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으랏차차 도서관 활동] 유한 잡화점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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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04-11 18:00 조회 4,926회 댓글 0건본문
본교의 도서관 프로그램 ‘제1회 유한 잡화점의 기적’은 “책은 발로 읽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어느 독서가가 한 말로, 책을 읽고 배운 바를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을 접했을 즈음 나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있었고, 자연스레 이 작품을 내 삶에 어떻게 응용해 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고민의 결과를 바로 지금 소개한다.
1.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일본의 인기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국내에는 2012년에 출간되어, 현재까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편지로 고민을 해결해 주는 ‘나미야 잡화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 프로그램은 “우리 학교도서관을 나미야 잡화점으로 만들어보자. 편지함을 설치하고 고민을 받고, 고민에 대한 답을 해 주자. 대신 나는 사서교사니까 편지가 아닌 책으로 고민을 해결해 주자.”라는 일종의 독서치료로 시작했다. 물론 학교에 위클래스가 있고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그곳에 많이 찾아가곤 한다. 그러나 선생님에게 차마 하지 못할 말들이 있을 것이고, 고민 상담을 받을 기회를 아직 못 받은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친구들을 위해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한 결과로 나온 아이디어다.
2. 팀의 구성 및 계획
친구 선생님들과 함께한 커피 모임에서 앞의 아이디어를 무심코 던졌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건축인테리어디자인과(이하 건축과) 부장 임도희 선생님께서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더 나아가 자신이 학생들의 고민에 맞는 그림(수채화)을 그려 주겠다고 했다. 바야흐로 미술치료가 결합되는 순간이다. 그 선생님이 나를 송지선 상담선생님과도 연결해 주었다. 두 선생님이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로써 사서교사, 상담교사, 건축과교사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완성되었다.
이 세 명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사서교사인 나는 프로그램 총괄을 맡아 일정, 예산 등 행정적인 일을 처리한다. 또한 사서교사로서 학생의 고민에 맞는 책을 골라 구입한다. 상담 선생님은 고민에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적어 준다. 이때 글을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적을까 많이 고민했다. 원작에서 좀도둑 3인방의 답장은 짧고 불친절했지만, 도움이 되게 적었다. 우리도 핵심을 담아 짧게 쓰고자 했다. 그리고 글은 책갈피를 만들어 그곳에 적기로 했다. 책갈피 제작 방법에 대해선 뒤에서 서술하겠다.
건축과 선생님은 학생들의 고민에 맞는 수채화를 그려 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사각형의 수채화패드를 구입했고, 그곳에 그림을 그렸다. 사실 이 작업이 가장 오래 걸렸다. 퀄리티가 상당히 높았다. 그리고 이 수채화를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액자에 끼워서!(다이소에서 3,000원에 구입) 증정했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3. 예산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비용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주최하는 ‘1318 책벌레들의 도서관 점령기(이하 책벌레들)’ 프로그램에서 지급받은 예산을 사용했다. 책벌레들 프로그램 예산은 도서구입비 175만 원, 문화상품권 75만 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이 중 일부를 사용했다.
가장 먼저 편지를 접수받을 붉은색 편지함을 구입했다. 약 2만 원이며, 인터파크에서 문화상품권을 이용해 구입했다. 편지함은 도서관 문 옆에 설치했다. 도서 구입비로는 학생들에게 선물할 책을 구입했다. 선물 포장을 위한 켄트지와 마스킹테이프 등은 건축인테리어디자인과에 구비된 것으로 준비했다. 참고로 본 프로그램은 미리 계획해 둔 것이 아니기에 학교 예산을 활용할 수가 없었다. 책벌레들 프로그램을 통해 받은 예산이 남아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학교 예산을 사용하면 에듀파인에 일일이 기안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책을 구입하면 학교 재산이 되므로 학생들에게 지급할 수가 없다. 반면 책벌레들 예산은 기안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학생들에게 책을 지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편하다. 문화상품권의 경우, 인터파크 등에 등록해 사용하면 어떤 물품도 제약 없이 구입할 수 있다.
