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저자 [팬심과 펜심]『열여덟은 진행 중』김애란 시인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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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9-03 11:57 조회 159회 댓글 0건본문
시, 소설, 동화 등 분야를 넘나들며 작품을 써 오셨는데요. 이야기꾼이 된 데에는 필연의 동력이 있으실 것 같아요.
어린이·청소년 문학을 하는 작가 중에는 자녀들 성장기에 맞춰 글 쓰는 장르가 바뀌시는 분들도 꽤 있더라고요. 저도 제 자녀의 성장기에 맞춰서 글을 써 왔고, 그러다 보니 쓰는 장르가 넓어졌던 것 같아요.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됐을 때도 저희 아이가 어렸을 무렵이었어요. 제 아이가 어린이였을 땐 동시를 쓰고, 청소년이 됐을 때는 청소년소설과 청소년을 위한 시를 썼던 것 같아요. 청소년시집이라는 장르가 없던 시절, 박성우 시인이 쓴 『난 빨강』(2010)을 읽고 청소년 당사자를 위한 문학이 필요한 때라는 걸 절감했어요. 그 뒤로도 유독 청소년시집과 소설에 천착한 건 제가 십 대들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어서예요. 지금도 다 하지 못한 청소년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난 학교 밖 아이』에는 “상처투성이인 미래일지라도 가만 껴안”으려는 청소년들의 아픔과 용기가 그려져 있어요. 청소년 시절의 자녀에게도 시를 보여 주기도 하셨다고요.
2015년 무렵, 고등학생인 작은아이와 시골 생활을 시작했어요. 당시 작은아이가 아토피가 심해서 남편이 근무하는 학교가 자리한 시골에 같이 내려왔었어요. 그 전에 아이가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몸이 가려우니까 밤낮없이 계속 긁을 수밖에 없었고 학교를 못 다닐 만큼 힘들어했거든요. 가족 중에 아토피가 있는 사람이라면 고통을 어느 정도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시골로 내려온 후 둘이서 산책도 하고 청소년센터도 다녔는데, 저도 자연스레 센터에 함께 다니면서 청소년 이야기를 썼던 것 같아요. 청소년시집 『난 학교 밖 아이』는 그 무렵에 쓴 글들이에요.
종종 제가 쓴 시를 아이에게 보여 주면 “엄마, 이건 어때?” 하고 아이가 먼저 아이디어를 주기도 했어요. 시집에 수록된 「별떡」에는 다섯 청소년의 우정이 그려져 있는데, 정우를 비롯한 아이들은 서로를 ‘오총사 별떡’이라고 불러요. 이런 독특한 별명들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아이 덕분이에요. 그래서 작은 아이에게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라고 말하곤 했어요. (웃음) 센터를 다니던 무렵에 다양한 환경에 처한 청소년들을 마주했어요. 해외로 조기유학 갔다가 귀국한 뒤 학교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 부모가 이혼한 뒤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 등 고투를 겪는 청소년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몰랐던 청소년들의 모습을 저도 학교 바깥을 함께 살피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죠.
그 후 내신 청소년시집 『보란 듯이 걸었다』의 작가 약력에는 “어느 산자락에서 시 쓰기 멘토링을 하며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라고 쓰여 있어요. 그때 만난 청소년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었나요?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강연을 듣거나 공부만 하는 게 아니었어요. 학원이나 교회 학회 등에 다니는 아이도 있었고, 그 바쁜 틈바구니에서 알바도 하고 자격증 공부를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당시 알바 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일하는 청소년들 대다수가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고 있더라고요. 특히 학교밖청소년들이 일터에 가면 ‘너네, 학교 다니기 싫어서 때려치웠구나.’ 하며 힐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에 쉽게 놓인다는 걸 알았어요. ‘공부 못해서 여기서 일하는구나.’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의 편견도 어린 나이에 수시로 맞닥뜨리고 있었죠.
당당하게 살고자 하는 학교밖청소년의 바람과 달리 당사자가 겪는 현실은 녹록지 않았을 텐데요.
