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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팬심과 펜심]『점과 선과 새』조오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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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10-04 10:02 조회 23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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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우연찮게 탄생한 캐릭터, 까마귀 


현재 경기도 의왕의 ‘터무니책방’에서 책방지기로도 계시죠. 책방이 꽤 외진 곳에 있어, 이곳은 마치 지구 속 작은 까막별 외곽1) 같기도 한데요. 책방에서의 보통의 하루가 궁금합니다.

사실 책방에서 일한다 하면 막연한 로망 같은 게 있잖아요. ‘우아하게 읽고 싶은 책 읽고, 손님 없을 땐 틈틈이 그림도 그리겠지?’ 하는 그런 낭만과 기대가 저 역시도 있었는데요. 그럴 시간은 거의 없고요.(웃음) 거의 도서 입고 처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요. 또 터무니책방은 책을 많이 가져와 파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직접 읽은 책 또는 SNS에 올라온 책 중에서 사람들에게 소개하고픈 특정 책들을 소개하거든요. 모든 책에 책 소개 문구를 직접 써 놓고도 있고요. 이 일에도 시간이 꽤 걸리는데, 카페를 겸하고 있어서 거의 출근하면 커피 내리고, 음식 만들고, 책 정리하는 식으로 잔잔하게 할 일이 많아요. 현실적인 노동자의 하루랄까요. 청소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기자: 그럼 그림책 작업은 언제 하시나요?) 제가 일주일에 이틀 출근하는데, 출근일에는 풀타임으로 일해서 집에 오면 늦은 밤이라 그림 그릴 체력이 남아 있진 않거든요. 하지만 작가의 삶이라는 게 언제 마감이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삶이기에 지금은 퇴근 후라도 필요하다면 책상 앞에 앉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1) 조오 작가의 첫 독립출판물『 까막별 통신』 속에 등장하는 공간. 주인공 까마귀가 자신에게 소중한 전구초(빛이 나는 풀)를 돌보는, 까막별의 외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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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이 까마귀 캐릭터, 탄생 비화를 듣고 싶어요. 

까마귀는 제 대학 시절 별명이었어요. 그때 저는 동물원으로 그림 작업을 하고 싶었고, 주변 사람에게 동물 별명을 붙여 주는 걸 좋아했는데, 친한 친구 중에 너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어요. 제가 맨날 걔한테 “너구리, 너구리” 했는데 솔직히 사람이 동물로 호명되는 게 엄청 좋지만은 않잖아요, 애칭이긴 했지만. 그래서 하루는 걔가 저보고 “넌 뭔데?” 하길래 “난 사람이겠지?” 했더니 걔가 “그럼 넌 까마귀야.”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 친구도 그냥 애칭처럼 저를 까마귀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저도 까마귀라는 동물을 제 별명으로 받아들였어요. 나중에는 캐릭터가 왜 까마귀냐는 질문을 하도 많이 받게 되니까 그 친구에게 다시 연락해서 “근데 왜 나한테 하필이면 까마귀라고 했어?”라 물었는데, 그 친구가 “내가 그랬어?” 하고 되묻는 거예요. (웃음) 정작 친구는 이 별명의 시초가 본인이었다는 걸 그간 몰랐던 거죠. 어쨌든 동물 자체는 너무 매력적이고, 원래도 동물과 새를 좋아했고, 까마귀는 또 크고 반들반들하고 영리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면서, 제 캐릭터로까지 그리게 된 것 같아요.


동물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셨다고요, ‘왜 내가 동물을 좋아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면요?

