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자연이 내어 준 자리에 자연히 아이들 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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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14:19 조회 8,807회 댓글 0건본문
조현리... 지나쳤다. 용문산 등산객들 사이에 묻혀서. 정확히 두 정류장.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기다리기엔 좀 애매한 시간. 시골의 두정류장이란 도시와 다르지만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푸른빛은
지워지지 않고, 은근한 고요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가느다란 숲을 지나 작은 마을
시골길 위에 조현초등학교.
자연에 잇대다
저마다 키를 다투듯 길고 활기찬 나무들이 서로 이웃하며 학교를 둘러싸고 있었다. 수업이 한창인
시간, 조용히 도서관으로 향하는데낯선 가야금소리가 친숙하게 다가왔다. 슬쩍 엿보니 아이들 제법
근사한 자세로 가야금을 켜고 있었다. 조금 더 나아가니 경쾌한 음악소리와 그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꿈나무도서관은 소리들의 어울림 끝자락에 있었다.
도서관에는 사서 선생님밖에 없었다. 인사를 나누고 도서관을 둘러본다. 아담하고 화사하다 그리고
창밖으로 허수아비가 보인다. 도서관의 창과 창으로 창창한 빛, 한쪽 창의 무르익은 금빛 사이사이로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 짓고…’, 또 다른 창으로 운동장 너머의 풀빛이 오르락내리락 그득하다. 학교
주변이라서 혹은 도서관이라서 침묵을 만들려 애쓰기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고요를 잇는 듯, 도서관은
조용하고 밝았다. 간간이 들리는 선생님의 책 넘기는 소리만이 도서관이구나 하고 느끼게 했다.
똑똑하고도 편안한
수업이 끝났는지 속속 아이들이 들어섰지만, 그리 소란스럽지 않았다. 아이들은 각자의 책을
들고 저마다의 편한 자세로 읽기에 몰두했다. 중앙의 둥그런 책장 옆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
선생님도 있고, 한쪽 끝에서 책을 살피는 학부모도 있었다. 그리고 잠시 도서관을 들른 도서관
담당 김해련 선생님도.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부분의 학교가 각 학년, 반별로 도서관 수업을 배당하고 정해진 시간에 가서 수업을 하도
록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학교는 배당되어 있지 않아요. 선생님들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도서
관에 와서 수업도 하고, 자료도 찾을 수 있어요.”
이러한 활동이 가능한 건, ‘조현교육과정9형태’라는 조현초등학교만의 특성화된 교육과정
때문이다. 이 교육과정은 교과와 재량활동, 특별활동을 재구성한 것으로, 교사의 자발성을 최
대한 살린 활동중심 교육과정이다. 이와 더불어 한 교사가 동일한 학년만 맡는 학년전담제를 실
시하고 있어서, 교사로 하여금 담임 학년 지도의 전문성을 기르게 하고, 업무를 줄여 철저한 수
업 준비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보다 폭넓은 수업을 가능하게 한다. “올해 3월에 우리 아이들이
이 학교로 왔는데, 교육과정이 좋은 것 같아요. 전에 있던 학교와 달리 여기서는 좋은 책을 많이
권장해줘요. 그리고 선생님이 아이들과 책의 원전을 함께 읽어 나가요.”라는 이경아 학부모의
말을 통해 조현초만의 더 많은 특별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꿈나무도서관은 이러한 교사들의 창의적인 활동을 뒷받침하는 학습지원센터의 역할을 맡
는다. 수서 과정을 보면 교육과정에 필요한 내용이 우선이 되는데, 매년 3월에 각 학급의 담임들
이 1년 동안 필요한 도서를 제시하면, 그 책을 구입해 도서관에 마련해 놓거나, 각 학급으로 돌
린다. 이는 “담임선생님이 추천 도서를 정해주는데, 우리 도서관에 다 있어요. 그래서 틈틈이 읽
으러 와요. 수업시간에도 도서관에 와서 수업을 하는데, 여러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아요.”라는 5
학년 최근진이 학생의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역시 도서관은 조용히 책 읽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 좋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고전
적인 의미의 도서관이 더 의미가 있다고 봐요. 여기 와서 미디어 자료 검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
다고 봐요. 우리 학교의 도서관은 단지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에요. 교육과정에 맞춰 도서관을
짜 넣는 게 아니라, 그냥 도서관이 있는 거예요.”라는 김해련 선생님의 말처럼.
