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함께 읽는 사람들] 사회인 독서 공동체 ‘고궁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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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1-31 05:18 조회 7,562회 댓글 0건본문
이주현 서강대 4학년
기울이던 술잔처럼, 자연스레 시작된 모임
2011년 겨울, 젊음의 열기로 가득 찬 홍대 앞. 그곳 한 편에 위치한 ‘상상마당’ 건물에는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차분한 분위기로 둘러앉아 있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글쓰기 교양강좌. 고궁독서의 모체라고 볼 수 있는 그곳에서, 그들은 책에 대한 애정과 함께, 서로에 대한 관심도 쌓아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에서, 사람들은 미리 선정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짧게나마 발표했다.
그리고 각자 써 온 글을 함께 읽어 갔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그러한 수업방식은 바쁜 사회인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었고, 점점 익숙해졌다. 더불어 수업 후 이어진 뒤풀이 덕에 편안한 분위기가 꾸준히 유지됐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그 수업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렇게 두 달이란 시간이 흘러 어느덧 마지막 수업도 끝이 났다. 종강 파티 겸 이어진 뒤풀이 장소에는 매번 참석하던 10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쉬움에 서로가 술잔만 계속 기울이던 그때, 누군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따로 독서모임 한번 시작해 볼 생각 없나요?” 한남자의 갑작스런 제안은 굳었던 사람들의 표정에 조그만 생기를 띠게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두 달의 소중한 기억. 그 편안한 분위기. 그렇게 책도 사람도 놓치기 싫었던 12명의 바람이 모여, 고궁독서는 출발할 수 있었다.
고궁독서(固窮讀書)
시작은 했지만,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막막했던 우리들은 이름을 짓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평범한 이름 말고, 우리의 특징을 콕 집어 알릴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머리를 맞대던 중 누군가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다. “고궁독서는 어떨까요?” 고궁독서(固窮讀書). 곤궁(가난)을 달게 여기고 학문에 힘쓴다는 한자 성어. 여유로움보단 바쁜 일상에 치이는 우리에게 적합한 단어였다.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상황을 달게 받아들여 책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자는 거창한 의미가 담긴 고궁독서는, 그렇게 우리 모임의 이름이 되었다.
더불어 이름에서 고궁(古宮)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물씬 느껴지니, 이보다 좋은 이름이 어디 있을까!
이름을 닮아가는 고궁독서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담고 시작한 독서모임도 어느덧 2년째가 되었다. 11명의 멤버가 돌아가며 HOST가 되는 것도 벌써 두 바퀴를 지나, 세 바퀴째 돌고 있다. 처음의 엉성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이젠 제법 모임다운 형태를 갖췄고, 사회적 지원도 받는 떳떳한 독서 모임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멤버들 모두 이렇게까지 모임이 지속되고 발전될 줄 몰랐다. 하나 둘, 고궁에 쌓인 추억을 되짚어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과거를 곱씹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의 모임은 고궁독서,그 이름을 참 많이 닮았구나.’
고궁독서의 멤버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다. 마냥 유하고 부드럽진 않다. 참 신기한 건, 그럼에도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멤버들이 저도 모르게 고궁이란 고즈넉한 이름을 떠올리는 것인지, 상충되는 의견과 생각의 차이를 금세 타협한다. 서로가 분명하고도 뚜렷한 의견을 내놓지만 표현 방식이 부드러워 흐뭇한 대화로 마무리된다. 이것이 고궁독서가 가진 매력 중 하나이다. 토론 배틀이 아닌 대화의 장으로 꾸며지는 고궁독서.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고궁에선, 이름처럼 아늑한 정취가 물씬 풍긴다.
고궁의 독특한 향내
고궁독서의 매력이라면, 앞서 말한 따뜻한 토론 분위기 외에, 다양한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고궁에는 현재 11명의 멤버가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모여 있다. 보통 소모임은 비슷한 연령대 혹은 같은 업종의 사람들로 구성되기 쉬운데, 고궁독서는 다양한 멤버들로 채워져 있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구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익한 점이 많다.
일반적으로 큰 나이 차는 대화의 단절 혹은 걸림돌이 되곤 한다. 하지만 고궁이라는 소통의 창구를 통해서라면 나이 차는 오히려 기회가 된다. 20대가 읽은 『데미안』과 40대가 느낀 『데미안』을 동시에 맛볼 수 있고, 함께읽기 외에도 다른 세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가끔 이해하지 못할 엄마의 행동을, 독서모임 선생님을 통해 고개 끄덕일 수 있듯이.