우리나라의 청소년 이슈나 정책을 살펴보면 유독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 중심에 놓여 있어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이슈나 정책이 ‘대학을 어떻게 가느냐’ 즉, 학교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청소년들 위주로만 맞춰져 있죠. 그 기준에 벗어난 청소년들도 여전히 사회적인 차별 속에서 성장하고 있었고, 제 아이 또한 그런 시기를 보냈고, 저도 곁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으니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글쓰기의 원천은 아이, 즉 가족에게서 비롯됐지만 어쩌면 이웃으로 확장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2019년쯤, 자립준비청년이 세상을 떠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 있어요(편집자 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홀로서기를 준비하다가 사망한 자립준비청년은 32명이다. 그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은 20명에 달한다). 이후 정책적인 지원이 확대되긴 했지만 여전히 이 청소년들은 ‘투명인간’으로 살아가요. 한 특성화고 교사는 제자들이 (사회의 온갖 차별들로 인해) 마치 투명인간 같다고 호소한 바 있는데, 여전히 우리나라는 인문계고에 다니는 아이들을 ‘십 대의 표준’으로 삼잖아요. 학교밖청소년, 특성화고 재학생들, 돌봄 노동을 하거나 미혼 부모로 살아가는 청소년 들은 늘 비주류로 불려요. 주류의 바깥에 놓인 아이들이라는 표현 자체가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어지만, 그럼에도 이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청소년 화자들이 등장하는 시를 쓸 때 지키고자 하는 최소한의 윤리가 있다면요?
성인의 입장에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쓰면 저의 세계관이 투영되어 나도 모르게 이 청소년들을 재단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를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철저하게 청소년 화자의 입장에서 쓰려고 해요. 병원을 다니며 어른을 돌보는 아이의 입장, 이혼한 부모 아래서 오늘 혼자 무언가를 해야 하는 아이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당사자가 일기 쓰듯 담담하게 말하듯 쓰려고 해요. ‘작가로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자. 내가 그 아이가 돼서 친구한테 하는 얘기를 쓰자.’ 마음먹으며 시를 쓰고 있어요. 우리는 대개 일기를 쓸 때 특정한 상황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따지지 않잖아요. 그럼 교훈을 주거나 판단을 내릴 여지도 줄어들고요. (청소년) 화자가 되어 보는 것, 제 글쓰기의 최대 윤리인 듯싶어요.
시인님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어른들도 천진한 모습으로 나와요. 동화 『멧돼지가 쿵쿵, 호박이 둥둥』, 소설 『꿈 찾기 게임』에 등장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십 대 아이들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외면하지도 않죠. 추구하시는 어른의 상이 있나요?
어린이·청소년들을 계도하거나 올바르게 이끌고자 가르치려는 욕망을 배제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위트 있고 재밌는 인물들을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커요. (웃음) 왜,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말맛이 있고 웃기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는 것 같아요. (편집자: 『멧돼지가 쿵쿵 호박이 둥둥』에 나오는 할머니의 유머가 얼마나 찰진데요. 모델이 되어 준 분이 계실 것 같은데요?) 저희 어머니가 재밌는 분이셨어요. 어머니가 활발하고 성격이 시원시원하셨거든요. 유년 시절, 어머니는 양쪽 팔에 저희 쌍둥이를 한 명씩 끼고 아버지가 사 오신 책을 읽어 주시거나 옛이야기를 곧잘 들려주셨는데, 입담이 생생하고 재밌었어요. 그런 부모님이 계셔서 제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두 작품에 나오는 할머니의 모델이 모두 저희 어머니예요. 교훈 대신 재미를 주는 어른, 유머 있는 캐릭터 혹은 인물 간 케미를 앞으로도 잘 구현해 보고 싶어요.
일찍 어른이 된 열여덟 살의 걸음들
『열여덟은 진행 중』에는 “또래보다 일찍 어른이 된” 열여덟 살 청소년들의 일상이 핍진하고 유쾌하게 그려져 있어요. 그 많은 연령대 중 열여덟 살에 집중하신 이유는요?
