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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사려 깊은 번역가의 말 걸기] 해설하는 번역 VS 상상케 하는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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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6-06-10 10:39 조회 2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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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하는 번역 VS 상상케 하는 번역

신수진 어린이책 번역가


 원서를 읽자마자 가슴에 와닿는 작품을 만나기란 의외로 쉽지 않은데, 최근 번역한 『나는 커다란 나무였으나』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책 내용은 이렇다.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는 작가에게 누군가 말을 거는데,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작가의 연필이었다. 연필은 자신이 한때 거대한 숲의 일부였던 기억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아니, 내가 이런 책을 좋아하는 걸 어떻게 간파하셨지? 번역을 의뢰한 편집자에게 “제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요!”라며 단숨에 답장을 보냈다.
 
비인간 존재와 나란히 서는 어린이들
어린이책에서 비인간 존재들이 인간에게 말을 걸어 오는 일은 무척 흔하다. 동물이 길을 안내하고, 바람이 경고를 보내고, 나무가 지혜를 전한다. 우리는 이걸 “동화 속 이야기”로 치부하곤 했지만, 글쎄. 정말로 비인간 존재들이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을까? 사물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를 탐구하는 신유물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물질은 고유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어린이는 성인보다 더 민감하게 이 에너지에 반응할 수 있다. 식물-동물-인간이라는 피라미드식 위계를 받아들이기 전의 어린이는 자연과 문화(사물)를 엄격히 분리하지 않고, 서로가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니까. 어린이는 지구라는 거대한 물질적 그물망 속에서 모든 생명체가 하나로 얽혀 있음을 증명하는 순수한 기록자이며, 사실 우리 모두는 그런 시절을 거쳐 왔다. 아메리카와 호주에 살았던 원주민들은 비인간 동물과 식물, 그리고 바위, 물, 토양과 같은 생태적 존재들이 고통과 쾌락을 느낄 뿐 아니라 모두가 인간의 친족이라고 생각했다. 서양 근대철학의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은 이런 관점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그러나 우리도 근대식 교육이 도입되기 이전 도교, 불교, 민간 신앙 등에 기대어 생활한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동식물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음을 더는 모른 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아동문학은 근대적이고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를 털어내고 대안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그 어려운 일을 단숨에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도 놀랍고 의미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커다란 나무였으나』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저자가 그림 속에 촘촘히 숨겨 둔 상징들을 읽어 내는 일도 무척 중요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작업실에 걸린 그림들은 피에로 델 폴라이우울로의 <아폴로와 다프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시기하는 키르케>,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봄)>,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 같은 작품들이다. 인간이 자연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지를 말해 주고 있는데, 극히 일부만 보이거나 아주 작은 크기여서 독자는 어떤 그림인지 눈치 못 채고 지나치기 쉽다. 게다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필의 상표명은 키르케가 살았던 숲의 섬 이름을 딴 ‘아이아이아(AIAIA)’다. 이처럼 작가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은 숨은 의미들을 번역자가 어디까지 알려주어야 할까 내내 고민이었다. 수학자이면서 동시에 루이스 캐럴(『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저자) 전문가인 마틴 가드너(1914∼2010)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엄청난 해설을 달아 『주석 달린 앨리스』를 펴냈고 그것도 모자라 평생에 걸쳐 새로운 내용을 업데이트하기까지 했다. 마틴 가드너 사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출간 150주년을 기념해 나온 한국어판 『ALICE IN WONDERLAND』(승영조 옮김, 꽃피는책, 2023)는 한국어 번역자의 주석 380여 개까지 더해져 총 872쪽의 ‘벽돌책’이 되었다. 루이스 캐럴의 수학적 유희와 당시 영국 사회의 유머까지 낱낱이 파헤친 가드너의 집요함, 그에 버금가는 한국어판 역자의 꼼꼼한 주석까지 더해지면서 원래의 텍스트는 끝 모를 깊이를 지니게 되었다.

알고 읽게 할까, 모르고 느끼게 할까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으로서 번역가는 늘 갈등한다.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 효율적인 독서를 도와주고 싶은 욕구’와 ‘독자가 스스로 발견하게 두어야 한다는 미학적 거리두기’ 사이에서 말이다. ‘알고 읽는 것이 주는 지적 쾌감’과 ‘모르고 느끼는 것이 주는 감각적 신비함’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할지 결정하는 일은 늘 쉽지 않다. 『나는 커다란 나무였으나』의 최종 번역 원고에는 내 능력으로 가능한 주석을 최대한 달아 보냈는데, 결과적으로 책은 주석 없이 출간되었다. 그림책에 그 많은 해설을 넣었다면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마틴 가드너의 주석을 꼼꼼히 읽지 않았다, 하하!) 하지만 연필의 상표명이 크게 드러나는 중요한 장면에서만큼은 그 의미를 꼭 알려드리고 싶었다.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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