고궁이 갖는 다양성의 장점은 나이와 더불어 다양한 직업을 가진 구성원들이 모였기에 가능하다. 직장인에서부터 개인사업가, 심리상담사와 숲해설가 그리고 평범한 대학생까지. 각자가 살고 있는 세상이 조금씩은 다르기에, 서로가 책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따라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똑같은 한 권의 책이 어느새 11개의 독특한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난다. 누군가는 직장 상사에 대입하여 읽기도 하고, 누군가는 숲과 연관시켜 읽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한 권의 책으로 11개의 독특한 경험을 얻게 된다.
또 하나 고궁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그건 강압적이기 보다 자율적이고, 수동적이기보다 자발적인 모임의 진행 방식이다. 사실 이 점이 고궁독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압박과 스트레스가 아닌, 편하고 즐거운 모임. 격주로 진행되는 모임에서 멤버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책을 읽도록 노력은 하되, 선정 도서를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건 없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형식이 있는 게 아니다. 서평도 좋고, 책을 읽다 인상깊던 문장에 관한 것이어도 좋다. 그저 주절대는 넋두리도 환영이다. 즉, 읽지 못해도 모임 참석과 토론, 글을 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책을 다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바쁜 탓에 어쩔 수 없다면 몸만 와도 언제든지 환영하는 곳이 고궁이다. 그럴 땐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책 한 권 읽은 것 이상으로 많은걸 느끼기도 한다. 패널티도, 부담도, 스트레스도 없는곳, 멤버들이 고궁에 더욱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변의 걱정에 대한 한마디
많은 친구들이 고궁독서를 궁금해 하며 이것저것 묻곤 한다. 이야기를 듣다가 종종 때 아닌 걱정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전문 지도 선생님도 없고, 그렇게 자율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면 모임을 쉽게 망치는 거 아니냐고. 이 기회에 친구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사실 고궁에도 모임을 이끌어가는 지도 선생님이있다. 물론 첨삭까진 아니지만 11명이나 되는 선생님들이 있으니 걱정 없다. 그렇다, 고궁독서는 서로가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 전문적인 독서 지도자 없이 원활한 진행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 모임을 진행하고자 모였을 때 가장 큰 걱정도이 부분이었다. 전문 독서 지도자의 부재. 골머리를 앓던 우리가 내린 해답은 서로가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 주자는 아주 간단한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뛰어난 독서 지도 선생님을 모셔온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나고 나서야 말이지만 현재의 방식이 고궁독서의 취지에는 훨씬 더 적합한 형태였다.
물론 전문적인 글쓰기 기술을 배우고자 함이라면 조금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좋은 사람들과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게 목적인 곳에서는 이 같은 방법이 보다 효과적이다. 한 명의 독서 전문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고, 각자가 주체적으로 나서게 된다. 더불어 돌아가면서 맡는 HOST는 사회를 보는 역할을 함으로써 모두가 한 번씩 자신의 개성을 살려 지도 선생님이 된다. 이것은 고궁이 갖는 재미난 요소 중 하나기도 하다. 이처럼 11명의 사회자와 지도 선생님이 있는 고궁에서는, 서로의 호칭도 나이를 불문하고 ○○선생님을 사용한다.
자율적인 분위기가 진행을 망치지 않느냐는 걱정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다. 자율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모임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모임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모임이지만, 누리는 즐거움은 멤버 자신이 하기 나름이다. 선정 도서를 많이 읽어 올수록, 그리고 글을 쓰고 올수록 느끼는 즐거움이 배로 커진다. 자신의 생각을 함께 공유하며 즐거운 수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들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멤버들은 바쁜 시간을 할애하며 조금이라도 책을 더 읽고 오려고 애쓴다. 이로 인해 강압적인 분위기나 패널티 없이도 모임은 순탄하게 흘러간다. 오히려 압박하며 책을 권할 때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말이다.
지루한 책쟁이들의 따분한 모임이라고?
