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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만난 작가]박상률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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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7-01-17 12:00 조회 5,58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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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의 유년기
김지영
사람보다 개가 더 유명하다고 하셨던 진도에서 자라셨는데, 작가님의 어린 시절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박상률 저는 날마다 일만 한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께서 교사셨지만 시골이니 농사를 안 지을 수 없었죠. 요새 들어선 ‘개장수’를 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 봤던 개 이야길 쓰면서요. 제가 진도에 살았기에 모든 개가 다 진돗개 같은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살아 보니 서울 개들은 안 그렇더라고요. 동화로도 썼지만, 진돗개는 가족 역할을
해요. 사람이 오는지 안 오는지 검문도 해 주고요. 산에 가서 노루 잡아 놓고 사람도 데리러 와요. 나이 든 개는 웬만하면 사람 말을 다 알아듣고, 동네 스피커에서 노래 나오면 가락에 맞춰 춤도 춰요. 관사에서 키우는 개는 애국가 따라서 “멍멍멍” 울기도 하고요.
이현애 정말 함께 놀던 친구 같았을 것 같아요. 농사는 주로 어머니께서 지으셨어요?
박상률 당시 아버지 월급이 2만 원 조금 넘었던 걸로 기억해요. 보너스나 학자금 대출 같은 것도 없었는데, 대학 다니는 막내 숙부 학비를 아버지가 댔어요. 사립대학 등록금은 6만 원이 넘어서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으셨지요. 아버지께서는 출근하시기 전에 농사일을 해 두고 나가셨어요. 그러니 저와 형제들은 주말이 다가오면 “비 오면 좋겠다.”라고 말하곤 했어요.
이현애 작가님께선 어떤 농사일을 하셨어요?
박상률 삽질, 낫질은 기본이고 지게질도 많이 하고 손수레도 늘 끌었지요. 웬만한 농사짓는 일은 다 했어요. 쟁기질까지 하면 남자는 상일꾼이지요. 소와 호흡을 맞춰야 하거든요. 쟁기질을 배우다가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도회로 나오게 됐죠. 진도에 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없었으니까요.
배미용 학교가 꽤 멀었을 것 같아요.
박상률 목포로 가려면 배를 두세 시간 타야 했어요. 진도읍에서 광주까지 버스로는 네 시간이 걸렸고요. 진도는 6개 읍면이 한 섬에 있을 정도로 큰 섬이지만 섬이 주는 고립감은 컸어요. 지금은 고향이 있다는 게 참 좋지만, 어릴 적엔 무조건 떠나고 싶었지요. 진도를 떠난 여자애들은 도시에 가서 식모살이나 버스 안내양을 하고, 남자애들은 철공소에 가거나 건달이 되곤 했어요.
김지영 고향이 주는 고립감, 적적함이 작가님께서 글을 쓰시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 같기도 해요.
박상률 그 고립감을 겪은 게 지금은 좋지요…. 당시에는 기차도 구경할 수 없었고, 매일 하늘로 지나가는 비행기만 올려다봤어요. 중학교 3학년 때 배를 처음 타 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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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학의 물꼬를 트고
배미용 작가님께선 시로 등단하셨는데, 이후에 청소년문학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박상률 계기랄 건 없고 제 팔자예요. (웃음) 시로 등단한 이후 청탁을 받았는데, 시를 산문으로 늘여 쓰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다른 시인들은 ‘내가 명색이 시인인데 왜 시 청탁을 안 하고 소설이나 동화를 써 달라고 해.’ 하면서 안 썼어요. 하지만 저는 ‘재밌겠다!’ 싶어서 썼어요. 엿가락을 길게 늘이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렵잖아요. 이야기도 마찬가지라 생각했지요. 그러다 보니 청탁이 계속 들어왔죠. 그게 제 본업이 될 줄은 몰랐어요.
이현애 본래의 글을 늘리는 건 이야기를 만드는 셈인데, 어려운 일일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작가라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배미용 『나와 청소년문학 20년』을 읽으면 작가님께서 청소년문학을 개척했다는 자부심이 느껴져요. 그동안 쓰신 소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궁금해요.