···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MBTI로 따지면 저는 I 중에서도 완전 극 I 인간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대하는 게 힘들었고, 사람 앞에선 늘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 있었는데요. 동물을 볼 때는 편하고, 좋았어요. 그냥 관찰하는 것도 좋아했고, 동물 다큐멘터리 보는 것도 좋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물이 좋아진 것 같아요. 지금은 물론 어른이 됐고, 사회생활도 하다 보니 사람들과 어느 정도 어울릴 수 있게 됐는데, 원래는 그냥 동물이 더 편해요. (웃음) 그래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독립출판으로 두 권의 책을 먼저 내셨죠. 『까막별 통신』에서 친구를 떠나보낸 주인공의 정서가 희망 어린 슬픔이었다면, 그다음 책 『안녕, 올리』에서는 이 슬픔이 완연한 아픔으로 응축됐다고 느껴졌어요. 두 작품 모두 ‘이별’을 그리지만, 쓰고 그릴 때의 마음이 꽤 달랐을 듯해요.

사실 『까막별 통신』(2018)과 『안녕, 올리』(2019)는 동시에 작업했어요. 힐스(HILLS, 한국 일러스트레이션학교)라고, 지금은 없어진 곳인데요. 거기서 두 선생님께 수업을 들으면서 각 수업에서 동시에 만든 책이에요. 그래서 그리는 세계는 다르지만, 두 책은 같은 감정선을 공유해요. 또 그때 제가 영화 <인셉션>에 나오는 꿈의 개념에 몰입해 있어서, 그 영화가 책 작업에 영감을 많이 주기도 했어요. 『까막별 통신』은 까막별이라는 세계 안에서 주인공 까마귀와 그의 친구 올리가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이별하게 되는 이야기라면, 『안녕, 올리』는 그로부터 7년이 흐른 뒤, 까마귀가 친구를 회상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서술한 거예요.

사실 『안녕, 올리』는 모든 장면이 다 꿈으로 해석될 수 있거든요. 『까막별 통신』에 나온 모티브들이 『안녕, 올리』에도 군데군데 등장해요. 우리가 꿈속에서는 보통 그 세계가 꿈인 줄 모르고 현실이라 느끼잖아요? 그래서 『안녕, 올리』의 까마귀한테는 책 속 세계가 현실인데, 실은 그게 꿈인… 이런 식으로 저는 이 책을 꿈결에 주인공 까마귀가 떠나간 친구 올리를 회상한다는 느낌으로 그렸는데, 『안녕, 올리』에서 그걸 읽어내시는 분은 거의 없어요. 저도 독자가 이걸 읽어 내긴 거의 어렵겠다 생각해요. 이때는 제가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방법이 더욱 능숙치 않기도 했고, 책 안에 담고픈 게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어쨌든 두 책을 쓰고 그릴 때 제 안의 화두를 한 단어로 말하자면 ‘상실’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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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올리』의 마지막 장에서 독자들에게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하고 물으셨죠. 되물어 보고 싶어요. 요즘의 일상에서 유독 내가 발 딛고 선 이 현실이 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요? 

그런 말 있잖아요. ‘이게 꿈이야, 생시야?’ 가장 행복한 순간에 그런 느낌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행복한 순간이 오면 그걸 온전히 즐기고 싶은데 어디선가 불안감이 올라와요. ‘이게 가짜는 아닐까? 이게 꿈은 아닐까?’ 하고요. 그리고 사실 『안녕, 올리』를 그릴 당시에는 제가 꿈을 많이 꿨어요. 요즘은 예전보다는 많이 안 꾸는데 예전에는 진짜 현실적이고, 생생한 꿈을 많이 꿨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적도 있어요. 꿈에서 겪었던 일인데 현실인 줄 알고 주변 사람에게 ‘이런 적 있었잖아.’ 하고 이야기한 거예요. (웃음) 어쨌든 지금은 저도 많이 성숙해졌고, 나이가 들면서 일상도 좀 안정돼서 그전만큼 꿈을 꾸진 않는데요. 결국 요즘 꿈같이 행복한 순간이라 하면 좀 뻔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저희 고양이와 교감할 때예요. 제가 고양이를 키우는데 저희 고양이도 흔히들 말하는 ‘개냥이’거든요. 이 고양이가 아기처럼 저한테 안겨서는 촉촉한 눈으로 저를 쳐다볼 때가 있어요. 그럼 어쩔 줄 모르겠고 너무 좋은데…… 이러다가 갑자기 마음 한편에서 불안이 또 스멀스멀!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타자를 향한 이야기로  


