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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책 도서관 이야기]그대의 마음을 훔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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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01-09 16:01 조회 3,27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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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과정을 그린 단편 함께 읽기
내가 하고 싶은 궁극의 일은 아이들 마음을 훔치는 것이다. 독서, 도서관에 흥미가 전혀 없는 중학생의 마음마저 단 한 번에 훔치는 것이 목표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갔어.”, “독서 활동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어!”, “여기에서 살고 싶어.” 정도의 반응이 나와야 성공이지 않을까?
 
그에 앞서 일단 작품을 선정해야 하는데, 단편 소설이라는 모래밭을 하염없이 뒤지는 느낌이다. 모래밭을 뒤지면서 이 작품으로 과연 아이들을 꼬드길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데, 곤란한 점은 답변도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남자친구를 사귈 때에도 이렇게 간절한 궁리를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작품 선정만으로 마음을 훔칠 수는 없다. 좋은 시설의 도서관? 의미와 재미를 갖춘 독서 프로그램? 멋있는 결과물 만들기? 이 모든 것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마음을훔치는 것은 감정의 영역이고 과정의 소산이다. 이성적 설득은 이해를 돕지만 마음 흔들기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정서적 설득이 필요하다. 오늘도 아이들을 한번 꼬드기고 마음을 훔쳐볼까?
 
 
꿈책 파티에서 1년 동안 선택했던 작품들이 인간의 본성과 국가 권력(「스마일맨」), 미래 사회와 인공 지능(「안녕, 베타」), 청소년의 사랑(「남친 만들기」)이라는 주제를 따라 흘러오다 보니 친구와의 우정(「영혼 박물관」)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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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작가의 「영혼 박물관」은 아픈 이야기다. 네 명의 친구(무언, 인태, 순재, 진후)는 같은 중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다른 학교로 흩어진다. 무언은 어려운 가정 사정 때문에 특성화고에 진학한 이후 학교폭력 사건에 휘말리면서 자퇴한다. 함께 자전거를 타기로 한 날, 공교롭게 무언이를 제외한 세 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그날 무언은 대형트럭과 충돌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소설은 무언의 사망 이후에 세 친구들이 방황하고 애도하면서 삶의 길을 찾아가는 시간을 다룬다. 삶 자체가 사람과 만나서 교감을 나누고 불화하기도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이별하는 과정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책친구와 도서관 여행을!
우선 아이들 마음을 훔쳐보기로 한다. 53번째 꿈책 파티에 오는 학생들의 이름을 알록달록한 색지에 써서 동그란 테이블에 꽃밭처럼 옹기종기 세워 둔다. ‘다른 빛깔을 가진 그대들을 환영해!’라는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이때 따뜻하고 달콤한 코코아를 준비한다. 환대의 기본은 ‘음식’ 아닌가!
 
2시간 반 뒤에 헤어질 사이지만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부르고 최대한 빨리 이름을 외운다. 그리고 ‘책친구 놀이2)’를 시작한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친구에 대한 정보를 세 가지 인터뷰를 통해 알아내고, 서가 사이를 자유롭게 거닐며 친구에게 어울리는 책을 한 권 고른다. 책 내용 보기 금지, 표지만 보고 고르기라는 규칙을 주면 아이들은 오히려 “선생님, 책 들춰 보면 정말 안돼요?”라는 귀여운 질문을 한다. 아이들은 골라온 책을 이용해서 짝꿍을 소개하고, 책 제목을 써서 팀 이름을 만든다. ‘부릉부릉 여자 윌리가 간다’, ‘엄마의 감자밭에서 맛본 똥파리의 행방’ 등의 괴상한 모둠 이름을 짓지만, 친구의 개성과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서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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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도서관 여행을 떠난다. 모둠별로 도서관 1층과 2층을 두루 여행한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서 애칭을 짓고 포스트잇에 써서 그곳에 붙인다. 모둠별로 번갈아가며 친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애칭과 의미를 설명한다. 나머지 친구들은 패키지 여행단처럼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는다.
 
아이들이 예상보다 도서관 여행을 좋아해서 흥미롭다. 학교도서관은 아이들이 매일 만나면서 구석구석 의미 있는 공간이 되지만, 꿈책 도서관은 아이들이 딱 한 번 방문하는 곳이다. 애칭을 붙이면 잠시 머무는 곳이어도 마음이 깃들겠거니 싶었는데, 의외로 좋아하는 모습이 귀엽다. ‘역시 사람은 의미를 부여하는 걸 좋아하는 존재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1층 동굴에 붙인 ‘애벌레 몸통’, ‘비밀의 동굴’, 큰 인형이 있는 수업 공간에 ‘돌이와 삐삐의 러브하우스’라고 이름을 지은 맑은 영혼들을 사랑한다. 이제 그곳을 우리가 지은 이름으로 부른다. 그 순간 우리만의 은밀한 공감대가 생긴다. 짜릿한 일이다.
 
 
너의 이름은
파티 준비에 슬슬 시동이 걸린다. 우리 파티를 상징하는 첫 번째 순서는 마음에 드는 드레스 코드를 착용하고 사진 찍기! 이때 아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세상 모든 일이 조금 유치해야 재미가 더해지는 법이다. 다 같이 모여서 미션 수첩3)을 접고, 소설을 찾아서 1층 ‘애벌레 몸통’으로 떠난다. 아이들은 한 동굴에 2∼3명씩 들어가서 담요를 덮고 소설을 읽는 분위기를 즐긴다. 어떤 학생이 “동굴에서 친구와 「영혼 박물관」을 읽었던 시간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소감을 남겼다. ‘애벌레 몸통’ 안에서 친구와 책을 맞잡고 읽은 시간이 인생의 추억이 되었나 보다.
 