걱정과 더불어 흔히 갖는 오해들이 있다. 독서모임이란 마냥 정적인 활동이라는 오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감동적인 책의 한 구절을 읽고 눈물 짓는 모습에 대한 오해. 하지만 오해는 오해일 뿐, 고궁은 그 어떤 모임보다 활동적이며 열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고궁독서에서 활동이란 단순히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변동적이긴 하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진행한다. 책과 관련된 영화를 함께 감상하기도 하고, 음악을 공유하기도 한다. 연말에는 조그만 시상식도 개최하고 문학과 함께하는 MT를 떠나기도 한다. 책이라는 주제만으로도 수많은 동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또한 작년에는 미얀마 도서관 설립에 조그만 금액을 후원하기도 했고, 올해는 책과 관련된 봉사도 계획 중에 있다. 아무쪼록, 멤버들은 함께 쌓은 추억이 많아서인지 서로에게 느끼는 친밀감과 모임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멤버들의 이러한 애착은 모임에 선순환을 가져다 준다. 좋은 게 있으면 자연스레 나누려고 하고, 공유하려 한다. 덕분에 주고받는 선물이 한가득이다. 또한 공통된 관심사도 많은 편이어서 카페나 그룹채팅창에는 공연이나 전시 등 다양한 활동에 대한 소모임 공지가 자주 뜨곤 한다. 그렇게 자주 모이다 보면 애착은 더욱 커지고, 애착이 커진 만큼 함께하는 시간은 더 많아진다.
책은 1순위, 사람은 0순위
대학 내 동아리 활동도 2년이 넘도록 함께하는 경우가 드물다. 2년차가 되면 단순한 친목으로 변질돼 버리거나, 그 친목조차 시들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뚜렷한 목표도 목적도 없이, 그저 책이 좋아 모인 조그만 독서모임이 다툼도 낙오도 없이, 원활히 이어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책이란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일까. 맞는 말이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고궁독서를 지금껏 끈끈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책보다 사람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고궁독서 멤버들에게 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이다. 하지만 그 물건이 소중한 이유는,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누는 유쾌한 수다가 있어서다. 고궁독서 11명의 멤버들에게 책은 1순위지만, 사람은 0순위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탓에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누군가는 멤버들의 얼굴을 그리고, 어떤 이는 소중한 추억을 담은 영상을 제작한다. 어느덧 고궁독서가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우리들이다.
독서모임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이것이다. 고궁이 지금껏 함께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사람 때문이었다. 광고 속 문구처럼, 독서모임에 있어서도, 사람이 먼저다.
그들이 머무는 고궁의 뜰 앞에는 언제나 유쾌한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그들의 모습은 모임이라기보단 하나의 공동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독서 공동체, 가족이 되어버린 고궁독서. 그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든다. 책 펼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다며 징징대던 현대인들의 투정이,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겠다고.
기울이던 술잔처럼, 자연스레 시작된 모임
2011년 겨울, 젊음의 열기로 가득 찬 홍대 앞. 그곳 한 편에 위치한 ‘상상마당’ 건물에는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차분한 분위기로 둘러앉아 있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글쓰기 교양강좌. 고궁독서의 모체라고 볼 수 있는 그곳에서, 그들은 책에 대한 애정과 함께, 서로에 대한 관심도 쌓아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에서, 사람들은 미리 선정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짧게나마 발표했다.
그리고 각자 써 온 글을 함께 읽어 갔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그러한 수업방식은 바쁜 사회인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었고, 점점 익숙해졌다. 더불어 수업 후 이어진 뒤풀이 덕에 편안한 분위기가 꾸준히 유지됐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그 수업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렇게 두 달이란 시간이 흘러 어느덧 마지막 수업도 끝이 났다. 종강 파티 겸 이어진 뒤풀이 장소에는 매번 참석하던 10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쉬움에 서로가 술잔만 계속 기울이던 그때, 누군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따로 독서모임 한번 시작해 볼 생각 없나요?” 한남자의 갑작스런 제안은 굳었던 사람들의 표정에 조그만 생기를 띠게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두 달의 소중한 기억. 그 편안한 분위기. 그렇게 책도 사람도 놓치기 싫었던 12명의 바람이 모여, 고궁독서는 출발할 수 있었다.
고궁독서(固窮讀書)
시작은 했지만,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막막했던 우리들은 이름을 짓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평범한 이름 말고, 우리의 특징을 콕 집어 알릴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머리를 맞대던 중 누군가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다. “고궁독서는 어떨까요?” 고궁독서(固窮讀書). 곤궁(가난)을 달게 여기고 학문에 힘쓴다는 한자 성어. 여유로움보단 바쁜 일상에 치이는 우리에게 적합한 단어였다.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상황을 달게 받아들여 책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자는 거창한 의미가 담긴 고궁독서는, 그렇게 우리 모임의 이름이 되었다.
더불어 이름에서 고궁(古宮)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물씬 느껴지니, 이보다 좋은 이름이 어디 있을까!
