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외국도서관을 가다 - 99년만에 반납된 책과 도서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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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4 16:30 조회 8,658회 댓글 0건본문
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평생 가지고 있던 그 책이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이라는 사실
을 안 두덱 씨는 그 책을 뉴베드퍼드 공공도서관으로 가지고 갔다. 과연 연체료가 얼
마나 나올지, 그리고 도서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기도 했지만 분명히 도서
관 소유의 책이므로 반납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놀라기는 그 책을 돌려받은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1910년에 대출된 책이
99년 만에 반납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옛날에 쓰던 대출 카드 목록은 사라
지고 온라인 목록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이미 오래전 일이었고 그 책에 대한 기록
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두덱 씨가 그 책을 계속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
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도서관의 연체료 규정에 따르면 두덱 씨가 지불해야
할 연체료는 360달러가 넘었지만, 도서관에서는 책을 돌려 준 두덱 씨의 정성에 감사
하는 의미에서 연체료를 면제해 주었다.
연체료를 받지 않겠다는 도서관의 결정에 두
덱 씨는 이제야 걱정을 덜었다며 좋아했다. 도서관에서는 두덱 씨가 반납한 그 책을
도서관의 역사를 말해 주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간주하고 도서관의 고서 및 귀중본
컬렉션에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정부 조직에 관해 서술한 그 책 내용 중 상당 부분
은 너무 오래되어 현재 미국의 정부 조직 상황과 많이 달랐기 때문에 도서관의 장서로
다시 편입시키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 책을 소장하고 있던 두덱 씨의 어머니가 실제 그 책을
도서관에서 빌린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1922년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두
덱 씨의 어머니는 야간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는데, 그때 누군가가 그녀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 조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 책은 영어를 공
부하는 이민자에게 여러 가지로 유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미 이 책은 벌써 12
년이나 연체된 상태였다는 사실을 두덱 씨의 어머니가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모비딕’의 도시 시대를 앞서간 도서관을 세우다
가십처럼 소개된 이 기사를 읽으며 나는 미국의 도서관 문화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했
다. 뉴베드퍼드 공공도서관이 있는 뉴베드퍼드 시는 인구가 채 10만이 되지 않는 도
시이다. 그런 도시에 있는 공공도서관에 고서 및 귀중본 컬렉션이 따로 운영되고 있
다는 사실도 흥미로웠고, 이미 1910년에 활발하게 운영되던 공공도서관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호기심이 생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베드퍼드 공공도서관의 역사를 살펴보
다가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그 책이 1910년 무렵 연체가 되
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뉴베드퍼드는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항구 도시인데 이 도시의
역사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보스턴 인근에 처음 도착한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 도시는 19세기 초반을 지나며 포경업의 중심지로 주목받게
되었고 경제적인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고래와 관련된 문학 작품을 생각하면 가장 먼
저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 바로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다. 허먼 멜빌이 포경선의 선원
으로 일하며 소설을 구상 했던 곳이 바로 바로 뉴베드퍼드이고, 『모비딕』의 서두에 묘
사된 항구 도시 역시 뉴베드퍼드이다.
허먼 멜빌이 모비딕을 발표한 1851년, 매사추세츠 주 의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법을
한 가지 통과시켰는데 그 법은 바로 메사추세츠 주 내의 각 도시에서 자체적으로 공
공도서관을 설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주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도서관을 만들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이 법이 만들어지
자 재빨리 움직인 사람들 중에는 뉴베드퍼드의 유력 인사들이 있었다. 법이 통과되자
마자 뉴베드퍼드 시에서도 도서관 설립과 관련된 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시의 조례 제
정과 예산 편성이 이루어져 1853년 3월 3일에 도서관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1850년대에 공공도서관을 건립하기 위해 나섰던 이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도서관에 대해 그들이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과연 그들에게 도서관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들이 도서관을 통해 추구한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뉴베드퍼
드의 시민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뉴베드퍼드 공공도서관과 관련된 기록들은 매우 잘 보관되어 있다. 특히 매년 도서
관 운영위원회에 제출한 도서관 연례 보고서를 통해 도서관이 실제 어떻게 운영되었
는지 알 수 있었으며 또한 도서관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그 기록에 따
르면, 뉴베드퍼드에 도서관이 처음 문을 연 1853년부터 도서관의 조직 및 운영과 관
련된 각종 규정이 상세하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내용은 대출 기간과 연체 및 분실
에 대한 조치, 그리고 수요가 많은 책들에 대한 예약 절차 등 지금 그대로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상세하고 현대적인 것이었다.
특히 도서관의 운영과 관리 책임을
맡은 사서와 그 사서를 보조할 인력을 반드시 고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시해 놓았는
데, 도서관의 실제 운영과 관련된 세부적인 지침은 사서의 재량에 따라 결정할 수 있
게 해두었다. 실제 도서관이 문을 연 이후 19세기 후반 동안 이 도서관의 사서로 봉직
한 로버트 잉그래함 씨는 미국 도서관계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로서 무려 50년을 이
도서관에서 일했다.