박상률 아무래도 제 소설의 문을 열어 줬던 『봄바람』이 가장 애정이 가지요.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많이들 호응해 주기도 했고요. 그리고 자부심보다 도 아무도 하지 않던 영역에 매진했구나 하는 마음이 커요. 작품을 써 놓고 발표는 했는데, 당시에 책으로는 못 냈거든요. 인연 있는 출판사에 들이밀어도 감이 안 온다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
는 소설을 내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사계절 출판사 ‘1318 문고’ 편집자와 문고 기획을 하느라 머리를 맞대게 되었고, 사계절출판사에서 기왕에 냈지만 흩어져 있던 단행본들을 그 문고 안에 모으게 되었어요.
이현애 ‘1318 문고’의 첫 번째부터 일곱 번째 책까지는 외국 작가들의 책이나 산문집 모음인데, 한국소설로는 『봄바람』이 처음이었어요.
박상률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니까 굳이 청소년문학이 필요하냐는 면박도 많이 받곤 했어요.
이현애 책을 읽다 보면 역사, 추리 등 문학 분야의 특정 영역을 개척한 작가들을 언급하신 대목이 나와요. 작가님만이 가지고 있는 영역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박상률 ‘어른들 속에 있는 청소년’을 아무도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저는 거기에 매달렸어요. 어른 몸속에 청소년 시절과 어린아이 시절이 다 새겨져 있는데 작가들이 자기 밖에서만 소재를 찾으려 하는 모습이 갑갑하게 느껴졌어요. 동화를 쓰는 어떤 이와 이야기를 나눠 보면 아이를 키우니까 동화를 쓰게 되었다고만 해요. 자기가 아이라는 생각은 하
지 않는 셈이죠. 지금도 어떤 작가들은 자기 안의아이를 들여다보지 않고 ‘취재’만 하려고 해요.
김지영 그렇게 취재를 많이 한 책을 보면 “작가가 엄청 준비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박상률 준비를 많이 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것은 아니라고 느끼곤 해요.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이 청소년이라면, 취재를 과도하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봄바람』도 60년대 이야기니까 어찌 보면 옛날이야기잖아요. 당시 책을 낼 때 “옛날이야기 써서 뭐 하냐, 요즘 이야기들 써야지”라는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달랐어요. ‘요즘 아이들 이야기는 자기들이 더 잘아는데 굳이 쓸 필요가 있나?’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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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읽지 말아야 할 책은 없다
이현애 학교에 있다 보니, 학교 현장을 세세하게 다룬 책을 읽어도 뒷북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더라고요. 이미 흘러간 이슈를 다룬 경우가 빈번해요. 아이들 세계가 금세 바뀌기 마련인데 말예요. 작가님은 지금 청소년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박상률 요즘 애들은 놀고 싶은데 못 놀아요. 김두식 교수의 『불편해도 괜찮아』와 같은 책을 보면 ‘지랄 총량의 법칙’ 이야기가 나와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못 놀면 어른이 되어서 언젠가는 ‘지랄’을 떨게 되지요. 학교 다닐 때에는 입시 때문에 잡아 놓고, 대학 다닐 때에는 취업 때문에 잡아 놓으니 아이들이 언제 놀겠어요. 아이들이 게임하고 스마트폰 가지고 있는 건 노는 거라기보다는 ‘도피’에 가까워요. 아이들이 노는 과정에서 나중에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는 밑천을 삼을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예요.
김지영 작가님께선 책에서 청소년문학에 소재 제한이 없다고 언급하셨지만,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살피다 보면 ‘이런 책은 안 되겠다.’ 하고 제 안에서 자기검열이 수시로 이뤄지더라고요.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박상률 제가 한 학교에 강연을 갔을 적에 <학교도서관저널>에 연재했던 『방자 왈왈』이 꽂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만난 선생님께서 자신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애들은 보면 안 된다고 책을 거꾸로 꽂아 놓으셨어요. 사실 애들은 이미 다 알고 있어요. 제가 중학교 시절 재밌게 봤던 <선데이서울>에는 온갖 게 다 나왔어요. 그렇다고 <선데이서울>을 보며 자라난 아이들이 나빠졌을까요? 그런 건 아니거든요. 저는 굳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감추려고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김지영 그럼 어떤 점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요?