열여덟 살은 미성년에 속하지만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대인데, 실제로 일하는 청소년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어요. 인터뷰하면서도 말했지만 2019년 무렵 자립준비청년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건이 있었어요. 마음이 아팠고, 자립준비청년을 다룬 기사와 자료들을 찾아봤어요. 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처한 현실을 알게 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이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자칫 르포 형식의 글이 나올 수도 있기에 어떻게 풀어보면 좋을지 고민스러웠어요. 그러던 찰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 이 청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를 시집으로 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제 시집에 해설을 써 주신 오연경 평론가와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요. 다양한 층위에 있는 소수자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싣고자 했는데, 청소년 미혼 부모가 화자로 나오는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싶어 수록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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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준비청년, 영 케어러 등 변방에 있다고 여겨지는 십 대들의 이미지가 시인님의 시 속에는 대상화되지 않아서 신선했어요. 특히 치매 걸린 아버지와 할머니를 돌보는 청소년의 마음이 투명하게 와닿았는데, 자료 조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언론별 기사를 비롯해 인터뷰, 유튜브 영상 등을 찾아봤고요. 청소년 당사자가 자신의 경험담을 플랫폼에 쓴 글들도 찾아 읽었어요. 그런 자료 조사를 다 떠나서 당사자인 그 아이가 되어 보는 연습이 가장 중요했어요. 그러면 쓸 것들이 나오거든요. 챕터 1부 ‘나는 영 케어러입니다’에 나오는 「이게 아닌데」는 제가 경험한 단편적인 기억들을 엮어 완성한 시이기도 해요. 가까운 가족이 이야기해 준 것을 담기도 했는데, 실제로 치매를 앓는 어르신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매 진단 테스트를 받으면 평상시와 다르게 굉장히 똑똑하게 답변하는 경우가 많거든요(“치매 테스트할 때만 멀쩡한 아빠 때문에/정부 지원은커녕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다”). 반드시 영 케어러가 아니더라도 인지저하증을 겪는 가족과 살며 겪을 수 있는 공통적인 사연들이 이 시집에도 담겨 있어요. 같은 챕터에 담긴 시 「거짓말은 딱 질색」에는 링거 바늘을 자꾸만 빼려 해서 침대 손잡이에 팔이 묶인 엄마가 등장하는데, 이는 제 경험에서 비롯됐어요. 청소년 화자들이 병원에서 부모를 돌보는 모습과 제가 병원에서 침대에 누운 엄마를 돌봤던 모습이 맞닿아 있는 셈이죠. 「가족을 돌보는 방법」에 등장하는 청소년이 자신의 할머니가 좋아하는 화투랑 화투 방석을 깔아놓는 모습도 제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한 이미지들이에요. 돌봄에 관해 세대 구분 없이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도 표현했어요.
시 「달달」에서 빈번한 산업재해에 맞서 실제 특성화고 학생과 졸업생이 발표한 ‘우리의 권리 장전’을 인용하셨어요. 일곱 권리 중 가장 지켜져야 할 권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권리 장전 중 두 번째 항목인 “우리는 안전하고 건강한 교육 환경과 실습 환경에서 진로를 탐색하고 전문 교과를 익힐 권리가 있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모든 권리가 중요하지만, 특성화고 학생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보호받는 것이 급선무니까요. 지금까지 실습 현장에서 너무 많은 학생들이 희생당했잖아요. 이 학생들이 안전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해요.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실습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올 권리’도 지켜져야 해요. 일부 학교에선 실습을 다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온 학생을 ‘루저’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반성문을 쓰게 하고, 주황색 조끼를 입고 청소를 시키는 등 체벌을 준 사례도 있다고 하던데, 사실 유무를 떠나서 학생들이 실습을 마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안심하고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해요. 실습 현장의 안정성을 갖추는 일과 함께 학생들을 포옹할 수 있는 학교 환경도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극중 화자가 이 권리 장전을 식탁 유리 밑에 끼워 두는 것으로 시가 시작되는데, 화자에게 권리 장전을 주었던 친구 승원을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싶나요?
똑똑하다고 칭찬하고 싶어요. 그리고 더욱 똑똑해지고, 목소리를 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회에서도 정책적인 측면에서 이 아이들을 조명하거나 제대로 지원하지 않잖아요. 인문계고 학생을 중점적으로 한 정책에 비해 특성화고 학생이나 학교밖청소년을 위한 지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해요. 그동안 특성화고 학생들(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은 “고교 취업률 보장하라!”라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만들어서 그 추운 운동장에서 시위를 벌여 왔어요(편집자 주: 연합회는 2020년 운동장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고졸 일자리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불공정한 상황을 사회에 알리는 움직임이 계속되어야 해요.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주위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같이 현실을 바꿔야겠다는 인식을 확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비록 힘들더라도 곁에 있는 선생님들도 같이 행동해 줬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이, 교사들이 힘이 없더라도 ‘꿈틀꿈틀’ 하면서 함께 더 똑똑해지고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가진 십 대 부부의 사연을 자극적으로 편집하는 TV 프로그램과 달리, 시「자진 폭로」, 「용감한 그녀」에서 두 청소년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며 용감의 모양을 배워 가요. 이들의 십 년 뒤를 쓰신다면 어떤 모양으로 완성하고 싶나요?
