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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독자가 만난 저자]『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엄기호 저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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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1-31 05:36 조회 10,81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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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현숙 남양주 판곡고 사회교사
           왕지윤 인천 경인여고 국어교사
           이호은 의정부 경민여중 전문상담교사

사진・정리
홍주리 기자

학교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걱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교육 붕괴의 원인을 찾아 고쳐 보려는 노력 또한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그 누구도 딱히 이렇다 할 대책이나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점점 병들어가는 교육 현실에서 ‘교사’의 역할에 주목한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의 엄기호 저자를 만났다. 우울한 교육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을 응원하면서 단순한 위로가 아닌 보편적 시각에서 교육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그의 목소리는 따끔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교육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교사에게 있다
권현숙
이번에 내신 책 제목(『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이 무척 공감이 됩니다. 일단 제 소개 겸 지금 있는 학교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는 14년차 공립학교 교사이고, 첫 발령을 공고로 받아 제대로 된 수업을 하기 힘든 무서운(?)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교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사회과 교사가 공고에 와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겨우 2년을 견디다 인문계 학교로 왔는데, 공고에서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올해 또 다른 지역으로 학교를 옮겨 보니 이곳은 더 심하더라고요.
엄기호 첫 발령부터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그런데 올해 옮긴 학교는 어떤 의미로 심하다는 말이신가요?
권현숙 우리 학교는 일반 인문계 학교지만 공고를 가지 못한 아이들이 오는 학교예요. 요즘은 특성화고가 일반 인문계 학교보다 더 낫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학교의 아이들 대부분은 목표 의식이 부족하고, 선생님들은 어떻게 이 아이들을 7교시까지 잡아두고 있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이 아이들과는 50분 수업을 할 수가 없어요. 20~30분 안에 수업을 끝내지 않으면 아이들이 견디지 못해요. 이런 현실이 책에 생생하게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상세히 학교 사정을 알 수 있으셨나요?
엄기호 실은 이 책은 제 박사논문이에요. 제가 문화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질적방법론’이란 방법으로 통계나 수치가 아니라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거나 현장 참여를 통해 직접 현장을 보고 글을 썼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내고 나서 이 책으로 학교에서 토론수업을 해보려 하는 국어교사 분들이랑 친해졌어요. 그 분들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함께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 교육학 책을 읽지 않고 철학이나 사회학 쪽 책을 읽었어요. 거기서 나온 개념으로 학교 현장을 읽는 연습을 했어요. 왜 교육학 책을 읽지 않았느냐면, 교육학 개념들로는 지금 학교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교육학은 교육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안에서만 개념을 정해 놓기 때문에 방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50분 수업이 어려운 아이들이라거나 수업 시간 이외에는 아무 이야기도 못 하는 선생님들을 읽지 못하거든요.
그렇게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선생님들과 나눴던 대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외롭다’는 거였어요. 교무실도 나뉘어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있으니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저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어요.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문제가 벌어지는 공간에서 그곳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풀어야 하는 건데, 지금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어요. 즉, 학교는 교사들에게 삶의 공간이 아니라 밥벌이의 수단으로서의 기능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교육 문제를 논하려고 하면 학생과 관련된 문제만 잘 풀면 된다고 생각하고, 보통 교사들에겐 관심이 없어요. 저도 물론 학생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교사의 심리상태에 대해 살펴보지 않으면 아이들이 잘 크기를 바란다는 게 가능한 것인가 의문이 듭니다. 교사들이 어떻게 사는지,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학교가 분열되고 있다
왕지윤
사실 저는 선생님 앞에 서기가 두렵습니다. 선생님 책에 교육에 대해 날 선 이야기가 많은 편이라 책을 읽으면서 ‘내가 여기 나오는 문제교사인데….’ 싶기도 했어요. 책을 읽다 보면, 교실에서 교무실, 나아가 학교 전체가 점점 무기력의 수위가 높아지는 절망의 공간으로 그려진 느낌인데요, 제가 학교에 몸 담고 있으면서도 아직 교육의 위기에 대해 제대로 실감을 못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책을 쓰기 전과 쓰고 나서 교육 현장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있으셨나요?
엄기호 제가 글을 쓰기 위해 교육 현장을 살펴보면서 교사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근거 중 하나는, 선생님들이 많이 지쳐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인터뷰한 선생님들은 지난날 학교의 비리와 부정에 맞서 싸워 오면서 한편으로는 말이 통하지 않는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학급문집이니 상담이니 별별 수를 다 쓰면서 학생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이제는 거의 힘을 다 소진해 버리셨더라고요. 그것이 가장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권현숙 저는 혁신학교가 소수의 인원에 맞는 교육과정을 추구하는 좋은 제도이긴 하지만, 그 울타리 바깥의 아이들은 그만큼 소외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엄기호 지금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는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정책 입안을 할 때에는 전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항상 하는 방식은 일부를 솎아내는 방식이잖아요? 물론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영재교육을 시키든 그 수준에 맞춰 따로 교육을 해야 하겠지만, 나머지 아이들을 위한 정책은 만들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밑의 벽돌을 빼서 위에 채워 넣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인문계 고등학교와 전문계 고등학교로 나뉘어 있었는데 지금은 특성화고가 생겼으니 전문계 고등학교에 갈 학생들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오게 됩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을 간다는 전제로 가르치는 곳인데, 그런 학교에 대학에 갈 준비도 안 되어 있고 의지도 없는 아이들이 들어오게 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만약 교장, 교사들이 의기투합해서 교육과정을 재편성할 의지가 있다고 해도, 이런 것을 놔둘 교육청은 없지요. 학부모들도 가만히 있을리 없고요.