박상률 성인들은 스스로는 교훈적인 행동을 못하면서 애들한테는 재미보다 교훈적인 걸 읽히려고 해요. 청소년들은 일단 재미있고 감동을 주는 것을 읽는 게 더 좋아요. 물론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소설을 쓸 때에는 검열할 만한 것을 넣지 않게 되는 때가 분명 있어요. 이 과정이 지나치면 모범생 보고서처럼 쓰게 될 수도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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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애 저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데, 저희 학교가 24시간 기숙학교이다 보니 성 관련 문제가 학교 안팎으로 늘 화젯거리예요. 교내 공동체 회의 안건으로 제시될 정도로 아이들 스킨십이 문제가 될 때도 있고요. 제가 아이들에게 책을 건네줄 때에는 전체적인 주제를 살펴보라고 말하는데, 작가님께서는 청소년의 성과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박상률 영화도 책도 못 보게 하니 아이들이 그러는 거예요. 제가 책 읽기의 소재 제한이 없다고 말씀 드리는 것은 책이 완충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에요.
김지영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밑에서』를 보면 야한 장면들이 나오곤 하는데 저와 제 또래들이 그걸 읽고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웃음)
박상률 『방자 왈왈』에 나오는 성춘향과 이몽룡도 이팔청춘, 즉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어요. 이들이 나눴던 연애를 살펴보면 무척 야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 아이들이 나쁜 길에 빠졌나요? (웃음)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볼 수 있고 독서의 힘을 알게끔 가르쳐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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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아이와 마주하기
김지영 요새 들어 서점에서 책을 살펴보면 청소년문학과 관련한 신간도 드문 것 같아요. 작가들이 소재나 주제가 고갈되어 잘 쓰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박상률 그렇게 느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작가들이 현실적으로는 책을 내봐야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 거예요. 책을 내봐야 읽지도 않고 사지도 않는 시대니까요. 예전에는 책이 나오면 한 반이 다 읽을 수 있게 30~40권을 학교도서관에서 구입해서 비치했는데, 지금은 1~2권만 산다고 해요. 또 ‘청소년문학 그까짓 것!’ 하고 쉽게 생각하
고 달려들었는데 막상 해 보니 결코 만만치 않아 힘들어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배미용 청소년 문학상을 받으면서 등단했다가 다른 장르로 이동하게 되는 작가들도 많더라고요.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같이 쓰는 작가도 있고요.
박상률 청소년문학이라고 하면, 어쩐지 한 수 아래인 것 같아 청소년문학보다는 일반문학을 하겠다는 작가가 아직도 많아요. 그래서 청소년문학에서 벗어나 버리는 작가가 있지요. 그리고 청소년소설과 동화는 서로 달라요. 송아지와 망아지가 둘 다 가축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애초에 이들이 소로 태어나고 말로 태어나듯이, 동화와 청소년소설은 모태부터 서로 다른 장르지요.
김지영 그렇다면 아동문학과 청소년문학을 구분 짓는 나름의 변별점이 있을까요?
박상률 예를 들어, 방 한가운데 평소에 안 보던 탁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초등학생들은 평소에 안 보던 것에 무릎을 찧으면 아프니까 “너 여기 있어서 왜 나를 아프게 해?”라고 하는데 중·고등학생들은 “에이!” 하고 바로 쌍시옷이 나오기 마련이에요. “누가 날 이렇게 다치게 해!” 하면서요. 초등학생들은 동심이 있으면서도 자아 확립 이전의 상
태이고, 중·고등학생들은 세계와 대결하려고 하는상태예요. 대부분 그 상황에서 어른들처럼 다른 사람들이 다칠 수 있으니까 탁자를 치우는 행동을 하지는 않아요. 그 차이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해요.
