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우리 도서관은 지금] 책마음카드와 함께한 우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12-04 13:35 조회 1,324회 댓글 0건본문
책마음카드와 함께한 우리
부산초등사서교사 책놀이연구회의 북페스티벌 운영 분투기
그림책은 신기하다. 마치 요정이 마법을 부리듯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준다. 요정이 막대를 손가락으로 톡톡 내리치면 마법 가루가 날리듯 그림책 글자들이 재잘재잘, 소곤소곤 우리 마음속에 쏟아지는 것 같다. 조용해야 할 곳에서 웃음을 못 참게 만들기도, 가끔 어린 날 상처받은 나를 지금의 내가 꼬옥 안아 주는 것 같은 위로를 받기도 한다. 여러 번 봐도 보이지 않았던 그림이 ‘나 여기 있는 거 몰랐지?’ 하고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와~” 감탄사를 쏟아낸다.
정영란 부산 모전초 사서교사, 김보영 부산 성북초 사서교사, 김혜미 부산 연포초 사서교사
그림책의 매력에 빠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시절에는 어른이 되기 위해 울고 웃는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좋아서 청소년 성장소설을 즐겨 읽었다. 하지만 2020년 망미초에서 기간제 사서교사로 근무하다 2021년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모전초로 발령 받기까지 4년 동안 읽고 수업했던 책은 그림책이었다. 그림책이야말로 전 연령을 아우르는 최고의 책임을 인정했다. 3년째 6학년을 대상으로 총 17차시의 그림책 수업을 하고 있다. 여덟 권의 그림책을 함께 읽고 활동하는 이 수업의 이름은 ‘책 읽고 마나타’. 만화 영화 <라이온킹>에 나오는 ‘하쿠나 마타타’를 모방하여 지었다. 우선, 그림책을 함께 읽는다. 아이들이 그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림책 속 텍스트는 늘 교사가 읽는다. 누군가가 ‘그림책은 읽어 주는 책’이라고 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림책을 읽고 나면 작게 프린트한 책표지를 자기가 원하는 색으로 칠하여 스크랩북에 붙인다. 그런 다음 작가의 이름을 쓰고 ‘마나타 활동’을 시작한다.
‘마음에 드는 문장 찾기’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멋진 문장보다 지금 나의 생각, 마음, 신체, 상황, 환경과 비슷해서 끌리는 문장을 고르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기분을 말해 봐!』(앤서니 브라운)을 읽고 “다 재미없어.”라는 문장을 골랐다. 월요일 1교시에 수업을 하는 반이라 충분히 공감해 주었다. 어떤 아이는 『가시 소년』(권자경)을 읽고 “나랑 놀자.”라는 문장을 선택했다. 가시를 모두 뽑고 수줍게 웃으며 말하던 책 속 주인공과 닮아 보였다. 또 『투발루에게 수영을 가르칠 걸 그랬어!』(유다정)을 읽고 “야아아아아옹!”이라는 문장을 뽑은 아이도 있었다. 집에 혼자 있을 반려묘가 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일상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문장들이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마법 같은 일은 일상에서도 많이 일어나. 그걸 인간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브로콜리 도서관의 마녀들』)라는 문장이 쓰인 대출대에 앉아 근무하는 성북초 김보영 선생님을 만났다. 오랜 고민을 한 듯 준비해 온 몇 가지 마음 카드와 감정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선생님께선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겸손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김보영 선생님은 마침 부산시교육청에서 주최하는 ‘2023 인성키움! 북페스티벌’에 학교도서관 부스 운영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관련 협의회에서 예산을 확보했다고 알렸다. 순간 ‘책 속 문장들을 카드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체하지 않고 ‘부산초등사서교사 책놀이연구회’ 선생님들께 계획을 알렸다. 부산초등사서교사 책놀이연구회는 마음 맞는 사서교사 열다섯 명으로 이뤄진 자율 연구회다. 마법에 걸린 걸까? 사서교사에게 가장 일이 많다는 가을, 본인들의 업무만으로도 벅찬 시기에 모두 흔쾌히 해 보자고 했다. 마법 같은 일은 일상에서도 많이 일어나나 보다.
