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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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14:05 조회 9,068회 댓글 0건본문
도서관의 꽃, 알고 보니 사서!
네 번째 이유로 꼽은 ‘사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책이다. 책이 있어야 도서관이니까. 하지만 책만 쌓아둔다고 저절로 도서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책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바로 사서.
교하도서관에는 2급 이상 정사서가 15명이나 된다. 이들이 하는 일은 수서부터 도서 분류와 정리, 각종 강좌와 행사 기획과 진행 등 도서관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업무라고 해도 좋다. 돌아가면서 각 자료실의 대출·반납대에 앉는 것도 이들이고, 입구의 안내데스크에서 도서관 이용 안내를 하고 회원 가입 접수를 받는 것도 이들이다. 사서가 도서관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야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안내데스크에까지 사서가 앉아있을 필요가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해 장지숙 관장은 이렇게 답한다.
“도서관 이용자를 만나는 일이야말로 사서의 기본 업무니까요. 책 분류목록을 꿰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사서의 전문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을 독자에 대해서도 알아야 해요. 책과 독자, 즉 도서관 이용자에 대한 헤게모니를 동시에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사서와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도서관 이용자는 어떤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독서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장지숙관장은 미국에서 특히 활성화되어 있는 ‘레퍼런스 서비스’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었다. 책을 쓰거나 취재를 하는 등 전문적인 자료 수집이 필요한 사람이 도서관 사서에게 자료 문의를 한다. 그러면 사서는 관련 책 목록은 물론 신문 기사나 논문, 연구 자료까지 찾아 주고, 도서관에 없는 자료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심도 깊은 안내를 해 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업무량은 많고 시간은 늘 모자라다. 또 사서 개인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서지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국내 서지 분야는 그리 앞서가는 처지가 못 된다. 그리고, 정작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이에 관한 아무런 인식 기반이 없다는 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일 말고는 별다른 서비스를 누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긴, 도서관에 가서 제자리에 꽂혀 있지 않은 책 때문에 애가 타도 사서에게 말을 걸기가 쉽지 않은 경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갖고 있을 것이다. 대략 사서란 나와는 별 상관없는 도서관의 직원, 자신의 업무로 늘 바쁜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러고 보니, 건물 곳곳에서 만난 교하의 사서들은 좀 달랐다. 적극적인 태도와 호의 어린 표정들, 언제라도 먼저 말을 걸어 와 줄 것 같은 눈빛들. 아마 전방위적인 활약에 의해 자연스럽게 체득된 태도가 아닐까. 도서관이용자들도 처음엔 의아해했지만 지금은 사서들이 가까이 있다는 점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곧 ‘이 책 재미있던데, 비슷한 책이 또 뭐가 있나요?’ 하고 물어 오는 이용자도 생겨날 것이다.
더 많은 책을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다시 교하도서관에 반할 수밖에 없던 이유, 그 첫 번째로 돌아가자. 교하도서관 문헌정보실 1층에는 신착 도서 코너가 있다. 발간된 지 몇 달 만에 이용자의 비치 희망 접수를 거쳐 겨우 들어온 책들이 아니라, 정말 따끈따끈한 신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아침에 신문에서 보고 저녁에 도서관에서 빌려갈 수 있도록!’ 교하도서관의 빠른 신간 확보를 위한 노력을 담고 있는 모토다. 실제로도 신간이 언론에 소개되는 시점과 도서관에 책이 들어오는 시점이 거의 같다. 다른 도서관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 교하에서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보통 도서관에서는 새 책을 들일 때 가격 입찰 방식으로 대량 구입을 하게 된다. 하지만 교하도서관에서는 도서 공급업체와 연간 계약 방식으로 계약을 맺어 출판사에서 보도 의뢰용 신간을 배포하는 시점에 도서관에도 책이 들어오게 하고 있다. 새 책이 들어오는 주기는 2일에서 4일. 이렇게 들어 온 책은 모든 사서들이 직접 일일이 확인하며 실물 수서 과정을 거쳐 1~2일내에 분류와 정리 작업까지 마친다. 그러니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한 책이 신착 도서 코너에 도착하기까지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는 셈이다.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기존 장서 대출률보다 훨씬 높은 60%대 이상을 기록하는 신간 대출률도 그 증거 중 하나다.
다음, 도서관에는 모름지기 책이 많아야 하는 법이니 장서 규모도 따져 봐야 한다. 교하도서관은 현재 보유 장서 6만여 권에, 보존 서고는 20만 권의책을 보관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 정도면 지역 도서관으로서는 국내 최대 수준이라고 한다. 넓은 자료실마다 줄지어 늘어선 책장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굳이 수치로 듣지 않아도 책이 많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책이 많다고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어떤 책인지도 중요하니까. 장지숙 관장은 책장 수를 무한정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개인 문집처럼 이용률이 거의 없는 책, 손상이 심한 책을 폐기하고 그 자리를 다른책으로 채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책은 소모품이 아니라 자산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한번 도서관에 들어온 책을 반출시키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 장지숙 관장은 지역 도서관이 어떻게 운영되는 것이 시민들에게 더 도움이 되고 제 기능에 충실한 것인지를 생각하면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말한다.
