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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5 23:25 조회 6,93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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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팔 마을의 소중한 가치를 잇다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 인도, 티벳, 부탄, 파키스탄 사이에 위치한 네팔은 다양한 문화와 민족들의 교차지로서 문화적, 예술적으로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받았다. 한편 지금도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농업을 중심으로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며 히말라야에 기대어 살고 있다. 이는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개인의 삶과 집단의 삶이 관계 중심의 소통을 통해 연결되었던 우리의 전통적 지역공동체와도 같은 것이다.

품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는 우연한 기회에 네팔의 풍부한 문화, 예술, 지역공동체가 가지는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네팔에 작은 사무실 ‘NGO PUM NEPAL’을 열었다. 한국에서 문화를 매개로 청소년(청년)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품은 ‘성장을 위한 속도 내기’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들을 네팔의 작은 마을에서 배우고 있다. 네팔 품은 카트만두 인근 모노허라 지역의 베시마을에서 2007년부터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 네팔의 문화를 지켜가며 마을공동체가 회복,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주체 지원이 사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베시마을도서관은 주민들의 사랑방이고, 아이들의 자발적인 학습 공간이면서, 청년들 스스로의 성장과 마을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복합적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품은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네팔의 70%를 차지하는 산간 마을에 지원을 시작했다. 그곳이 전기도, 도로도 없는 골리마을이다.



골 리 마 을 작은 도서관의 시작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로 10시간을 이동하고, 1000미터의 고도를 두 번쯤 숨 가쁘게 오르내리면 골리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2300미터 높이에 있는 이곳은 약 500여 년 전에 티벳에서 넘어온 세르파 민족이 삶의 터전으로 잡은 곳이다. 에베레스트라고 하면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오가는 유명한 곳이지만, 이곳은 트레킹 코스에서 벗어나 있는 평범하고 조용한 작은 산간 마을이다. 네팔의 산간 마을이 대부분 그렇듯이 풍부한 자연 환경에 기대어 살지만 그들의 보건과 교육 환경은 좋지 못한 불균형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도시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도시로의 이동 수준이 높지 않아 마을에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것이 네팔의 빠른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농업을 중심으로 한 생활공동체가 유지될수 있는 이유다.

골리마을 도서관 설립의 시작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을 주민들의 동참과 최소한의 신뢰였다. 골리마을 출신이자 네팔 품에 소속된 직원이 골리마을을 오가면서 몇 차례의 주민설명회가 시작됐다. 그 결과로 마을 어른 한 분이 땅을 기증했고, 마을 사람들은 노동력을 품앗이하기로 했다. 품은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자재비만을 지원했다. 마을 주민들은 한국 사람들이 와서 무엇을 하려는지, 도서관이 왜 필요한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마을을 위한 ‘좋은 일’이라는 사실은 교감이 된 것이다. 마을의 주민들은 노동력뿐만 아니라 나눠 먹을 음식도 손수 돌아가면서 준비했다. 마을 사람들은 항상 외국 사람이 와서 모든 것을 해준다고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과정을 낯설게만 느꼈지만, 어느새 도서관 건물이 윤곽을 잡아갈수록 마을의 것이라는 느낌을 손끝으로나마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동안의 공사 기간을 거쳐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2008년 11월에 완공됐다.