『나의 구석』(2020)이 출판사 통해 내신 첫 책이죠. 책을 보면 까마귀가 제 집 ‘구석’에 간소한 짐을 들이고, “뭐가 더 필요할까?” 생각하고는 벽에 노란 창을 그리다가 결국엔 벽을 뚫고 진짜 창문을 내요. 오늘 작가님 집 ‘구석’에 뭔가 더 필요하다면 어떤 걸 들이시겠어요?  

이 질문 참 어렵네요. 너무 갖고 싶은데 못 갖는 게 있어야 생각날 것 같은데 요즘 물욕에 충실한 삶을 살아서··· 기자님은 있나요? (기자의 답변: 저는 너무 속세 버전의 이야기지만, 지금 쓰는 슈퍼싱글 침대를 킹사이즈로 키우고 싶네요.) 침대를 이야기하시니 생각났어요. 인체공학 의자로 유명한 H사 의자를 들이고 싶어요. 작업을 오래 앉아서 하니까 허리가 아팠는데, H사 의자 쓰시는 분들이 다 여기 앉으면 자세가 강제로 바르게 된대요. 언젠가 여유 생기면 들이고 싶네요. 당장 오늘 들이고 싶은 건······오늘은 그냥 고양이랑 구석에 처박혀 있고 싶어요.


속세 버전이 아닌, 다른 의미에서 ‘나의 구석’에 들이거나 내고 싶은 게 있다면요?


 ‘창문’이 소통이라는 의미로 읽힌다면 저는 이제야 그 창을 제 안에서 내려고 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인스타그램에다 그간 그림책으로 북토크를 안 한 이유에 대해 짧게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그때는 『나의 구석』과 『나의 그늘』이 제 개인적인 걸 끄집어내 쓴 이야기였기에 그랬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독자가 책을 감상하면서 자유롭게 책을 해석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어요. 그 책들로 북토크나 작가와의 만남을 하면서 구태여 제가 책에 말을 더 보탤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책이 주목받고 많은 독자를 만나는 건 기쁘지만 제가 주목받는 건 불편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번에 낸 『점과 선과 새』(2024)는 독자 개인의 자의적 해석보다는 확실한 사실 전달과 일종의 가이드가 필요한 책이어서 책만 혼자 세상에 내보내기가 좀 그런 거예요. 제가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분들처럼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는 못해도 이번에는 내가 직접 독자들을 만나서 야생 조류의 유리창 충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비교적 최근부터 ‘나는 내 구석에서 좀더 발화해 보자’ 하는 결심을 하고 있어요. 이 말인즉, 이제 북토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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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늘』에서 까마귀와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자란 나무가 결국 ‘나’가 아닌 ‘우리’의 그늘을 만드는 게 좋았어요. 주인공 까마귀가 나무를 통해 자기만의 세계에서 타자의 세계로 나아갔듯 작가님에게도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 것 같아요.

『나의 구석』을 다 그리고 출간이 임박했을 때쯤, 그러니까 2020년 초 코로나가 막 시작했을 때쯤 터무니책방이 생기면서 제가 책방에서 처음 일하게 됐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다음 책 『나의 그늘』을 작업할 때 터무니책방 안에서 있었던 경험들이 많은 영향을 줬어요. 책방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다른 사람을 관찰하게 되다 보니 타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결국 『나의 그늘』을 그리면서 제게 변화가 왔다기보다는 제 환경이 변했고, 제 주변 인물들이 다양해져서 『나의 그늘』이 나온 게 아닐까 해요. 인생에서 정신적인 성장이란 계속 완만하게 지속되는 게 아니라 보통은 늘 비슷비슷하다가 갑자기 어떤 계기로 뿅 하고 자라는 거잖아요? 터무니책방에서의 경험이 저한테는 그랬던 것 같아요. 확실히 그림책을 내고, 책방 일도 하면서 제 삶이 엄청 확장되긴 했어요. 바캉스2)에 시즌4부터 매년 함께하게 되면서도 정말 많이 확장됐고요.


