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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만난 작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이기호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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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6-09-30 10:45 조회 6,63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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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독자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밀루
작가님 작품에는 길을 가다가 만날 것 같은 평범한 인물들이 자주 나와요. 소설을 쓰실 때 영감은 어디에서 받나요?
이기호 돈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산책을 하면서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 물질적인 것으로 보일 거예요. 아파트를 본다면 ‘이게 개발되면 수익이 이만큼 오르겠지’ 하면서요. 인간의 수치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길을 걷다가 아빠에게 혼나는 아이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올 거예요. 작가들의 경우,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시선이나 철학 같은 것들이 늘 준비되어 있는 편이죠. 그래서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어떤 영감을 찾아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늘 소설을 쓸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해요.
 
밀루 마음의 여유도 중요할 것 같아요.
이기호 그래서 작가들은 다른 걸 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에요. (웃음) 선생 노릇을 하다가 작가로 모드 전환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소설가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이것들을 같이 하다 보니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어려운 점들이 생겨나요. 작가는 늘 소설을 써야
하는 최상의 컨디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몰입이 깨지면 소설 쓰는 작업이 힘들어질 때도 있어요. 저는 나름대로 ‘소설 쓸 준비’를 하고 있어요. 늘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해요.
치리 작가님 전작들 중에서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성경 복음서 형식으로 쓰셨고, 「버니」는 랩 가사 형식으로 쓰셨어요.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굉장히 짧은 소설들로 구성하셨고요. 소설을 쓰실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시는데,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어요?
이기호 주로 초창기 작품에서 그런 시도를 했지만, 사실 지금 제 초기 작품들을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요. (웃음)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밀루 지금 읽어도 좋던 데요!
이기호 그렇게 읽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나 함께 늙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낯 뜨거운 문장들로 여겨질 수 있어요. 제가 새로운 형식들로 꾸려진 실험들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 소설은 문어체로 많이 쓰였거든요. 이태준에서부터 시작된 주어와 술어, 문어체의 확고한 전통 같은 것들이 있었어요.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장들이 꽤 오래 보여서 스스로 답답했어요. 독자들을 가르치는 듯한 문장, 완고한 고딕 문체에서 벗어나 ‘모든 문장들을 구어체로 써 보자’고 생각했어요. ‘소설 속 인물들이 독자 옆에서 조곤조곤 말하는 것처럼 쓰자’고 생각하고 이상한 짓거리들을 많이 했죠. (웃음)
치리 독자들이 편히 읽을 수 있는 문장을 고민하신 것 같아요.
이기호 문체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한다면, 실은 그 내용까지 염두에 두어야 해요. 제 소설들도 랩 가사 등 새로운 형식을 취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기존 소설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통적 가족, 사랑에 관한 생각을 깨부수고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했는데 말예요. 그렇지 않은 소설들도 있지만, 제가 형식적 실험을 했
던 대부분의 소설들은 기성세대의 기존 문법을 따랐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죠. 책을 없애 달라고 일일이 책방 다니면서 회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웃음) 그런 시절들을 지나온 것 같아요.
밀루 작가님들의 작품 속에는 ‘시봉’과 ‘진만’이란 이름이 자주 나오는데,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가 궁금해요.
이기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둘 다 세련되지 않은 이름들이잖아요? 촌스러워 보이고, 가벼워 보이고, 밑바닥에 있는 것 같은 인물들을 상징하는 코드로써 사용했어요. 저한테는 친숙한 이름들이에요. 소설이 막힐 때마다 이 친구들을 주인공 삼으면 뭔가 풀리는 지점들이 생기더라고요.
밀루 친구 이름을 따오셨다고 들었어요. (웃음)
 
이기호 그랬죠. 그 친구와는 지금 의절 상태예요. 설마 걔가 제 소설을 읽을까 생각했지만, 둘 중 한 명이 소설을 읽고 깜짝 놀라서 연락을 했더라고요. 그 친구와는 연락을 하지 않아요. (웃음) 뭐, 괜찮습니다.
 