카드가 만들어지기까지: 미움받을 용기를 내다
추석 연휴 하루 전날, 9월 27일에 북페스티벌 관련 협의회가 열렸다. 시교육청이 주축이 되어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에서 독서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행사를 기획해야 했다. ‘학교도서관 부스에서 어떤 체험을 내세우면 좋을까?’ 학교도서관 부스에 전시할 자료 협의는 쉽게 이뤄졌다. 그러나 부스를 방문한 시민이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은 깊어져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책놀이’ 아이디어가 나왔다. 나는 책놀이 관련 카드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다. 회의에 참가한 사서교사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담당 주무관이 학교도서관에서 부스를 운영하면 관련 예산을 청구할 수 있고, 예산을 청구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카드 제작도 가능하다고 했기에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기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산초등사서교사회 책놀이연구회 회장 정영란 선생님에게 전화했다. “우리 카드 만듭시다! 시교육청에서 예산을 지원해 준답니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부산초등사서교사 책놀이연구회 회원과 바삐 움직였다. 열다섯 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시교육청에서 예산을 지원해 준 이유는 책놀이카드를 제작하여 북페스티벌에서 활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기에 보름 안에 카드를 만들어야만 했다.
책놀이연구회 회원은 그림책에서 끌리는 문장, 위로받을 수 있는 문장을 찾았다. 정영란 선생님은 출판사에 인용 허락을 구하는 메일을 완성하고, 회원과 공유했다. 비대면 회의를 통해 각자 찾은 문장을 훑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회원은 모두 자기가 뽑은 문장에 따라 출판사에 이용 허락 메일을 보냈다. 그 결과, 서른 군데 출판사 마흔세 권 그림책에 나오는 특정 문장에 관해 이용 허락을 받았다.
카드는 43장을 양면으로 하고, 앞면에는 그림책에서 찾은 문장을 담고, 뒷면에는 앞표지와 책이름, 글과 그림 작가, 출판사(출판 연도)를 담아 출처를 밝히기로 했다. 책놀이카드 제작에 관한 것을 총괄하는 출판사 대표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대표님은 『괜찮아 카드』라는 카드를 디자인하셨기에 책놀이카드에 관한 이해가 높았다. 43장 카드 100통과 함께 책놀이카드가 들어갈 케이스와 케이스 겉면 스티커까지 납품하는 구두계약을 했다. 동시에 시교육청 업무 담당자에게 예산 집행을 요청했다. 책놀이카드 제작 일정에 맞춰 차질 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부탁했다. 담당자와 출판사 사장님 사이에서 예산 집행 같은 행정 업무를 수행할 자신이 없어서 담당자와 출판사 대표가 직접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왔다.
출근 전, 퇴근 뒤, 주중, 주말마다 책놀이연구회 회원과 출판사 사장님 사이에서 양쪽 의견을 수시로 전달했다. 그 사이 책놀이카드 이름은 책마음카드로 확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책마음카드를 인쇄하기 전에, 책마음카드 완성도가 높아지길 바라면서 책놀이연구회 단체 채팅방에서 확인했다. “○○ 책 맡으신 분, 띄어쓰기 확인 부탁드려요.”, “○○ 책 맡으신 분, 마지막에 마침표 있습니까? 없습니까?”, “○○ 책하신 분, ‘가끔은 말이야’ 뒤에 가운뎃점 맞습니까? 가운뎃점 여섯 개입니까?”
책마음카드는 10월 19일 연구회 대면 모임이 있는 날, 모임 시작 한 시간 전쯤 성북초에 도착했다. 카드 100통이 케이스에 담겨 오지 않았다. 확보한 예산은 카드 제작에 필요한 80%였고, 나머지 20%는 책놀이연구회 인력으로 메워야 했다. 카드 43장이 인쇄되어 낱개로 구분되어 있었고, 카드 43장을 추리고, 케이스 겉면에 스티커를 붙인 뒤 케이스에 넣는 작업까지 책놀이연구회 회원들이 직접 했다. 책상에 43장 카드를 올려놓고, 한 장 위에 한 장, 또 한 장 위에 한 장 포개어 가며 43장을 한 세트로 만드는 과정에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케이스에 스티커를 붙일 때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며 책마음카드 100통을 우리 손으로 완성했다.