왕지윤
학교도 위계화 되고, 교사들 사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위계화가 생겨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구도로 계속 가는 걸까요?
엄기호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교육 문제에 한정해서 본다면 이렇습니다. 교사는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사회 인식이 일반적이지만 ‘가르치는 사람’이란 넓은 의미에서 그 안정성은 깨졌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사립학교 같은 경우는 정규직 교사를 잘 뽑지 않잖아요? 구색 맞추기로 1~2명만 뽑고 나머지는 거의 기간제 교사로 채워집니다. 공립학교도 3분의 1정도가 기간제 교사인 상황에서 나중에 가면 정규직 교사는 사라질 지도 모릅니다. 비정규직인 기간제 교사의 고용재량권은 학교장에게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학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가르치고 싶은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 집단의 위계화도 심각합니다. 예전부터 있었던 ‘공부 잘하는 아이’, ‘공부 못 하는 아이’ 수준이 아니라 성적순대로 ‘대학 갈 아이들’과 ‘대학 안 가는 아이들’을 나눠놓고 그 중에서도 명문대에 갈 성적이 되는 아이들은 ‘우리 학교를 빛낼 아이들’이라고 또 따로 구분하는 식으로요.
그런 다음에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부터 달리해서 이들이 서로 섞여서 어울리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제가 책에서 ‘대학을 안 가는 아이들’을 ‘널브러진 아이들’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아이들은 큰 사고를 치지 않고 무사히 졸업만 하면 됩니다. 교사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이 아이들을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말라’는 거죠. 결국 교사들에게는 이들이 사고를 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과 보모 역할만을 요구하지요. 이들에게 교사라는 존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거죠. 즉, 가르치는 사람의 위상이 사라진 겁니다.
반대로 공부하는 아이들은 어떨까요? 요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집도 좀 사는 편이고,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80~90% 정도를 차지하다 보니 학교 선생님은 우습죠. 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자로서 학교 선생님의 위상은 과외 선생이나 학원 선생에게 뒤처지는 거죠. 결국 지금 교사들은 이 두 집단의 아이들에게 모두 가르치는 사람이란 존재감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죠.


교사와 학생, 서로를 타자로서 받아들이기
왕지윤
아이들을 타자로서 대한다는 것은 서로가 통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고 그 후에야 진정한 관계 맺기가 시작된다고 하셨는데, 책에서 말하는 ‘타자로서의 만남’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엄기호 저는 교사(가르치는 사람)와 학생(배우는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의 교사들은 예전과 다르게 대부분 학창시절에 모범생이었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대체로 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공부를 못하거나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서로 모른다는 걸 인정을 하면 학생이 왜 교사를 싫어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들을 수 있게 됩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교사의 수업을 못 알아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가르치는 사람에게 있어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 못 알아듣다니, 화가 날 일이지요. 저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만, 강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예전에는 저도 이런 사실에 많이 당황했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학생이 모르는 것을 새로 알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교사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내가 못나서 아이들이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 아이한테도 화를 내지 않고 모욕도 주지 않아요. 아이에게 화를 내고 모욕을 준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아이에게 상처만 줄 뿐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지 다양한 방법론을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부 실패할 수도 있어요. 실패가 당연하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 시도를 할 수 있고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호은 그렇다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학교와 교사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지금 선생님들은 현장에서 너무나 마음을 많이 다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가 상처가 되는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엄기호 교사의 탓이 아니죠. 분명 외부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경우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요, 보수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는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됩니다. 그 군불을 지피는 데 항상 지목되는 것이 청소년입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지금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불안보다는, 가까운 미래가 무너진다는 느낌에 더 불안해하기 때문입니다. 사회 전체가 청소년이 타락하고 있다고 선동해서 우리 사회에 미래가 없다는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절대 다수의 청소년이 모여 있는 곳은 학교이기 때문에 손가락이 학교 쪽으로 가게 되고, 결국 교사의 잘잘못을 따지게 되지요. 이것이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는 레퍼토리입니다.
비극적인 것은, 이것을 알고 있는데도 이를 해결할 대항 매뉴얼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운 일이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절대 이 모든 것이 교사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선생님들은 이것을 분명히 알고, 혼자 괴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합니다.