미혼 십 대 부부들의 이야기를 시로 쓰기 위해 관련 프로그램을 엄청나게 찾아봤었는데요. 불편하기보다는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힘들어하면서도 자신에게 닥친 현실과 미래를 헤쳐 나가려는 모습들을 시로 표현했는데, 화자들에게 무엇보다 ‘든든한 버팀목’들이 있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어요.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노트를 전해 주는 친구, 내가 아기를 봐줄 테니까 너는 공부더 하라고 말해 주는 엄마가 나오는 것처럼요. 사실 혼자 무언가를 해 나간다는 건 힘들잖아요. 하지만 같이 무언가를 하면, 즉 연대한다는 것은 힘이 센 실천이기에 힘들어하는 청소년이 제 시를 읽고 조금이나마 힘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연대의 가치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학작품에) 피력하면 안 되지만, 적어도 함께한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를 바라요. 너는 혼자가 아니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요. 이들의 미래에도 누군가가 계속 곁에 있을 거라고,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돌봄 안에서 우리는 이어져 있으니까
책에 실린 54편의 시 중에서 가장 앓으면서 썼던 시는요? ‘애착시’를 골라 주세요.
1부 가장 끄트머리에 실린 「불꽃나리」를 첫 번째 애착시로 꼽고 싶어요. 야생화 불꽃나리는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도 태어나는 백합과 식물이에요. 이 시집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대다수 힘든 현실을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발걸음을 내딛으려 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지 않나 싶어요. 3부 끄트머리에 실린 시 「아름다운 연대」는 두 번째 애착시예요. “손을 내밀어 봐/넌 혼자가 아냐” 홀로 힘들어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실제로 이렇게 말해 주고 싶어요. 고통을 나누는 것의 가치를 한번쯤 전하고 싶어요(“누군가 물을 찾으면/맞잡은 뿌리로/서로 물을 나눠 마시며/함께 살아가지”). 쓰는 데 가장 오래 걸린 시를 꼽자면 시집에 첫 번째로 실린 「치매 걸린 아빠가 꽃을 가꾼다」인데, 이 시는 제가 청소년을 위한 시를 쓰기 전 일찍이 써 놓았던 작품이에요. 저와 세월을 오랫동안 보낸 시라고도 할 수 있는데, 버리지 않고 내심 갖고 있다가 돌봄 노동을 하는 청소년의 관점에서 시를 고쳐 보았고, 이번 시집 첫 번째 시로 수록하게 되었어요(편집자 주: 시에는 공터에서 자꾸만 물을 주는 아버지와 이를 말리는 돌봄 노동 청소년이 등장한다. “거울 밖에는 꽃에 물을 주는 아빠가 있고/아빠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 내는 내가 있다”).
『열여덟은 진행 중』은 돌봄을 한창 받을 청소년이 누군가를 돌보기도 한다는 점, 나아가 청소년이 그 가운데서 통증을 느끼면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는 마음도 기르고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이야기였어요. 구현하고 싶은 문학 속 돌봄의 모습이 있다면요?
제가 이 시집을 쓴 이유는 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예요. 한창 배워야 할 시기의 청소년들이 돌봄에 집중하다 보니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현실 또한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거든요. 시집에 실린 시 중「새싹」의 도입부에는 “어느 날/갑자기/나보다 열일곱 살 어린 생명체가/포대기에 싸여 내게로 왔다”라고 쓰여 있어요. 평범한 학생으로 돌봄을 받으며 살다가 아이를 가짐으로써 보호받아야 할 일상이 어그러지지요. 그 책임을 이 아이들에게 전가하면서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안심하고 성장할 수 있잖아요. 돌봄을 하면서 타인을 알고 성장하는 청소년의 이미지도 보여 주고자 했지만, 돌봄을 행하는 아이들이 실은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돌봄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청소년 지원 정책을 담당하는 지자체 정책관들에게 이 시집을 권하고 싶어요. 학교밖청소년 등 주류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에게 편견을 가졌거나 ‘열외’로 보는 어른들에게도 건네고 싶고요.
시 「책 읽기」에서 “책을 읽을 때마다 아직 책을 더 읽고 싶어 한 형이 생각납니다”라고 쓰신 바 있지요. 생각나지만 아직 차마 쓰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면요?
더 쓰고 싶은 누군가가 분명히 있어요. 시집 『학교에서 기적을 만났습니다』(2022)에서 다루긴 했지만, 좀더 이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고심하고 있어요. 대개 시집을 내고 난 다음에 다음 시집 구상을 하곤 하는데, 중복되거나 발표된 시를 정리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떤 이야기들을 다루고 싶은지 선명하게 보이거든요. 저는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청소년에 관한 시를 더 쓰고자 해요. 차기작에는이 준비를 해 나가는 십 대를 부단히 그릴 것 같고요. 차별받는 청소년들과 나란히 어깨동무할 수 있는 시, 그리하여 청소년들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시를 앞으로도 쓰고 싶어요.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