우리들 일상을 그린『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치리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에는 층간 소음 문제나 몰락한 가장, 이혼하거나 사별한 사람들 등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이기호 맞아요.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이기 때문에 청소년부터 중장년까지 독자층이 다양했어요.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써보자’라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밀루 자살을 기도하거나 아내를 피해 산으로 도망치는 가장 등 소외 받거나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일상들이 빈번하게 나온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기호 저는 사회에서 억압받거나 소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게 소설의 기본 습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편모 가정 등 가족 관계에 구멍이 생겼거나 삶의 위기에 닥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룰 수밖에 없어요.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수단이 많이 있어요.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능력은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우리가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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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리 이번 작품 속에 수록된 「아내의 방」에서는 유독 약자의 이야기를 강자의 시선에서 서술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쓸쓸한 엄마의 상황을 아빠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듯했어요.
이기호 거칠게 분류를 하자면 소설은 가해자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는 피해자의 시선에서 쓰이고요. 쉽게 말하자면, “우리 엄마 아빠 때문에 내 삶이 불행하다.”라고 생각하는 인물의 시점에서 소설을 쓰게 되면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지점들이 생겨요. 감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부모의 시선에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여러 풍경이 보일 수 있어요. 자책의 느낌도 들기 마련이고요. “내가 이 세계를 망쳤구나!”라는 지점들이 생겨나요. 그럼 세계에 대해서 조금 더 입체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지점들을 가질 수 있어요.
밀루 「아내의 방」에는 베란다에 간이침대를 놓고 먼 곳을 바라보는 아내가 나오는데, 이를 아내의 시점으로 썼다면 다룰 수 있는 풍경들도 좁아질 수 있다는 건가요?
이기호 네. 아내를 억압하거나 외면했던 남편의 시선으로 아내를 바라본다면 독자들에게 다양한 시선을 안겨줄 수 있는 지점들이 생겨나요. 그래서 소설가들은 지독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소설가들은 살인사건을 다루더라도, 피해자의 시선으로 다루지 않고 살인자의 시선으로 다뤄야 하는 거죠.
치리 가해자의 시선으로 말예요?
이기호 그럼요. 그래서 소설가는 “왜 이 사람은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 하고 고민해야 해요. 누군가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저렇게 사는 것은 내 탓이 아니고,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어쩌면 소수자들에게 저마다 이미 일정량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저는 그런 것들이 가해자의 시선 속에 많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설을 쓸 때에 늘 그 런 입장에서 쓰려고 노력해요.
밀루 취업을 하지 못한 두 청년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낮은 곳으로 임하라」를 읽으면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라는 문장이 굉장히 가슴에 와 닿았어요.
이기호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아무래도 학생들의 얼굴을 많이 보곤 해요. 어느 날은 아이들 표정이 왜 이렇게 무미건조할까 하고 생각해 봤어요. 이따금씩 사람들이 ‘굴욕 사진’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하잖아요? ‘굴욕’이라는 건 자기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에요. ‘모욕’은 상대방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이고요. 한 사람의 뱃살 사진을 보고 어떤 사람은
굴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굴욕이라고 생각해요. 굴욕은 상대적인 것이고, 나쁜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우리가 모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굴욕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구조가 있어요. 신분이나 계급이 없는 세상이라고들 말하지만, 엄연하게 존재하지요. 그 안에서 오가는 모욕을 감내한 한 개인은 ‘다만 굴
욕’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혼자 감당해야 하고, 스스로 치유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요. 그래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는 구절은 제게 굉장히 슬픈 구절이에요.
치리 저도 그 대목을 읽으면서 조금 우울했어요.
이기호 쓰는 사람이 우울했으니까요. (웃음) 사실 그런 풍경들이 웬만한 것도,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데 “내가 괜히 손해 본다” 혹은 “너무 예민하다”라는 말들을 들을까봐 스스로 아무렇지 않다고 믿게 되는 거예요. 이는 우리 사회에서 생겨난 폭력적인 여러 구조들이 빚어 낸 표정이라고 생각해요.
 