담백하고 총총하게
아이들은 마실 나왔다 들어가는 것처럼 자리를 뜨고, 최선영 사서 선생님에게 도서관 이야기를
들었다. 조현초등학교 꿈나무도서관은 멋이 없다? 분명 겉멋이 없다.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독
서의 날, 독서의 달 행사, 독서 주간 등과 같은 큰 행사를 비롯해 도서관 행사가 끊이질 않는데,
이곳은 방학 중 독서캠프, 작가와의 만남, 독서마라톤, 월별 독서 행사 정도를 진행한단다. 어쩌
면 뻔한 행사만, 싶었는데 그게 좀 다르다.
조현초등학교의 방학 독서캠프는 학교의 주도로 이루어지지 않고, ‘학부모 독서 토론 동아
리’의 어머니들이 주축이 되어 행사 계획부터 진행까지 맡아서 한단다. 물론 학교의 도움을 받
아서. 누구보다 아이들을 위하고 아끼는 부모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더불어 부모들도 자녀 교육에 자연스럽게 참여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
는 주체라는 걸 확인하지 않을까.
일반적인 초등학교의 경우 1년에 한 번 가질까 말까하는 작가와의 만남을 이곳에서는 1년에
여섯 차례나 한단다.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작가를 여러 번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작가
와 만남으로써,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이를 위
해, 학생들이 작가의 작품을 미리 읽도록 책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전체 학생이 함께, 각 학년 당
한 작가씩, 저학년만 나눠서 등 아이들이 작가와 교감할 수 있는 적합한 형태를 찾아가고 있다. 이
는 조현초만의 교육과정에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단다. 이렇게 할 수 있기까지는 동화작가이자
시인인 이중현 교장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독서마라톤은 독서 5km는 5,000페이지(약 30권), 10km는 10,000페이지(약 60권) 등 읽는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는 행사다. 참가를 원하는 학생의 신청서를 받고, 마라톤 일지 대장에 누
적해서 적으며 학부모의 확인서도 받아, 가정과 방과 후 독서활동, 도서관 활용
도 연계한다. “다른 데서는 기간을 정해놓고 하는데, 우리는 6년 내내 쭉쭉 올라
가는 거예요. 책을 꾸준히 읽으면 올라가는 대로 누구나 상을 받아요. 많이 읽는
친구는 꾸준히 보는 거고, 쪽수가 올라가는 걸 보면서 흥미를 느끼고, 상 받는 것
에 뿌듯함을 느끼면서 책을 더 읽게 돼요.”라는 최선영 사서 선생님의 말을 통해
서 아이들의 뜨거운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아이들을 보듬다
꿈나무도서관은 아침이 되도 문을 열지 않는다. 닫지 않는 문, 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끔 이른
아침에 오는 아이들은 사서 선생님이 없어도, 알아서 불을 켜고 책을 본단다. 혹여나 책을 잃어
버리지 않을까 염려가 돼서 물었더니, 간혹 읽다가 가져가는 친구가 있긴 한데, 교실에 가면 다
있다고 한다. 열어 놓은 문은 마을 주민을, 동네 아이들을, 모든 사람들을 향해 있는 것이다.
특히 방과 후 저녁의 도서관 문은 마땅히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활짝 열려 있다.
이는 맞벌이 및 결손 가정 등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저녁 9시까지 보육실을 개방하
고 보육활동을 하는 조현초등학교의 ‘꿈나무 안심학교’의 연장선으로 아이들이 보육실과 바로
연결된 도서관에서 마음껏 쉬고, 책도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꿈나무도서관의 배려는 창을 넘어 운동장을 지나 교문 옆에도 닿는다. 학부모들이 기증한
도서 중, 오래된 책들을 모아 교문 옆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의자 가까이에 놓는다. 아이들도 학
부모도 기다림 곁에 책을 둔다.
교문을 나서서, 학교에 들어서며 멈춰뒀던 시간을 켠다. 걸음을 잇고, 학교에서 멀어지는데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희미해지지않는다. 아이들은 정말 학교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