배미용 『나와 청소년문학 20년』 3장 좌담을 살펴보면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소재와 기법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는데 정작 자신이 청소년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쓴 게 많구나.”라고 쓰셨어요. 어떤 점이 구체적으로 아쉬우신지 궁금해요.
박상률 청소년문학을 할 때에 청소년에 대한 개념을 우선 살피지 않으면 실패하게 돼요. 제가 아이를 키워 보니 나와 유전자는 비슷하지만 절대 ‘나’가 아니더라고요. 그럼 청소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선 자기 안에 있는 청소년부터 다스려야 하는데, 작가들이 자기 안의 청소년을 잘 보지 않아요. 그래서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후배 작가들
에게 종종 인간 실존과 같은 철학적 주제는 놓아 두고, 환경이나 여성 등을 주제로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끔 써 보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김지영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라는 말씀이신가요?
박상률 맞아요. 큰 주제보다는 작게 쓰라는 이야기지요. 청소년들은 지적 영역이나 모든 것들이 아직 완숙 단계는 아니거든요. 후배 작가들이 아이들이 쓰는 언어나 수준을 고려하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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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항쟁과 세월호 사건 너머
이현애 1980년 광주와 2008년 서울 광장의 이야기를 담은 『저 입술이 낯익다』를 살펴보면 열일곱 살, 스물일곱 살 나이가 구체적으로 나와요.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나이를 숫자로 자세히 쓰신 이유가 있나요?
박상률 열일곱 살이 스물일곱 살이 되기까지 십 년 세월 동안 사회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걸 드러내려고 했어요. 고등학교 시절의 상처를 그대로 안은 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이현애 촛불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광장에 섰던 아이들이 지금 더 힘들어졌을 거라고 체감하신 건가요?
박상률 더 힘들어졌지요. 지금 20, 30대 청년들을 보면 불쌍해요. 우리 때는 대학을 졸업하면 직장은 걱정하지 않았어요. 데모를 하든 무얼 하든 군대를 마치지 않아도 은행에 취업해 놓고 군대에 갈 수도 있었고, 교사가 되는 것도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우리 때보다 많은 것들을 갖췄는데도 은행에 취업하기 어렵고 교사가 되기
도 어려워요. 매시간 뭔가를 열심히 해야 하고, 학원에 다녀야 해요. 청년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이현애 저는 소설 속 네 명의 아이들이 너무 나약하거나 자기 안에 갇혀서 성장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박상률 아이들이 상처받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것이 개인의 문제라고 사회가 덧씌웠다고 볼 수 있는 셈이지요. 지금은 누가 무얼 잘못하든 죄다 개인의 문제로 돌려 버리곤 하잖아요. 촛불을 광장에서 켜느냐, 교회나 법당에서 켜느냐 하는 문제로 바라볼 수 있어요.
이현애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은 세대의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광주에 대해 쓰시는 게 종종 부담이 가진 않으신가요?
박상률 광주를 직접 겪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글로 쓰기 힘들었어요. 광주 금남로 거리를 쏘다닌 지 25년 세월이 지났을 때에야 겨우 썼지요. 그때 광주를, 그 거리에서 직접 겪은 사람들은 오히려 쓰지 못했지요. 지금도 광주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옛날엔 오죽했겠어요. 5·18재단과 같이 펴낸 『자전거』를 비롯해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은 청소년용으로 쓴 바 있고 『아빠의 봄날』은 그림책으로 엮었어요. 이 책들도 도청에서의
일이 있고 난 지 25년이 지난 무렵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이현애 다른 작가들이 세월호 사건 이후 글을 아예 못 쓰겠다고 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다양한 형태로 세월호를 다루셔서 의외라고 생각했어요.