고여 있지 않는 삶을 위해
밀루
소설을 쓰면서 살기로 결심하신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기호 첫 소설을 쓴 건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첫사랑과 헤어지고 나서 사는 게 무의미했어요. (웃음) 수업 시간에 뭔가를 끄적거리다가 이야기를 하나 쓰기 시작했는데, 쓰고 보니 우리 옆집에 사시는 택시운전사 아저씨 이야기였어요.
치리 그때부터 문학을 하겠다고 마음먹으신 거예요?
이기호 어렴풋이 ‘소설을 써야 겠다’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 후에 문학을 해보겠다고 대학에 갔지만 여전히 자신감은 없었어요. 그러고 나서 군대에 갔고 생각을 확고하게 굳혔어요. 운이 좋게도 책을 아주 많이 읽을 수 있는 업무 환경에서 복무했거든요.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제 삶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밀루 주로 어떤 책들을 읽으셨어요?
이기호 니체나 도스토예프스키 등 오래된 고전들을 많이 접했어요. 당시 제가 읽은 책들은 모두 죽은 사람들 이야기예요. 1940년대에 이미 죽은 사람과 1990대에 사는 내가 함께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신기했어요. 작가가 내 옆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느꼈고 때로는 친구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시간을 거스르는 문학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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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리 소설을 쓰면서 힘드셨던 적은 없었나요?
 
이기호 많았죠. 그럼에도 ‘이번 생은 망하더라도 소설을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웃음) 물론 두렵거나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기기도 했어요. 하지만 포기하고 싶던 적은 없어요. 망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치리 소설가를 지망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요.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이기호 소설가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요.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내가 작가로서 얼마만큼 도달했고 성장했는지 눈으로 확인할 길도 없어요. 그래서 더 쓸쓸해요. 그럼에도 저는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가 원하는 것들에 자기를 맞추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진정 원하는 것이 소설가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일인 것 같아요. 소설을 쓰
다 보면 스스로 부패하지는 않거든요. 소설가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듭해야 하기 때문에 ‘고여’ 있지 않을 수 있어요. 이런 점은 참 좋은 것 같아요.
밀루 좋은 점들이 또 있을 것 같아요!
이기호 다른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접근이 훨씬 쉬워요. 종이랑 펜만 있으면 우주 대폭발, 지진, 좀비 등 모든 소재를 다 표현해 낼 수 있어요. 그뿐이에요? 망해도 혼자 망해요. 이런 점에서는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어요. (웃음)

치리 소설을 쓰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시잖아요. 두 가지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들도 있으실 것 같아요.
이기호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소설적 표현이나 기법들을 가르칠 수는 없어요. 소설이라는 게 시절, 공간, 사람에 따라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창작 방법을 규격화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단지 제가 도움을 줄 수 있고, 수업하면서 알려 주는 것 중 하나는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것들이에요.
밀루 어떤 부분들을 알려 주세요?
이기호 ‘우리가 소설을 왜 읽어야 할까?’ ‘이 시대에 소설가라는 사람들의 역할이 뭐지?’와 같은 문제들을 함께 고민해요. 소설을 직접 가르치기보다는 저마다 쓴 소설을 공유하며 생각을 나누고 토론을 해요.

치리 자기가 쓴 소설을 갖고 와서 조언을 구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기호 저는 학생들의 소설을 첨삭하거나 지도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우리 과에는 학생이 120명 정도 있는데, 그 아이들의 가족 관계나 연애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어요. (웃음) 그래서 아이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밀루 시간이 지날수록 활자보다는 이미지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점점 책을 멀리 하는 모습을 보면 소설가로서 고민도 되실 것 같아요.
이기호 소설은 늘 위기에 직면했었어요. 소설이 설 자리가 작아진다 하더라도 소설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타인의 자리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소설은 끊임없이 읽힐 것이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소설을 쓰려고 할 거예요. 중요한 건, 저는 소수의 독자를 위해 계속 소설을 쓸 것이고,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할 거라는 거예요.
밀루 작가님께서 쓴 소설을 특별히 이런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나요?
이기호 특정한 누군가가 읽었으면 하는 마음은 없어요. 하지만 누군가 내 소설을 읽고, ‘나도 소설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제 소설 속 문장은 미학적으로 뛰어나지도 않고, 이야기 구조가 복잡하지도 않아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고, 이는 제 의도이기도 해요. 저는 소설을 오랫동안 연습했고, 꾸준히 쓰다 보니 소설가
가 되었어요. 저는 아주 특출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아니에요. 사회가 요구하는 루트를 소심하게 밟아온 사람이에요. 마치 독특한 가족사, 성향, 타고난 피가 예술가를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소설을 쓰다 보니 오랫동안 무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소설을 쓴다는 건 별다른 게 아니에
요. 제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차원에서 멈추지 않고, 같이 소설을 써 본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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