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평생독자 기르는 법] 필사로 쟁취하는 성공 경험! ‘따라 쓰기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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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11-04 15:54 조회 116회 댓글 0건본문
필사로 쟁취하는 성공 경험!
‘따라 쓰기 잔치’
도서관 행사를 홍보해 보면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언제나 선물이다. 그러니 행사를 앞두고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문구류나 간식을 수소문해 준비해 보지만 매번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좋은 선물이란 뭘까? 희소성이 높아 귀하고 소중한 것일 테다. 참여만 하면 등가교환처럼 받아 가는 뻔한 물건들 말고, 도서관에서 줄 수 있는 귀한 선물을 주고 싶어 고민하다 성공한 행사가 있다. 이번 호에서는 참여자들 스스로 결과물의 가치를 높이며 귀한 선물을 받아 갈 수 있었던‘ 따라 쓰기 잔치’ 필사 행사를 소개한다.
김규미 진주 남강초 사서
저학년에게 필사란 가히 도전
‘따라 쓰기 잔치’는 도서관에서 제시하는 활자 인쇄물을 학생들이 원고지에 똑같이 따라 써서 제출하는 필사 행사다. 대상은 아직 손가락 힘이 부족하고 긴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초등 1∼2학년이다. 필사는 눈과 손의 절대적인 협응이 필요해 뇌를 자극하고 집중력을 길러 주는 활동이다. 잘 완성된 글을 따라 쓰다 보면 기초 문해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필사의 장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생각보다 베껴 쓰는 게 쉽지 않아 학생들로서는 꺼리는 활동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저학년에게 ‘문장부호와 띄어쓰기, 줄 바꾸기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채 바른 글씨로 1,000자 이상의 글을 베껴 적기’란 가히 도전이다.
‘선두주자들의 독려’가 행사의 성공 열쇠
대회 소식을 본 학생들은 처음에는 머리를 굴려 글을 써야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참가 선물을 쉽게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덜컥 인쇄물을 받아 간다. 하지만 막상 베껴 쓰기를 시작한 학생들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인상을 찡그리며 현실을 자각한다. “손가락이 너무 아파요.” “쉼표 하나 안 찍었을 뿐인데 다 지우고 다시 썼어요!” “예쁜 글씨를 쓰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요.” “대충 쓰면 안 되나요? 밤을 새워도 다 못할 것 같아요.” 중도 포기자가 속출하는 와중에 야무진 몇 학생은 다음 날 완성된 원고를 자랑스레 들고 도서관을 찾는다. 이들이 선물을 받아 교실로 들어서는 순간 슬슬 포기하던 학생들은 술렁인다. “벌써 완성할 수 있는 거였어? 나도 선물 받고 싶었는데!” “나도 쓰다 만 원고 한 장 있는데··· 조금만 더 노력해 볼까?” 행사는 사실상 이때부터 시작된다. 일찌감치 성공한 학생들은 어깨에 힘을 주고 포기한 친구들을 독려한다. 띄어쓰기와 맞춤법 등의 실수를 하지 않게 참가자 학생들 곁에 가서 도와준다. 도서부와 선생님들은 틀린 글자 지우기를 도와주며 ‘지금 잘하고 있다’고, ‘성공이 코앞’이라며 참가 학생들에게 계속 최면을 걸어주면 된다. 그러면 행사 분위기는 금세 뜨거워진다. |
‘따라 쓰기 잔치’ 도서관 행사 안내 포스터 |
행사 준비물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필사할 원고의 인쇄물, 빈 원고지, 참가자 선물, 필기도구, 확인 도장. 필자가 추천하는 필사 대상 책은 칼데콧 아너상 수상작이자 초등 교과서에도 수록된 아놀드 로벨의 동화 『개구리와 두꺼비는 친구』 속 마지막 챕터 「편지」, 그리고 ‘전통놀이’를 주제로 교과 연계가 가능한 그림책인 강풀 작가의 『얼음 땡!』이다.
(좌)『개구리와 두꺼비는 친구』
아놀드 로벨 지음│엄혜숙 옮김│비룡소│1996
(우)『얼음 땡!』
강풀 지음│웅진주니어│2014
빈 원고지 및 필사용 인쇄물 출력 1학년들이 받아쓰기를 충분히 경험한 2학기 중반 이후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우선 학년별로 학생들이 필사할 원고를 다르게 준비한다. 교과 연계를 위해 가능하면 온책 읽기 도서 또는 수업 관련 도서로 필사용 인쇄물을 만드는 것이 좋다. 또 저학년은 글씨를 작게 쓰는 것을 어려워하므로, 학생들이 필사할 빈 원고지는 기존보다 조금 크게 만들면 좋다. 물론 시중에 판매하는 16절 크기 200자 원고지를 쓸 수 있지만 한글 프로그램으로도 원고지 출력이 가능하다. 단축키 ‘ctrl+Alt+N’으로 [문서마당]을 띄운 다음 [문서마당 꾸러미] 탭에서 [원고지]를 클릭하면 200자 또는 400자짜리 빈 원고지 서식을 불러올 수 있다. 이를 A4 또는 A3 크기로 크게 인쇄해 나눠 주면 된다. 200자 원고지는 페이지 수가 많아 보여 학생들이 부담을 크게 느낄 수 있고, 400자 원고지는 페이지 수가 줄어드는 대신 한 페이지에 줄이 많다 보니 학생들이 글을 쓰다 행갈이를 헷갈리는 실수가 빈번히 생긴다. 이를 고려해 상황에 맞게 원고지를 출력한다.
