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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내겐 아주 특별했던 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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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24 22:16 조회 6,08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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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예쁘고, 책장 넘기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다. 이렇게 행복한 공간인 학
교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많은 아이들과 만나왔다. 그 중에서는 조금은 특별한,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그 평
범하지 않은 아이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아이가 있다.

내가 중학교에서 일할 때 만난 현수(가명)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었다. 현수의 부모님은 자식
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수는 열린반에 가지 않고 일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았다. 현수는 주위가 산
만했고, 하는 말의 대부분이 욕이었으며, 화가 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싸움을 걸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도 현수를 좋
아하지 않았다. 간혹 수업 중에 소란을 피우면 선생님께서 도서관으로 데리고 왔다.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하기
때문에 나는 현수가 진정될 때까지 함께 있어야 했다. 현수는 도서관에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 소파를 내리치기
도 하고, 책을 던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달래주려고 했으나 그럴수록 더 심하게 소란을 피워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 소란을 피우고 나면 멋쩍은 듯 씩씩대면서 화를 가라앉히곤 했다.

현수는 1교시 시작 전부터 매 쉬는 시간, 그리고 방과 후에 도서관에 왔다. 물론 책을 읽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주
로 컴퓨터를 하러 왔다. 물론 컴퓨터를 이용할 때도 조용하지 않았다. 혼자서 큰소리로 떠들면서 자판을 소리 나게 힘
껏 두드렸다. 그렇게 놀기 위해 도서관에 오는 것이다. 그런 현수가 솔직히 처음에는 귀찮았지만 나중에는 불쌍하게
느껴졌다. 현수가 그렇게 된 것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상처 때문이었다. 엄마의 부재 때문에 장애
가 생겼다고 하니 마음이 아팠다. 위로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현수가 중학교 시절을 돌아봤을 때 학교
도서관을 떠올리고 미소 지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현수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지내다보니, 거미를 좋아하고, 여동생을 아끼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먹을 것이 생기면 도서관에 내려와서 주고 가는 인정 많은 아이이기도 했다. 하
지만 이따금씩 도서실 문 앞에 대자로 누워 소란을 피울 때나, 책을 읽고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 때는 내 얼굴이 험하게 구겨지는 것을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시험기간이 되면 현수는 도서관에서 시험을 봤다. 교실에서 시험을 보고 싶어도 소란을 피워 어김
없이 도서관으로 내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원하지 않게 도서관에서 보는 시험에 현수도 기분이 상해
누구라도 괴롭히기 일쑤였고, 그러면 나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출장 갈 일이 있어 도서관 문을
잠그면 현수는 나에게 어딜 가느냐며 엄마에게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굴었다. 마음이 찡해
지는 순간이었다.

현수를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기에 상담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상
담 선생님께서는 현수를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해주라고 했다. 내가 엄마가 되어줄 수 없기에 선생님
으로서 대해야 한다고. 상담 선생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른 아이들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현수를 대했
다. 도서관에서 조용히 하라고 하고, 욕하지 말라고 하니 현수는 나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더
심하게 욕하고, 떠들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현수가 그럴수록 내 목소리도 차츰 높아졌다.

얼마 후 나는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지금은 현수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잘못하
지는 않았는지 뒤늦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로 아픈 아이를 야단치는 것이 옳았는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꼭 가르쳐야 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필요 이상의 관심으로 현수
는 물론 나 자신까지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닐까. 만약 지금 도서관 문을 열고 현수가 들어선다면 그냥 반
갑게 맞아주고 지켜봐 주리라. 함께 지냈던 시간 속에서 나에게 감정을 다스리는 법과 다른 소통의 방
법을 가르쳐 준 현수는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최근에 나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이 책들을 그때 읽었더라면 현수를 좀
더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었을 텐데…… 여건이 허락한다면 독서치료를 배워서 도서관을 찾아오는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지금 일하고 있는 도서관에도 보통의 아이들과 달라 보이는 아이가 자주 온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
들을 피해서 조용히 책만 보다가 간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말을 걸어오
는 것도,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꺼린다. 그래서 나도 관심어린 눈길로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다.
학교도서관에는 매일 다양한 성향을 가진 많은 아이들이 찾아온다. 어떤 아이는 예의 바르고, 어떤 학
생은 똑똑하고, 또 어떤 아이는 자기밖에 모른다. 하지만 어떤 아이라도 자주 보면 예뻐 보이고, 자세히 보
면 사랑스러운 법이다. 이 행복한 공간에서,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매일 함께하는 나는 분명 행복
한 사람이다. 이 행복을 상처받은 아이들과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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