4. 진행 과정
프로그램 진행 시기는 가을로 정했다. “가을 탄다.”라는 말이 있듯이 가을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학생들도 가을을 타며 쓸쓸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 터이니 편지가 많이 접수될 듯했다. 정확한 일정은 다음과 같다. 10월 한 달간 편지를 접수받고, 11월에 선물을 준비하고 그달 말에 선물을 제공한다.
프로그램 홍보는 포스터와 SNS(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도서관 소식지를 활용했다. 별도의 가정통신문은 제작하지 않았다. 편지함은 도서관 옆에 설치했다. 편지함을 어디에 설치할지에 대해선 고민이 많았다. 학생들이 접근하기 쉬운 곳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보안이었다. 편지를 넣는 것을 누군가 보면 안 되니 말이다. 이에 따라 본관은 제외했다. 도서관은 별관 3층에 있어서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이중문으로 되어 있어서 보안이 확실히 유지되었다.
편지지는 모두 익명으로 받되, 닉네임을 적도록 했다. 한 달간 생각보다 많은 양의 편지가 접수되었다. 최종적으로 접수된 편지는 총 20통. 이 중 10개를 선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 중 7개는 장난으로 가볍게 쓴 편지여서 제외했다. 결국 13개가 남았는데, 이들은 모두 장문의 고민을 담은 진지한 편지였다. 결국 13개 모두 선정!! 이제 11월 한 달간 팀원들이 작업할 일만 남았다.
접수된 편지를 검토하고자 선생님들과 도서관에 모였다. 주된 협의 내용은 고민 분석과 답변 내용이었다. 가벼운 고민이 하나도 없었다. 물로 단순한 연애 문제(고백을 할지 말지)도 있었지만 대부분 인간관계나 진로에 대한 무겁고 어두운 내용들이었기에,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줄지 정말 고민되었다. 어떤 답변이든지 세 줄을 넘기지 않고자 다짐했기에 촌철살인의 문구가 필요했다. 총 세 번의 협의를 거쳤음에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즉흥적으로 답변을 적어 나갔다. 책 선정과 구입은 사서교사인 내가 담당했지만, 팀원들의 조언을 참조했다. 건축과 선생님은 11월 한 달 동안 틈틈이 수채화 작업을 이어갔다.
5. 프로그램 마무리
약속된 선물 제공 전날, 책갈피를 제작했다. 갈색의 두꺼운 크라프트지를 재료로 하여 가로 4cm, 세로 13cm의 크기로 제작했고, 상단에 구멍을 뚫고 리본을 묶었다. 책갈피 제작을 마치고 액자에 수채화를 끼우는 작업을 했다. 액자와 수채화의 크기가 딱 들어맞지 않아 수채화 테두리를 잘라냈다.
선물 제공 당일, 점심시간에 선물을 다목적실에 깔아 두기로 했으므로 그 전에 선물 포장을 마쳐야 했다. 그러나 선물 포장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책 13권, 액자 13개이므로 총 26개를 포장해야 했다. 건축과 선생님은 회의에 참석해야 해서 합류가 늦었고, 상담선생님은 일정이 있어 참석을 못하여 매우 급박하게 선물 포장이 이루어졌다. 결국 다른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선물 받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해서 열과 성을 다하여 포장했다. 그리고 모두 완성!!
선물은 도서관 옆 다목적실에 두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공간에 아무도 없어야 한다는 것. 점심시간엔 비어 있는 다목적실에 선물을 세팅했고, 선물에 닉네임을 적어 두어 잘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선정 결과는 전날 포스터를 통해 공개했다. SNS(학교 페이스북 페이지)로도 홍보를 했다. 당일 13명 중 9명의 학생이 선물을 찾아갔다. 선물 받은 학생 모두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 4명은 그 다음날 찾아갔다.
행사를 모두 마치고 나니 엄청난 보람과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업무에 치여 학생들과 소통할 시간이 적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그들을 행복하게 해준 것 같아 나도 행복했다. 함께해 준 선생님들이 없었다면 단지 책만 주고 끝나는 행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