2) 매년 실험적 독립출판물을 펴내는 그림책 독립출판 작가 그룹. 2024년 기준 열댓 명이 속해 있으며,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바캉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매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다. 올해로 바캉스 프로젝트는 시즌6이었다.


전작들에서는 까마귀가 화분, 나무 등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계속 키워 나가지만 이번 『점과 선과 새』의 까마귀는 소중한 것들을 키우기보다 더는 이 소중한 것을 잃지 않도록 지켜내는 데 주안점을 둔 모습이에요.

사실 까마귀 캐릭터가 제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캐릭터는 아니에요. 제가 『혜성을 닮은 방』의 김한민 작가님께 워크숍을 들은 적 있는데요. 그분이 워크숍 때 “작가로서 나는 극단의 극단장이고, 내가 그리는 캐릭터들은 배우”라고 표현하시는 거예요. 그 말이 너무 멋있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저한테 까마귀는 약간 전속 배우 같은 느낌이에요. 책마다 생긴 건 똑같지만 이 책에선 이런 인물이다가 저 책에선 또 완전 다른 인물인. 그래서 『까막별 통신』과 『안녕, 올리』, 그리고 『나의 구석』과 『나의 그늘』 속 까마귀는 어느 정도 동일 선상의 존재라고 해도, 이번 책 『점과 선과 새』의 까마귀는 기존과는 결이 다른, 마치 평행 우주 속의 또 다른 까마귀예요. 그래서 사실 질문에서 언급하신 그러한 변화는 까마귀 캐릭터의 성장 때문이라기보다는 작가인 저의 마음, 저의 정신적인 성장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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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의 글, 한 장의 그림으로도 위로를 건네고파 


“어릴 때 학교 창가에서 본 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라는 작가의 말로 책이 시작돼요. 버드 세이버(조류의 유리벽 충돌 방지를 위한 스티커)라는 이번 책의 중심 소재가 그냥 떠오르진 않았을 듯해요.

제가 초등학생 때였어요. 저희 학교에 창이 되게 많았는데, 쉬는 시간에 혼자 학교 안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창문 밑에 새가 쓰러져 있는 걸 본 거예요. 그래서 살았나, 죽었나 하고 만져 봤는데 죽어 있어서 얘를 어떡하지 하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묻어 줘야겠다 생각하고 그 죽은 새를 주머니에 넣어서 하교 후 집 앞까지 갔어요. 그다음 흙을 파서 나름 혼자 무덤을 만들어 줬던 기억이 있는데요. 왜인진 모르겠지만 그 기억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강하게 남은 거예요. 그래서 그 죽은 새라는 소재를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제가 동물을 좋아하다 보니 환경에 관심을 갖게 돼서 2021년에 생명다양성재단에서 하는 야생 조류의 유리창 충돌에 관한 강연을 들었는데요. 그걸 들으니 갑자기 그 어린 시절 기억에 연결 고리가 생기면서 ‘그 새가 하필 거기 죽어 있었던 건 유리창 충돌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겠다. 그 친구의 죽음에 환경 문제를 연결해서 작가로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책 속 까마귀가 환경에 대해 말하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까마귀는 제가 좋아하는 새고, 야생 조류의 유리창 충돌 문제도 다 같은 새들이 겪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결국 버드 세이버라는 소재를 가져오게 된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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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그림책 작가로서 시도해 보고픈 새로운 그림 기법이나 책이 가진 물성 안에서 도전해 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요?