100통을 손에 쥐었고, 직접 활용하는 일만 남았다. 북페스티벌이 있는 이틀 동안 활용하고, 책놀이연구회 회원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수업이나 행사에서 사용하기로 했다. 북페스티벌은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에 이뤄지는데, 문제는 금요일 오후였다. 금요일 오후는 사서교사 직무연수가 있는 날이어서 부스 운영이 힘들 수도 있었다. 다행히(?) 김혜미 선생님은 근무하는 학교 상황으로 인해 직무연수를 신청하지 못했다. 부스 운영을 부탁하기도 전에 선생님이 먼저 학교도서관 부스를 지키겠다고 했다. 얼마나 고맙던지! 책놀이연구회 선생님들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출판사에도 피드백을 계속 요청했다. 시교육청 주무관에게는 예산을 집행해 달라 전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제한된 시간. 책임 있게 예산을 집행해야 했다. 오로지 ‘책마음카드 탄생’을 보고 싶어서 미움받을 용기를 낸 시간들이었다. |
부산초등사서교사 책놀이연구회가 제작한 『책마음카드』 |
세대 구분 없이 마음을 읽고 나눈다는 것
고투 끝에 10월 27일, 부산 송상현광장 선큰광장에서 부산광역시교육청 ‘인성키움! 북페스티벌’이 열렸다. 우리 책놀이연구회 회원들이 노력하여 만든 책마음카드를 책놀이로 적용하여 이용자들에게 실제로 선보이는 날이 드디어 밝은 것이다. 부산 사서교사 직무연수 일정으로 바쁜 책놀이연구회 선생님들을 대표하여 학교도서관 부스 운영을 맡아 도착한 현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웅장하여 시작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산초등사서교사회 책놀이연구회에서 개발한 ‘책마음카드’ 체험하고 가세요!”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문장들을 뽑아서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 마음에 쏙 들어오는 문장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시겠어요?”
부산광역시교육청 소속 공공도서관 열 곳에서는 페퍼민트 디퓨저 만들기, 업사이클링 자개 그립톡 만들기, 독서 무드등 만들기, 펩아트 체험과 같은 화려하고 다양한 체험을 내세우며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밋밋할 수밖에 없는 학교도서관 부스 책놀이 체험에 과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걱정이 앞섰지만 다행히 기우에 그쳤다.
책마음카드를 활용한 책놀이에 참여 중인 어린이들(좌), 마나타 활동 결과물(우)
책상 위에 책마음카드를 한 장 한 장 펼치고, 책마음카드 문장이 담긴 그림책도 책상에 가지런히 정리했다. 페스티벌 주무대에서는 개막을 알리는 축포가 터졌다. 신나는 축하공연이 이어지며 들뜨고 신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시끌벅적한 체험 행사에 이용자가 대거 몰리고, 우리 부스에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이들이 생겨났다.
설명하지 않으면 무엇인지 잘 모를 것 같아 카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인지, 참여자들은 한두 마디로 설명해도 찰떡같이 카드의 용도를 이해하고 하나하나 집중해서 신중하게 살피고 쓰인 문장을 읽어 갔다.
부스에서 그림책을 읽는 어르신 | 참여한 시민들은 책마음카드를 통해 필사한 경험이 진심으로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학생들도 많이 참여했지만, 어르신들의 참여가 유독 반가웠다. 얼굴에 가득 피어 있는 주름을 다 이용해서 웃어 주시며 “참 좋다” 해 주신 한 어르신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온 것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았다. 돈을 줄 테니 책마음카드를 팔라고 조르는 분들도 있었다. |
“생각은 늘 책과 아이들에 닿아 있다.” 우리 책놀이연구회 회장이자 나의 믿음직스러운 동료 정영란 선생님이 한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늘 책과 학생들을 생각하다 보면, 사소한 것들도 그냥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을 독서교육과 연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말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책마음카드도 그 연결선상에서 탄생한 것이다. “읽고, 쓰고,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이든 만드는 것이 나에겐 휴식입니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김보영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도대체 언제 쉬세요?” 물을 때마다 환한 미소와 함께 돌아오는 대답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에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그림책이 있었다. 그림책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종합예술작품으로, 그 매력에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지친 영혼과 마음을 보듬고 쓰다듬어 주는 동시에 치유와 희망을 가져다준다. 책마음카드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독이기 위해서 만들었지만, 만들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내가 더 많은 보람과 희망을 얻은 것 같아 마음이 따끈하다. 무엇보다 독서교육에 대한 열정과 아이디어, 난관에도 꺾이지 않고 추진하는 힘이 합쳐져 만들어진 소중한 결과물이 자랑스럽다. 앞으로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는 방향을 연구하여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다.