다 읽고나면 2층 올라오는 입구의 퀴즈가 아이들을 기다린다.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는 왕 간단 퀴즈! 맞히면 달콤한 사탕을 먹는 미션이다.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의 이름, 영혼들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의 명칭, 심지어 소설 제목을 묻기도 한다. 퀴즈가 마치 시험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1층을 탈출해서 2층으로 올라오는 것에 성공했다고 여긴다. 미션 성공!
 
다음 활동은 ‘너의 이름은4)’이다. 「영혼 박물관」 소설의 훌륭한 점은 학생들이 작품의 인물에게 마음의 무게를 싣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무언, 인태, 진후(나)에게 안쓰러움, 믿음직스러움과 같은 마음을 전한다. 이 마음을 인디언식 이름으로 표현해 본다. 아이들은 삶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불현듯 떠난 무언에게 ‘부서진 거울’, ‘찢어진 책’, ‘새끼손가락(다른 손가락에 비해서 여리고 안쓰러운 느낌이 들어서)’이라는 아픈 이름을 지어 주었다.
 
무언에게 마음을 담아 이름을 지어 주는 아이들 영혼이 겨울날 산골 시내의 얼음장처럼 맑다. ‘친구와 함께하는 가로세로 낱말 퍼즐’은 항상 인기가 좋다. 아이들은 읽었던 소설을 뒤적여가며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푼다. 모르면 옆 팀에 가서 염탐 활동도 살짝 한다. 다 풀면 모둠 친구들과 함께 정답 테이블에 가서 정답을 확인하고 이상이 없으면 젤리를 한 개 입에 쏙 넣어야 미션이 비로소 완료된다.
 
 
내일의 놀이는 오늘과 같지 않다
이제 ‘떠오르는 그대5)’ 활동을 할 차례다. 소설을 읽다 보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도 있다. 대학생 때 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30년을 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났기에 아련한 아픔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한 사람이 꼭 있다. 반드시 아픈 기억은 아니더라도, 인태처럼 운동을 잘 하는 친구, 학교폭력 사건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친구, 순재처럼 똑똑한 친구 등. 아이들과 방황하는 친구를 떠올리고 마음의 배경과 이유를 나눴다. ‘세상 속으로’ 활동을 통해 소설을 읽고 떠오르는 사회의 사건, 세상의 일을 서로 나눴다.
 
아이들은 각박한 인간관계로 일어나는 사건들로 성적 조작 사건, 학교폭력 사건과 같이 부정적인 일들을 주로 관련지었다. 이윽고 ‘오늘을 추억하게 될 거야’ 활동을 한다. 「영혼 박물관」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고르고 이유를 나누고, 해당 문장을 광목 가방에 옮겨 쓰면서 꿈책 파티를 마무리한다. 파티를 즐긴 학생들은 다음의 문장을 좋아했다.

 
“오늘 밤은 바람이 좀 더 세게 불어도 좋을 것 같다.”
“문제는 지금, 여기.”
“어둠을 지나 빛을 향해 나아가는, 불안한 영혼들의 꿈을 위한 실험실.”
“맥락의 다리를 건너 우린 곧 또 다른 시간을 맞이해야 하니까.”
“네가 내 옆에 있는 게 더 나아.”
 
아이들이 고른 문장들이 모두 의미 있게 반짝인다. 조금 더 씩씩하게 살고 싶고, 지금의 삶에 집중하고 싶고, 곧 맞이하게 될 다른 맥락의 시간을 설레며 기다리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는 아이들이 이 마무리 활동을 시시하게 여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살짝 했다. 그런데 한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광목 가방에 내 손으로 책 속의 인상 깊은 구절을 적는 일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직접 자신의 손 글씨로 쓰는 것이 신기했고 이 구절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작품에 마음을 담으면, 함께하는 친구와 마음이 통하면, 소소한 활동도 마음을 쏟으면 세상에 시시한 일은 없구나.’ 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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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교수는 『열두 발자국』에서 바닷가에서 정성들여 쌓은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 사라져도 그다지 안타까워하지않는 우리의 보편적 감정을 이야기한다. 돌이켜 생각하니 과연 그랬다. 어린 시절 내가 쌓은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 사라져도 마음에 어떤 서운함도 없었다. 정재승 교수는 그 무심한 마음은 과정 자체를 즐기며 결과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몰두하는시간 자체가, 그 과정이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여기에서 창의와 새로움이 비롯된다고 한다. 나는 꿈책 파티가 떠올랐다.
 
나는 두 시간 반 동안 단 한 번에, 아이들의 마음을 훔치려고 최대로 집중한다. “도서관 괜찮았어.”, “오랜만에 책 읽었는데 할 만 하던데!”, “꿈책 파티 짱이야!”와 같은 한마디를 얻기 위해서. 나도 오늘의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한 걸까? 파티가 끝나도 마음에 서운함이나 허전함이 남아 있지 않도록 놀이에 몰두하고 싶다. 내일의 놀이는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놀이의 힘을 믿는다.
“내일 다시 쌓는다면 또 다른 모래성이 나올 것이다.”(『열두 발자국』 중에서)
 
 
 
*각주 참조
1)『 열두 발자국』(정재승, 어크로스)의 내용을 빗댐.
2)『 책으로 행복한 북적북적 책놀이』(전국학교도서관 인천모임 책친구, 단비) 참고.
3) 춘천 담작은도서관의‘ 나니아 나라 이야기’ 미션 수첩에서 배운 방법임.
4)『 책으로 행복한 북적북적 책놀이』(전국학교도서관 인천모임 책친구, 단비) 참고.
5‘) 떠오르는 그대, 세상 속으로, 오늘을 추억하게 될 거야’ 활동은 송승훈 선생님의 서평 쓰기 연수에서 배운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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