지금 이미 그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가 서울에서 워크숍을 듣는데, 그게 일반적인 그림책 작법에 대한 워크숍이 아니라 물성을 많이 활용하거나 아예 실험적인 책들에 대한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하는 식이에요. 그래서 지금 하는 작업도 절대 출판될 수 없을 것 같은, 형태가 특이한 책 작업이에요. 일단 제본을 맡길 수 있는 네모난 책이 아니라서 아마 수작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나중에 책 속에 어떤 메시지가 담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메시지보다는 형태적 실험에 집중해서 작업하려 하고 있어요. (기자: 책 형태를 어떤 식으로 새롭게 해 보려는지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요?) ‘모든 페이지의 모양이 다르다.’ 그래서 약간 오브제처럼 사용할 수도 있는 책. 독립출판물이나 해외 그림책에서는 이미 그런 책들이 있긴 한데요. 일단 제가 하려는 작업은 소재가 식물이어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성장의 맥락이 들어갈 것도 같아요. 아직 초안 작업 중이라 과연 잘 나올지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또 다른 도전으로는 까마귀가 나오지 않는 책도 내 보고 싶어요. (웃음)

 

오늘날의 어린이·청소년에게 꼬옥 소개해 주고 싶은 그림책이나 작가가 있으실까요? 

에바 린드스트룀이라는 작가님을 좋아해요. 이 작가님 책 중에 『모두 가 버리고』(2021)랑 『나는 물이 싫어』(2021)가 있어요. 둘 다 부정적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인데요. 전자는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고, 후자는 그냥 진짜 싫은 것에 대해 “나는 이게 싫어!”라 말하는 이야기인데, 과하지 않게 그 부정적 감정을 잘 만져서 풀어내신 게 참 좋은 거예요. 어린이·청소년들이 부정적 감정 없이 자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책 속 아이와 비슷한 외로움을 갖고 있거나, 뭔가가 싫은데 내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모르는 아이나 어른들이 함께 이 작가의 책을 보면 좋겠어요.

한국 작가 중에서는 저랑 친한 작가긴 한데, 에바 린드스트룀이랑 비슷한 맥락으로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잘 풀어내는 작가가 오소리 작가라고 생각해요. 『엉엉엉』(2022), 『개씨와 말씨』(2023), 『시선 너머』(2024) 등의 책을 냈는데요. 오소리 작가의 경우 본인이 겪었던 어린 시절 아픔들을 항상 위로해 준게 그림책이었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래서 (과거의) 자신이랑 비슷한 상태에 있는 아이들에게 자기 그림책도 그런 역할을 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또 저는 항상 아이들한테 늘 좋고 예쁜 것만 보여 줘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거든요. 어린이·청소년들이 어두운 감정을 외면하기보다는 그 감정들을 잘 다룰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잘 알려 주는 일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오소리 작가의 그림책들이 이야깃거리를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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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반짝이는 빛이 떨어지며 시작되는 첫 작품 『까막별 통신』 때부터 작가님 작품들에서 ‘빛’은 아무리 어두운 상황에서도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듯해요. 앞으로 이 빛은 또 어느 이야기에 가닿을까요?

그게 어디로 갈까. (웃음) 아직은 모르겠어요. 『나의 그늘』 이후에 까마귀가 겪을 어떤 세계관을 만들고 싶기는 한데 사실 지금 대답하기가 너무 어려운 게 특히 『나의 구석』, 『나의 그늘』은 제 개인적인 성장이랑 맞닿아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지금 제 미래를 예언해야 하는 거잖아요? 다만 이런 쪽으로 가닿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해 본다면요. 에바 린드스트룀 작가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기만의 어떤 외로운 세계에 갇혀 있었던 어린이·청소년들 마음에 창문을 열어 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쓰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은 사람 인생이 별거 아닌 계기들로 변하잖아요. 또 일상에서도 별거 아닌 일들로 위로를 받고요. 거창하지 않더라도 진짜 한 문장의 글, 한 장의 그림으로도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를 줄 수 있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앞으로 뭐가 나올지 아직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제가 그렇게 밝은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저도 삶에서 계속 빛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앞으로는 좀더 열린, 어떤 아량이 있는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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