마 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도서관
마을 도서관이 완공되면서 도서관을 널리 알리고 자축하기 위한 잔치도 열렸다. 또한 매년 마을잔치를 열기로 마을 주민들과 약속했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모인 청년들 스스로 마을 잔치를 계획하게 했고, 네팔 품이 힘을 보탰다. 도서관에 아이들과 청년들이 만든 작품이 전시되고, 도서관 공사부터 지금까지의 변화 과정을 알리는 사진 전시회가 도서관 밖에서 열렸다. 도서관 벽은 청년들이 그린 그림들로 꾸며졌다. 전기가 없는 골리마을에 도서관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알리는 재밌는 콩트와 마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상도 상영됐다. 무관심하거나 어렵게만 여기던 마을 주민들이 도서관에 관심을 갖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마을잔치와 풍성한 행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낯선 곳이었다. 네팔에 국립도서관은 두 곳뿐이고, 그나마 가까운 사립도서관은 걸어서 5일을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궁금하고 가보고 싶어도 어색함 때문에 그들의 손으로 지은 도서관 문턱을 넘지 못했다. 심지어 도서관 바로 옆에 위치한 학교 선생님들조차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들어서려고 하면 막았다.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책을 보다가 망가뜨리게 될 경우에 대한 부담이 컸던 탓이다.

이런 이유로 도서관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했다. 이에 네팔 품 활동을 해오면서 깊은 이해와 신뢰를 가진 사진작가가 1년간의 자원봉사 활동 제안을 받아들이며 2009년 1월에 네팔 골리마을 도서관 코디네이터로 파견됐다. 한국 사람이 가니 도서관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졌고, 즉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동화책 읽어주기를 비롯해, 책에 나온 이야기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도서관공간이 아이들의 글과 그림으로 채워지면서 즐거운 생기가 넘쳐났다. 호기심과 도전의식, 변화를 재생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마을 청년들도 꾸준히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도서관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마을 도서관, 교육 · 문화의 변화를 이끌다
네팔 공립학교의 교육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단순한 기자재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의 수준이 매우 낮아 일방적인 외우기식의 수업을 넘어서지 못하고, 몇 십년 동안 교재가 바뀌지 않고 있다. 골리마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네팔 품은 인근 학교 교사들과의 도서관활용프로그램 워크숍을 통해 교사들을 자극했다. 그 결과 골리마을 인근 학교는 매주 한 번씩 도서관 정기 수업을 시작했다. 골리마을 공립학교는 매우 미흡한 수준이지만, 반별로 학생들을 도서관에 데려와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어도 도서관과 학교의 연결을 이어갈 수 있는 물꼬가 트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청년 조직이 성장하는과정에서, 특히 도서관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도서관운영위원회를 만들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을의 상황과 문화에 맞게 주체적으로 도서관을 자치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일곱 명의 도서관 청년운영위원회는 기본적인 도서관 관리부터 주말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실천한다. 티벳불교를 믿는 세르파들의 문화에 맞게 티벳어 교실 운영을 시작했고, 도서 구입을 위한 최소한의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소액의 유료 회원제를 실시하는 등 마을 청년들은 그들 스스로의 가능성을 유감없이 뿜어내고 있다. 현재 도서관 청년운영위원회는 또 다른 마을 청년들의 참여를 이끌어 도서관으로 연결시키고 있고, 네팔 품도 두 달이 멀다하고 골리마을로 향하며 청년 조직, 도서관운영위원회와 미팅을 지속하고 있다.



작 은 도서관으로 일군 희망
올해로 문을 연 지 3년째를 맞고 있는 골리마을 도서관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마을 도서관과 청년들의 성장이 마을 전체의 변화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골리마을은 여전히 조용하며 도시에 대한 동경도 존재하고, 실제로 가구 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마을의 희망을 키워가고 있고,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그 희망들을 지속시키기 위한 깊은 너울거림을 시작했다는 것에서 미래가 밝다.

‘크게 시작하지 않으려면 집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은 세계 굴지의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슬로건이다. 크게 시작하여 거대한 파도와 같은 큰 이익을 남기는 장사가 이 시대의 슬로건이 되고 있지만, 오직 크고 거대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골리마을의 작은 도서관에서 2년 동안 벌어진 일들은 너무도 작고 소박한 일들이다. 만약 처음부터 경제적 지원을 앞세워 일방적인 과정을 거쳤다면 골리마을에 숨겨진 스스로의 희망을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빈곤 국가 네팔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경계를 벗어나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네팔 골리마을의 사람들과 서로 배우고 재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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