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도서관에서 떠나는 자유학년 여행] 극한 직업, 학교도서관 사서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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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04-23 16:51 조회 4,306회 댓글 0건본문
전은경 대구 동촌중 사서
사서 홀로 북 치고 장구 치는 학교도서관
1인 기업에서부터 혼밥까지 최신 경향이 솔로들의 무대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학교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1인 사서는 이 트렌드에 매우 익숙한 직업군이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비교적 큰 공간을 차지하는 도서관은 교무실이나 강당과는 달리 담당자가 단 한 명인 영역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전교생이 밀물처럼 몰려들어도 역시 책임자는 한 명뿐인 학교도서관. 이것은 지난 10년 간 학교도서관에서 삽질을 한 1인 사서의 이야기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처절한 도서관 생존기이므로 이쯤에서 티슈를 준비해 두는 것도 독서를 위한 팁이 될 것이다.
매학기 초에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이용자 교육이 있다. 이때 묻게 되는 첫 번째 질문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사서선생님의 모습은?” 아쉽게도 지난 10년 동안 새내기 중학생들에게 들은 가장 많은 대답은 대출과 반납만 하는 모습이었다. 사서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데 아이들은 이런 모습으로만 떠올리는 것일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일단, 사서는 학교에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귀한 존재로서 놀면 티 나고, 열심히 일해도 티가 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으나 나는 후자의 삶을 선택한 사서이다. 3월이 되면 사서들은 이용자 진급을 위해 교무부에 부탁해 진급 처리를 위한 서류를 준비한다. 그 서류를 받고 만드는 일이니, 말 한마디면 정리될 것 같지만 그 과정이 그리 쉽지가 않다. 어느 부서인지 알아보고, 여러 장으로 나누어진 서류를 하나의 파일로 만들고, 전입생과 전출생을 비교하여 전년도 학반과 이름을 구분하여 분류해 놓으면 쉬는 시간이 되고,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대출과 반납 모드로 돌입한다.
그러고 나서 이용자 교육을 준비한다. 파워포인트로 학생들이 익혀야 할 규칙과 도서관을 이용하는방법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내서 만들어 본다. 책과 거리가 먼 학생들까지 유혹하는 도서관이 되려면 파워포인트의 현란한 기술과 요즘 애들의 입맛에 맞는 언어감각을 지녀야 하므로 창작의 고통까지 동반된다. 필요한 자료를 다운받고 이제 막 만들려고 하면 쉬는 시간이 되어 학생들이 또 쏟아져 들어온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대출과 반납 모드로 돌입한다.
모든 일은 해마다 이렇게 반복된다. 서류 업무는 우렁각시처럼 아이들이 수업에 들어가야 시작되고 그 외로운 싸움은 철저하게 홀로 진행된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 사서의 모습만 보기 때문에 대출과 반납을 해주는 것이 사서의 유일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5년 전부터 과감하게 대출과 반납 업무에 사표를 던지고 1인 근무를 하면서도 스스로 승진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바로 도서관장
나 혼자 승진해서 관리자가 되고 보니, 확실히 시야가 넓어졌다. 이제 시선을 밖으로 돌려야겠다 싶으니 문득 욕심도 생겨났다. 학교도서관의 경쟁 상대는 어디일까? 언젠가는 OO문고처럼 커다란 대형서점을 상대로 질투도 했지만 그 방대한 양에는 절대 따라갈 수 없음에 백기를 들었다. 또 어쩔 땐 방학마다 아이들을 뺏기는 시립도서관을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그 역시 제공되는 다양한 문화적 혜택과 언제나 열린 개방성에 나마저 현혹되고 말았다. 요즘은 특색을 갖춘 동네책방도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감각적인 큐레이션으로 이용자의 마음을 훔치는 책방들을 보며 나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정해지지 않은 대상을 향해 걸어 보는 무모한 싸움을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해오고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사소하지만 엄청나게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학교도서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리하여 자유학기제를 비롯한 교육과정 속에서 고민을 함께하는 도서관의 역할을 찾게 되었다. 다음 편에서는 지난 1년 동안의 도서관 협력수업에 대해, 그 과정과 결말을 이야기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