이름을 닮아가는 고궁독서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담고 시작한 독서모임도 어느덧 2년째가 되었다. 11명의 멤버가 돌아가며 HOST가 되는 것도 벌써 두 바퀴를 지나, 세 바퀴째 돌고 있다. 처음의 엉성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이젠 제법 모임다운 형태를 갖췄고, 사회적 지원도 받는 떳떳한 독서 모임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멤버들 모두 이렇게까지 모임이 지속되고 발전될 줄 몰랐다. 하나 둘, 고궁에 쌓인 추억을 되짚어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과거를 곱씹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의 모임은 고궁독서,그 이름을 참 많이 닮았구나.’
고궁독서의 멤버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다. 마냥 유하고 부드럽진 않다. 참 신기한 건, 그럼에도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멤버들이 저도 모르게 고궁이란 고즈넉한 이름을 떠올리는 것인지, 상충되는 의견과 생각의 차이를 금세 타협한다. 서로가 분명하고도 뚜렷한 의견을 내놓지만 표현 방식이 부드러워 흐뭇한 대화로 마무리된다. 이것이 고궁독서가 가진 매력 중 하나이다. 토론 배틀이 아닌 대화의 장으로 꾸며지는 고궁독서.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고궁에선, 이름처럼 아늑한 정취가 물씬 풍긴다.
고궁의 독특한 향내
고궁독서의 매력이라면, 앞서 말한 따뜻한 토론 분위기 외에, 다양한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고궁에는 현재 11명의 멤버가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모여 있다. 보통 소모임은 비슷한 연령대 혹은 같은 업종의 사람들로 구성되기 쉬운데, 고궁독서는 다양한 멤버들로 채워져 있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구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익한 점이 많다.
일반적으로 큰 나이 차는 대화의 단절 혹은 걸림돌이 되곤 한다. 하지만 고궁이라는 소통의 창구를 통해서라면 나이 차는 오히려 기회가 된다. 20대가 읽은 『데미안』과 40대가 느낀 『데미안』을 동시에 맛볼 수 있고, 함께읽기 외에도 다른 세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가끔 이해하지 못할 엄마의 행동을, 독서모임 선생님을 통해 고개 끄덕일 수 있듯이.
고궁이 갖는 다양성의 장점은 나이와 더불어 다양한 직업을 가진 구성원들이 모였기에 가능하다. 직장인에서부터 개인사업가, 심리상담사와 숲해설가 그리고 평범한 대학생까지. 각자가 살고 있는 세상이 조금씩은 다르기에, 서로가 책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따라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똑같은 한 권의 책이 어느새 11개의 독특한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난다. 누군가는 직장 상사에 대입하여 읽기도 하고, 누군가는 숲과 연관시켜 읽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한 권의 책으로 11개의 독특한 경험을 얻게 된다.
또 하나 고궁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그건 강압적이기 보다 자율적이고, 수동적이기보다 자발적인 모임의 진행 방식이다. 사실 이 점이 고궁독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압박과 스트레스가 아닌, 편하고 즐거운 모임. 격주로 진행되는 모임에서 멤버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책을 읽도록 노력은 하되, 선정 도서를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 같은 건 없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형식이 있는 게 아니다. 서평도 좋고, 책을 읽다 인상깊던 문장에 관한 것이어도 좋다. 그저 주절대는 넋두리도 환영이다. 즉, 읽지 못해도 모임 참석과 토론, 글을 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책을 다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바쁜 탓에 어쩔 수 없다면 몸만 와도 언제든지 환영하는 곳이 고궁이다. 그럴 땐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책 한 권 읽은 것 이상으로 많은걸 느끼기도 한다. 패널티도, 부담도, 스트레스도 없는곳, 멤버들이 고궁에 더욱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변의 걱정에 대한 한마디
많은 친구들이 고궁독서를 궁금해 하며 이것저것 묻곤 한다. 이야기를 듣다가 종종 때 아닌 걱정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전문 지도 선생님도 없고, 그렇게 자율적인 분위기로 진행되면 모임을 쉽게 망치는 거 아니냐고. 이 기회에 친구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사실 고궁에도 모임을 이끌어가는 지도 선생님이있다. 물론 첨삭까진 아니지만 11명이나 되는 선생님들이 있으니 걱정 없다. 그렇다, 고궁독서는 서로가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 전문적인 독서 지도자 없이 원활한 진행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 모임을 진행하고자 모였을 때 가장 큰 걱정도이 부분이었다. 전문 독서 지도자의 부재. 골머리를 앓던 우리가 내린 해답은 서로가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 주자는 아주 간단한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뛰어난 독서 지도 선생님을 모셔온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나고 나서야 말이지만 현재의 방식이 고궁독서의 취지에는 훨씬 더 적합한 형태였다.