필사 결과 확인 행사 전, 행사 내용을 학년 선생님들과 공유하고, 선생님들과 필사 결과 확인 방법을 사전에 의논한다. 전교생 천 명 이상 규모의 학교라면 담임선생님의 협조를 받아 교실에서 결과를 확인하고 선물만 도서관에서 전달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꼼꼼한 확인을 강요하기는 어렵지만 원활한 진행이 가능하다. 필자의 경우 전교생이 900명 규모일 때 도서부원들과 학부모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쉬는 시간마다 함께 확인하고 틀린 부분 수정을 도와주었다. 도서부원들은 새삼 원고지 쓰는 법과 맞춤법을 다시 공부하는 계기가 되어 일석이조의 봉사 시간을 경험했다. 참고로, 행사 기간을 일주일 이상 넉넉히 두자. 저학년이 대상이다 보니 쉽게 참여를 포기했던 학생들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꾸준히 격려해 주는 게 좋다. 도서관 안에 참가자들을 위한 책상을 마련해 점심시간마다 필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도 좋다. 필사용 인쇄물의 원본 책도 함께 전시하길 추천한다.
학교 규모에 따라 참여 대상 학년과 필사 결과 확인법을 조절하되, 결국 결과는 세심히 확인하길 추천한다. 대충 검사하면 원고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학생들의 성취감도 덩달아 떨어진다. 배포한 인쇄물과 내용이 똑같아야 하며, 글씨도 알아볼 수 있게끔 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자. 또 이를 꼼꼼히 확인할 것임을 사전에 안내하자. 덧붙여, 두 번 참여할 수 없도록 안내해야 한다. 그래야 먼저 성공한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을 도울 여유가 생긴다.
참가자 선물 참가자 선물은 랜덤 뽑기로 제공했는데 혹시 자신이 뽑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친구와 교환할 것을 권했다. 다른 친구와 선물을 바꾸고 싶다면 학생들은 자연스레 친구의 참여와 성공을 독려하게 된다. 완성한 필사본에 예쁜 도장을 찍어 L홀더에 끼워 주거나 학생이 원한다면 자랑할 수 있게 필사 결과물을 도서관에 전시해 주는 등 학생들의 원고를 소중하게 다뤄 주자. 학생들의 진땀이 밴 원고를 가치 있게 대할수록 랜덤 뽑기 선물보다 원고에 담긴 노력의 가치가 올라간다.
학생들이 만든 행사 홍보 포스터와 참가자 선물들
필사용 원고의 난이도 조절에 주의
행사의 성패는 원고에 달렸다. 참여 학년의 수준에 따라 원고의 난이도를 살짝 높이는 정도로 조절하자. 원고 분량이 난이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필자의 경험상 1학년은 800∼1,000자, 2학년은 1,200∼1,400자 정도가 평균이었지만 남녀의 차이가 컸다. 학교마다 수준도 매우 다를 수 있다.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행사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행사 시작 전 샘플원고를 준비해 미리 행사 대상 학년인 몇 학생에게 사전 필사를 부탁해 보며 원고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을 추천한다.
또 학생들이 원고지를 자주 쓰지 않다 보니 원고지 작성법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필사용 인쇄물 배포 전, 학년 선생님들과 2중, 3중으로 필사용 원고를 검토하자. 학생들이 베껴 쓸 원본에 오류가 있으면 학습을 저해할 수 있다.
하루는 보온병의 물을 실수로 가방에 쏟아 버린 2학년 학생이 엉엉 울며 한참 행사 중이던 도서관에 찾아온 일이 있었다. 학생의 가방은 물론이고 교과서, 알림장, 고급 필통, 그리고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절정이었던 포켓몬 수첩과 따라 쓰기 중이던 원고가 모두 젖어 있었다. 그중에서 학생을 그토록 울린 것은 완성되기 직전의 따라 쓰기 원고였다. 틀려서 3줄이나 지우고 다시 썼었던, 이제 4줄만 더 쓰면 완성될, 이틀째 쓰고 있었던 원고지는 고급 필통이나 포켓몬 수첩보다 학생에게 더 소중했다. 이틀 동안 끙끙거렸던 수고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원고는 누가 대신 써 줄 수도 없고, 다시 쓰기엔 너무 힘들 것 같고, 돈 주고 살 수도 없으니 그 속상함을 말로 다할 수 없어 그리 울었던 것이다.
진짜 귀한 선물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공력을 기울여 스스로가 ‘받는 것’이라는 사실이 그 학생의 눈물에 여실히 담겨 있었다. 그러니 필사용 원고의 난이도는 학생들이 이틀 정도의 수고스러움을 경험해 볼 수 있을 정도를 추천한다. 경우에 따라 검사에 너그러움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손가락이 아프고 연필을 쥐기 귀찮아지더라도 마침내 필사본을 완성해 냈을 때의 큰 성취감과 자신감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아 갔다. 스스로 쟁취하는 성공 경험. 도서관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