모두가 사랑한 도서관
지금은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는 이 도서관의 제1차 연례 보고서에서는 이 도서
관을 통해 주민들이 “지적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함과 동시에 새롭고
인기 있는 공공오락public recreation의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는 설립 목적을 이야기했는
데, 도서관을 정보를 제공하는 지식의 창고로서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
는 공간으로 본 점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매우 앞선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뉴베
드퍼드에는 공공도서관이 생기기 전부터 회원제로 운영되던 도서관이 있었고 책과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공공도서관이 설립될 당시 회
원제로 운영되던 사설 도서관의 장서 5천여 권을 구입하여 기본 장서로 삼았다고 하
는데, 문을 열자마자 도서관은 시민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고 첫해에만 2만 2천여
건의 대출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개관 당시부터 이미 공공도서관으로서의 대
출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담당했다.
1892년에 하버드대학 도서관에서 출판한 미국 내 도서관들의 고서 및 귀중본 컬렉션
안내서에는 뉴 베드퍼드 도서관이 미국과 영국의 역사 및 문학 그리고 퀘이커 교도들
과 관련된 자료를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개관 이후 도서관은 몇 차례 증축을 거듭하며 건물과 장서를 늘려나갔는데, 그 과
정에서 뉴베드퍼드 시의 부유한 시민들이 여러 차례 기증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
다. ‘책을 구입하는 데 사용해 달라’ 혹은 ‘도서관 건물을 증축하는 데 써 달라’는 등의
구체적인 주문과 함께 도서관에 기증된 재산은 기금으로 관리되며 시에서 배정하는
예산과 함께 도서관 운영에 사용되었다. 그 결과 현재는 본관과 4개 분관에서 약 50만
권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으로 성장했다. 지난 2000년 인구센서스 당시 뉴베드퍼드 시
의 인구가 10만에서 약간 모자랐으니 인구 한 명당 5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 도서관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1910년에 현재 도서관이 있는 새로운 건물
로 이전했다는 사실인데, 아마 문제의 책이 99년 동안이나 연체된 채 남아 있었던 것
은 도서관 이전으로 인한 혼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도서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1853년에 문을 연 도서관이 이렇게 계속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도시
에 사는 사람들이 도서관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인 이유는 도서관의 힘을 잘 알고 있
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은 도서관의 힘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들이
도서관의 힘을 알게 된 유일한 방법은 도서관의 이용자로서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
는 책을 읽고 그 책에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경험을 통해 도서관이 중요하
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도서관을 만들고 키워나가는 것이 자신은 물론 다
른 이들, 그리고 도시 전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공공도서관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인 앤드류 카네기 역
시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부
유한 이웃의 개인 서재에서 책을 빌려 보면서 자신의 부를 쌓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
를 얻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공익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놓으면서 ‘가장 의미 있
는 일은 바로 도서관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 믿었다. 더구
나 카네기는 도서관을 단지 건립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세심하게
키워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도서관 건립에 조건을 내걸었다. 사서를 고용
하고 매년 장서를 구입할 도서관 운영비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지역에만 도서관을
건립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도서관에 대한 생각과 19
세기 중반 뉴 베드퍼드의 시민들과 카네기의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비교해 보았다.
물론 시대 상황이 달라졌으므로 절대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몇
가지는 비교해 볼 수 있으리라. 과연 지금 우리 사회에 도서관의 존재와 도서관의 힘
에 대해 19세기 그 사람들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도서관과 독서실
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도서관은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도서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어디에서
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여전히 지역 사회의 공공도서관은 부족하지만 최근 몇 년간 거의 모든 학교에 도서
관이라는 시설이 마련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도서관이 되었건 도서실이 되
었건, 사서교사가 근무를 하건 아니건 간에 말이다. 그렇게까지 만드는 데도 분명 많
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니, 겨우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뿐이다. 이제는 그 도서관들이 제대로 도서관답게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도서관부터 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터넷 시대에 도서관이 뭐가 필요하냐고 반문하며 도서관은 아이들이 시험공부할
책상만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이들은 제대로 운영되는 도서관을 이용해 보
지 못한 불행한 이들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앉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도서관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교육 행정가들과 싸워가면서, 필요하다면 그들을 가르쳐서라도 도
서관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과정을 거쳐 그들의 도
서관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대로 운영되는 도서관’
을 거쳐 우리 아이들에게 도서관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시험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정보가 있는 공간이고, 그렇기에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평
생 찾아가야 하는 중요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어린 시절부터 인식하게 만든다면 그 아
이들이 어른이 되고 또 정책을 결정할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도서관에 대한 대우가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학교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은 학교도서관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
일은 도서관계 전체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고 도서관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제
대로 해야 할 일이다. 제대로 운영되는 도서관에서 도서관 맛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소중한 정보들을 얻는 공간이 도서관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도서관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
요한 문화 및 교육 시설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근처에 도서관이 있기 때문에 집값이
올라가는 날도 오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의지와 노력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필요한 의지와 노력은 혁명가들의 그것에 못지않을 것이다. 결국 지금
도서관계에 필요한 사람은 좀 더 ‘시끄럽게’ 떠들며 자신과 도서관의 존재를 사람들
에게 알리는 정열적이고 목소리 큰 사서, 아니 도서관 혁명 투사가 아닐까? 적어도 당
분간은 말이다. 그러다보면 미래의 어느 날, 나이 지긋한 흰머리 노신사가 오래된 책
한 권을 들고 초등학교 도서관을 찾아와 60년 동안 연체된 책이라며 수줍게 반납하는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연체료는 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