‘공부방’을 없애고 문화와 소통의 공간을 늘리다
통유리로 이루어진 건물 외벽에 3층까지 막힘없이 툭 트여 있는 구조가 전체적으로 밝고 쾌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설 도서관답게 전산 시스템이나 크고 작은 편의시설도 최신 설비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 공간 구성에서 가장 큰 특징은 일반 열람실, 즉 칸막이가 있는 책상과 의자, 사물함으로 이루어진 ‘공부방’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애초에 도서관에 공부방이 들어 있어야만 할 까닭은 없다. 처음 도서관이 지어지던 시절, 많은 식구들이 북적거리는 집에서 따로 공부방을 갖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런가. 오히려 공부방 때문에 도서관의 제 기능이 떨어지고 분위기가 변질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그래서 교하도서관은 과감히 일반 열람실을 없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아트센터를 지었다. 6개월, 1년이 되도록 바뀌지 않는 미술품 몇 점이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늬만 갤러리’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전문 큐레이터가 상주하는 ‘진짜 갤러리’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파주시에서 부담한다. 간혹 시에서는 아트센터 이용객 수가 기대보다 적다고 섭섭한 기색을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장지숙 관장의 생각은 다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도 늘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면서 관람하는일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문화 공간이 보장되어 있고, 언제든 그곳에서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지, 양적인 평가가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취재를 갔을 때는 아트센터에서 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기획 전시 <제비다방>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어도 정성스레 마련된 전시공간에서는 도서관답게 책과 연계한 안내 프로그램과 함께 다녀간 사람들의 훈훈한 자취도 짚어 볼 수 있었다.
아트센터가 있는 도서관 3층에는 편안한 소파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읽을 수 있는 브라우징룸도 마련되어 있다. 150여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소극장에서는 매주 영화가 상영된다. 문화강연실과 2개의 나눔방에서는 다양한강연이 열리고 지역 주민들의 모임이 진행된다. 멀티미디어실에는 30대가 넘는 PC와 2대의 대형 PDP가 다양한 DVD 목록과 함께 이용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도서관의 중추라고 해도 좋을 문헌정보실과 어린이자료실! 이 두 곳은 모두 복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어린이자료실의 매력적인 나선형계단은 예술의전당 리모델링 공사에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동화 구연 등을 위한 스토리룸, 독서 토론을 진행하는 아이들을 위한 토론방도 두 개나 갖춰져 있고, 벽면에는 도서관에 어린이 이용자들을 초대해 하룻밤을 보낸 도서관 캠프 때 함께 그린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그런가 하면 문헌정보실1, 2층을 연결하는 층계참을 장식한 것은 이용자들이 ‘교하도서관’ 다섯 글자로 지은 오행시 여러 편이다. 책장 사이사이에는 사서들이 추천 도서를 선정하고 소개 글을 쓴 ‘서가 속 행복 편지’가 꽂혀 있다. 널찍하고 안락한 공간 구성은 물론이고, 이용자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다가서고 이용자의 숨결을 담기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맞다. 두루 나무랄 데가 없다.
지역주민과 함께 성장하는 도서관
2008년 7월 15일 개관한 교하도서관은 국내 첫 민간 위탁 운영 도서관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사실 민간 위탁이라는 방식은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기 쉬운 지점이다. 시설관리공단에서 위탁을 받게 되면 수익성이라는 민감한 고리와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하도서관은 시설관리공단이 아닌 이화여대에서 위탁을 받아 ‘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아도 좋았다. 학교에서는 연구 사업의 일종으로 도서관 사업에 참여하며 회계 처리까지 담당하기 때문에, 도서관은 회계상 투명성을 담보하면서도 선진적인 사업들을 실험적으로 진행할 수가 있다. 교하도서관이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유리한 기반이다.
한편, 파주라는 지역의 특성도 여러 면에서 교하도서관과 궁합이 잘 맞는다. 출판문화단지가 들어서 있기도 한 파주시는 책에 대해, 또 도서관에 대해 열린 마인드를 보여 준다. 당장 파주시가 선언한 올해 운영 목표만 해도 ‘책 읽는 파주’라 한다. 자연히 도서관을 지원하고 공조를 이루는 데 적극적이다. 지역 주민들의 독서 수준이나 지적 욕구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도서관에서 진행한 강좌를 계기로 모인 주민들이 인문학 공부 소모임을 꾸리는가 하면, 은퇴한 노년층 이용자도 이곳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숨 가쁘게 달려와 곧 개관 2주년을 맞게 될 교하도서관, 앞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갈까? 장지숙 관장은 ‘소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이 중요한 것은 책 자체 때문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해서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과 그 생각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우리 도서관에 늘 이용자들이 바글바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보다 정보와 생각이 공유되고 소통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지역 주민들의 소통의 장으로 자리 잡고, 지역 주민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도서관이 되고 싶습니다.”
도서관의 미래는 어때야 할까. 어떤 도서관이 정말 좋은 도서관이고, 도서관에 가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교하도서관은 이런 질문에 여러모로 새로운 시각을 환기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제 도서관은 폐쇄적인 공부방도, 소극적으로 책만 빌려 보는 곳도 아니라는 점이다.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고 다양한 대답을 찾아야 한다. 아무래도 도서관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얼른 더 많아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