학교를 두려워해야(?) 하는 교사들
왕지윤
2010년에 내신 책 제목이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인데, 반어적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 이번 책 제목인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도 예전엔 강력한 권위를 자랑하던 교사도 이제는 학교를 두려워한다는 연민의 의미도 있지만 교사도 학교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질타의 의미도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엄기호 정확하게 보셨어요. 저는 학교를 두려워하지 않는 교사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많은 교사들은 학교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학교를 두려워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내가 혹시 잘못하고 있지는 않나, 선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 받거나 교사모임에 가서 공부도 할 텐데. 학교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쟤네, 원래 저러잖아요.”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이 말은 정말 교사에게서 나오면 안 되는 말입니다.



권현숙
실제로 수업하기가 정말 힘든데도, 그것을 별로 고민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 혼자 한 학기 정도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았지만, 저만 튀는 것 같아 지금은 조용히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하지 않으면 더 심해질 거라는 걸 알기에 아이들의 수업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너무 공허할 때도 있습니다.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엄기호 실제로 책에 나온 한 교사는 후배 교사가 “제가 교실에 있는 모두를 다 끌고 갈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고 합니다. 물론 모두를 다 끌고 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해야겠다고 생각해야죠. 교무실이 ‘섬’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왕지윤 책에서 교사들의 대화에 교육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지점에서 이 부분을 경계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엄기호 저는 교사들이 너무 교육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소진(burn out)되는 거잖아요? 교사라면 24시간 교육 문제만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최소한 퇴근하기 전까지는 교육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사람을 직접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한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에 대한 고민을 교사들끼리 서로 나누지 않고 여가 생활에 대한 이야기만 나눈다면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거죠.


시끄러운 도서관을 만들자!
이호은
선생님의 지난 저작들을 살펴보다가 학교를 지나친 공부의 공간으로 생각하는 맥락에서 “의식 있는 선생님들도 기껏 학교에 도서관이나 만들자고 한다”고 하셨는데, 이에 대해 해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엄기호 아, 그것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이냐면요. 많은 선생님들에게 나중에 뭘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학교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같이 도서관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문제는 아이들은 대체로 도서관에 가지 않으려고 해요. 결국 도서관에는 선생님 혼자만 계실 것 같다고 조금 비아냥거리듯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물론 저도 도서관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도서관이 조용하면 망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도서관은 시끌시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시끄럽게 공부를 하고 다른 사람과 토론도 할 수 있는 도서관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읽고 나서 기억에 오래 남는 책은 친구들과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책입니다. 그리고 여럿이 모여 시끄럽게 떠들 수 있는 도서관이야말로 민주적인 도서관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이호은 그렇군요. 혹시 다음 저작 계획을 세우셨나요?
엄기호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한 책을 내려고 합니다. 교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만남과 타자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요.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의 결론에서도 말했지만, 교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타자들과 만나는 과정을 통해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고, 또 진정한 만남이란 뭔가에 대해 이론적으로 정리한 내용을 묶어 책으로 낼 계획입니다.
권현숙 기본적으로 논문을 쓰시려면 책을 많이 읽으셔야 할 텐데 평소 독서는 틈틈이 하시는 건가요?
엄기호 저는 잡히는 대로 책을 읽는 편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사회학 책을 읽다가 점심 때는 정치학 책을 읽다가, 며칠 전엔 철학 책을 읽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중 없이 읽습니다. 학자로서는 그다지 좋은 습관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잡히는 대로 읽다가도 서로 연결이 되는 부분이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왕지윤 오늘 이 자리가 제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쌓여 있던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학교와 교육, 우리 사회에 대한 따끔한 지적 부탁드립니다.



엄기호
울산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폭력적이고 부패한 교사를 만나 교육과 학교에 대한 문제의식에 눈떴다. 전교협 해직교사들의 편지글 모음인 『내가 두고 떠나온 아이들에게』를 중학교 때 읽으며 다른 교육의 가능성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 후 늘 교육의 언저리에서 살아오며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페다고지를 만드는 것을 삶의 화두로 삼고 있다. 현재는 덕성여대 겸임교수,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간하는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으로 있으면서, 『닥쳐라, 세계화!』(2008),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2009),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2010),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2011)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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