박상률 사고가 일어난 곳이 아버지께서 학교에 근무하실 때 살던 곳이에요. 관매도, 동거차도 말예요. 그리고 제가 그 배를 타지 않기 때문에 세월호 사건을 다룬 글은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광주와는 달리 직접 겪지는 않았기에…. 사람이 참 간사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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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저도 작가님께서 세월호에 관해 쓰신 글을 읽었는데 가슴이 먹먹했어요. 창작물이 꾸준히 나와서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지 않기를 바라요. 『저 입술이 낯익다』에 나오는 주인공의 부모는 광주 항쟁을 전후로 만난 걸로 나오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상적인 부모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박상률 요즘 부모들은 소소한 것에 굉장히 집착하더라고요. 제가 광주 금남로와 도청에 있을 때에는 거기에서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나중에 맞춰 보니 일 분만 먼저 지나가거나 늦게 지나갔으면 총에 맞거나 죽을 수도 있었더라고요. 그때 제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집착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싶었지요. 그런데 요새 어른들은 걸핏하면 애들한테 ‘100점’ 운운해요. 그렇게 강요할 이유가 없는데 말예요.
김지영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은 27살의 청년인데, 촛불 시위 전후의 고교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등장해요. 독자의 연령대는 어떻게 설정하셨는지요?
박상률 고등학생이 읽고서 10년 후를 내다보면 좋을 것 같아요. 부모나 교사들도 읽었으면 좋겠고요. 지금 청소년들이 책을 읽는다면 ‘10년 뒤에 자칫하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 하는 저의 염려스런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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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가까이서 이끌어 주기
배미용
제가 청소년이던 세대는 성인 소설을 읽으며 자랐고, 도서관보다는 도서대여점이 친근했어요. 부모님께서 아이엠에프 경제 위기를 겪으셔서 ‘내가 부모님께 짐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컸는데, 그 시기를 지난 성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박상률 어찌 보면 청소년과 어른을 구분하는 것이 불필요할 수 있어요. 어른의 문제가 청소년의 문제이고, 청소년의 문제가 곧 어른의 문제거든요. 아이엠에프를 겪었다면 한 집안에 있는 아이와 어른 모두 힘들었을 거예요. 이때 청소년의 경우, 어른들이 가진 언어 구사력과 이해하는 지능, 문해력을 미처 다 가지고 있지 못할 수도 있고 표현 방식이 조금 다를 수도 있어요. 그러니 청소년이 읽어야 할 것이 필요한 것이죠. 제가 고교 시절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을 때는 줄거리 중심으로 읽고선 부도덕하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30대에 다다라서 읽으니 다르게 느껴졌고, 50대에 읽으니 또 다르게 읽히더라고요. 청소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지영 제 경험을 바탕 삼아 학교에서 종종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으라고 하는데 잘 읽지 않더라고요. 그러면 권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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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률 억지로 고전을 읽힐 필요는 없어요. 사익만 추구했던 대통령 이모 씨도 걸핏하면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고 말하곤 했잖아요. 그러니 어떤 책도 내가 읽어 보니 좋더라 너도 읽어, 그럴 필요는 없어요. 저마다 아이들 수준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을 거예요. 단지 아이들이 물가에 가서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은 것들만 어른들이 챙겨야 하지요.
김지영 읽지 말아야 할 책은 없다는 말씀인가요?
박상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읽으면서 좋다고 느껴지면 학생들 곁에 그 문장이나 시를 넌지시 두세요. 아이가 심심하면 들춰보다가 거기에 촉이 닿으면 가서 읽게 돼요. 요새는 놀 거리가 워낙 많아 아이들이 책을 잘 안 읽으려고 해요. 이럴 때 어른들이 견인을 잘 해야 해요. 치사한 것 같지만, 제가 아들에게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외우면 용돈 만
원을 주었듯이 말예요. (웃음) 그렇게 하면 글과 가까워지고 책과도 가까워질지도 몰라요.
배미용 앞으로의 작품 계획이 궁금해요.
박상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저 하던 대로 쓸 거예요. 제가 겪은 광주 이야기, 제 고향 진도에서 일어난 세월호 이야기와 함께 진도의 씻김굿, 진도 아리랑, 농경시대 때의 들노래, 친구로 지냈던 진돗개 등을 글로 풀어내려고 해요. 이런 것들은 우리 세대가 가고 나면 쓸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외부 사람이 취재한다고 해서 쉽사리 될 일도 아니고요. 거기서 나고 자라면서 마주한 씻김굿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몸은 늘 바쁘지만 쓸 건 무척 많아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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