 무언가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1등을 향해 달리는 세상을 살다 보니, 무턱대고 뛰었다. 아니 뛸 수밖에 없도록 부모들이 부추긴다. 저자는 “독립적인 유년기를 통해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교육은 최소한의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아이들은 서로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론 아이들이 연주도 잘하고 최고 점수도 받는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연주회장이 아니다. 성공한 연주자와 실패한 연주자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면 지옥과 다를 바 없다. … 아이들에게는 보호를 받는 동시에 독립적인 유년기가 필요하다. 어른들의 지도만 받아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직접 주도권을 행사해 봐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자유가 능사는 아니다. 규칙과 한계를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은 원을 그려주면 그 안에서 창의적인 놀이를 하는 데 반해, 커다란 운동장에서 알아서 놀라고 하면 더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이 우리네 습성이다. 하지만 그 한계가 강압적이어서는 안 된다. 자연스럽게 한계를 경험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슬로우 육아의 핵심이다. 한계와 자유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그만큼 부모가 육아에 심혈을 기울여야만 한다.
한편 저자는 잠재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조기 교육이 아닌 적기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섬세한 교육 방법도 제시한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슬로우 육아, 즉 서두르지 않는 삶의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의 속도가 아닌, 오로지 아이 속도에 맞춰 인간답게 키우는 것이야말로 자녀들에게 남겨줄 커다란 유산인 것이다.
공동체 육아가 답이다
슬로우 육아의 가장 큰 미덕은, 더불어 이 책을 모든 부모에게 추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동체 육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온 마을이 함께 키웠다. 하지만 파편화된 사회는 공동체적 육아를 말살시켰다. 결국 모든 아이들이 건강한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그렇게 공동체적으로 키우는 것이 결국 슬로우 육아의 철학이다. “대안은 공동 육아”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더더욱 인상적이다.
“아이들을 교육하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 아프리카 속담은 인간의 진화론적 협력 방식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부모 혼자서는 아이들의 교육을 감당할 수 없고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다. … 아이들은 사회적 관계의 그물이 풍부한 곳에서 가장 잘 자란다. 세계 어디에서나 그렇다. 그런 곳에서는 물질적으로 안정된 가정보다 실질적이고 인격적인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가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요즘 대개의 부모들은 불안하다. 내 아이가 버릇이 잘못 들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고, 말 안 듣는 아이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태산이다. 그런가 하면 완벽한 부모가 되지 못한다는 걱정에서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이른바 ‘육아 불안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묻지 않는 그저 불안에 떠는 우리 시대를 향해 『슬로우 육아』는 “잠에서 깨어나라는 외침”과도 같은 새로운 관점, 즉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육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육아의 기본,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연습
『슬로우 육아』는 육아 불안 사회를 살고 있는 부모들에게 “부모는 무엇과 싸워야 하는가”라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음을 시작한다. 불안에 떨 것이 아니라 싸워야 할 실체를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불안을 조장하는 반면 대부분의 육아 잡지는 과도한 긍정주의, 즉 “모든 갓난아기 안에는 천재가 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내뱉는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속임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 과도한 긍정과 지나친 불안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진정한 해답일까. 저자는 먼저 양육을 둘러싼 거짓말에서 해방될 것을 권한다. 양육을 둘러싼 거짓말이란 이런 것들이다. 어려서부터 혼자 자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규칙적인 식습관은 서두를수록 좋다, 억지로 채소를 먹여야 한다, 독립심을 키워야 빨리 성장한다 등등. 물론 아이들에게 이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하지만, 좋고 싫음만을 아는 아이들에게 지나친 규칙은 결국 독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하나둘 습득할 수 있는 것을 무작정 강요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자유와 창의성을 빼앗는 것이다. “빨리빨리”만 외치는 우리네 부모들에게 시사점이 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우리 아이들이 ‘놀이 부족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놀이는 모든 아이들의 발달의 출발점인데,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빼앗음으로써 발달 자체를 기대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원에 가겠다고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놀이터에 가봐야 놀아줄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 상황을 지켜보기라도 한 듯 저자는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 학원에 모여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놀이터를 제 집인 양 뛰는 아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렇게 사회성을 배우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속도가 아닌, 오로지 아이 속도에 맞춰 인간답게 키우는 것이야말로 자녀들에게 남겨줄 커다란 유산인 것이다
엄마·아빠가 아닌 아이의 속도에 맞춰라
저자는 ‘회복력’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회복력이란 “스스로 만든 놀이를 통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자기 자신을 옹호하는 법”을 뜻한다. 문제는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회복력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만든 놀이가 없으니 회복력이 있을 리가 없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에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이래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자기 자신을 옹호할 수도 없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바로 회복력을 배워야 할 시간에 강요된 무언가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1등을 향해 달리는 세상을 살다 보니, 무턱대고 뛰었다. 아니 뛸 수밖에 없도록 부모들이 부추긴다. 저자는 “독립적인 유년기를 통해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교육은 최소한의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아이들은 서로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론 아이들이 연주도 잘하고 최고 점수도 받는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연주회장이 아니다. 성공한 연주자와 실패한 연주자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면 지옥과 다를 바 없다. … 아이들에게는 보호를 받는 동시에 독립적인 유년기가 필요하다. 어른들의 지도만 받아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직접 주도권을 행사해 봐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자유가 능사는 아니다. 규칙과 한계를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은 원을 그려주면 그 안에서 창의적인 놀이를 하는 데 반해, 커다란 운동장에서 알아서 놀라고 하면 더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이 우리네 습성이다. 하지만 그 한계가 강압적이어서는 안 된다. 자연스럽게 한계를 경험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슬로우 육아의 핵심이다. 한계와 자유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그만큼 부모가 육아에 심혈을 기울여야만 한다.
한편 저자는 잠재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조기 교육이 아닌 적기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섬세한 교육 방법도 제시한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슬로우 육아, 즉 서두르지 않는 삶의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의 속도가 아닌, 오로지 아이 속도에 맞춰 인간답게 키우는 것이야말로 자녀들에게 남겨줄 커다란 유산인 것이다.
공동체 육아가 답이다
슬로우 육아의 가장 큰 미덕은, 더불어 이 책을 모든 부모에게 추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동체 육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온 마을이 함께 키웠다. 하지만 파편화된 사회는 공동체적 육아를 말살시켰다. 결국 모든 아이들이 건강한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그렇게 공동체적으로 키우는 것이 결국 슬로우 육아의 철학이다. “대안은 공동 육아”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더더욱 인상적이다.
“아이들을 교육하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 아프리카 속담은 인간의 진화론적 협력 방식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부모 혼자서는 아이들의 교육을 감당할 수 없고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다. … 아이들은 사회적 관계의 그물이 풍부한 곳에서 가장 잘 자란다. 세계 어디에서나 그렇다. 그런 곳에서는 물질적으로 안정된 가정보다 실질적이고 인격적인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가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