물론 전문적인 글쓰기 기술을 배우고자 함이라면 조금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좋은 사람들과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게 목적인 곳에서는 이 같은 방법이 보다 효과적이다. 한 명의 독서 전문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고, 각자가 주체적으로 나서게 된다. 더불어 돌아가면서 맡는 HOST는 사회를 보는 역할을 함으로써 모두가 한 번씩 자신의 개성을 살려 지도 선생님이 된다. 이것은 고궁이 갖는 재미난 요소 중 하나기도 하다. 이처럼 11명의 사회자와 지도 선생님이 있는 고궁에서는, 서로의 호칭도 나이를 불문하고 ○○선생님을 사용한다.
자율적인 분위기가 진행을 망치지 않느냐는 걱정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다. 자율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모임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모임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모임이지만, 누리는 즐거움은 멤버 자신이 하기 나름이다. 선정 도서를 많이 읽어 올수록, 그리고 글을 쓰고 올수록 느끼는 즐거움이 배로 커진다. 자신의 생각을 함께 공유하며 즐거운 수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들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멤버들은 바쁜 시간을 할애하며 조금이라도 책을 더 읽고 오려고 애쓴다. 이로 인해 강압적인 분위기나 패널티 없이도 모임은 순탄하게 흘러간다. 오히려 압박하며 책을 권할 때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말이다.
지루한 책쟁이들의 따분한 모임이라고?
걱정과 더불어 흔히 갖는 오해들이 있다. 독서모임이란 마냥 정적인 활동이라는 오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감동적인 책의 한 구절을 읽고 눈물 짓는 모습에 대한 오해. 하지만 오해는 오해일 뿐, 고궁은 그 어떤 모임보다 활동적이며 열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고궁독서에서 활동이란 단순히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변동적이긴 하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진행한다. 책과 관련된 영화를 함께 감상하기도 하고, 음악을 공유하기도 한다. 연말에는 조그만 시상식도 개최하고 문학과 함께하는 MT를 떠나기도 한다. 책이라는 주제만으로도 수많은 동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또한 작년에는 미얀마 도서관 설립에 조그만 금액을 후원하기도 했고, 올해는 책과 관련된 봉사도 계획 중에 있다. 아무쪼록, 멤버들은 함께 쌓은 추억이 많아서인지 서로에게 느끼는 친밀감과 모임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멤버들의 이러한 애착은 모임에 선순환을 가져다 준다. 좋은 게 있으면 자연스레 나누려고 하고, 공유하려 한다. 덕분에 주고받는 선물이 한가득이다. 또한 공통된 관심사도 많은 편이어서 카페나 그룹채팅창에는 공연이나 전시 등 다양한 활동에 대한 소모임 공지가 자주 뜨곤 한다. 그렇게 자주 모이다 보면 애착은 더욱 커지고, 애착이 커진 만큼 함께하는 시간은 더 많아진다.
책은 1순위, 사람은 0순위
대학 내 동아리 활동도 2년이 넘도록 함께하는 경우가 드물다. 2년차가 되면 단순한 친목으로 변질돼 버리거나, 그 친목조차 시들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뚜렷한 목표도 목적도 없이, 그저 책이 좋아 모인 조그만 독서모임이 다툼도 낙오도 없이, 원활히 이어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책이란 공통된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일까. 맞는 말이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고궁독서를 지금껏 끈끈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책보다 사람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고궁독서 멤버들에게 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이다. 하지만 그 물건이 소중한 이유는,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누는 유쾌한 수다가 있어서다. 고궁독서 11명의 멤버들에게 책은 1순위지만, 사람은 0순위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탓에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누군가는 멤버들의 얼굴을 그리고, 어떤 이는 소중한 추억을 담은 영상을 제작한다. 어느덧 고궁독서가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우리들이다.
독서모임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이것이다. 고궁이 지금껏 함께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사람 때문이었다. 광고 속 문구처럼, 독서모임에 있어서도, 사람이 먼저다.
그들이 머무는 고궁의 뜰 앞에는 언제나 유쾌한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그들의 모습은 모임이라기보단 하나의 공동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독서 공동체, 가족이 되어버린 고궁독서. 그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든다. 책 펼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다며 징징대던 현대인들의 투정이,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